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강] 기승전결의 아름다움 강사/강석화 기승전결에 대해 이야기하겠습니다. 글의 성격에 따라 문장의 체계를 나누면, 논설문의 경우는 3단구성을 취하여 <서론-본론-결론>으로 이루어지고, 소설은 <발단-전개-갈등-위기-결말>의 5단계로 정의됩니다. 시의 경우, 정형화된 틀을 제시하기는 어렵지만 대체로 기승전결의 4단구성을 기본으로 삼습니다. 기승전결이란 작품의 문학적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고안된 글쓰기 기법의 하나입니다. 글의 흐름을 기승전결의 4부분으로 나누고 각 부분이 최적의 역할을 분담토록 하여 전체적으로 문학적 완성도를 갖추도록 구성되어 있습니다. 기(起)는 이야기의 실마리를 꺼내는 것으로, 대체로 일상적이고 평범한 진술로 시작됩니다. 승(承)은 起에서 시작된 이야기를 펼쳐내는 것, 즉 평범한 현실에 대한 구체적인 인식이 그려집니다. 전(轉)은 전환 또는 반전을 의미합니다. 기와 승에서 보여지는 이미지는 여기서 시인의 해석과 상상력에 의해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줍니다. 결(結)은 시상을 마무리하며 여운을 남기도록 합니다. ‘기’와 ‘승’은 시의 전반부에 해당되며 제시되는 사건이나 상황은 대체로 평범하고 일상적인 것입니다. 따라서 작가와 독자의 인식의 거리가 짧습니다. 따라서 독자가 공감하기 쉽습니다. 이와는 달리 ‘전’과 ‘결’은 시의 후반부에 해당되며 작가의 독톡한 인식이 나타나게 됩니다. ‘작가만의 독톡한 인식’이란 독자에게는 낯선 것일 수 있기 때문에 ‘기’와 ‘승’에서 길잡이 역할을 해주는 것이 필요합니다. 한편으로는 작품의 주제가 일반적일 수도 있습니다. 사랑이니 고통이니 슬픔이니 하는 것들도 한꺼풀 벗겨내면 그 본질은 누구에게나 대동소이한 것이므로 작가가 제시하는 삶의 경험과 깨달음이 독자에게는 피상적으로 느껴질 수도 있는 것입니다. 이럴 때에는 결과보다는 과정이 중요해 집니다. 즉, 어떻게 해서 그러한 생각을 새롭게 재인식하게 되었는가를 독자에게 제시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이러한 경우에도 ‘기’와 ‘승’이 제 역할을 해주어야만 ‘전’과 ‘결’에서 작가의 의도가 비로소 빛을 발하게 될 것입니다. 따라서, 시에서의 ‘기’는 매우 중요합니다. 처음을 어떻게 시작하느냐에 따라 글 전체의 방향이 결정됩니다. 작품으로서의 성패가 바로 첫 구절에 달려있다고 해도 지나친 과장이 아닐 것입니다. 어떤 이는 말하기를 시의 첫 구절이 차지하는 비중이 50%를 넘는다고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품의 성패를 결정하는 요소는 바로 轉에 있습니다. 시인의 詩想이 반전을 통해 비로소 드러나는 부분이 바로 ‘전’입니다. 시의 감동은 바로 이러한 전환 또는 반전에서 얻어지곤 합니다. 그러므로 시에서 가장 핵심적인 언급은 轉에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結은 마무리에 해당됩니다. 시에서의 結은 논설문에서의 결론과는 전혀 다른 것입니다. 시는 짧은 문장형식의 장르이므로 작가의 생각을 본문에서 모두 들춰내기는 어렵습니다. 따라서 그 일부만을 비유적으로 언급하고 나머지는 여운을 남기는 전략을 주로 취합니다. 따라서 시에 있어서 結이란 시의 마무리이자 동시에 시인의 의도하는 방향을 암시하는 부분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입니다. 각 장르별 문장의 구성요소 중에서 가장 핵심은 허리 부분에 위치합니다. 3단구성에서는 ‘본론’ 부분이, 4단구성에서는 ‘전’, 5단구성에서는 ‘갈등’부분이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며 이 부분이 빠진다면 전체적인 작품구성이 무너지게 됩니다. 본론이 없는 논문을 상상할 수 없듯이, 갈등없는 소설도 있을 수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전(轉)’을 도외시한 시는 의미없는 언어의 배열에 불과할 것입니다. 물론 현대시에는 이미지만을 추구하는 이미지즘으로부터 이른바 해체시에 이르기까지 형식과 의미를 달리 인식하는 문학적 경향이 존재하는 것이 사실이지만 이 글에서는 일단 이 부분은 접어두고 원론적인 특징으로서의 기승전결에 대해서만 말하는 것이니 오해 없으시기 바랍니다. 시 한편을 예로 들어 기승전결이 어떻게 구사되고 조화되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제가 최근에 읽은 시에서 골랐습니다. 신경림 시인의 ‘그 길은 아름답다’ 입니다. 산벚꽃이 하얀 길을 보며 내 꿈은 자랐다 언젠가는 저 길을 걸어 넓은 세상으로 나가 많은 것을 얻고 많은 것을 가지리라 착해서 못난 이웃들이 죽도록 미워서 고샅의 두엄더미 냄새가 꿈에서도 싫어서 그리고는 뉘우쳤다 바깥으로 나와서는 갈대가 우거진 고갯길을 떠올리며 다짐했다 이제 거꾸로 저 길로 해서 돌아가리라 도시의 잡담에 눈을 감고서 잘난 사람들의 고함소리에 귀를 막고서 그러다가 내 눈에서 지워버리지만 벚꽃이 하얀 길을, 갈대가 우거진 그 고갯길을 내 손이 비었다는 것을 깨달으면서 내 마음은 더 가난하다는 것을 비로소 알면서 거리를 날아다니는 비닐 봉지가 되어서 잊어버리지만. 이윽고 내 눈앞에 되살아나는 그 길은 아름답다. 넓은 세상으로 나가는 길이 아니어서, 내 고장으로 가는 길이 아니어서 아름답다. 길 따라 가면 새도 꽃도 없는 황량한 땅에 이를 것만 같아서, 길 끝에서 험준한 벼랑이 날 기다릴 것만 같아서, 내 눈앞에 되살아나는 그 길은 아름답다. 제1연은 起에 해당되므로 이야기의 실마리가 제시됩니다. 예시에서는 “길”을 소재로 삼아 이야기를 시작하고 있습니다. 시적화자에게 “길”의 이미지는 현실을 벗어날 수 있는 바깥세상으로 나아갈 수 있는 탈출구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제2연은 承에 해당됩니다. 起에서 제시된 소재의 의미가 강화되고 뚜렷해지는 부분입니다. 여기서는 “길”의 방향이 바깥세상에서 고향으로 회귀되면서 길의 의미가 양방향으로 확대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바뀌어진 현실에 대한 탈출구라는 점에서 기에서 제시된 “길”의 본질은 변함이 없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즉, 기와 승에서 작가가 제시하는 이미지는 독자가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범주에 속해있다는 것이 요체입니다. 그로 인해 작가의 시상을 독자는 자연스레 받아들일 수 있게 됩니다. 이렇게 형성된 공감대를 바탕으로 비로소 작가는 자신의 생각을 드러내게 됩니다. 그것이 바로 轉의 역할입니다. 제3연이 轉에 해당됩니다. 시적화자는 “길”에 대한 새로운 인식에 눈뜨고 있습니다. “길”에 대한 욕망을 지우면서 길의 본연의 모습을 깨닫고 있습니다. 이러한 작가만의 인식은 독자에게는 낯선 것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기와 승을 통해서 형성된 작가와 독자의 공감에 의해 그 낯섬이 상쇄되고 2차적인 공감이 일어납니다. 그것이 바로 독자가 느끼게되는 진정한 감동의 실체입니다. 제4연은 結에 해당됩니다. 예시에서 작가는 고통은 욕망에서 비롯되는 것이므로 그로부터 벗어나라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습니다. 結은 轉에서 제시된 시적화자의 새로운 각성이 나름의 형체를 갖추고 결말의 모습으로 독자에게 주어지는 부분입니다. 承이 起에서 제시된 이미지를 확대발전시키듯이 結은 轉에서 제기한 인식에 대해 마무리하는 부분입니다. 작가의 새로운 인식에 대한 해석을 독자에게 여운으로 남기는 것이 일반적인 結의 형태입니다. 예시에서는 작가에 의해 새롭게 해석된 “길”의 이미지가 다시 독자의 각양각색의 경험과 반응하며 다양하게 해석되어질 수 있을 것입니다. 예시를 통해 살펴본 것처럼, 기승전결은 작가의 이야기를 독자가 무리없이 받아들이고 공감을 이끌어낼 수 있도록 단계별로 교묘하게 고안된 장치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를 도식화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기) 소재의 제시 -> (승) 소재에 대한 일반적 인식 -> (전) 작가의 새로운 인식 -> (결) 작가의 인식에 대한 독자와의 공감 유도 이해가 되셨는지요? 시를 처음 공부하는 분들은 먼저 기승전결을 철저히 익히시기를 바랍니다. 자신의 시상을 무리 없이 펼쳐낸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인데, 기승전결은 그에 대한 확실한 길잡이 역할을 해주기 때문입니다. 시를 감상할 때도 기승전결의 구조를 대입하여 분석하면 시상의 흐름을 파악하기 쉬워집니다. 그런 의미에서 기승전결은 시의 기본적인 형식구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 좋은 시는 반드시 기승전결의 엄격한 형식을 따르고 있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아무리 자유시라 하더라도 기승전결을 도외시하고서는 결코 좋은 시를 쓸 수 없습니다. 기승전결이라는 이름은 한시에서 얻어진 것입니다. 그러나 한시가 처음부터 기승전결의 구조를 갖게 된 것은 아닙니다. 천 여년간의 수많은 모색과 시행착오 끝에 당나라 시대에 이르러 비로소 확립된 시의 형태입니다. 가장 효과적으로 시상을 펼치며 감동을 전달할 수 있는 시의 형태로 오랜 세월동안 검증된 것이 바로 기승전결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기승전결의 본래의 모습을 살피려면 한시를 분석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입니다. 다음 글에서는 한시를 통해 기승전결의 모습을 살펴보겠습니다. |
출처 : 서은문학회
글쓴이 : 김숙희 원글보기
메모 :
'13. 문학 산책'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펌)좋은글(詩)을 쓸려면 (0) | 2007.07.25 |
---|---|
[스크랩] (펌)표현의 기법 비유 (0) | 2007.07.25 |
[스크랩] 글(詩)을 쓸 때 유의할 점(펌) (0) | 2007.07.25 |
[스크랩] 포스트 모더니즘의 역사 이해 (0) | 2007.07.25 |
[스크랩] 창작의 기본 태도(펌) (0) | 2007.07.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