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문학 산책

디지털 시대, 시의 위기와 처방에 대하여

월정月靜 강대실 2006. 10. 1. 20:41
디지털 시대, 시의 위기와 처방에 대하여
이승하
 

  강연 원고 : 디지털 시대, 시의 위기와 처방에 대하여



  안녕하십니까? 저는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에서 학생들에게 시론, 시문학사, 시인 연구, 시작법 등을 가르치고 있는 이승하라고 합니다. 하지만 대학교수라는 것은 직업에 지나지 않고, 저는 이 땅의 한 명 시인입니다. 지금껏 8권의 시집을 냈고, 시론집도 몇 권 낸 적이 있습니다. 최근에는 《이승하 교수의 시 쓰기 교실》이라는 시작법 책을 냈습니다. 출판사에서 판매를 의식해서 붙인 제목이지요. 저는 '즐거운 시 쓰기를 위하여'라는 제목을 원했었는데……. 아무튼 저는 시를 쓰고 있는 사람들 가운데 하나이기에 시 위기론이 퍽 심각하게 받아들여집니다. 

  제가 앞으로 여러분에게 들려드릴 이야기는 이미 몇 군데 글을 통해 했던 것이 대부분입니다. 완전히 새로운 이야기를 해드려야 하는데, 새로운 이야기 감이 없어서 그런 것이라 생각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두말하면 잔소리인데, 글로 썼던 것을 다시금 말로 하는 것은 작금의 사태가 저는 참으로 걱정되기 때문입니다. 

  문학의 위기, 시의 위기가 어제오늘에 나온 얘기가 아닙니다만 근년에 들어 이를 더욱 절감하고 있습니다. 제가 잘 아는 출판사의 사장님은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시집 만드는 데 전심전력을 다했는데 작년부터 시집을 거의 내지 않아서 물어봤더니 교보문고 등 몇 군데 큰 서점을 제외하고는 시집 판매대를 아예 치웠다는 거예요. 그만큼 시집이 안 팔리므로 시집 출간을 중단할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고 말합니다. 이 출판사는 1년에 시집은 그저 몇 권만 내 명맥을 유지하기로 하고, 아동물과 실용서 제작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습니다. 창작동화와 번역동화가 제법 잘 나가고 무슨 형 인간이라나 하는 실용서는 베스트셀러 순위에도 올라 재미를 많이 봤다고 합니다. 시를 쓰고 있고, 학교에서는 시론과 시 창작을 가르치고 있는 저 같은 사람은 이 얘기를 들으니까 암담하더군요. 서구 사회는 물론 일본에서도 시집은 무조건 자비출판이고, 시인끼리 돌려보기로 생명을 부지한다고 알고 있습니다. 우리 사회도 사실상 그렇게 되어가고 있습니다. 

  저는 시집이 도무지 안 팔리는 현상에 대해 나름대로 진단을 내린 적이 있습니다. 크게는 다섯 가지 이유입니다. 문예지 증가에 따른 시인의 양산, 운문성의 상실, 쓸데없는 난해함, 정보산업의 발달에 따른 활자문화의 위축이 큰 이유일 것입니다. 그리고 중·고등학교 교육 과정이 입시 위주로 이루어져 시에 대해 친밀감을 느끼게 하지 않고 거부감을 주는 것도 한 가지 이유입니다. 이 다섯 가지에 대해 좀더 짚어보도록 하겠습니다. 

  문예지는 가히 폭발적으로 증가하였고 그럼으로써 두터운 독자층이 사라지고 너나없이 시인이 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원래 노래였던 시가 오늘날 운문성을 잃어버림으로써 독자의 관심권에서 멀어지고 말았습니다. 귀여니 같은 젊은이의 소설이 청소년층에 어필하고 있는 오늘날에는 문학 자체가 점점 더 가벼움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가벼움은 짧음으로 연결됩니다. 귀여니의 소설은 여백이 엄청나게 많고 이모티콘(emoticon)을 마구 쓰고 있습니다. 시가 감동과 재미를 동시에 추구한다는 것은 로마의 서정시인 호라티우스(B.C. 65∼8)에 의해 처음 얘기되었는데 오늘날에는 감동보다는 재미에 치우친 느낌이 듭니다. 원태연, 이정하 같은 시인의 시집이 잘 팔리는 이유를 저는 알다가도 모르겠습니다. 시가 정말 수준 이하이거든요. 유치하기 짝이 없는 사랑 타령이 대부분이고, 말초적인 감각만을 좇고. 
  예전에는 원고지 1200∼1300장을 장편소설이라고 했는데 요즘에는 500매만 되어도 장편소설로 분류하고 있고, 출판사에서도 그런 소설을 찾고 또 모집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시는 독자들에게 어렵다, 따분하다, 답답하다는 인상을 줍니다. 시집이 잘 안 팔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요. 독자와 소통이 되지 않는 난해한 시가 많이 발표되고 있고, 그것들이 모더니즘의 자장에서 보호를 받고 있으니 독자들이 외면할 수밖에 없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여러 가지 이유 가운데 정보산업의 발달에 따른 활자문화의 위축에 주목하고 싶습니다. 저는 아직 운전을 못 배워 어딜 가나 지하철과 버스를 타고 가는데 그런 곳에서 시집을 읽고 있는 사람을 본 적이 전혀 없습니다. 사람들은 휴대폰을 꺼내들고 문자메시지를 검색하거나 보내고 있지요. 아니면 휴대폰을 갖고 게임을 하고 있고, 그도 아니면 이어폰을 귀에 꽂고 음악을 듣고 있습니다. 손에 들고 보는 것이 있다면 젊은이들은 만화책이요 어른들은 신문입니다. 문학은, 특히 시는 이제 보통사람의 관심권에서 멀어진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나라는 아직 여전히 문학의 나라, 시의 왕국입니다. 

  인터넷이 우리네 생활 한복판으로 들어온 이후 아마추어 동호인들의 문학 전문 사이트는 어마어마하게 늘었습니다. 아직도 시를 즐겨 읽는 독자층이 광범위한데도 시집이 팔리지 않는다는 것은 기현상이죠. 제가 예를 하나만 들겠습니다. 인터넷상의 문학 동호인 사이트에서 저한테 부탁을 해왔습니다. 자기네 사이트에 한 달 동안 시를 올린 아마추어 시인들의 시를 읽고 그 달의 최우수작 1편과 우수작 수편을 선정하여 심사평을 써달라는 것이었습니다. 무료 심사에 흔쾌히 응했던 것은 아마추어 시인들의 순수성을 인정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또한 그들이야말로 시를 사랑하는 고급독자들일 거라는 생각에서였습니다. 시 수준이 꽤 높아 기분 좋게 심사평을 써 보냈습니다. 제가 4월 20일자로 올린 심사평을 6000명이 넘는 사람이 조회를 했고, 11월 20일자로 올린 심사평을 3000명에 이르는 사람이 조회를 했습니다. 시를 즐겨 읽고 시를 쓰는 인구가 줄어든 것은 아니었던 것입니다. 

  오늘날을 가리켜 후기산업사회라고 지칭하는 시대는 지났습니다. 이제는 디지털 시대, 정보산업의 시대, 인터넷의 시대, 퓨전 시대 등으로 일컬어지고 있습니다. 우리 시대를 주도하는 전자산업이지요. 컴퓨터, 휴대폰, 디지털카메라 등이 현대인의 필수품 비슷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것들이 문학의 위기를 초래했다는 시각도 있습니다만 저는 위기는 곧바로 호기로 삼을 수도 있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문예지의 공식 홈페이지 말고도 feelpoem, poemcafe, poetschool, poemmts, 시사랑, 시맥 등 순수 문학 동인들의 사이트에 들어가 보면 상당한 수준의 아마추어 시인들이 활동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분명히 고급독자입니다. 이들을 시집 구매 독자층으로 만들기 위한 노력을 문예지에서 했으면 합니다. 또한 이들의 안목과 시각을 기성시인들이 인정하고 그들과 행보를 함께 하려는 노력을 했으면 합니다. 

  이런 것과는 별도로, 기성시인의 시를 이런 사이트에서 무단으로 가져가서 쓰는 행위는 근절되기를 바랍니다. 제 시가 저자인 저의 동의도, 출판사의 동의도 받지 않고 그냥 입력하거나 다운 받아서 쓰는 경우가 너무너무 많습니다. 제 시집의 시들이 수십 편씩 올려져 있는 문학 사이트의 책임자에게 전화를 하거나 메일을 보내 시를 지워달라고 부탁한 것이 한두 번이 아닙니다. 인터넷 시대이다 보니 저작권이 좀처럼 보호되지 않습니다만 이를 계속 방관하면 시집은 이제 재판을 찍을 수 없게 될 것입니다. 

  문예진흥원에서 2005년부터 소설집과 시집을 선정하여 일괄 구매, 전국 도서관에 배포하는 사업을 한다고 하는데, 위험의 소지가 있지만 일단 환영합니다. 위험이란 선정 과정의 엄정성과 1회성에 거칠 경우의 역효과를 말하는 것입니다.

  시의 위기라는 문제는 어찌 보면 독자에게서 연유한 것이 아니라, 문예지 편집자와 출판사 사장, 시인과 문학평론가한테서 비롯된 것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문예지 편집자는 좋은 시를 받아서 책을 만들어야지 인맥과 학맥 등 알음알음으로 청탁하는 관행으로부터 벗어나야 합니다. 물론 잘 아는 사람에게 청탁서를 보내는 것이 당연하긴 하지만 좀더 엄정한 감식안을 갖고 주류 문단에서 소외되어 있는 지방문인이나 군소 문예지 출신의 좋은 시인을 발굴, 재조명하는 노력을 했으면 합니다. 출판업에 종사하는 사람은 시집 발행 부수를 줄이더라도 종수를 줄이지는 말기를 바랍니다. 문학과지성사·문학사상사·문학동네·문학세계사·민음사·세계사·시와시학사·실천문학사·창비 같은 출판사에서 젊은 시인이 시집을 내기가 몹시 어려워져 울상을 짓고 있는 시인이 대단히 많습니다. 

  시인은 독자를 외면하는 산문에의 경도, 독자를 무시하는 난해함에서 탈피하면 좋겠습니다. 시인이 시대의 변화를 읽지 않고 너무 낡은 시문법을 고수하는 것도 저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세상은 눈이 핑핑 돌 정도로 바뀌어가고 있는데 우리는 아직도 30년대식 서정에 머물어 있습니다. 참신한 신인의 발굴에도 힘써야 하고, 신세대적 어법과 실험정신도 일정 부분 인정해주어야 합니다. 

  문학평론가는 아는 사람의 시에 대해서는 일체 비판하지 않는 정실비평이나 문예지별로 출판사별로 끼리끼리 작당하여 추켜세우는 골목비평에 휩쓸리면 안 되겠지요. 문학평론가 중에 게으른 사람이 참 많은데, 저도 그런 사람의 하나입니다. 열심히 읽지 않고 아는 체하는 사람이 안 되려 노력은 합니다만 잘 되지 않습니다. 요즈음에는 몇몇 소설문학상 심사의 자리에 심사위원들이 작품을 읽지 않고 나타나 엉뚱한 이야기를 하는 해프닝이 문단에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덧보태고 싶은 이야기는 지금 이 시대는 영상매체가 활자매체보다 더 강한 힘을 발휘하고 있는 시대라는 것입니다. 시대의 대세가 이러하니 사람들이 서점에 가서 책을 사 갖고 집에 와서 읽지를 않습니다. 다들 컴퓨터 앞에 앉아 있고 텔레비전을 보고 있습니다. 영화 보기도 백과사전 찾기도 박물관 관람도 컴퓨터가 다 해결해주는 시대입니다. 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 사람에게 시집을 사 읽으라고 말하는 것은 어불성설이지요. 

  이제는 시도 영상을 통해 듣고 보고 읽을 수 있어야 합니다. 음악이 배경에 깔리고 영상이 펼쳐지는 가운데 시를 성우가 낭독하여 들려주는 시대가 왔습니다. 눈으로만 읽던 시를 오감으로 느끼게 하는 사이버 시대에 시는 살 길을 모색해야 합니다. 문제는 앞에서도 말씀드렸듯이 저작권 보호입니다. 또한 시가 아름답다, 감동적이다, 시적 진실을 추구한다, 우리의 정서를 대변한다는 등의 특징을 지니고 있으므로 시 나름의 고유 영역이 있음을 시인과 문예지 편집자들은 독자에게 알리고 설득하는 노력을 해야 합니다. 21세기에도 문학은 생산되고 소비될 것입니다. 독자를 완전히 잃어버리기 전에 우리는 우리 문단의 많은 문제점을 하나씩 해결해나가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문학의 죽음, 작가의 죽음은 틀림없이 올 것입니다. 

  지금까지 제 강연을 경청해주셔서 고맙습니다. 그럼 지금까지 제가 말씀드린 내용 중에서 의문 나는 점이 있으면 질문을 받도록 하겠습니다. 질문해주실 분은 손을 들고 말씀해주십시오. 

 
 

 

 

 

  ⊙ 발표일자 : 2005년10월   ⊙ 작품장르 : 문학평론
  ⊙ 글 번 호 : 199420   ⊙ 조 회 수 : 8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