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문학 산책

시인들이 뽑은 애송시

월정月靜 강대실 2006. 11. 3. 11:22

대경국어국문학과 카페에서 공개한 게시글입니다

 

시인들이 뽑은 애송시
번호 : 112   글쓴이 : 박병구
조회 : 36   스크랩 : 0   날짜 : 2005.02.08 05:06
시인들이 뽑은 애송시


우리나라 시인들이 가장 즐겨 읊는 시는 김춘수의 ‘꽃’이고, 가장 애송하는 시인은 서정주인 것으로 나타났다. 문예지 ‘시인세계’(주간 김종해) 가을호의 설문조사 ‘시인들이 좋아하는 애송시’에 따르면, 현역시인 246명을 대상으로 애송시 3편씩을 조사한 결과 23명이 김춘수의 ‘꽃’을 선정해 가장 애송하는 시로 꼽혔다.


이어 윤동주 ‘서시’(18명), 백석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15명), 서정주 ‘자화상’, 이형기 ‘낙화’(이상 14명), 한용운 ‘님의 침묵’, 서정주 ‘동천’(이상 12명), 김소월 ‘진달래꽃’, 김수영 ‘풀’(이상 11명), 정지용 ‘향수’(10명) 등의 순이었다.


시인별로는 미당 서정주가 가장 많이 애송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당은 72명의 시인들로부터 추천을 받았으며, 이 숫자는 두번째로 많은 추천을 받은 백석(40명)의 두배에 가까운 수치다. 뒤를 이어 김수영(36명) 김소월(34명) 윤동주(32명) 김춘수(30명) 정지용(27명) 박목월(23명) 김종삼 신경림(이상 16명) 한용운(15명) 등이 상위권을 차지했다.


시인들에게 평소 애송하는 시 3편을 뽑아 달라는 복수응답조사로 실시된 조사에서 ‘꽃’은 시인 김종해, 김종미 등 23명으로부터 선택돼 최고의 애송시로 뽑혔다.


이어 윤동주의 ‘서시’(18명), 백석의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 방’(15명), 서정주의 ‘자화상’, 이형기의 ‘낙화’(각각 14명 ), 한용운의 ‘님의 침묵’, 서정주의 ‘동천’(각각 12명), 김 소월의 ‘진달래꽃’, 김수영의 ‘풀’(각각 11명), 정지용의 ‘ 향수’(10명) 순으로 조사됐다.


시에 대한 전문적인 감각, 예민한 감성을 지닌 시인들의 애송시 리스트는 일반인들의 목록과는 조금 다를 것이라는 기대와 달리 이번 조사는 백석의 시 정도만 빼놓고 시인들의 애송시 역시 일 반인들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에 대해 문학평론가 이남호(고려대 국어교육과)교수는 “김춘수의 ‘꽃’ 이 감상과 지성, 감각과 사유가 절묘한 균형을 이루고 ‘서시’ 는 단순함과 순수함이 아름다운 결정을 이룬 명시이지만 두 작품 모두 약간은 소녀 취향의 대중적 작품으로 시인들의 애송시가 평범하고, 지나치게 많이 알려진 작품이라는 사실이 실망스럽다 ”고 평가했다. 하지만 역으로 생각하면 사랑받는 시란 결국 전 문가나 일반인을 가리지 않고, 똑같이 마음을 두드리고, 영혼에 다 가서는 것임을 말해주기도 한다.





애송시를 시인별로 살펴보면, 72명이 꼽은 시인 서정주가 가장 많이 애송되는 시인으로 조사됐다. 이교수는 “지난 십여년동안 문단 안팎에서 서정주를 폄훼하는 분위기가 짙었고, 서정주와 그 의 시가 정치적 이유로 매도당했지만, 그런 외풍에도 불구하고 결국 서정주의 시가 한국 현대시 지형에서 훌륭한 유산임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 준다”고 분석했다. 서정주의 시는 ‘동천’, ‘ 국화 옆에서’, ‘무등을 보며’ 등 23편이 애송시로 꼽혔다. 이 어 시인 40명이 백석의 시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등 10편 을 선택했고, 김수영의 ‘풀’, ‘눈’ 등 16편은 시인 36명으로 부터 애송시로 추천받았다. 이어 김소월(34명), 윤동주(32명), 김춘수(30명), 정지용(27명), 박목월(23), 김종삼, 신경림(각각 1 6명)순으로 조사됐다. 시인 10명 이상으로부터 애송되고 있는 시 인들은 모두 22명으로 이중 작고 시인은 15명, 생존시인은 7명이 며, 생존시인은 김춘수, 신경림, 이형기, 황동규, 김종해, 강은교, 이성복 시인이다.





이남호 교수는 시인들의 애송시와 애송시인 리스트를 살펴본 뒤 ▲애송시의 목록이 구태의연하고 ▲민중시 계열의 시인이나 작품 들이 애송시 목록에 거의 오르지 못했으며 ▲일반적인 문학사적 평가에 비해 백석이 시인으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고 평가 했다.


또 이 교수는 “시인들의 애송시 목록의 스펙트럼이 너무 넓고, 시적 수준, 성향, 시대, 나이, 평가 등에서 큰 차이가 나는 시인 과 작품들이 분포돼 있다”며 “이는 시인들의 다양한 개성으로 볼 수 있지만, 동시에 문학적 기준과 취향에 대한 우리 시단의 동의가 그만큼 약하다는 것을 뜻한다”고 해석했다.


( 일간신문 스크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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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김춘수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는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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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신의주(南新義州) 유동(柳洞) 박시봉방(朴時逢方) / 백석


어느 사이에 나는 아내도 없고, 또,
아내와 같이 살던 집도 없어지고
그리고 살뜰한 부모며 동생들과도 멀리 떨어져서,
그 어느 바람 세인 쓸쓸한 거리끝에 헤메이었다.
바로 날도 저물어서
바람은 더욱 세게 불고, 추위는 점점 더해오는데,
나는 어느 목수(木手)네 집 헌 삿을 깐,
한방에 들어서 쥔을 붙이었다
이리하여 나는 이 습내나는 춥고, 누긋한 방에서,
낮이나 밤이나 나는 나 혼자도 너무 많은 것 같이 생각하며,
딜옹배기에 북덕불이라도 담겨오면,
이것을 안고 손을 쬐며 재위에 뜻없이 글자를 쓰기도하며,
또 문 밖에 나가지두 않고 자리에 누워서,
머리에 손깍지베개를 하고 굴기도 하면서,


나는 내 슬픔이며 어리석음이며를 소처럼 연하여 쌔김질 하는
것이었다.
내 가슴이 꽉 메어올 적이며,
내 눈에 뜨거운 것이 핑 괴일 적이며,
또 내 스스로 화끈 낯이 붉도록 부끄러울 적이며,
나는 내 슬픔과 어리석음에 눌리어 죽을 수 밖에 없는 것을
느끼는 것이었다
그러나 잠시뒤에 나는 고개를 들어,
허연 문창을 바라보든가 또 눈을 떠서 높은 천정을 쳐다보는
것인데,
이때 나는 내 뜻이며 힘으로, 나를 이끌어 가는 것이 힘든
일 인것을 생각하고,
이것들보다 더 크고, 높은 것이 있어서, 나를 마음대로 굴려
가는 것을 생각하는 것인데,
이렇게 하여 여러날이 지나는 동안에,
내 어지러운 마음에는 슬픔이며, 한탄이며, 가라앉을 것은
차츰 앙금이 되어 가라앉고,


외로운 생각만이 드는때쯤 해서는,
더러 나줏손에 쌀랑쌀랑 싸락눈이 와서 문창을 치기도 하는
때도 있는데,
나는 이런 저녁에는 화로를 더욱 다가끼며, 무릎을 꿇어보며,
어니 먼 산 뒷옆에 바우섶에 따로 외로이 서서
어두어 오는데 하이야니 눈을 맞을, 그 마른 잎새에는
쌀랑쌀랑 소리도 나며 눈을 맞을,
그 드물다는 굳고 정한 갈매나무라는 나무를 생각하는 것이었다.



<학풍, 1948. 10> 백석 시에 있어서 운명론적 정조를 간직한 풍경들은,
실은 "높고 외로운 자아,
곧 고향 혹은 여성상으로부터 이탈된 자가"가 그 고독을 견뎌내는 풍경이다.
이 때의 "고독"이란, 자신과 몇몇 특별히 고독한 인간들에게 한정된
특수한 사회적 정황이 아니라 인간 실존의 불가피하고도 중심적인 현상,
곧 보편적인 인간 조건인 것이다.
이런 점에서 백석은 모더니즘 계보에 속하는 시인이라 할 수 있다.
삿 : 갈대를 엮어서 만든 자리
쥔 : 주인
딜옹배기 : 아주 작은 자배기
북덕불 : 짚북더기를 태운 불
나줏손 : 저녁 무렵
바우섶 : 바위옆


**백석 白石


1912. 7. 1 평북 정주 ~ 1995. 1. (83세) 2001/04/30 동아일보 자료 참조)


어린시절의 이야기를 북방정서를 통해 시화(詩化)했다. 본명은 기행(夔行). 아버지의 영향으로 일찍부터 신식교육을 받았다. 1918년 오산소학교를 거쳐 오산중학교를 마치고 조선일보사 후원 장학생으로 일본 아오야마 학원[靑山學院]에서 영문학을 공부했다. 귀국하여 조선일보사에 입사, 〈여성〉에서 편집을 맡아보다가 1935년 8월 〈조선일보〉에 〈정주성 定州城〉을 발표하면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1936년 조선일보사를 그만두고 함경남도 함흥 영생여자고등보통학교 교사로 있었으며 만주 신징[新京]에 잠시 머물다가 만주 안둥[安東]으로 옮겨 세관업무를 보기도 했다. 해방 후 고향 정주에 머물면서 글을 썼으며, 6·25전쟁 뒤에는 북한에 그대로 남았다. 1936년에 펴낸 시집 〈사슴〉에 그의 시 대부분이 실려 있으며, 시 〈여승 女僧〉에서 보이듯 외로움과 서러움의 정조를 바탕으로 했다. 〈여우 난 곬족〉(조광, 1935. 12)·〈고야 古夜〉(조광, 1936. 1)에서처럼 고향의 지명이나 이웃의 이름, 그리고 무술(巫術)의 소재가 자주 등장하며 정주 사투리를 그대로 썼는데, 이것은 일제강점기에 모국어를 지키려는 그의 의지를 보여주고 있다. 〈사슴〉 이후에는 시집을 펴내지 못했으며 그뒤 발표한 시로는 〈통영 統營〉(조광, 1935. 12)·〈고향〉(삼천리문학, 1938. 4)·〈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 南新義州柳洞朴時逢方〉(학풍, 1948. 10) 등 50여 편이 있다. 시집으로 1987년 창작과비평사에서 〈백석시전집〉과 1989년 고려원에서 〈흰 바람벽이 있어〉 등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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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천 /서정주


내 마음 속 우리 님의 고운 눈썹을


즈믄 밤의 꿈으로 맑게 씻어서


하늘에다 옮기어 심어 놨더니


동지 섣달 날으는 매서운 새가


그걸 알고 시늉하며 비끼어 가네.


* 우리 님 : 절대적 존재 (시적 화자가 신성시하는 대상)
* 고운 눈썹 : 초승달(미완성의 의미) -가치있는 삶, 인간의 근원적 생명 등을 암시함
* 즈믄 밤의 : 천(千) 밤의, 여기서는 '오래고 오랜 세월'의 뜻
* 맑게 씻어서 : 눈썹이 가지는 절대적 가치에 대한 외경
* 옮기어 심어 놨더니 : 완성 추구의 의미 암시
* 동지 섣달 : 불모의 현실, 지상의 계절
* 날으는 : 나는, 날아가는 (시적 허용)
* 매서운 새 : 영원과 무한을 동경하는 인간의 야망
(달 : 영원의 비상, 새 : 찰나적 비상)
* 시늉하며 : 같은 모양을 지으며
* 비끼어 가네 : 완성을 위한 기다림의 존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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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화상 / 서정주


애비는 종이었다. 밤이 깊어도 오지 않았다.
파뿌리같이 늙은 할머니와 대추꽃이 한 주 서 있을 뿐이었다.
어매는 달을 두고 풋 살구가 곡 하나만 먹고 싶다 하였으나………
흙으로 바람벽한 호롱불 밑에 손톱이 깜한 에미의 아들


갑오년이라든가 바다에 나가서는 돌아오지 않는다 하는 외할아버지의
숫많은 머리털과 그 크다란 눈이 나는 닮았다 한다.


스믈 세 해 동안 나를 키운 건 팔할이 바람이다.
세상은 가도가도 부끄럽기만 하더라
어떤 이는 내 눈에서 죄인을 읽고 가고
어떤 이는 내 입에서 천치를 읽고 가나
나는 아무 것도 뉘우치친 않을란다.


찬란히 티워오는 어는 아침에도
이마 위에 얹힌 시의 이슬에는
몇 방울의 피가 언제나 섞여 있어


볕이거나 그늘이거나 혓바닥 늘어뜨린
병든 수캐마냥 헐덕거리며 나는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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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 / 김수영


풀이 눕는다
비를 몰아오는 동풍에 나부껴
풀은 눕고
드디어 울었다
날이 흐려서 더 울다가
다시 누웠다


풀이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울고
바람보다 먼저 일어난다


날이 흐리고 풀이 눕는다
발목까지
발밑까지 눕는다
바람보다 늦게 누워도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고
바람보다 늦게 울어도
바람보다 먼저 웃는다
날이 흐리고 풀뿌리가 눕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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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화 / 이형기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봄 한철
격정을 인내한
나의 사랑은 지고 있다.


분분한 낙화……
결별이 이룩하는 축복에 싸여
지금은 가야 할 때,


무성한 녹음과 그리고
머지않아 열매 맺는
가을을 향하여


나의 청춘은 꽃답게 죽는다.


헤어지자
섬세한 손길을 흔들며
하롱하롱 꽃잎이 지는 어느 날


나의 사랑, 나의 결별,
샘터에 물 고이듯 성숙하는
내 영혼의 슬픈 눈.


==이해와 감상


사계절의 순환이 뚜렷한 환경 속에서 살고 있는 우리에게 인생의 한 단면을 계절의 순환현상을 통해서 유추해 보이는 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라 할 수 있다. 이 시는 `무성한 녹음'의 계절을 예비하면서 떨어지는 꽃송이를 통해 인생사에서의 이별과 더 나아가서는 죽음에 대한 깊은 통찰을 일깨워 주고 있다.


시인은 지금 떨어지는 꽃을 보며 그 꽃의 사라짐을 사람 사이의 만남과 헤어짐으로 바꾸어 놓는다.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 분명히 알고 가는 이'란 낙화를 의인화한 표현이다. 낙화가 아름다운 것은 때가 되면 피었다가 지는 자연의 섭리에 순응하기 때문이다. 이 시의 뛰어난 점은 이러한 낙화의 정경에서 모든 인간사의 이별, 죽음의 원리를 통찰해 내고 있는 데서 찾을 수 있다.


시인은 `지고 있다, 가야 한다, 죽는다, 뒷모습, 낙화, 결별, 가을' 등 비관적인 시어와 이별을 뜻하는 시어들을 주로 선택하여 사용함으로써 작품 전체를 쓸쓸함으로 채색하고 있다. 하지만 그러한 애상적 분위기 자체가 시인이 표현하고자 하는 것의 전부는 아니다. 이별의 아픔과 슬픔이 아련하게 채색될수록 그에 따르는 영혼의 성숙은 값지고 빛나게 된다는 점을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즉 이면적으로는 `아픔 속의 성숙'이라는 역설적인 깨달음을 읽어낼 수가 있는 것이다.


`무성한 녹음, 열매, 가을'은 모두 낙화가 있기에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다. 꽃이 떨어진 다음 수목은 더욱 우거져 여름날의 무성한 녹음과 가을날의 소담스런 결실로 발전할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사랑과 이별의 열병을 거쳐 청춘의 한 고비를 지날 때 우리의 삶도 원숙해져 무성한 녹음과 보람찬 결실을 맞이할 수 있다.


마지막 6연과 7연은 이러한 깨달음을 심미적인 영상으로 표현하였다. `섬세한 손길을 흔들며 꽃잎이 진다'라든가, `샘터에 물 고이듯 성숙하는 내 영혼'이라든가 하는 표현은 고통을 견디며 성장하는 인간 내면의 아름다움을 노래한 것이다. [해설: 조남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