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시 874

하늘길

하늘길/ 월정 강대실 공원 초입 외따로이 선 모과나무 할 일 없이 그냥 우두커니, 먼 산만 바라보고 사는 줄 알았습니다. 철이 되면 늘 그랬듯 잎과 꽃 피우고 열매 매다는 줄로 알았습니다. 지명知命 고갯마루 턱 훌쩍 올라앉아 종용히 뒤를 돌아보다 알았습니다. 삼시선三時禪으로 빛과 어둠 비와 바람 견디며 잎도 꽃도 열매도 맺고 동안거 하안거 부단히 마음공부 하여 눈에 안 띄게 조금씩 조금씩 오늘도 하늘길 오르고 있었습니다.

오늘의 시 2023.12.18

눈 내리는 창가에서

눈 내리는 창가에서 / 월정 강 대 실 가벼워지고 싶다 가벼워야 내려앉을 수 있다면 나도 저 희뜩거리는 눈처럼 가볍디가벼워져 눈꽃으로 내려앉고 싶다 보고 듣고 시를 쓰고 하루하루가 수없는 두레박질, 매양 비워내기 연습이련만 한 눈금도 기울지 않는 가련한 세월 키 낮추고 몸집 줄이고 겹겹이 둘러쓴 인두겁 벗어야겠다 심보를 씻고 양심 헹구고, 욕심으로 뒤틀리는 창자 말끔히 비워내야겠다 허공을 바람의 무게로 날아 시려운 가슴에 꽃이 되고 싶다 쓰레기 같은 세상 순백으로 칠하고 싶다 순수한 내 빛깔로 평천하하다가 어느 순간 소리소문도 없이 스러져 아래로 아래로 스며들고 싶다.

오늘의 시 2023.12.16

풍경1.2.3.4.5

풍경1-만추 야윈 가을은 성미 진 햇살 등에 업고 빈들에 서성이다 차가운 강 건네고 하늘 쓰러치는 바람 노을진 가지에 매달리다 우수수 불비로 쏟아져 흐르면 언덕배기 갈꽃은 진구렁에 혼자 외로운 허수아비 춤 춘다. 풍경2-첫봄 꽃샘바람 좀체 숙지 않는 헤살질에 쫓긴 병아리처럼 주눅 든 봄볕 앞 고샅 산울 아래 엎디어 각시풀이랑 소꿉놀이에 그만 넌더리가 나는데 저만치서 눈치 없는 앉은뱅이꽃 발길질 참았더니 먼저 된 날 본다며 함께 놀아 줄 수 있냐, 은근히 이는 시새움 쏘아대는 샛노란 눈딱총. (제4시집 바람의 미아들) 풍경3-봄 실개천 언덕받이 노오란 미소 들리더니 산자락 양지듬 두견화는 방실방실 깊은 골 산그늘 속엔 산매화가 멍울멍울. 풍경4-소년촌 착한 사람들이 쑥잎처럼 모여 사는 산마을 소년촌에 장맛..

오늘의 시 2023.12.15

삶의 송가

삶의 송가/ 월정 강대실 바람한테 뺨 맞고 벌게진 붉나무 무서리 둘러쓰더니 창창해진 땅솔잎도 그냥 스쳐보지 마라 우리가 생각 못할 큰 기쁨에 사나니 마른 창공을 찢어대는 천둥 번개 빠알간 맹감에 입맛이 당긴 산비둘기도 좋아서 한가락 아니리를 하나니 우리가 다 못 아는 설움 있나니 보리밭을 질러 산모롱이로 줄행랑치는 고라니 주야장천 구슬프게 울어 예는 개여울도 가끔은 달 보고 설움에 겨운 눈물 흘리나니 삶은 하루는 기쁨이고 하루는 슬픔이라 간혹가다가는 눈물이 더 아름다우나 하늘에 닿도록 기껍게 뛰며 살아야 하리.

오늘의 시 2023.12.11

화분을 들이며

화분을 들이며/ 월정 강 대 실 천더기로 버려진 너 측은지심에 귀갓길 품어 왔다 초초히 진데 마른데 골라 주며 때 맞춰 정을 챙겨 부었다 천연스레 낯설음 딛고 뜨락 한가득히 미소 날리더니 스산한 바람결 속 달마중 하다 무서리 먹고 숙연해진 너 저어해하지만 안으로 맞아 삼동의 긴 강 함께 넘고자 함은 좋아한다는 것은 끝내는 목숨까지도 책임 져야 함을 믿기 때문이란다.

오늘의 시 2023.12.10

버스 관광

버스 관광/월정 강대실 손꼽은 디데이 전세버스에 실렸다 고삐 풀린 나들이 고속도로 달린다 줄달은 가로등 쏟아지는 전조등아 넘보지 말아라 차창 속의 군무를 부어라 넘치게 마셔라 취하도록 천근만근 일상은 저만치 물렀거라 음악 소리 높여라 하늘은 무너져라 비비고 흔들고 뛰어라 땅이 꺼지게 숨 막힌 응어리 녹아내린다 땀으로 희망찬 내일이 용솟는다 새힘으로 바람도 질주하는 귀가길 고속도로 시간이 짧다 길이 짧다 광란의 무도장.

오늘의 시 2023.12.08

그림자를 지우며-매화나무

그림자를 지우며- 매화나무 월정 강대실 다 떠나가고 적요에 잠긴 들판 부르튼 손발 구동을 건너는 매화나무 못 잊을 우리 부모님 그림자이리 어깨 흔들어 깨워 보지만 끝내, 침묵의 빗장 열리지 않고 죄목도 정죄도 없이 기계톱 굉음에 동강나 툭! 툭! 땅 위에 떨어져 눕는 반백 년 그루터기에 남은 나이테 평생 호미등처럼 허리 한 번 못 펴신 부모님 안돌잇길 한이 담긴 타임캡슐 낙과落果 같은 순명 곁에 움츠리고 앉자 생의 내력 소스라쳐 튀어나오고 살붙이를 보내듯 목이 메이는데 빈 논배미 건너 시르죽은 해의 눈시울 떨어진 동백꽃 가슴보다 섧고 솔밭 발밤발밤 건너오는 절집 독경소리 내 화끈거리는 두 귓불.

오늘의 시 2023.12.07

길을 찾다

길을 찾다/월정 강대실 어느덧, 지는 해는 서창 너머로 설핏한데 여기저기 솔깃한 눈맛 귀맛만 기웃대다 아까운 계절도 주변도 몽땅 날려보내고 선뜻 같이 딱지 쳤던 동무를 찾은 그대 뒷산 솔폭 밑에 숨어 내뺀 세월 뒤쫓다 목을 꺾고 울며 돌로 발등 찧어 봤는가! 불고추 씹어 삼키는 얼얼한 고통 맛봤다면 줄밤을 새워서라도 무릎을 맞대자꾸나 아직 늦지 않았다, 내 하기 나름이라고 네발로 기고 물소의 뿔로 산과 바다를 넘어 맞잡은 다짐 마음의 돌판에 아로새기고 다시금 뿌리 깊은 달콤한 사과나무를 심자 안락의 허기 일면 눈과 귀를 틀어막고 숨이 턱에 차 쓰러지면 오뚝이처럼 일어나 굽이쳐 흐르는 강물이 제아무리 시려도 끝은 노을빛보다 더 따스운 마음으로 건너자.

오늘의 시 2023.12.01

산행 일

산행 일/ 월정 강대실 숨 고르고 싶은데 날아든 안내장, 외할머니 집 가듯 친정집 가듯 방맹이질 치는 가슴 산행 날 손꼽는다 무게가 될 것은 눈곱까지 내려놓고 차에 오르면, 세월에 헐거워졌지만 태산이라도 오를 수 있다는 듯 한 차 가득한 주체 못할 욕망들 도란도란 휴식 같은 풍광 내다보며 흥타령에 궁댕이 몇 번 틀어 앉으면 산문 불끈 솟아오르는 한창때의 기운 송골송골 땀방울이 밟아 오른 산정 멀리 바라보이는 아름다움에 취해 꿀맛 같은 도시락 잔치 벌이고 나면 불꽃 진 생의 아쉬움 눈 녹듯 사라지고 어느새, 서산을 물들이는 금빛 낙조 바람의 나래 잡고 가뿐히 내려와 너도 한 잔 나도 한 잔 권하는 하산주 가슴속 시궁창에 떠오르는 보름달 생기 돋은 산객들 귀로가 가볍다.

오늘의 시 2023.11.27

고독한 산행

고독한 산행/ 월정 강대실 지세 험하며 높고 가파른 산 묵은 외길에 곰삭은 정적 겹겹하고 산지니 날아가 주인 없는 빈산 바람에 스치인 가랑잎 처연한 울음소리 혼자 든 산행 산그림자가 막아서 쭈뼛쭈뼛 머리끝이 솟구치는데 날다람쥐 한 마리 총총 앞장서 가고 따라나선 골바람 땀 훔쳐 주면 어느새 발 맞은 도반들 순례의 길 어둑발 진 노루목에 휴!, 올라서자 마중 나온 아내 같은 둥실한 달 찬찬히 살펴 하산하자며 뒤따른다.

오늘의 시 2023.11.24

국수4.3.2.1

국수(4차 수정 본) 담양 땅 찾아갈 때는 관방제 초입 초사막 국수거리 들러 멸치국수 한 대접 하고 간다 기다라니 늘어선 느티나무 가지 아래 머리를 맞대어 내놓인 평상 손님들 틈서리 비집고 올라서 한쪽 빈 상머리에 자리 잡고 앉으면 국수 한 그릇 꼬옥 먹고 잡더라만, 문 앞에까지 갔다가는 그냥 ...... 힘이 팽겨서 자갈길 간신히 왔다 시며 허리춤에 묻어 온 박하사탕 가댁질치다 우르르 달려드는 자식들 입 속에 물리시던 어머니 백지장같이 창백한 얼굴 흔흔한 미소 뒤에 갈앉힌 허기 원추리 새순처럼 뾰조롬 솟아올라 국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배고픔 대신 채우고 간다. 국수(3차 수정 본) 담양 땅 찾아갈 때는 관방제 초입 초사막 국수거리 들러 멸치국수 한 대접 하고 간다 느티나무 그늘 아래 가지런한 평상 손..

오늘의 시 2023.11.22

째마리

째마리*/ 월정 강대실 심심풀이로 두말할 나위 없는 땅콩, 동삼을 가보처럼 따로 잘 갈무리했다가 봄볕 따스운 토방에서 눈에 든 걸로 골랐지요 부끄러이 열린 땅의 궁실에 정성으로 다져 넣고 약속처럼 새뜻한 얼굴 볼 날 기다렸으나 더러는 곯고, 서생원 웬 떡이냐 죄다 훔쳐갔지요 장에서 애기모 모셔다 두벌 심고는 땡볕 숨 돌리는 틈새에 풀 속에서 건져내며 알뜰살뜰히 수확의 기쁨 키웠지요 웬걸, 들짐승들 다 뒤져 먹고 난 처진가리뿐 하천해도 흙의 고결한 보답이 감지덕지해 샅샅이 이삭을 주워 모았지요 우리 부모님 세세연년 허리가 부러지게 땅 파 크고 좋은 것만 골라 광 높이 두었다, 지성으로 기제사며 자식들 생일상 차린 모습 선했지요 되살아난 농심, 먼저 씨오쟁이 채우고 남은 건 손자들 입에 물리고 싶지 않은, ..

오늘의 시 2023.11.22

소박한 행복

소박한 행복/월정 강대실 귀가 순해지고서야 어렵사리 아귀지옥에서 발을 빼고 훌쩍 키를 높인 청대 연신 구름 비질하는 무욕의 하늘 아래 묵은 짐 풀었지요 詩 향에 生을 대끼며, 틈틈이 햇귀 앞서 밭에 나가 흙내 마시며 풀과 가뭄, 벌레 새 짐승과 씨름하여 몸에 좋은 먹거리 가꾸지요 자라고 열리고 밑이 든 대로 거두어 자랑스레 형제 자식들 챙기고 정분 깊은 이웃이랑 나누지요 윗목 한구석 콩이며 참깨 자루 오막조막 널린 잡곡 보퉁이 바라보면 추수한 나락 가마니 차곡차곡 쟁여진 아버지 가을 토방같이 부자 아니어도 든든해지는 마음 주머니 소박한 행복에 겨워 살지요 (4-41. 바람의 미아들)

오늘의 시 2023.11.22

관방제림

관방제림* / 월정 강대실 푸조나무 팽나무 음나무 고향 집 지키는 허리 굽은 노모처럼 시름겹게 눌러살고 계셨네 죽장에 깨금발로 들머리 내다보며 백 년 이백 년 삼백 년 긴긴 기다림으로 버텨 사셨네 해가 설핏한데도 한눈에 얼른 날 알아보고는 연신 오색 꽃잎 날리시며 이제 가면 다시 또 천년만년 학수고대하겠노라며 눈시울 붉히셨네. * 관방제림: 천연기념물 제366호. 담양읍을 감돌아 흐르는담양천의 북쪽 언덕에 홍수 피해를 막기 위해 제방을 만들고 나무를 심은 인공림. 각종의 노거목이 줄지어 서 있으며 녹음과 아름다운 경치 바람을 막는 기능을 발휘하고 있음.

오늘의 시 2023.11.19

씨도둑

씨도둑/ 월정 강대실 안 맵고 달짝지근해, 갖다 심어! 읍내 종묘 상회 오동통한 주인 여자 안 매운 고추라며 권해 곧이듣고 심었다. 보리밥 한 덩어리 시원한 물에 꾹꾹 말아 생된장 듬뿍 찍어 게걸스레 먹던 기억 풋고추 올찬 거로 뚝뚝 한 주먹 딴다 확 콧속을 꿰뚫는 알알한 냄새 눈은 그깟 것 하고 손은 어비해 잡았다 놓았다, 씨와 씨모를 생각해 보다 자고로 씨도둑은 못 한다고, 혹여 남에게 탓을 듣어서는 안된다며 한평생 흐트러짐 없이 살고자 무던히 애쓰신 아버지 많이 닮은 나를 돌아본다 걸음질에서 묻어나는 냄새가 비위 상해 왼고개 젓는 사람을 아직까지는 못 보고 오늘도 같이하자는 이 있어 그저 감사할 뿐이다 그러나, 들꽃 한 송이를 쳐다보면서도 미안한 마음이 안 들게 바르지 못한 삶 앞산 바라보는 것조차..

오늘의 시 2023.11.15

가을 명상

가을 명상 / 월정 강대실 한 잎 두 잎 낙엽이 지는 말바우시장 은행나무 거리 지나 부산히 북으로 북으로 시공을 달려 고즈넉한 산마을에 든다 산산이 날려버린 여름날 뒤안길 침묵으로 돌아보고 서 있는 도랑가 느티나무와 마주한다 나도 이제 조락의 강 건너야 할 시간 바람의 심장을 꿰뚫기 위해 얼마나 많고 많은 날들을 가슴 숯덩이처럼 새까맣게 태우며 허위허위 시위를 당겨 왔던가 한 마름 짓눌러 오는 세월의 무게 산방 적막 속 밀쳐놓고 찬연한 내일의 밑그림 이슥토록 밤 캔버스에 그린다.

오늘의 시 2023.11.12

영암댁 감나무

영암댁 감나무/ 월정 강대실 영암댁 마당귀 키 훌쩍한 감나무, 눈 뜨면 서로 얼굴 맞대고 배시시 웃고 사는 하는 짓이 꼭 주인장 본받았다 칠순이 되도록 옆길 꼬순내 한 번 못 맡고 심성이 춘풍인데다 사리는 해처럼 밝아 우물가 참새들 입길에 오르내린 적 없는 두 아들과 고명딸 불심이 훈육하여 복바가지 같은 자부에 훤칠한 사위 씨울외보다 실한 손주들까지 효심 지극한 이웃이 다 붓다요 그 은덕 하해라고 고희연에 일촌을 모셔다 걸게 대접하고는 소문만 냈다며 얼굴이 홍시가 된 감나무도 오늘 함께 일흔 잔치 한다고 가지마다 치렁치렁 쥔 양반을 본받고 얼굴이 버얼겋다.

오늘의 시 2023.11.09

똘감나무 아래서

똘감나무 아래서/ 월정 강대실 비트적거리며 산에 오른다 무지갯빛 산정山頂은 아직 멀었는데 힘에 부치고 숨이 목에 걸린다. 묵어, 흔적만 남은 무덤 옆 맹감 찔레가시 욱은 똘감나무 아래 선승처럼 가부좌 틀고 앉는다. 숨을 돌리고 마음 가다듬자 수간 속 맥박 치는 소리, 온 몸으로 스민다, 어디선가 ‘내리 봐야’ 길이 보인다는 환청 우레 같다. 감잎 하나 파르르 허공을 날아 내 안으로 파고든다.

오늘의 시 2023.11.05

똘감나무 아래서

똘감나무 아래서/ 월정 강대실 비트적거리며 산에 오른다 무지갯빛 산정山頂은 아직 멀었는데 힘에 부치고 숨이 목에 걸린다. 묵어, 흔적만 남은 무덤 옆 맹감 찔레가시 욱은 똘감나무 아래 선승처럼 가부좌 틀고 앉는다. 숨을 돌리고 마음 가다듬자 수간 속 맥박 치는 소리, 온 몸으로 스민다, 어디선가 ‘내리 봐야’ 길이 보인다는 환청 우레 같다. 감잎 하나 파르르 허공을 날아 내 안으로 파고든다.

오늘의 시 2023.11.05

가을 산

가을 산/ 월정 강대실 저 높은 산 멧부리 아스라한 벼랑 끝에, 덩그맣게 이내 목마른 영혼 내려놓을 수 있다면 울컥울컥 피 울음 토악질해 그 서글픔 온 산에 저렇게 영롱한 꽃등으로 피워 내걸고 나무들처럼 기도로 계절을 영접하고 칼바람 진눈개비, 의젓이 언 강을 건너 청청한 사랑 한 아름 안으련만 돌아보면 지금은, 사랑도 미움도 그리움도 한없이 덧없고 기다란 그림자 찬란히 서러운 늦은 오후 가을빛 속 또 다른 빛이 되어 어느덧 다 타고 부지깽이만큼 남은 여정 절름절름 산을 넘어서라도 마쳐야 하리.

오늘의 시 2023.10.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