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당시문학관 서정주 친일자료 함께 전시키로
연구소 전북지부 등 2년 8개월간 요구, 문학관 측에서 수용
미당의 좋은 시만 감상할 수 있었던 미당시문학관에서 그의 친일부역의 흔적이 행간에 올올이 담겨있는 친일 시와 수필 등도 볼 수 있게 되었다.
미당시문학관 이사회(이사장 박우영)는 민족문제연구소 전북지부(지부장 최재흔)와 태평양전쟁유족회 고창지부(지부장 손일석)가 지난 2년 8개월 동안 요구한 '친일·친독재 작품 병행전시'를 진통 끝에 받아들여 친일작품을 제작하여 지난 7월 14일에 전시하였다.
본 전시관 왼쪽의 1층 전시실 입구에서부터 전시 된 작품은, 친일작품 11편 중 6편이 전시되고 자신의 친일을 변명한 작품 1점과 전두환을 찬양한 시 1편 등 8점이 판넬로 제작되어 전시되었다. 전시된 친일 시는 <오장 마쓰이 송가(松井伍長 頌歌)>(매일신보 1944년 12월 9일), <항공일에>(국민문학 1943년 10월호, 日文), <헌시-반도학도 특별지원병 제군에게>(매일신보 1943년 11월 16일), <무제-사이판 섬에서 전원 전사한 영령을 맞이하며>(국민문학 1944년 8월) 등 4편이며, 친일 수필은 <스무살 된 벗에게>(조광 1943년 10월), 친일 소설은 <최체부(崔遞夫)의 군속지망(軍屬志望)>(조광 1943년 11월), 해방 후 자신의 친일을 변명한 시인 <종천순일파(從天順日派)>(자전적 담시집 [팔할이 바람], 1988), 전두환의 56회 생일을 맞아 헌사한 축시 <처음처럼-전두환 대통령 각하 56회 탄신일에 드리는 송시>(1987년 1월 18일) 등이다. 그리고 미당시문학관 이사회측과 전시 실무를 맡은 유족회 측은 친일작품을 수시로 교체하여 전시하기로 합의했다.
▲ 헌시-반도학도 특별지원병 제군에게
그 동안 민족문제연구소 전북지부와 태평양전쟁유족회 고창지부는, 미당의 문학적 업적과 그의 문학정신을 계승한다는 명분으로 문학관을 짓고 기념행사를 갖는 것을 강력히 반대해 왔다. 그리고 그의 문학에 대한 평가가 대립하고 있는 상태에서 친일·친독재 작품은 감춘 채 일방적으로 국민들에게 익히 알려진 서정시들만을 골라 전시 해 놓은 것은 진실을 왜곡하는 것이기에 공정하게 친일작품도 전시할 것을 강력히 요구했다.
▲ 2002년 11월 9일 미당시문학관 입구의 현수막
이번의 미당의 친일·친독재 시의 전시는 그런 노력들이 절반의 성과를 거둔 것으로 볼 수 있다. 앞으로 이 곳 전북 고창 미당시문학관을 방문하는 이들은 민족의 수난기인 일제 강점기와 군사 독재정권 시기의 미당 문학과 삶의 어두운 면모의 일단을 살펴 볼 수 있을 것이다.
민족문제연구소 논평
민족문제연구소는 그간 친일인물에 대한 무분별한 기념사업이, 일제 강점기 목숨을 걸고 조국 독립 투쟁에 헌신한 애국선열에 대한 참을 수 없는 모독이며 민족의 정통성을 훼손시키고 건전한 가치관 형성을 가로막는 반민족적반사회적 행위임을 누차 강조하여 왔다.
박정희 기념관 건립저지, 정춘수박흥식김석원 등 친일파 동상철거, 조두남 음악관 명칭 개정 등은 민족문제연구소가 전개해 온 역사정의실현 운동의 큰 성과들이다.
연구소는 기본적으로 모든 친일인물에 대한 어떠한 형태의 기념사업도 반대한다. 특히, 정부나 지자체가 정치적 목적으로 국민의 혈세를 잘못된 기념사업에 지원할 경우에는 결코 좌시하지 않을 것이다. 또 유족 또는 연고자들이 자체적으로 기념사업을 추진하는 것도 원칙적으로 반대하며, 그들이 스스로 자제해주기를 다시 한번 엄중히 촉구한다.
이번 미당 시문학관 관계자들의 결단은 미흡하기는 하나 한걸음 진전된 역사인식의 소산으로 평가할 수 있겠다. 자신들이 애호하는 인물의 치부를 과감히 드러내는 데는 나름의 고뇌가 있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그러나 한 사람의 부끄러운 행적을 왜곡미화하는 맹종보다는 과오를 인정할 줄 아는 용기야말로 반성과 화해의 시대정신에 부합하는 올바른 선택이라는 점을 직시해야 한다.
지금 이 시간에도 역사적으로 문제가 있는 인물에 대한 기념사업이 공공연히 행해지고 있고 새로이 시도되고 있다.
이제 우리는 우리의 역사 속에서, 진정으로 기억하고 기념해야 할 대상이 누구인가를 제대로 가릴만한 기준에 대해 사회적 합의를 가져야만 할 때이다.
2004. 7. 30
2004-07-30 오후 3:45: ⓒ 민족문제연구소 퍼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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