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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길마다 ‘바삭’하고 낙엽이 차이는 계절, 가을이 왔다. 11월 1일 열린 19번째 ‘시의 날’도 이런 가을과 함께 시작됐다. 지난달 29일 ‘시의 날’을 기념해 마련된 전주 시인축제에서는 ‘시여, 노래하라’라는 주제로 전통 가락과 서정이 만나는 시낭송 축제가 열렸다. 100여명의 시인들은 깊어가는 가을의 정취를 느끼면서 밤새도록 시를 노래했다. 그래서일까. 가을과 시는 왠지 모르게 처음부터 ‘하나’였을 것만 같다. ‘시의 날’을 맞아 우리 시대의 시를 이야기해보고자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로 재직해 있는 이승하 시인을 만났다.
<폭력과 광기가 사라진 세상을 꿈꾼다>
낙엽 향 품은 바람 한점이 뺨을 스쳐만 가도, 붉게 물든 단풍만 봐도 시상이 문득문득 떠오를 것 같은 가을. 진짜 시인들은 가을에 시를 많이 쓸까. 이승하 시인은 “저는 머리가 지끈거릴 정도로 고민이 많고 마음이 아플 때 시를 쓰게 됩니다. 가을을 타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시를 많이 쓰겠죠”라며 조심히 말문을 열었다. 예상보다 작고 더듬거리는 목소리 때문에 귀를 기울이는 태도를 취했더니 해줄 말이 있다는 듯이 과거 이야기를 하나, 둘 풀어놨다.
김천 출신인 이승하 시인은 집안환경이 원만하지 못해 고등학교 때 가출을 하고 떠돌이 생활을 했다. 혼자 떠돌이 생활을 했던 그는 지독한 불면증에 시달려야 했고 5년이 넘게 사람들과 대화를 안 하다 보니 말더듬이가 됐단다. 남과는 다른 인생행로를 겪은 그가 시를 쓰게 된 건 분명 소통과 대화에 대한 갈망 때문일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검정고시로 어렵게 중앙대 문예창작학과에 입학했어요. 말더듬이가 심해져 말에 대한 두려움이 많았지만 이를 이겨내기 위해 대학시절 발표수업을 도맡아 하곤 했지요.” 강단에 서면서부터 말 더듬는 것을 극복했다는 그였지만 아직도 조근조근한 말투와 조용한 목소리가 그의 지난 상처를 대변해주는 듯했다.
“누군가가 당신 왜 시를 쓰냐고 물어본다면 폭력과 광기가 없는 세상에 대한 꿈이 있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매일 아침 신문을 볼 때마다 폭력기사가 없는 날이 단 하루도 없다는 사실에 마음이 아프다는 이 교수의 마음엔 평화로운 세상에 대한 꿈이 있었다.
“약한 자는 살아남을 수 없는 이 시대에 시는 화해하고 용서하고 사랑을 베푸는 유토피아적 세계를 보여줄 수 있어야 합니다.”
1987년과 1989년에 출간된 그의 시집 《사랑의 탐구》와 《우리들의 유토피아》도 이러한 이 교수의 바람을 기록한 시집이라고 할 수 있다.
<시에 대한 저작권 보호돼야>
이 교수는 인터뷰의 많은 시간을 ‘시의 위기’에 대해 할애했다. 한 명의 시인으로서 오늘날 우리 시의 위기에 대해 그만큼 할 말이 많다는 뜻이리라. 그런 이 교수에게 ‘한국 시의 문제’라는 화두를 건네 보았다.
“요즘 가장 큰 문제는 시에 대한 수요 자체가 줄어들고 있다는 것입니다. 인터넷 보급의 확대로 누구나 시를 쉽게 찾아볼 수 있어 시에 대한 저변은 확대됐지만 적극적으로 시집을 사보는 사람들은 줄어들어 기성문인들이 설 자리가 줄어들게 된 것이지요.” 누구나 인터넷에 글을 올리고 또 자신의 시를 올리는 아마추어들이 많아지면서 정작 시집을 사 보거나 시를 향유하는 등 시 자체에 대한 관심은 줄어들었다는 것이다. 더불어 이 교수는 인터넷 확대로 인한 시 저작권 보호 문제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시도 음반처럼 저작권이 보호돼야 하는데 실상은 그렇지가 못합니다. 문학단체의 움직임이 없는 것도 아쉽고요.”
한편, 그는 최근 등단하는 젊은 시인들에게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난해하고 모호한 시들에 대해서도 우려했다. “이런 시를 쓰는 시인들은 소수 마니아층을 확보하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들의 시가 난해하고 이해하기 어려운 이유는 시가 가지고 있어야 할 음악성과 리듬을 너무 고민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승하 교수는 현대사회는 어느 때보다 시가 필요한 시대라고 말한다. 현대사회가 제공하는 현란한 영상문화와 균일화된 대중들로부터 만족을 못한 사람들이 깊이 있는 무언가를 갈망하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 6월에 나온 이 교수의 신간 《인간의 마을에 밤이 온다》를 읽어보면, 비판의식을 가진 시인의 눈으로 바라본 우리 사회의 모습은 그다지 아름답지 못하다. 그래서 시인은 “이 시대야말로 시가 반드시 필요한 때”라고 생각하는지도 모르겠다.
<생명력 있는 시는 100년을 넘긴다> 이 교수는 이 책에서 가족과 사회가 가진 아픔과 고통을 넘어 사랑의 힘으로 이를 승화시키고자 했다. 즉 그가 평소 꿈꿔왔던 폭력과 광기가 없는 세상에 대한 희망사항을 노래한 것이다. 시가 아름다운 건 그 속에 감춰져 있는‘희망’ 때문인지도 모른다. 부패하고 타락한 세상에서 희망을 노래하는 누군가의 삶을 엿볼 수 있으며, 각박한 생에 굴하지 않고 끝내 희망을 노래하는 목소리를 들을 수 있기 때문에 우리는 좋은 시를 찾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가 말하는 좋은 시란 건 어떤 시일까. “참 좋은 시는 읽을수록 음미할 맛이 나고 은은한 향기를 품어 감동을 줄 수 있어야 합니다. 각박한 이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언어가 불러일으키는 깨달음과 충격을 주는 시만이 100년이 지나도록 남을 시로 기억 되겠죠.”
‘시는 내가 살아가는 이유’라고 고백하는 이승하 시인은 오늘도 내일도 폭력과 광기가 없는 세상을 꿈꾸며 늘 희망을 노래하는 시인으로 기억될 것이다.
이승하 교수는 중앙대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하고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부문 ‘화가 뭉크와 함께’로 등단했다. 현재 중앙대 문예창작학과 교수로 재직중이다. 저서로는 《사랑의 탐구》, 《뼈아픈 별을 찾아서》, 《욥의 슬픔을 아시나요》 등 시집과 《한국 현대시 비판》, 《백 년 후에 읽고 싶은 백 편의시》, 《이승하 교수의 시 쓰기 교실》등 시론집이 있다. ㅡ<경희대학교 대학주보> 강희경 기자(2005.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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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표일자 :
2005년11월 |
⊙ 작품장르 :
인터뷰 |
⊙ 글 번 호 :
200154 |
⊙ 조 회 수 :
101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