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시 874

고향 당산할아버지

고향 당산할아버지/ 월정 강대실 발길이 멀어졌다 했는데 웬걸, 듬직하고 초롱한 모습들로 찾다니 네 선친 자식들 눈 띄워 줘야 한다고 고사리손을 잡고 눈물로 떠나셨다 당산할아버지는 처음 생겨나서부터 발을 내린 데가 천국이다 쭉 눌러 산다며 아버지 이름자뿐만이 아니라 우리집 숟가락 개수까지 안다고 반기셨다 세상은 갓 지난 어제가 옛날이 되고 바야흐로 별세계 여행의 꿈에 부풀지만 제자리에서 자기 일 꽃피운 자라야 한다며 여기저기에 서린 선대의 향기 음미하고 발아래 도랑물에 삶에 얼룩진 일월을 씻고 애를 태우는 난마의 실마리까지를 찾았으니 올라가서 잘 아퀴를 지어라 하시고는 떠난 이들을 위해 고향은 무시로 기도한단다 어떻든지 머리를 이쪽으로 두르고 마음은 앞산처럼 푸르러라며 등을 토닥인다.

오늘의 시 2024.02.01

부끄러운 날

부끄러운 날/ 월정 강대실 틈이 보인다 싶으면 네 활개로 덤벙대는 몰골 눈에 든 가시처럼 껄끄러워도 마음 다잡으며 재갈 물고 버티다가도 마침내는 마구 뚫린 창구멍 되어 밑도 끝도 없이 띄워 보내는 오만 소리에 도가니 쇳물 끓듯 끓어오르는 화 맞대고 사자후를 토하고 나면 묵은 체증이 뚫린 듯 속이 후련하다 말고 한량없이 낯이 부끄러워 온종일 얼굴을 제대로 못 들고 회한의 속앓이를 하는 나에게 '에-끼 이 사람, 오십보백보여!' 어디선가 들려오는 가느다란 목소리 홍당무 같이 달아오르는 낯바닥.

오늘의 시 2024.01.26

눈 내리는 밤이다

눈 내리는 밤이다 / 월정 강대실 나이가 드니 더 친구가 보고 싶다 일찍이, 타작마당 콩 튀어 나가듯 먼 바다로 헤엄쳐 가더니 전화 한 번 없는 길에서라도 만나 보릿국에 대폿잔 기울이며 죽마 타던 이야기 나누고 싶은 이따금씩 놀러 온 하리 맹순이 누님 형들이랑 둘러앉아 벌인 손목맞기 민화투 어쩌다, 뒷손이 잘 맞아 장원하게 되면 움켜쥐운 팔 후려치는 내 길고 매운 손가락 그 오동포동한 손목 만지고 싶은 큰댁 사랑방에 마실가셨던 아버지 밤이 이슥하면 발짐작이 어둠 헤쳐 와 에헴!, 큰기침 소리로 사립 열고 오신 가마솥 쇠죽 푸는 고무래 소리, 이라! 자라! 외양간 깃 주는 소리 듣고 싶은 딸 셋에 청상이 된 외할머니 큰딸 가마 뒤쫓아 와 핏덩이 열 받아 내고 우리 형제들 따라다니며 공부 뒷바라지하신 재판정..

오늘의 시 2024.01.25

노인장(관련 시 3편)

그림자 찾는 노인장/월정 강대실  아동들 자지러지는 웃음소리간간이 창을 넘어 질러오는정오의 텅 빈 운동장 한 켠 긴긴 세월의 상흔 온전히 부둥켜안고교계 지켜 서 있는 버드나무휘늘어진 가지 아래 불언의 위로 주고받으며긴 벤치에 석불처럼 앉아 있는소복단장에 중절모 쓴 하이얀 노인장 무슨 회상에 저리도 깊이 젖었을까‘왜 아이들이 하나도 안 놀아!’눈자위보다 더 깊은 기다림 아직도 잊히지 않는 초립동 시절아련한 그림자 찾아 나왔을까뛰노는 학동들에게서.    골목길 노인장/ 월정 강대실 도시 변방 어둑한 주택가길모퉁이 웅크린 기와집 샛문 설주에형틀 같은 작은 의자 하나 달렸다오늘도 문안 든 불빛 몇 가닥 함께 앉아한 노인장 빈손 수행하시는 중이다,더는 ..

오늘의 시 2024.01.17

어느 여름날1.2.3.4.5

어느 여름날1/ 월정 강대실 벗님네들 얼굴 한 번 볼 겸 해서 너릿재 사뿐 새털같이 넘었지요 술 익는 냄새 졸졸 쫓아가다 농주 큰통 하나 실었지요, 도가에서 주춧돌 놓일 날만 기다리던 계절 엉클어져 잔치 마당 한창이어 느릅나무 그늘 멍석 깔고 둘러앉아 막 한 잔 타는 목 축이려는 참에 솔밭 건너 앞산이 아는 시늉하여 어서 오라 손나발해 옆자리 앉히고 건하게 들었지요 너나들이해가며 산들바람도 대취하여 따다바리고 어느덧, 설움에 겨운 해 서녘에 벌겋고 텃새들 시나브로 제 둥지라 모여들어 흥얼흥얼 어둑발 붙들고 넘었지요 어느 여름날 그 하루 햇살 좋은 날. 어느 여름날2 / 월정 강대실 갈맷빛 동산에 계절이 무르익고 청산에 열린 계곡 맑은 물 지줄대니 한 마리 꽃나비 되어 시심에 젖는다. 갈매 치마 저고리 덧..

오늘의 시 2024.01.11

귀천-제일이 형

귀천歸泉 -제일이 형 월정 강대실 훤칠하고 번듯한 이목구비 방정한 걸음걸이에 호탕한 제일이 형 끝내는 넘고야 마는 한 고개. 눈 귀를 놀라게, 입을 즐겁게 마음까지를 배 부르게 하면 못 이룰 것이 없더라 하며 세상이 좁아 산을 날고 물 위를 뛰고 세간에 요술 방맹이 고향 뒷등성이 큰 바위 얼굴 이더니 희미한 의식, 입 속으로 큰아들 이름 되뇜은 단말마의 마지막 고통이었나 끝내, 눈을 못 떠 얼굴 보지 못하고 꿈을 키우던 노령의 준령 밀잿길 아련히 바라보이는 영락공원 황토 땅 영생 낙원 찾아가누나. (3-67. 숲 속을 거닐다)

오늘의 시 2024.01.09

말바우 시장2

말바우 시장2 / 월정 강대실 몸조심할 양으로 순댓국 집 담 쌓다가 간만에 북적이는 틈새에 발붙인다. 필리핀 며느리 얻어 열 손자 본 리어카상 돈 번다고 맨날 늦더니 회사 사장과 눈 맞아 살림은 부엌 드난꾼 같은 아내 버리고 부모님 산소가에 움막 친 북악산 노 박사 망령 든 노모 백수에 쌀 백 가마 나눈 방앗간 못 먹고 헐벗고 자린고비로 모은 쇠푼에 정부 융자금 보태 얼기설기 지은 집 화마에 폭삭하여 죽을상 된 꺽다리 양반 단돈 이 천 원에 고기국에 밥 파는 할매집 노점상 곗돈이랑 사방 일숫돈 싹둑 베먹고 밤보따리 싼 푸줏간 도씨 소문이 쑥덕인다. 웃음과 눈물이 범벅 되어 질척인 장바닥 파장 막걸리에 취해 절뚝인다. (2-35. 먼 산자락 바람꽃) 말바우 시장2

오늘의 시 2024.01.07

대빗자루 보답

대빗자루 보답/ 월정 강대실 바람 가는 데 구름 실려가듯 이삿짐 따라온 대빗자루 꾸물대는 가을 내쫓다 몽당이 되었다 동리 뒤통수까지 우줄우줄 기어 내려온 산코숭이 빼곡히 들어서서 술렁대는 솜대 널린 댓가지 주워다 빗자루 맨다, 일찍이 아버지 어깨너머로 배운 첫솜씨 큰댁 들고가니, 형님 왈 재주가 괭이 쥐 잡은 것 같다 하시고 막냇동생, 입이 귀밑까지 닿고 자그마한 손 빗자루는 처제가 점쟁이 손금 보듯 만지작거리더니 손끝이 땡고추라며 가져간단다 산더미 같은 은혜, 대빗자루 보답한다. (4-105. 바람의 미아들)

오늘의 시 2024.01.06

산밭1.2.3

산밭1 / 월정 강 대 실 앞장선 기억 따라, 산발치 칙칙한 오솔길 타고 드니 찔레나무 두렁을 파고들어 여기저기에다 진을 치고 개망초 우북이 모여들어 한바탕 새하얀 춤판인데 좋은 미영밭 다 묵혔다고 솜구름 눈흘기며 영을 넘는다. 산밭2 /월정 강 대 실 몇 해 전 가을 끄트머리 포르르!, 한 양반이 날아들더니 호들갑 떨며 토주 행세 부리더구먼 구린내가 몰큰몰큰 풍겼으나 어련히 알아 하겠지 싶어 못 본 척 납작 엎드려 있었지 그런데, 팔도 유랑 길에라도 올랐는지 그 후로는 도통 그림자도 안 비치니... 꼭 삿갓 같은 사람 이라며 찔레나무 사방에서 지경을 넘어들고 산딸기나무 가운데다 진 치고 칡넝쿨 온 밭을 횡행활보하니…… 구시렁대다 흠칫 말허리 꺾는, 산밭 씁쓰레한 낯꼴 눈앞에 아른거리는지 시르르 밭귀퉁이..

오늘의 시 2024.01.04

도둑괭이

도둑괭이 /월정 강대실 수묵 같은 어스름 유년의 기억 속 도둑괭이 한 마리, 빠끔히 샛문 밀치고 기어드는 방구들 들썩이는 오롱조롱한 새끼들 호롱불 옆 헌옷 깁던 어머니 도둑괭이 왔다며 꼬이면 질겁하여 이불 속 파고들었던 대꾼한 눈 수심의 어둠 속으로 오그라드는 울음소리 등에 달라붙은 뱃가죽 허기진 모습에 시퍼런 냄새의 촉수 앞세운 오늘도 여기저기 뒤지고 헤쳐 늘어 치도곤 먹이려는 심보가 채 비워내지 못한 마음속 미움의 싹으로 새록새록 돋아 오르는데 미움을 품는 것은 마음밭에 가시나무 키우는 일이라 생각하니 불현듯, 작두날을 본 듯 서늘해진 가슴 색안경 접는다. (4-56. 바람의 미아들)

오늘의 시 2024.01.04

친구를 보내며

친구를 보내며/ 월정 강대실 이제 그만 뜬구름 쫓겠노라고 뒷산 곰바위가 시새워할 의지로 혈혈단신 자작골 노송 밑에 막 치더니 너덜 섶 불꽃 틔는 곡괭이질 검은 짐승 떼를 이루어 풀 뜯고 건불 넉넉히 지핀 골방의 다짐들 앞산보다 더 높고 청청한데 근자에 안색이 좀 그렇다 했건만 깊은 데다 칼 댔단 발 없는 말에 한 줌 만한 마음 무릎 맞댈 때는 이달 모임에는 꼬옥 얼굴 보자 해 놓고 까마귀 고기 드셨던가 깜빡 우리 속 눈과 귀 부리기재 서성이는데 生 死는 도랑 건너는 거나 진배없다는 듯 기어이, 이승에 내려놓은 탄 숨 소금 담긴 가슴 평안한 영면을 비네. (4-101. 바람의 미아들)

오늘의 시 2024.01.04

받침목

받침목/ 월정 강대실 볕내에 부끄러이 머리 내밀더니 철따라 온 들 색칠하는 풀잎 뜻도 의미도 없이 강바닥에 나동그라져 무량겁 씻기고 닳아 불심이 된 돌멩이 작은 몸짓 하나가 세상을 아름답게 떠받치나니 평생 묵묵히 흙 속에 묻히어 공덕으로 길러 낸 십 남매 세파 그득한 먼 바다로 내보내고 곱디곱게 은빛 물드신 오평 할머니같이. (4-76. 바람의 미아들)

오늘의 시 2024.01.04

새해 기도

새해 기도 /월정 강 대 실 밝아오는 새해에는 마음속 바위 하나 품게 하소서, 모진 세파 몰아쳐도 굴하지 않고 앞만 보고 다소곳이 살게 하소서 밝아오는 새해에는 마음속 다순 눈 뜨게 하소서, 그릇 된 편견 떨쳐 버리고 속내 읽고 다독여 살게 하소서 밝아오는 새해에는 마음속 호수로 채워 주소서, 굴욕과 가위눌림 안으로 삭여 화평과 평안 안고 살게 하소서 밝아오는 새해에는 마음속 촛불 하나 켜게 하소서, 질투와 외면의 빗장 살라버리고 축복을 기도하며 살게 하소서 밝아오는 새해에는 마음속 등불 하나 밝혀 주소서, 음울의 터널 허위허위 뚫고 광명과 진리 좇아 살게 하소서. 새해 기도 /월정 강 대 실 밝아오는 새해에는 마음속 바위 하나 품게 하소서, 모진 세파 몰아쳐도 굴하지 않고 앞만 보고 다소곳이 살게 하소..

오늘의 시 2023.12.30

짝사랑-시詩

짝사랑/ 월정 강 대 실 -시詩 심쿵했지요, 숫되고 세상 물정 몰라 우연히 그대를 처음으로 만나고 천진한 마음의 손목 살갑게 잡아 준 그때는 갈수록 만나고 나면 더 보고 싶고 못 잊을 감미로움 솔솔 뭉클해지는 가슴 내 안의 꽃밭에 짝사랑 꽃 피어났지요 적막한 사위 손 흔들어 준 얼굴 달 떠오른 야밤 초병 지리한 시간은 입노래로 동행하고 입영의 첫 다짐 지켜 내는 의지 돋우었지요 세파 헤쳐 간단없이 바람 좇던 긴긴 여름 뒷산만 한 바윗덩이 길을 막아서도 그윽한 체취는 황우 끈질긴 힘 솟게 했지요 애달픈 짝사랑의 가슴앓이 아직 인가요 향도 꿀도 없는, 내 시詩 는 벌 나비 찾지 않고 꿈길에도 품고 살아온 일월의 시간 얼마인데 속절없이, 봉두난발 뒤뚱뒤뚱 걷는 종심의 강 동문 차가운 새벽 공기 뚫고 뻗쳐오르는..

오늘의 시 2023.12.29

미움

미움/ 월정 강대실 마음의 뜨락에 가시나무 키우는 일입니다 온통 들어내 살라 버리지 않으면 서슬 퍼런 청룡도 됩니다 구중 깊디깊은 데 도사리고 있다 불이 일 듯 순식간에 되살아나 여지없이 찌르고 헤집어댑니다 끝내는, 개맹이가 풀려서 시도 때도 없이 도지고 산이 뒤집히고 하늘이 빙빙 돕니다 아무에게나 찌그렁이 붙거나 스스로를 태질하여 몸을 잡치고 냅다, 천야만야 무저갱에 떨어져서 남세를 사게 합니다. 미움

오늘의 시 2023.12.27

기다림을 위하여

기다림을 위하여 / 월정 강대실 生의 길 외롭고 고달파, 밤새껏 꺽꺽 소리 내어 울어본 적 있나요 우리네 사는 일은 늘 애처롭고 한 곡조 아니리보다 서글픈 것 그대와 나 가슴 저미는 헤어짐도 내 북 치듯한 채근만은 아니었지요 이 넓은 세상에 화려하고 참된 것 입에 달고 몸에 좋은 약 흔치 않듯 삶은 굴곡지고 지난한 도전 뒤에 그 자양으로 파릇한 환희의 싹 돋고 태산을 넘고 물이라도 건너, 다시 시작 않고는 이룰 수 없단 믿음였지요 가을이면 놀빛에 익어가는 감처럼 이내 가슴 세월 강에 벌겋게 젖지만 제아무리 기다림의 계절이 깊어도 결코, 이 회오리 이겨 내야만 합니다.

오늘의 시 2023.12.26

걸레

걸레/ 월정 강대실  닦아 드리고 싶습니다이를 앙다물고 참다가도혀끝 불쑥 튀어나오는 날 선 말씨며치미는 부아 주체하지 못하여 연거푸 냉수 사발 들이키는 입술과차마 드러내지 못하여울화로 커 가는 근심 걱정까지도 깨끗이 닦아 드리고 싶습니다.턱 밑에서는 할 말을 잊었다가 돌아서서 뒤통수에 주먹질하는 심보며외로움에 잠 못 들고 방황하는길고 긴 계절의 얄미운 그리움과아직도 터덕거리는 여정  길을 찾다 지끈지끈한 머릿속도 말끔히 닦아 드리고 싶습니다.닦아, 새로이 열린 해맑은 세상 해와 달이 다 닳도록 살으랍니다.

오늘의 시 2023.12.24

한봉 명가

(사진 출처: 사진은 인터넷 이미지임) 한봉 명가名家 / 월정 강대실 향리에 한봉 명가 귀동 어르신이 사셨어요 열 두 가족이 많은 집짐승과 한식구가 되어 적지 않은 농사에 틈틈이 벌을 쳤지요 울안 여기저기에 호박돌로 초석을 놓았어요 그 위에다 토막 낸 통나무 속을 파내 버리고 만든 벌통을 층층이 올렸지요 모내기 철이면 분봉이 시작되고 대여섯 살 어린 자식들은 벌 지킴이가 되지요 형은 어미 벌통에서 떼 지어 나온 벌떼가 어느 곳으로 날아가나 뒤쫓고 아래는 부리나케 들로 달려가 아버지께 이르지요 집 주위 그리 높지 않은 감나무 가지에 내려앉으면 비행이 잠잠해지기를 기다리지요 어르신은 내내 ‘들이들이’를 외며 쑥대 묶음으로 꿀 바른 멍덕에 쓸어 담았어요 그리고 빈 벌통에 넣고 출입구 하나를 남기고는 진흙으로 ..

오늘의 시 2023.12.21

상골

상골*(上谷) 내 탯줄 묻은 상골은 우렁이처럼 생겼어요 사방 겹겹이 산이 둘러쌌지요 산읍에서 북으로 마중 나온 오장산이랑 좋이 이십 리는 팍팍한 자갈길 걸어야 하지요 게딱지 같 은 초가가 왕대밭 사이에 다닥다닥 붙어 있는 모습 정겹 게 눈에 들어와요 그래서 상골인가 봐요 동구 밖에 산이 혀를 날름거리는 손바닥만 한 논배미는 천둥지기여요 층층이 얹혀 있어요 동네 사람들 허기 다 못 채워 주지만 곡간이고 명줄 이지요 배가 고프면 맨맛 한 산자드락만 파 일구었는지 뺑 둘러 밭이에요 논 없는 사람은 많아도 밭 없는 사람 드물지요 상상 골짝 마루에서 동네 초입으로 추월산 자락이 계곡 에 발 담그고 살아요 당산 마당에서는 이마를 바짝 디밀 고요 아침엔 해를 낳고 봄날이면 참꽃 따먹고 병정놀이 하라며 아그들 꼬드겨요..

오늘의 시 2023.12.20

고독한 산행

고독한 산행/ 월정 강대실 지세 험하며 높고 가파른 산 묵은 외길에 곰삭은 정적 겹겹하고 산지니 날아가 주인 없는 빈산 바람에 스치인 가랑잎 처연한 울음소리 혼자 든 산행 산그림자가 막아서 쭈뼛쭈뼛 머리끝이 솟구치는데 날다람쥐 한 마리 총총 앞장서 가고 따라나선 골바람 땀 훔쳐 주면 어느새 발 맞은 도반들 순례의 길 어둑발 진 노루목에 휴!, 올라서자 마중 나온 아내 같은 둥실한 달 찬찬히 살펴 하산하자며 뒤따른다.

오늘의 시 2023.12.19

은행잎 연가

은행잎 연가/ 월정 강대실 누구를 찾아 여길 왔는냐 자나깨나 문학의 꿈에 사는 어느 문학소녀 손에 펼쳐 든 시집 책갈피여야 하는데 스산한 포도 위를 방황하다 낯선 바람의 너스레에 빠져 하느작하느작 뒤를 쫓다 끝내는 젖은 자리를 찾아 몸을 부린 너 수없는 발길에 채이고 밟혀 닳고 찢기고 해어진 노오란 가슴 저문 밤이면 하늘가 외로운 별 하나 만나 지새워 샛노란 밀어 나누다 대기의 차디찬 눈물에 젖어 길섶에 갈한 메아리로 스러진다.

오늘의 시 2023.1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