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 모더니즘의 역사 이해
-푸코를 중심으로
1. 모던과 포스트 모던
헤겔, 마르크스 등의 전통적 역사철학은 역사를 총체화하여 연속성과 진보의 틀로 파악하면서 그 역사의 법칙성을 찾아 내고자 한다.
그러나 전통적인 역사철학이 상정하는 역사의 연속성과 인식 가능성은 독단이며, 오히려 역사속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단절과 불연속성, 우연적 돌연변이임을 강조하면서 종래의 역사 이해와는 다른 독특한 방식으로 역사를 문제삼는 입장이 새롭게 제기되고 있다.
포스트 모더니즘으로 통칭되는 이러한 입장들은 다양한 사상가들에게 나타나는 일종의 경향이라고 몇 마디로 정리하긴 힘들다.
하지만 역사와 관련하여 이 입장이 보여 주는 태도를 집약하면, 이들은 인간은 역사 위에 저 있거나 시대를 뛰어넘어 역사를 주도할 수는 없으며, 인간이 역사 안에 있는 한, 역사는 관조의 영역이 아니라 실천의 영역이므로 역사를 완전하게 파악할 수도 없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우리는 이제 역사를 총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는 관점과 대비시키기 위해서 이른바 '역사'를 부정하고 작은 역사들을 주제화하는 포스트 모더니즘의 관점을 살펴보기로 하자.
먼저 '모던'과 '포스트 모던'을 정의하기로 하자.
'모던(moderne; modernity)'이란 서구의 현대를 주도해 온 사상적 흐름인 계몽주의적 전통 또는 이성 중심주의적 태도를 가리킨다.
서구에서 계몽주의는 이성의 빛--합리적 과학, 보편적 도덕, 자율적 예술--으로 암흑을 추방함으로써 인간의 성숙과 해방을 가져오려는 시도이다.
이런 모던의 전형적인 형태로 프랑스 계몽주의자인 롱도르세(Condorcet)의 관점을 정식화해 보자. 그는 (자연)과학의 합리성을 모델로 삼아 인간을 해방시키는 길을 신봉한다.
계몽은 관찰, 실험, 검증이란 과학적 도구를 사용하여 자연의 비밀을 풀고, 과학적 지식의 발전을 모형으로 삼아 인간의 이성을 발전시켜 세계를 남김없이 인식하려 한다.
그리고 이런 이성을 가로막는 선입견, 미신, 전통을 거부하고 비이성적인 사회 제도를 합리적인 것으로 만들기 위해 전통적 세력에 저항해서 투쟁한다.
그래서 이것은 시민적 자유를 보장하는 정치 체제를 추구하고, 과학의 성장과 기술적 진보를 촉진시켜 사회적 불평등을 제거하는 인간 해방과 이성적 문명의 건설을 약속한다.
한마디로 10세기까지의 근대 서양 철학은 이성주의의 독무대였다.
그러나 '포스트 모던(postmoderne; postmodernity)'은 이런 계몽주의적 이성 중심주의를 전면적으로 거부하고, 이성의 이름으로 자명하게 여겨졌던 기존의 모든 지식 체계를 뿌리에서부터 뒤흔들고, 전혀 새로운 시각에서 인간과 역사를 재 구성하고자 한다 이것은 이성을 비판하여 그 본연의 모습을 회복하자는 차원을 휠씬 뛰어넘어 이성 자체를 거부하려는 이른바 '전복의 철학'으로서 급진적인 반이성주의이다.
포스트 모던은 모던이 기초로 삼는 인간 주체, 이성, 역사의 진보 등이 란 모두 권력의 억압을 합리화하는 신화에 불과하다고 본다.
즉 계몽과 해방을 담당하는 이성과 총체성 이 란, 실제로는 억압적 이고 전제적질서를 옹호하고 정당화하는 것으로, 권력과 지식의 상호 작용을 극명하게 보여 주는 것이며, 근대사의 불행인 파시즘, 스탈리니즘은 이와 같은 이성, 총체성에 중심을 둔 전체주의적, 모던적 사고가 얼마나 엄청난 폐해를 가져다 주는지를 단적으로 보여 주는 것이다.
2. 푸코의 입장
2.1 역사의 불연속성
이성에 대한 부정은 역사적 이성에 대한 부정을 포함한다.
그러면 독특한 방식으로 역사적 탐구를 하면서 역사를 부정하는 포스트 모더니즘을 선도한 푸코
(M Foucault)의 관점을 통해 역사철학에 대한 부정이 이성, 동일성, 총체성, 진리에 대한 부정과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살펴보자.
푸코는 역사란 인간의 의도에 따라 전개되거나 그것의 발전, 미래가 보장되거나 미리 주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고 본다.
역사란 하나하나 쌓여서 발전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이질적인 단층들이 서로 무관한 계열을 이룬 것일 뿐이다.
통상적으로 역사철학은 연속성과 인식 가능성(intelligibility)을 상정한다.
그래서 역사가들은 이리저리 흩어져 있는 사건들에 의미를 부여하려고 그것들을 연속적 운동 안에서 일정하게 자리 매김한다.
그런데 푸코는 그러한 연속성과 인식 가능성을 부정한다.
푸코는 (지식의 역사에서) 역사적 연속성과 총체성이라는 독단을 깨뜨리고 '단절', '불연속성', '돌연변이' 등을 강조한다.
이러한 시도는 과학사에서 비연속성을 강조하는 바슐라르와 캉귀렘 등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푸코는 종래의 역사 이해와는 다른 독특한 방식으로 역사를 문제삼는다.
그는 고고학적 방법과 계보학적 방법을 통해 서구의 '진리의 역사'를 재검토한다.
푸코는 객관적 사실 자체가 아니라 그것에 관해 '말해지고 씌어진 것들'인 담론들--과학적, 철학적인 문학적, 법률적 텍스트 등. 이야기(recits), 제도적 규율 들, 협정. 안내 책자, 약호 체계, 정치적 결정 등--에 주목한다.
이른바 푸코의 담론에 관한 고고학은 특정한시대의 특정한 지식과 이론들이 가능한 조건을 찾는다. 즉 지식이 어떤 질서를 이룬 공간에 따라 구성되는가를 추적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푸코는 고고학을 통해 각 시대의 지식 질서가 각 시대나 사회마다 다르다는 것을 강조한다. 곧 사람들은 모든 시대에 항상 같은 틀로 사고하지는 않는다.
또한 과거의 사고가 쌓여 그것이 다음 시대로 전승, 발전되는 것도 아니다.
한 시대는 다른 시대와 연속된 것이 아니라 단절된 것이다.
예컨대 르네상스까지 정상적 세계의 일부분으로서 따로 격리되지 않았었던 '광인'들 내지 사회적 일탈자들--방랑자, 게으르고 방탕한 자, 신을 모독하는 자, 난봉꾼, 성병 환자, 자살 기도자 등--이 17세기에 와서는 비정상인으로 구분되어 정상인의 세계로부터 엄격하게 분리, 감금되고 이른바 '광기'에 대해서는 언급도 못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정상과 비정상의 구분 또한 다만 당시의 서구 사회를 지배한 이성주의의 잣대에 의한 것일뿐, 각 시대마다 광기와 정상에 대한 관점은 각각 다른 것이고 각기의 관점은 다른 관점을 이해할 수도 없는 것이다.
물론 푸코는 이런 관점의 교체를 광기에 대한 인식의 심화나 발전으로 보지는 않는다.
그러나 광기를 감금하는 것이 유일하고 필연적이라는 주장은 독단에 불과하며. 그것은 다만 시대
마다 권력과 지식이 상합하여 만든 그 시대의 지식의 기준으로서 권력의 억압 구조를 반영하면서
각 시대마다 다른 이른바 그 시대의 '에피스테메(episteme)'일 뿐이다.
2.2 역사의 거부
이와 같이 푸코는 담론들의 구조를 분석하면서 전통적인 지성사를 비판한다.
그는 지성사나 역사 일반을 잘 짜여진 체계나 연속적 인 진보로 이해할 수 없다고 본다.
전통적 역사 이론은 불연속적인 것을 장애로 여기고, 그것을 극복하여 연속성을 만들어 내고자 한다. 그래서 이 관점은 고립된 사건들의 표면 밑이나 뒤에 매끈한 인과성이나 연속적 관계를 찾아 내려 한다.
푸코는 이러한 시도가 역사를 형이상학적으로 재구성하는 것이라고 본다 푸코에 의하면 종래의 '총체적' 역사는 모든 현상들을 하나의 단일한 중심--원리, 의미, 정신, 세계관, 사회나 문명의 전반적 형식--주변에 질서 있게 배치한다.
그것은 다양한 경제적 사회적, 정치적, 종교적 실천들을 동일한 유형의 변화에 예속시키고, 그것들을 거대한 연속으로 질서 짓는다.
예를 들어 역사를 자유 의식의 진보로 볼 때 역사적 사건들은 자유와 관련하여 취사 선택된다.
선택된 사건들은 최초의 부자유로부터 최후의 완전한 자유란 종말, 목적을 향하여 발전하는 것으로 배치된다 이것은 단계적으로 보다 자유로운 상태로 자유가 점진적으로 확대되는 것으로 이해된다. 이것은 역사적 사건들 전체를 주체의 정신--유물론의 경우에는 노동과 생산--에 귀속시켜 역사를 주체가 자기를 획득하는 과정으로 본다.
그러나 이와 달리 푸코는 사건이나 과정 배후의 다양성, 복합성을 드러내고 그것들의 '단절'과 '불연속'에 주목한다.
즉, 역사에서 어떤 연속성이나 불변적 본질, 총체적 구조를 상정하거나 추구하지 않고, 역사를 다양한 힘들 간의 투쟁이나 대결로 이해한다.
이처럼 푸코는 역사를 하나의 총체성의 틀로 파악하는 전통적인 역사철학을 거부한다.
그는 역사적 객관성을 확보할 수 없으며, 역사가 연속적인 것이 아니라 불연속적이라고 본다.
그의 역사는 어떠한 동력도 없고, 인과적 설명도 없고, 목적성도 없는 역사인 것이다.
2.3 니체적 관점
인간 및 역사에 대한 푸코 나름의 이해 및 분석 방식으로서 이른바 푸코의 계보학은 어떤 고정된 본질, 다양한 현상들 밑에 있는 법칙, 형이상학적 목적성이 없다고 본다.
여기에는 이미 근대 철학의 근대성을 선구적으로 부정하고 뛰어넘고자 했던 니체(F.Nietzsche)의 관점이 깔려 있다 즉 푸코는 모든 것이 해석해야 할 '사실'이 아니라 그 자체로 이머 '해석'이라고 주장한다.
해석할 것에 절대적으로 앞서는 고정적이고 객관적인 것이란 없다.
그래서 해석은 텍스트나 세계의 고정된 의미가 아니라 다른 해석을 지시한다.
즉 해석은 다른 해석과 관계 맺고, 그 의미는 이 관계 안에서 상대적, 잠정적으로만 고정된다.
따라서 계보학은 역사를 사실들이 아니라 해석들의 역사로 기록한다. 니체가 의미, 가치, 덕, 선으로 가장된 권력 의지를 폭로한다면.
푸코는 여기에서 일정한 권력 효과를 갖는 '진리 의지'를 찾아낸다.
역사는 보편적 이성의 진보를 보여 주는 것이 아니라, 특정한 역사적 상황에서 이루어지는 권력들의 연극으로서 끝없이 반복되는 '지배의 연극'을 보여 줄 뿐이다.
이런 의미에서 사회 전체는 하나의 감옥이다.
이처림 푸코는 종래의 위장된 역사에 대해 있는 그대로의 현실적 역사(Wirkliche Historie)를 드러내고자 한다.
그것은 역사를 총체화하려는 초역사적 퍼스펙티브에 반대하고 그 내적 발전을 추적하는 것이다. "역사가의 역사는 그 지점을 시간 바깥에서 찾고 그것에 대한 판단을 묵시록적 객관성에 기초를 두려고 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이에 반해 '현실적 역사'는 모든 것을 역사적 운동 안에 둔다.
시대를 넘어선 영원한 진리와 정의, 미의 이상을 거부하고 그것들이 역사 안에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그것들은 역사를 뛰어넘어 모든 시대에 똑같은 것으로 존속하지 않으며, 오히려 그것들은 역사적으로 규정되고 역사 안에서 작용하는 것이다.
2.4 비판적 고찰
이상의 내용에서 포스트 모던이 이성의 전능함과 역사의 연속성과 진보를 내세우는 역사철학이
지닌 억압적 성격을 경계하는 태도를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억압이 없는 해방된 사회는 무엇을 근거로 세워질 수 있는가?
근대 주체 중심주의적 이성이 아니라면, 반이성에 근거를 둔 사회인가?
푸코는 계보학적 연구를 통하여 권력과 지식의 체계를 단순히 기술하며, 그 자신은 어떤 권력 지식 체계가 다른 것보다 더 정당하다고 주장하지 않으며, 그는 어느 편을 든다는 것을 거부한다.
심지어 권력은 악이고 그에 대한 저항은 선이라는 무정부주의적 교의조차 거부한다.
그러므로 그는 계보학은 비판이 아니라, 억압적인 권력 지식 체계에 대하여 투쟁하려는 경우에.
그 전술이며 무기에 지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와 같은 주장에 대해 하버마스(J. Habermas)는 "전술과 무기 이전에 싸워야 하는가 아닌가가 결정되어야 하지 않는가?"라고 반문한다.
하버마스는 이렇게 말한다.
"적의 약점과 강점에 대한 가치 중립적인 분석은 투쟁을 하고자 원하는 사람에게만 소용이 있다.
그러나 왜 싸워야 하는가? 왜 투쟁이 복종보다 좋은가? 왜 지배는 저항되어야만 하는가? 일종의 규범적인 개념을 도입함으로써만, 푸코는 이런 질문에 답할 수 있을 것이다."
(근대성에 관한 철학적 담론)
어떤 지식도 권력의 산물로서만 이해하는 계보학자 푸코의 입장으로서는 사회의 대안을 제시할 수 없을 것이며, 설사 이성의 시대가 인간 삶의 위기를 가져다 주었을지라도 그러한 위기의 극복 또한 결국은 이성을 통해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 하버마스 비판의 핵심이다.
물론 이와 같은 하버마스의 비판이 푸코류의 이론이 갖는 강점을 모두 무력화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한편으로 우리는 이러한 이성 비판이 지닌 시대적 의미를 숙고해야 한다.
왜냐 하면 이성 비판이 곧 사고 자체에 대한 거부는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는 완전한 진리와 정의의 억압적 성격에 유의하면서, 보다 나은 삶과 사회를 향한 노력과 그것의 역사적 열매를 모두 버려서는 안된다.
이것은 역사의 고정된 목적이나 역사의 필연성을 이야기하는 신화를 부단히 반성적으로 되물어 보게 하며, 역사 속에서 부딪치는 수많은 문제들에 대해 '다른' 방식으로도 해결해 볼 것을 충고해 준다. 역사철학은 역사의 안내자이어야 할 뿐 역사 위에 군림해서는 안 된다.
이런 점에서 역사철학에 대한 부정은 역사의 자리에 인간을 남겨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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