12. 내가 읽은 좋은 시

가을행

월정月靜 강대실 2006. 9. 27. 10:51
 
 


                가을행

                             문   병   란

가을 아침 문득
손수건 한 장으로 길을 나선다
아무 준비 없는 길 떠남이
이토록 가슴 설레임은 무엇일까.

모르는 얼굴들 틈에서 두리번거리며
쫓겨가는 사람모양 서글픔을 안고
다음 열차를 기다려 개찰구 앞에 서면
제법 감도는 인생에의 비장감,
누구에게 결별을 고하지 않았어도
나의 애틋한 마음 허공에 운다.

인간의 고독한 삶이여, 줄줄이 매달린
온갖 속연들, 마누라와 자식과
제자와 직장의 동료와 여러 친척들,
그들의 눈빛은 오히려 선하기만 하거니
지금 내가 들고 있는 차표 위에는
유언처럼 슬픈 내일의 이정표가 흐른다.

다시 오지 못할 길일지라도
후회하지 말라 가을 바람은 소슬하고
내 피에 섞인 역마성은
먼 하늘의 흰구름을 손짓해 부른다.

떠남을 재촉하는 철맞은 코스모스야
너마저 방랑을 유혹하는 아침,
시를 버리지 못함도 정녕 하나의 형벌이거니
단벌 옷으로 떠나는 이 아침에도
나의 목적지는 아직도 정해져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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