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문학 산책

2005년 신춘문예 당선작 중에서 좋은 시 찾기

월정月靜 강대실 2006. 10. 1. 20:35
2005년 신춘문예 당선작 중에서 좋은 시 찾기
이승하
 

  김영남 형께 올립니다.

  새해를 맞아 가내 다복과 형의 건강을 기원합니다.
  
  오늘이 2005년 1월 6일, 전국 일간지에 신춘문예 당선작들이 발표되어 영광의 얼굴들이 신문을 장식하고 있습니다. 젊은 여성 문학도가 2개 신문의 문학평론과 1개 신문의 영화평론(가작)에 뽑혀 3관왕을 했다는 기사와, 3개 신문의 문학평론 당선작이 공히 소설가 천운영론이라는 기사가 눈에 띕니다. 인터넷 몇몇 사이트에 들어가 보니 조선일보와 동아일보 시 당선작이 표절 시비에 휩싸여 있군요. 표절의 혐의를 불러일으킨 원래의 시를 봤는데, 제 판단으로는 두 신문의 당선작을 표절작으로 볼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이런 식으로 따지면 표절이 아닌 작품이 도대체 어디 있단 말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무튼 저는 이른바 '중앙지'로 불려지는 7개 신문의 당선작(여름에 공모하는 중앙일보는 제외)과 '지방지'로 불려지는 16개 신문의 17편 수상작(전북중앙신문은 2편의 가작을 냄)을 다 읽어보았습니다. 모두 합쳐 24편이군요. 연초에 이렇게 많은 시를 읽게 되었으니 대한민국은 누가 뭐라 해도 문학의 나라, 시의 천국입니다. 23개 신문사에 투고된 시의 편수는 수만이 아니라 수십 만일 것입니다. 11월 1일이 '시의 날'인데, 수많은 시인들이 한 자리에 모여 시의 날을 기념하는 나라는 세계에서 대한민국 한 나라뿐일 것입니다. 주요 일간지에 매일 시가 실리는 나라 또한 대한민국뿐일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24편의 시를 읽은 제 기분이 영 흐뭇하거나 유쾌하지 않은 것은 무엇 때문일까요? 
  1994년이 아니었던가 싶습니다. 시전문 월간지 {현대시}에서는 시인과 문학평론가들에게 설문지를 돌려 통계치를 낸 결과를 갖고 신춘문예의 폐단을 집중적으로 성토하는 특집을 마련했습니다. 어언 11년 전인데, 그 특집을 보면 신춘문예가 바람직한 문인 등용문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던 이가 거의 없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숱한 문제점을 지니고 있는 제도임을 절대다수의 사람들이 지적했고, 대한민국에밖에 없는 이 제도를 이제는 폐지해야 한다는 극단적인 주장까지도 나왔습니다. 그런데 김형이나 저나 모두 신춘문예로 문단에 나와 시인이 되었습니다. 우리가 '나쁜 제도'를 통해 등단한 것일까요? 
  저는 최근 몇 달 동안 문혜원·이재복 두 문학평론가와 함께 2002∼2004년 3개년 동안 등단한 시인 리스트를 만들어 그들 중 20인의 유망주를 가려내는 작업을 했습니다. 제가 2002년 신춘문예 당선자를 살폈고, 문혜원 씨가 2003년 당선자를, 이재복 씨가 2004년 당선자를 살폈습니다. 저와 문혜원 씨는 2명씩을 뽑아 20명에 포함시켰는데 이재복 씨는 중앙지·지방지 할 것 없이 신춘문예 당선자를 살펴보았지만 유망주가 없다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것이었습니다. 선정 기준에 '전위적이고 실험성이 강한 시를 쓰는 신인'이라는 단서가 붙기는 했지만 그해의 당선작이 대체적으로 수준 미달이라는 것이 이재복 씨의 판단이었습니다. 저는 바로 엊그제 그분을 만났는데 올해 신춘문예 당선작들도 형편없다면서 혀를 차는 것이었습니다. 24편 시를 다 읽어보지는 않았겠지만 중앙지 중심으로 살펴본 바 눈에 띄는 작품이 없었던가 봅니다. 시의 경우 신문사마다 5천 몇 편 6천 몇 편이 투고된다는데(지방지는 이 정도는 안 될 테지요), 그 가운데 딱 1편 뽑힌 것이 역량 있는 한 명 문학평론가의 눈에는 영 신통치 않은 작품으로 비쳤으니, 도대체 어떻게 된 영문일까요? 
  1월 1일자 신문에 실리기 때문에 지나치게 어둡거나 난해한 작품, 너무 길거나 짧은 작품이 뽑힐 수 없습니다. 심사위원의 취향도 문제가 될 것이고 열흘 정도의 짧은 심사 기간도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그때 {현대시}는 심사위원의 고착화와 여러 신문 동시 심사 및 그분들의 높은 연배를 지적했었습니다. 높은 상금이나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의식한 탓인지 응모자의 중복 투고와 표절에 따른 시비도 자주 일어났었지요. 하지만 저는 일제시대 때인 1914년, 매일신보에서 모집하여 시작된 신춘문예라는 제도를 없애야 한다는 주장에는 결사 반대합니다. 언론사가 문학에 이만큼이라도 투자를 하는 것이 다행스런 일이고, 문학 지망생에게 이 상만큼 탐나는 상이 없는 것도 사실입니다. {월간문학}을 통해 1986년에 등단했던 형이 10년 세월 동안을 더 습작하여 1997년 세계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재등단한 것은 신춘문예가 그만큼 매력적인 등단 지면이었기 때문이겠지요. 형처럼 문예지를 통해 등단한 분이 다시금 신춘문예의 문을 두드리는 일은 사실 비일비재합니다. 2004년 계간지 {시작}으로 등단한 이영옥 씨가 2005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2004년 계간지 {시와 사상}으로 등단한 박지웅 씨가 2005년 문화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다시금 등단하는 경우를 봐도 알 수 있습니다. 지방지 신춘문예 당선자가 온전한 당선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중앙지를 두드려 다시 당선되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아무튼 수많은 기성문인이 지금도 신춘문예 사고(社告)를 보면 가슴이 두근거린다고 이야기하는 것으로 봐서 이 제도가 화려한 등용문이자 문단의 축제임에 틀림없습니다. 아, 계간평을 쓰는 자리에서 사담이 너무 길어지고 있습니다. 저는 제가 막 읽은 24편의 시 가운데 좋다고 여겨지는 몇 편의 시를 골라 평을 해볼까 합니다. 마음에 안 드는 작품을 골라 공격을 하려들면 이 글이 한도 끝도 없이 길어질 테니까요. 그 전에 형이 내신 두 번째 시집 {모슬포 사랑}에 실려 있는 한 편의 시를 먼저 감상해볼까요. 

  신춘문예에 당선돼 시인이 되면 나는 그때 
  호미, 삽을 대학 8차 학기 끝날 무렵 다시 든 부모님께 제일 먼저 
  고추처럼 매운 시 한 수를 바치리라 다짐했었다. 
  일류 회사 중역 꿈꾸며 교문을 빠져나가는 대학 동창들
  그리운 모습들 모두 곁을 떠났을 때도 나는 
  삐걱이는 강의실 책상에 버려진 볼펜처럼 홀로 남아 
  원고지 구멍을 메우고 빈혈의 사연을 고향에 부치면서 
  남도의 제일 가는 서정시인으로 떠오르리라 다짐했었다. 
  지난 가을 전지(剪枝)한 덩굴장미가 새로 자취방까지 기웃거리고 
  언제쯤 졸업사진 찍어낼 수 있겠느냐는 부모님 기별이 
  철 지난 나뭇잎처럼 날아들 땐 
  느렛골 파밭에서 언 땅을 파고 계신 어머님의 구부정한 허리가 보였고, 
  대밭에서 후박나무 밑동을 쓰러뜨리는 아버님의 다리 삐걱거리는 소리도 들렸다. 
  종일토록 휴지통 가득 버려진 니코틴 그을린 시간들. 
  그해 겨울 마지막 잎새처럼 남은 생활비마저 하루 두 끼로 줄어들었을 땐 
  나는 세상의, 문학의 버린 자식으로 흑석동에 싸늘하게 살아남아 
  시인이 될 수 없는 시인들 신분을 부정하기 시작했었다. 
  글이 될 수 없는 글의 심사위원들까지 부정했었다. 
  매번 패배의 변(辯)과 야멸찬 다짐으로 가득 찬 대학노트, 
  목울대까지 차오르는 쓰라림을 삼키면서도 나는 
  고추처럼 매운 시 한 수를 바치리라 다짐했었다. 
                                     ―[신춘문예는 알고 있다] 전문

  신춘문예 때문에 맺힌 한을 신춘문예로 푸셨군요. 형의 오기와 집념이 놀랍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형이 퇴근 이후 시내 모처의 시 창작반 사숙에 등록해 다년간 다니면서 이를 악물고 시를 썼던 일은 잘 모르고 있을 거예요. 저 역시 패배의 변과 야멸찬 다짐으로 가득 찬 대학노트가 있었답니다. 자, 그럼 올해의 당선작 가운데 "고추처럼 매운 시"가 있을까요? 저는 중앙지 중에서는 경향신문과 문화일보 당선작을 좋게 보았고, 지방지 중에서는 국제일보와 전북일보, 영남일보 당선작이 그중 좋게 느껴졌습니다. 이 세 신문사의 당선작은 중앙지 당선작에 '못지 않은' 것이 아니라 중앙지 당선작들보다 '낫다'고 여겨집니다. 아무튼 경향신문 당선자는 제가 시 창작 실기지도를 직접 한 제자여서 언급을 회피하고 싶습니다. 문화일보 당선작부터 보도록 하겠습니다.
  
  향이 반쯤 꺾이면 즐거운 제사가 시작된다.
  기리던 마음 모처럼 북쪽을 향해 서고
  열린 시간 위에 우리들 一家는 선다

  음력 구월 모일, 어느 땅 밑을 드나들던 바람
  조금 열어둔 문으로 아버지 들어서신다
  산 것과 죽은 것이 뒤섞이면 이리 고운 향이 날까
  그 향에 술잔을 돌리며 나는 또
  맑은 것만큼 시린 것이 있겠는가 생각한다

  어머니, 메 곁에 저분 매만지다 밀린 듯 일어나
  탕을 갈아 오신다 촛불이 휜다 툭, 툭 튀기 시작한다
  나는 아이들을 불러모은다 삼색나물처럼 붙어 다니는
  아이들 말석에 세운다. 유리창에 코 박고 들어가자
  있다 가자 들리는 선친의 순한 이웃들

  한쪽 무릎 세우고 편히 앉아 계시나 멀리 山도 편하다
  향이 반쯤 꺾이면 우리들 즐거운 제사가 시작된다
  엎드려 눈감으면 몸에 꼭 맞는 이 낮고 포근한,
  곁 
                                     ―박지웅, [즐거운 제사] 전문
  
  제사를 축제로 인식하는 것은 우리 조상의 슬기 가운데 하나입니다. 제례라고 하여 엄숙하거나 지루하기만 하다면 요즘 아이들은 거부감을 갖는 데서 그치지 않고 얼굴도 본 적 없는 조상을 원망할지 모릅니다. 시를 읽어보니 어느 일가의 제사 지내는 광경이 손에 잡힐 듯 와 닿습니다. 아버지 제삿날 가족이 모여 있는데, 향냄새를 맡고 아버지의 혼백이 조금 열어둔 문으로 들어옵니다. 이 시의 특징은 유머 감각에 있지 않을까요? "유리창에 코 박고 들어가자/있다 가자 들리는 선친의 순한 이웃들"이란 대목을 보십시오. 몰려다니며 제삿밥을 얻어먹은 귀신들이 유리창에 코 박고 들여다보니 제사상이 차려져 있는 것입니다. "있다 가자"는 말이 참 유머러스합니다. '(맛있는 게) 있구나, 가자'로 이해해도 좋고 '(여기에 한동안) 있다가 가자'로 이해해도 무방할 것입니다. 마지막 연은 어떻습니까. 제사가 즐거운 이유가 제대로 설명되어 있습니다. 아버지는 고인이 되었지만 시적 화자에게는 어머니와 아내, 그리고 자식새끼들이 있습니다. "몸에 꼭 맞는 이 낮고 포근한/곁"은 의복이 아니겠지요. 식구 혹은 가옥, 달리 말해 가족의 품이나 보금자리일 것입니다. 즐거운 제사를 통해 화자의 가족은 공동체의식을 다시금 갖게 되고 '곁'의 의미를 새삼스레 깨닫게 됩니다. 그런데 시가 지나치게 안정적이라고 할까요, 신인다운 패기와 모험심 같은 것이 별로 느껴지지 않습니다. 앞으로는 기성복을 벗어버리고 구멍 낸 청바지 같은 것도 입어보는 것이 어떨까, 충고하고 싶네요. 그렇다고 선배시인들에 대한 무조건적인 반항심을 보여달라는 것은 아닙니다. 모범, 규격, 정형, 전범 등으로부터 일탈하려는 노력이 없는 시인이 스스로 무덤을 파고 드러눕는 일이 얼마나 많습니까.
  자, 다음으로 국제신문 당선작을 봅시다. '혁필화(革筆畵)를 보며'라는 제목입니다. 혁필화란 납작한 가죽에 여러 빛깔의 물감을 묻혀, 글자를 쓰면서 그 뜻에 어울리는 그림을 함께 그린 그림을 가리키는 말이지요. 인사동 거리에서 저도 언젠가 알록달록한 혁필화를 쓰는 사내를 본 적이 있습니다. 글자를 그림 모양으로 묘하게 쓰는(그리는?) 혁화쟁이는 글자, 혹은 글자 옆에다가 용이나 말 등 동물을 비롯해 온갖 그림을 기기묘묘하게 그려 넣지요. 혁화쟁이 할아버지의 글자를 보며 시인은 자기 아버지의 젊은 날을 떠올립니다. 

  맞춤주문한 전각(篆刻)을 품고 도장집을 나서는 길,
  인사동 돌확 옆 낡은 좌판 위로 어스름한 새벽을 펼쳐놓은
  노인을 향해, 다채로운 구두코가 나이테처럼 둘러서서
  푸른 중절모를 쓴 혁화쟁이의 거친 손이 그려내는 혁필화를 본다
  어느새 기념족자 신청 순서에 놓인 아버지 이름 석 자,
  닳고 닳아 유통기한을 넘긴 듯한 넓죽한 가죽 붓에
  곤궁한 물감을 묻혀 그려내는 획을 낮은 포복으로 따라가다 보면,
  순식간에, 생면부지의 한 사내가 길어올린 필생의 알리바이를
  어떻게 알아챘는지, 쉼 없는 영사기처럼 거침없이 풀어내는
  혁화쟁이의 은밀한 내간체가 설화처럼 피어나고, 환하게
  어룽거리는 혁필화 한 장으로 남은 아버지, 두 손 가득 펄럭이는데
  네모난 비단천 속, 피뢰침 같은 철심이 박힌 지문의 파원(波圓) 위로
  바스락, 굴참나무 거친 수피가 뗏목처럼 흐르다 멎고
  저만큼 달아난 행서체 굴곡 따라 범람하는 푸른 바다,
  서늘한 그늘 겹겹 장마 속에 깃들어 계신 아버지 용오름을 하며
  빈한의 그림자를 도려내던 모진 칼바람을 듣는다
                                     ―이민아, [혁필화(革筆畵)를 보며] 앞 16행

  이 시에서는 확실한 이야기가 전개됩니다. 도장집을 나서다 혁필화를 그리는 노인을 보게 되고, 그 노인에게 그림을 신청하려고 쓴 이름이 아버지의 함자였습니다. 화자에게 아버지는 '생면부지의 한 사내'였습니다. 그런데 중절모를 쓴 혁화쟁이는 나도 잘 모르는 아버지에 대해 무엇을 안다는 듯이 "쉼 없는 영사기처럼 거침없이" 행서체로 풀어냅니다. 그 풀어냄의 과정이 인용한 부분의 끝 5행인데 표현의 화려함이 혁필화를 방불케 합니다. 신문지면을 장식하고 있는 올해의 당선작들 가운데 표현의 세련미에 있어 이 작품 곁에 놓일 시는 없습니다. 그 앞 부분, "닳고 닳아 유통기한을 넘긴 듯한 넓죽한 가죽 붓에/곤궁한 물감을 묻혀 그려내는 획을 낮은 포복으로 따라가다 보면,/순식간에, 생면부지의 한 사내가 길어올린 필생의 알리바이" 같은 대목도 찬탄을 금치 못하게 하는 멋진 표현입니다. 화려하면서도 강하고, 강하면서도 날카롭습니다. 심사위원의 칭찬을 훈장처럼 달고 나온 시들 태반이 미숙하고 어색하여 고소가 머금어질 정도인데 이 시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신인의 경지를 이미 훌쩍 넘어서 있습니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5∼16행이 한 개 문장으로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문장이 길어지면 호흡이 굵은 이점이 있지만 시의 내용이 거칠어지거나 성글어지기 쉽지요. 문장 분할을 했더라면 더욱 멋진 중반 부분을 만들 수 있었을 것입니다. 

  정자체로 양각한 옥돌전각을 아버지의 혁화와 번갈아 보며,
  온전히 다 타버린 참숯처럼 더 이상 사그라들 것도 없던
  옥탑방 가득 고인 내 아버지 시린 청년을 읽는다
  장난감 블럭을 쌓아 안으로만 숨어들던 내 나이 미운 일곱 살
  문득 주머니 속 깊이 넣어둔 전각 틀이 비좁다, 여기
  가난의 골목 끝에 펼쳐진 혁필 한 장은 비로소 마주 앉은
  탁란(托卵)의 깊은 둥지, 수척한 아버지 긴꼬리태양새 되어
  끝없는 비단길 위로 날아가는 에움길인지도 몰랐다

  시는 이와 같이 끝납니다. 화자의 나이 일곱 살에 아버지가 돌아가신 것일까요, "내 나이 미운 일곱 살"이라고 되어 있군요. "빈한의 그림자를 도려내던 모진 칼바람을 듣는다", "아버지의 혁화" 및 "가난한 골목 끝에 펼쳐진 혁필 한 장"은 화자의 아버지 또한  혁화쟁이였거나 가난한 화가였으리라 짐작케 합니다. 그런데 시의 종반부가 난해의 늪으로 빠져버립니다. "여기"부터 시작되어 "몰랐다"로 끝나는 문장도 어색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탁란(托卵)'이란 한자를 김형은 본 적이 있습니까? 탁은 '맡길 탁' 혹은 '열 탁'으로 새기는데 '託'자와 비슷하게 쓰이고 있지요. 그렇다면 '탁란'이란 계란에 맡겨져? 달걀을 품은? 아아, '탁란'이란 낱말의 뜻을 저는 끝내 모르겠습니다. 조어인 듯한데, 이렇게 어려운 한자를 동원할 필요가 있었을까요? 그리고 '긴꼬리태양새'는 새의 한 종인지 뭔지 역시 잘 모르겠습니다. '긴 꼬리 태양새'라고 하지 않고 붙여 쓴 것은 고유명사여서 그런 것일까요? "몰랐다"로 끝나는 문장 자체가 앞 문장과 연결이 안 되므로 시의 종반부는 혼란만 가중시킬 뿐 멋진 마무리라고 볼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이 시가 갖고 있는 개성미는 올해 신춘문예의 가장 큰 수확이라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닐 것입니다.
  이어서 전북일보 당선작을 봅시다. 산문시 풍으로 되어 있는데, 올해 당선작 중 유일하게 멀고먼 나라에서 행해지는 전쟁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전체 4개 연으로 되어 있으니 앞 2연을 먼저 볼까요. 

  올해도, 고향엔 칡꽃이 흐드러졌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계집아이 몇이 고무줄놀이를 하고 놉니다. 고무줄이 튕튕 울릴 때마다. 호박이며, 박이며, 수세미 꽃이 핍니다. 어느새 검정 고무줄에도 꽃이 피어, 달맞이꽃으로 피어, 계집아이 몇은 노래를 부르며 툭툭 튀어 오릅니다. 미사일 날리듯 양지바른 골목길 벽돌 속에 아비와 오래비를 묻고 옵니다. 뚝뚝 떨어지는 눈물은 예루살렘으로 흐르는 계곡마다 넘쳐나는데 칡넝쿨 얽힌 이국의 틈으로 어김없이 달은 떠오릅니다. 어김없이 총알은 밀알처럼 떨어집니다.
                                     ―경종호, [꽃 이름, 팔레스타인] 전반부

  칡꽃, 고무줄놀이, 호박, 박, 수세미 꽃, 달맞이꽃 등이 나와서 저는 이 시가 우리네 농촌 풍경을 묘사하는 시인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미사일 날리듯 양지바른 골목길 벽돌 속에 아비와 오래비를 묻고 옵니다"부터는 시의 공간이 순식간에 이동합니다. 바로 예루살렘으로 순간 이동을 하는 것입니다. "뚝뚝 떨어지는 눈물은 예루살렘으로 흐르는 계곡마다 넘쳐나는데"에 다다르면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분쟁이 이 시의 소재임을 알 수 있습니다. 난민촌 습격, 학살, 폭탄 테러, 민간인 사상자, 보복 공격……. 뭐 이런 뉴스가 하루가 멀다 하고 전해지는 "예루살렘으로 흐르는 계곡"에서는 "총알이 밀알처럼 떨어집니다". 보복이 보복을 낳은 끊임없는 악순환의 장소인 이스라엘 국경 지대에 있는팔레스타인 난민촌에 가봅시다. 
  
  폭격기가 지나간 바위 밑 두 눈만 깜박이다, 꿈벅거리다, 풀이 되고 나무가 되어 버린 못생긴 계집아이는 어느새 어미가 되고 전사가 되어 아이를 안고 모래 틈을 가로지르며 달려가고 있습니다. 그러자 그 여자의 군화에도 꽃이 피었습니다.

  바위를 덮고, 돌산 넘쳐나는 꽃이 피었습니다. 동방 외간 사내가 보내는 꽃, 생리를 하고, 배란이 지나 생산을 하는 동안에도 그 꽃이 신화(神話)보다 더 질긴 꽃이었음을, 옆구리에 낀 아이가 그 꽃을 닮았다는 것을 몰랐어도 그녀는 좋았습니다.
                                     ―경종호, [꽃 이름, 팔레스타인] 전반부

  한국의 소녀처럼 고무줄놀이를 하던 "못생긴 계집아이"는 "어느새 어미가 되고 전사가 되어 아이를 안고 모래 틈을 가로지르며 달려가고 있습니다". 그녀는 장성하여 어미가 되었기에 아이를 안고 있습니다만 그와 함께 전사(戰士)가 되었기에 모래 틈을 가로지르며 달려가고 있는 것입니다. 제3연의 마지막 문장 "그러자 그 여자의 군화에도 꽃이 피었습니다."는 의미심장합니다. 역설적인 표현이지요. 군화와 꽃은 어울릴 수 없지만 어울릴 수 없는 두 개를 한데 묶어 어울리게 하는 기법을 선보이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기법은 바로 다음 연으로 이어집니다. 꽃은 바위를 덮고 돌산을 화려하게 수놓습니다. "동방 외간 사내"는 여인의 연인이 아니겠습니까. "동방 외간 사내가 보내는 꽃"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그 꽃은 "신화보다 더 질긴 꽃"입니다. 꽃은 거룩함과 영광, 혹은 아름다움과 평화의 상징입니다. 무덤 앞에 꽃을 헌화하고 상을 받는 사람에게 꽃을 선물하는 것은 이러한 꽃의 상징성 때문입니다. 시의 제목에 나와 있듯이 그 꽃의 이름은 팔레스타인입니다. 팔레스타인(Palestine)이란 '이스라엘의 땅'이란 뜻으로 하느님이 약속하신 땅이자 가장 거룩한 곳으로, 예로부터 유대 민족 독립의 중심지였습니다. 그런데 그런 곳이 총성이 그치지 않는 피의 땅이 되고 말았습니다. 못생긴 계집아이였던 그녀는 생리를 하고, 배란이 지나 생산을 하는 동안에도 꽃의 이름이 팔레스타인임을, 그 꽃이 신화보다 더 질긴 꽃임을, 옆구리에 낀 아이가 그 꽃을 닮았다는 것을 몰랐습니다. 그래도 그녀는 좋았던 것이지요. 전사이니까, 전사가 되어 아이를 안고 모래 틈을 가로지르며 달려가고 있으니까. 막강한 이스라엘에 대항하여 팔레스타인 민족이 응전할 수 있는 방법은 고작 폭약을 적재한 트럭을 몰고 건물 벽을 향해 달려가거나 주렁주렁 폭약이 매달린 외투를 입고 '폭탄 테러'를 행하는 것입니다. 그런 방법으로 자폭하여 죽는 여전사 가운데 여대생들이 꽤 있는 것으로 아는데 아기 엄마도 있는 모양입니다. 실로 눈물겨운 내용입니다. 그리고 이 시는 시 전체가 역설이고 상징입니다. 필립 휠라이트가 말한 '시적 역설'이 바로 [꽃 이름, 팔레스타인]입니다. 
  전남일보 당선작 [돌에 물을 준다](이선자)는 내면세계에 대한 묘사가 의식의 흐름 소설을 방불케 할 정도로 끈질기다는 장점을 지니고 있습니다. 3개 연으로 배치한 구성도 견고하고 낱낱의 표현도 이루 말할 수 없이 치밀합니다.

  나를 건드리고 지나는 것들을 향해 손을 내밀 수도 없었고 
  뒤돌아볼 수도 없었다 나는 무거웠고 바람은 또 쉽게 지나갔다 
  움직일 수 없는 내게 바람은 어둠과 빛을 끌어다 주었다 
  때로 등을 태워 검어지기도 했고 목이 말라 창백해지기도 했다 
  아무하고도 말을 할 수 없을 때, 긴 꼬챙이같이 가슴을 뚫고 오는 
  빗줄기로 먹고살았다 아픔도, 
  더더구나 외로움 같은 건 나를 지나는 
  사람들 이야기로만 쓰여졌다 나는 몸을 문질렀다 캄캄한 
  어둠 속에서 숨소리도 없이 몸을 문질렀다 
  내 몸에 무늬가 생겼다 
  으깨진 시간의 무늬 사이로 숨이 나왔다
                                     ―[돌에 물을 준다] 제2연

  돌에 물을 주는 행위는 한마디로 말해 '부질없는 짓'일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부질없는 행위를 통해 시인이 얼마나 처절하게 자기와의 싸움을 전개하고 있는가를 알게 됩니다. 황당무계한 행위이지만 시이기 때문에 독자를 설득하는 힘을 지니는 것입니다. 특히 제3연에 접어들어 너의 긴 길이 내 몸 속으로 들어오고 돌 속의 길이 나에게 물을 주는 전환은 눈이 부실 정도입니다. 다소간의 센티멘털리즘과 구체성 부족이 아쉽기는 하지만 이 시인은 확실한 자기세계를 갖고 있어 앞날이 기대됩니다. 
  영남일보 당선작은 [라훌라―길모퉁이에서](최해경)입니다. '라훌라'(Rahulla)는 장애로 의역된다고 각주를 붙여놓았군요.

  누군가를 부르며 
  부르트며 바람이 거리를 휘감는다 
  어둔 밤 얼룩처럼 드문드문 가로등이 번지고 
  막차를 기다리는 내 등뒤에서 
  멀어져라 뒤돌아보지 마라 
  바람은 쉰 목소리로 다그치듯 나를 자꾸 떠민다 
  그는 저 만치서 나를 향해 말없이 서 있을 것이다 
  자울대다 눈을 거푸 치켜 뜨는 길모퉁이 가게 불빛 사이로 
  밤은 더욱 자우룩해지고 
  여전히 그의 눈빛은 차게 떨리겠지 
  스무 살 적, 객지에 나를 처음 떨구고 
  곧 목놓아 울 듯 그렁그렁하던 그 눈빛이 
  내 가슴에 단단히 말뚝을 박고는 
  녹작지근한 해질녘이면 어지러이 발길질을 해대곤 했었다
                                     ―[라훌라―길모퉁이에서] 전반부  

  제7행에 이르러 '그'가 등장합니다. 그는 저 만치서 나를 향해 말없이 서 있을 것이고, 그의 눈빛은 여전히 차게 떨릴 것입니다. 그의 눈빛은 "스무 살 적, 객지에 나를 처음 떨구고, 곧 목놓아 울 듯 그렁그렁한 그 눈빛"이었습니다. 그 눈빛은 "내 가슴에 단단히 말뚝을 박고는/녹작지근한 해질녘이면 어지러이 발길질을 해대곤 했었다"고 하네요. 이처럼 시의 전반부는 눈빛에 대한 이야기로 메워져 있는데 후반부에 가서는 얼룩에 대한 이야기가 전개됩니다.

  어미 소의 말간 눈망울에 들이치던 석양빛처럼 
  빛의 눈물 자국 다 떠메고 
  차마 못다 한 말 되새김질하듯 
  그리움도 순하게 견뎌야 한다는 것 
  오랜 후에야 그 눈의 얼룩은 나에게 말해주었다 
  한여름 소낙비가 얼룩져 시린 겨울 강 핥는 여울이 되고 
  사랑은 얼룩져 돌이킬 수 없는 그러나 
  돌이킬 밖에 없는 괴물같이 눈부신 추억을 매달 듯 
  얼룩이 마냥 뼈아픈 얼룩만은 아니지 
  이제서야 나는 나를 다독여준다 
  언제나 뒤돌아보면 
  나의 짓무른 가슴의 얼룩, 아버지가 
  끝내 저기 서 있다 
  세상없어도. 
                                     ―[라훌라―길모퉁이에서] 후반부  

  어미 소의 말간 눈망울에 들이치던 석양빛 같은 얼룩은 그의 눈에서 본 얼룩이기도 했는데, 오랜 후에야 나에게 말해주었습니다. 다시 말해, "돌이킬 밖에 없는 괴물같이 눈부신 추억을 매달 듯" 얼룩이 마냥 뼈아픈 얼룩만이 아닙니다. 우리 삶이 그렇지 않습니까. 기쁨과 슬픔은 엇갈리면서 들이닥치지 않던가요. 그런데 언제나 뒤돌아보면 "나의 짓무른 가슴의 얼룩"인 아버지가 끝내(!) 거기 서 있습니다. 아, '그'는 바로 아버지였던 것이로군요. 눈빛도 아버지의 눈빛이었고, 얼룩도 아버지로 말미암은 얼룩이었습니다. 28행 긴 시의 비밀이 25행째에 와서 밝혀지는 추리소설적 구성이 재미있습니다. 장애를 저는 육체적 장애나 정신적 장애로 이해하고 싶지 않습니다. 우리는 모두 장애인이 아닙니까. 시가 지나치게 자의적인 내용이라 보편성을 띠기 어렵다는 약점을 지니고 있지만 언어의 운용이 남다른 이 시인의 앞날을 오래 지켜보고 싶습니다.

  김형!
  2005년 신춘문예 당선자들 가운데 자기 목소리를 지니고서 꾸준히 시단에서 활동할 시인이 몇 명이나 될까요? 예년의 당선자들 생각을 하면 그 수가 그리 많지는 않을 것입니다. 당선을 꿈꾸며 습작하던 시절보다 더욱 살벌한 세계가 이들을 기다리고 있을 테지요. 이분들 모두 초발심을 잃지 말고 더욱더 치열하게 자신의 시밭을 갈아나간다면 살아남기 혹은 문명 얻기는 그리 중요한 문제가 아닐 수도 있습니다. 문제는 자기와의 싸움이 얼마나 처절한가에 달려 있는 것이니까요. 그런 점에서 저는 2005년이 막강한 신인 몇을 배출한 해도 기억되기를 바랍니다. 형이나 저나 긴장감을 한 순간이라도 잃어버리면 치고 올라오는 후배 시인들에게 밀려 순식간에 퇴물이 될지 모릅니다. 우리가 더욱 열심히 시를 써야 할 이유가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도 시를 위해 순교할 마음으로 펜을 꺼내드는 것입니다.

 

 

 

  ⊙ 발표일자 : 2005년11월   ⊙ 작품장르 : 문학평론
  ⊙ 글 번 호 : 200417   ⊙ 조 회 수 : 1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