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시 874

병아리눈물꽃

병아리눈물꽃/ 월정 강대실 병아리눈물꽃이랑                             얼굴 맞대보았나요머리 조아리고 앉아눈물  뚝뚝  흘려본 적 있나요                                        행여 눈에 띌세라숨소리라도 새어 나갈세라바람도 눈길 보내지 않는맨땅 끝자리에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앙증스런 자태로옴실옴실 모여 앉은얌전 자르르한 꽃 우리님 단아한 말씀이 듯마음문 안 열면 볼 수 없는참깨 알 같은 꽃절대 겸허가 몸에 배인 그 꽃. 병아리눈물꽃

오늘의 시 2024.04.25

아내의 발

아내의 발/월정 강대실 길마 무거운 소, 드러눕더니 며칠째 꼼짝 못하는 머리끝까지 뒤집어쓴 이불자락 쏘-옥 나온 두 발 오롯, 가족들 바람의 고임돌 되어 세상의 질고 매운 것 다 심곡에 묻고 한 生 바닥으로 살아온. 구부정한 발가락 거뭇거뭇한 발톱 금이 가 벌어진 발뒤꿈치며 여기저기에 박인 옹이와 굳은살, 도짓소로 살아온 세월의 유산. 한밤, 구도자 고행의 훈장에서 성자의 말씀 들린다 내리 걸어야 할 길 본다 두 발이 몰래 흘렸을 눈물 헤아리다 마음속 촛대에 불 밝히고 참회의 뜨거운 경배 발볼에 기-인 입맞춤 한다.

오늘의 시 2024.04.24

큰댁 형수

큰댁 형수/월정 강대실 안 잊고 꼭 상골 찾습니다 큰댁 형수가 동구 밖 벅수처럼 이제나저제나 하고 기다리십니다 해와 달 번갈아 이고 지고 한세상 밭고랑창 묻히어 사시다 허위허위 녹두밭 윗머리에 선 앞 고샅 돌멩이 채이는 소리에 고무래처럼 휜 허리 일으켜 뒤뚱뒤뚱 사립까지 걸어 나오시는 아재요, 나는 아주 잊은 줄 알았어! 두 손 덥석 받아 쥐고 한사코 안으로만 들자십니다 마주 앉으면 그새 더 왜소해진 모습 여기저기에 거뭇거뭇한 저승꽃 가슴이 아르르 저며 옵니다.

오늘의 시 2024.04.22

고향에 띄운 편지

고향에 띄운 편지/ 월정 강대실   울 밖 한쪽에 슬슬 뿌린 푸성귀시나브로 앞들 뒷산으로 퍼져나가나서면 달래 냉이 참취… 나물거리라니! 볕받이 막에서 새끼 치던 짐승알게 모르게 야음 타고 뛰쳐나가까투리 토끼 멧돼지… 사냥감 천지라니! 친구, 참말로 재수가 불붙었네 그려바쁜데 뿌리고 돌보지 않아도 산열매에다 칡뿌리 산삼 녹아든 물 먹고해와 달 별을 보며 우둥푸둥 살찐다니 여보게 친구, 꼭 부탁하네!올여름 죽마고우 탁족회 날 잡히면연락 주시게,  인제는 나도 안 빠지려네 벼르던 모교에 들러고 어우렁더우렁한 사나흘 고향의 명소도 쭉 둘러보며나물 캐고 사냥도 넉넉히 하세  계곡물에 발 담그고 앉아장만한 안주에 친구네 잘 익은 가양주권커니 잣거니 정리 듬뿍 쌓아보세.

오늘의 시 2024.04.21

골목길

골목길 / 월정 강 대 실 골목길을 좋아한다풀잎 향 그윽한 들판 오솔길이나갯냄새 물씬 풍기는 바닷길도 좋지만인정이 뭉뚝뭉뚝 묻어나는 골목길이 더 좋다 먼동 트면 서로 먼저 내 집 앞 깔끔히 쓸어새날을 기도의 마음으로 열어서 좋고살살이 어느 틈에 종종걸음 쳐 나와깔깔깔 그림자 쫓는 반가운 인사가 좋다 울담 위로 슬그머니 고개 내민 장미쏟아붓는 새빨간 미소를 만나 좋고삐그시 열린 자그마한 쪽문 사이로주인댁 소박한 일상 들여다보여 좋다성근 울 틈으로 성깔지게 흘러나오는갓난애 보채는 소리 절창처럼 좋고개구쟁이들 모아들어 가댁질치다 쏟아내는해맑은 웃음과 우정이 답쌓여서 좋다  바람길 그늘터 평상에 모여 앉은 이웃사촌도란도란 나누는 구수한 이야기꽃 좋고손님을 맞고 보낼 때에는 대문 앞에 나와주고받는 살가운 정이 정..

오늘의 시 2024.04.19

꽃잎 지것다

꽃잎 지것다/ 월정 강대실 엊그제 봄비에 벙긋벙긋 꽃숭어리 비바람 치면 어떡하나 꽃잎 아깝게 지것다 바람길 심등 켜고 기다렸다고 꽃그늘 꽃자리에 앉아 눈도 맞추고 한 마리 꽃나비가 되고 싶은데 간힘을 주어 예쁘게 피운 꽃 오늘밤은 바람비 내리친단 예본데 꽃잎 하염없이 지것다 마음의 탕개를 조인 봄의 역사가 일순의 비바람에 오고 간다고 생의 여정도 같다 일러 주려는 듯.

오늘의 시 2024.04.09

봄 오는 길목

봄 오는 길목/ 월정 강대실 돌아서지 못한 계절 움츠려 있다 배시시 웃는 햇 살에 녹아 버린 언덕바지 아래 지난 가을의 흔적 옹기종기 둘러앉아 옛이야기 수군대면 대지가 몸 풀어 봄 애기 뾰조록이 머리 내밀고 강에 진치고 있는 동장군 남녘에서 올려 보낸 화신에 전열 풀 고 화평을 화답하는 노래 부르면 마른 풀덤불 속 몸 사리고 있던 갯버들강아지 시름 잊은 듯 창 열고 해동갑하여 연초록 물 품어 올려 단장한다. (1-57. 잎새에게 꽃자리 내주고)

오늘의 시 2024.04.01

부끄러운 날2 -몸살 앓는 산하

부끄러운 날2 /월정 강대실 -몸살 앓는 산하 씨알로 떨어진 땅에서 한 발짝도 꼼짝 않고 눌러산다고 허리 굽은 노송 말을 붙인다 언제인가 생겨난 뒤로 한 번도 바람에 장단 맞춰 춤춘 적 없다고 곰바위가 말 보탠다 어디서 뺨을 얻어맞았는지 눈에 모를 세우고 떼거리로 몰려 와 걸신같이 먹고 마시며 게걸게걸 떠들다 도토리만 한 묘수라도 났는지 결코 끝장을 보겠다는 듯이 입찬소리하다 그만 술에 떨어져 즐빗이 퍼질러 자더니 ​ 갈 때는, 난장판을 쳐 놓고는 나 몰라라 달랑 빈 배낭 하나 걸쳐 매고 빚쟁이 야반도주하듯 날라 버린다고 줏대도 제 곬도 없는 코푸렁이들 백 번이라도 뺨을 맞아도 싸다고 열이 받친 바람 다발총처럼 말을 갈겨댄다. 2024. 3. 22.

오늘의 시 2024.03.28

탐매-화엄매

탐매-화엄매/월정 강대실 산동골 산수유꽃 흐드러진 소문에 꽃 같은 내 님이랑 꽃구경 가렸더니 들리네 구례 화엄사 화엄매 찾는 음성. 각황전 긴 삼동을 염불로 지새우며 길상암※ 들매를 사무치게 기리더니 올봄엔 천연기념물※ 입적했네 홍매도. 서둘러 벌거니 꽃단장한 아리따움 그윽한 향 백매랑 화음을 이뤄 내니 사바의 구름 중생들 경탄해 마지않네. ※길상암: 화엄사 대웅전 뒷길로 호젓이 가면 구층암을 지나서 있음. 수령 450년의 화엄매 (들매화. 백매. 천연기념물 485호)가 있음. ※천연기념물: 들매에 이어 홍매도 올봄 천연기념물 화엄매로 추가 지정 됨.

오늘의 시 2024.03.24

봄날 엽서

봄날 엽서 / 월정 강대실 황사바람 훔친 하늘에 금살 넘실댑니다 구례 지리산 들머리 고향 마을 산수유 어느새 여울여울 꽃불 탑니다 그대여, 지금 내가 못 견뎌 하는 건 봄이 너무 좋아서가 아닙니다 무심히 흐르는 섬진강 탓도 아닙니다 그대 떠난 자리에 외로 나동그라진 차디찬 돌멩이여서가 아니고 사무치는 그리움 못 참아도 아닙니다 그대여, 내가 긴긴 봄밤 망연히 지새는 건 하 많은 바람의 싹 파릇이 못 틔워 내고 떨쳐 버리지도 못해서가 아닙니다 가슴을 쓸어안고 피다 스러지는 민둥제비꽃 어르는 봄비의 아픔이 아니고 거기 그냥 서 있는 산 갈마들어 보듬는 계절의 목마름은 정말로 아닙니다 그대여, 지금 내가 너무도 못 견뎌 하는 건 서천에 붉게 타는 저 노을의 아름다움 감히 그대는 까맣게 몰라서 입니다. (2-3..

오늘의 시 2024.03.21

새봄을 그리다

새봄을 그리다/월정 강대실 일월의 시간 막다른 골목에 붙박여 운신 제대로 하기 힘듭니다 가슴이 짓눌리는 듯 갑갑하고 탄식 맘대로 뱉어 내지도 못합니다 꼭두 봄 기다림은 일상이 되고 갈급한 바람 봄의 길목에 우뚝 서서 하늘만 뚫어져라 우러릅니다 올해에는 뭐든 꼭 좋은 일만 선물처럼 한아름 안겨 주실 가슴 벅찬 새봄 이어야 합니다 마음을 여며 청심촉을 밝히고 지새워 애잔한 기도 받칩니다 그늘받이 무욕의 풀잎 하나까지도 환희에 찬 얼굴 내밀 모습 그리며.

오늘의 시 2024.03.17

그림자 찾는 노인장

그림자 찾는 노인장/월정 강대실 아동들 자지러지는 웃음소리 간간이 창을 넘어 질러오는 정오의 텅 빈 운동장 한 켠 긴긴 세월의 상흔 온전히 부둥켜안고 교계 지켜 서 있는 버드나무 휘늘어진 가지 아래 불언의 위로 주고받으며 긴 벤치에 석불처럼 앉아 있는 소복단장에 중절모 쓴 하이얀 노인장 무슨 회상에 저리도 깊이 젖었을까 ‘왜 아이들이 하나도 안 놀아!’ 눈자위보다 더 깊은 기다림 아직도 잊히지 않는 초립동 시절 아련한 그림자 찾아 나왔을까 뛰노는 학동들에게서.

오늘의 시 2024.03.13

큰애에게 보내는 메일

큰애에게 보내는 메일/월정 강대실 얘야, 시간 한 번 내거라! 잠깐 아무리 곁눈질 할 틈이 없을지라도 근일 내로 네 안이랑 민성이랑 셋이서, 꼭 거기 초입 하당에 아버지와 오랫동안 벌꿀보다 더 달고 끈끈하게 통정해 온 막역지우 한 분 계시니라 미루지 말고 전화 올려 내 말씀 드리고 꼭 한 번 찾아뵙고자 한다고 언제든 좋으니 시간 주십사 허락 받아라 미리 지척이 천리라고 이 근년 서로 간에 전화만 그넷줄같이 오갔지 상면 없어 어제는 연락이 와서 이런 저런 이야기 끝에 발 너르기가 거기 앞바다 정박선이요 노적봉보다 더 큰 덕 쌓으신 분이다 했더니 너희들이 꼭 찾아뵙고자 한다고 얘기했다 가서는 곡진히 정례에 약주 한 잔 올리고 언제고 올라오시면 꼭 한자리 하시잔 다고 말씀 잊지 말고 틀림없이 올려라 시종 말씀..

오늘의 시 2024.03.10

봄의 길초에서

봄의 길초에서/월정 강대실 꽃샘바람 불어친다 탓을 말아요 몇 날이고 불어대게 꽃이 울며 손짓해도 그냥 두세요 시새워만은 아녜요 헤살질이 꺾이어 밟히는 못다 한 생 하르르 지는 꽃잎 엽서 한 장에도 하냥 가슴 저미는 봄의 여신이여 칼날처럼 날렵한 당신 생각다 북받치는 서러움 주체할 길 없어 하얀 낮달이 봄의 길초를 서성이는데 일다가 어느새 스러지겠지요 흔들리며 찬란히 예쁜 꽃물 들지요 긴긴 기다림이 닿기 전에. 2024. 3. 5.

오늘의 시 2024.03.05

살아내기2

살아내기2/ 월정 강대실 식솔들 입에 풀칠이라도 할라치면 칙살스럽지만 납작 엎드려서라도 끝까지 살아남아야 한다고 바람 앞동질러 근지러운 데 찾아 긁어 주고 입 맞춰 그림자로 따라나서다가도 어언간 결단의 문턱에 서면 뾰로통 머리 내미는 내 안의 나 던지러워 스르르 접어 버리는 위선 비럭질 할망정 다리아랫소리 하기 싫어 물린 밥상 차지한 오늘도 눈 들어 부끄럼 없이 하늘 우러른다. (2-73. 제2시집 먼 산자락 바람꽃)

오늘의 시 2024.03.03

감언이설

감언이설甘言利說 / 월정 강대실 저잣거리 저편에 수런수런한 군중들 귀를 뚫는 산뜻한 음절, 음절 황새걸음이 성큼성큼 좇아가 꼿발로 항아리만 한 귀를 한다 이게 웬 떡이냐, 달콤하다! 오감이 촉각을 곤두세운다 간밤의 꿈 떠올리다 일순 눈이 멀어 내속 주머니에 빵빵히 욱여넣는다 몽그작몽그작하며 눈치 살피다 몰염치 놓고 살그미 빠져나온다 욜랑욜랑 큰길로 걸어 신호 기다리다 들먹들먹 들뜬 마음 살짝 하나 입에 넣고 곰곰이 씹는다 앗, 사탕발림이다! 입안이 소태같이 쓰거워 지더니 신열이 오르고 얼굴이 화끈거린다 가슴이 뜨끔하다.

오늘의 시 2024.02.23

그림자

그림자/ 월정 강대실  우리 부모님 그림자로 남은외씨 같은 흔적들어느 결에 하나 둘세월 강에 씻기어 가고그리움 여울여울 타오르는데 피붙이 하나링거 줄에 매달아 놓고 돌아와벽을 등지고 앉은 형제들서로들 눈동자 속에 얼굴을 새기다소주 한 잔 돌린다 맏형 근엄한 표정에아버지 계시다누이동생 파리한 얼굴 속에어머니 여실히 살아 계신다.                               2007. 02. 03.

오늘의 시 2024.02.14

성묘

성묘 / 월정 강 대 실    설날 아침 서둘러 차례를 지내고 큰집 작은집 조카들 데리고 장형 막내랑 삼형제 나란히    부모님 산소에 성묘 드린다.두 아들은 지난밤 꿈길에 다녀갔다, 올 한 해도 우리 새끼들 모두 다 들은 말 들은 데 버리고 본 말 본 데 버리도록 해라, 가슴은 따뜻해야 이뿐 꽃 안는다.아버지 금싸라기 같은 덕담에 벌안 가득히 영롱한 햇살 넘실거리고돌아서는 발길 가벼운데 어머니는 서낭당 고개 다 넘도록 바라보고 서서 손사래 치신다.(2-44. 먼 산자락 바람꽃)

오늘의 시 2024.02.10

골목길 노인장

골목길 노인장/월정 강대실 도시 변방 어둑한 주택가 길모퉁이 웅크린 기와집 샛문 설주에 형틀 같은 작은 의자 하나 달렸다 오늘도 문안 든 불빛 몇 가닥 함께 앉아 한 노인장 빈손 수행하시는 중이다, 더는 못 보게 징벌 받았을까? 그 언젠가는 번쩍 뜰 수 있을까? 처음부터 궁금하고 가여움 가득했던 진흙탕 세상 담벼락 같이 살려다 두 눈 벌거니 뜨고도 허방다리를 짚어 그만, 큰물에 방천 터지듯 무너지고 말았다 틀어박혀 이렁저렁 오만 생각을 다 하다 닳고 터진 맨발 허겁지겁 노인장 찾는다 사람들 맹자 만나 되게 재수 없다고 침 뱉지 않아 감사할 뿐이라며 마음만 잘 먹으면 북두성이 굽어보시니 어여 가 밝은 두 눈 크게 뜨고 이 좋은 세상 온전히 품어라 이르신다. (3-90.제3시집 숲 속을 거닐다)

오늘의 시 2024.02.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