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내가 읽은 좋은 시/2)시인의 대표시

1. 한강 시/26. 여름날은 간다

월정月靜 강대실 2024. 10. 20. 13:57

26. 여름날은 간다

검은 옷의 친구를 일별하고 발인 전에 돌아오는 아침 차창 밖으로 늦여름의 나무들 햇빛 속에 서 있었다 나무들은 내가 지나간 것을 모를 것이다 지금 내가 그중 단 한 그루의 생김새도 떠올릴 수 없는 것처럼 그 잎사귀 한 장 몸 뒤집는 것 보지 못한 것처럼 그랬지 우린 너무 짧게 만났지 우우우 몸을 떨어 울었다 해도 틈이 없었지 새어들 숨구멍 없었지 소리 죽여 두 손 내밀었다 해도 그 손 향해 문득 놀라 돌아봤다 해도


한강, 「여름날은 간다」,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