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문학 산책

'문창과'와 문학 열정과 냉정 사이

월정月靜 강대실 2006. 10. 1. 20:31
'문창과'와 문학 열정과 냉정 사이
[한겨레신문 2005.12.22 17:51:10]
이승하
 

 '문창과'와 문학 열정과 냉정 사이 

       
  문제 하나. 다음에 거명되는 문인들의 공통점은?
  김주영 조세희 박상륭 이문구 한승원 송수권 김원일 이동하 오정희 이경자 송기원 이시영 임영조….

  '서라벌예술전문대학 문예창작학과 출신'이 답이다. 1953년에 설립된 서라벌예대(1973년에 중앙대로 편입) 문예창작학과(문창과) 출신 문인들은 1960, 70년대 한국 문단의 핵심을 이루다시피 했다. 문단 전체를 ‘서라벌예대 출신 대 비(非)서라벌예대 출신’으로 양분할 수 있을 만큼 그 양과 질에 있어서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이어서, 문제 둘. 그렇다면 다음 문인들의 공통점은?
  채호기 심상대 황인숙 함민복 신경숙 장석남 박형준 강영숙 하성란 조경란 백민석 천운영 윤성희….

  답은 '서울예전 문창과 출신'이다. 1977년에 설립된 서울예전(지금의 서울예대) 문창과는 특히 80년대 이후 한국 문단을 대표하는 시인·소설가 들을 배출하면서 서라벌예대의 뒤를 이어 '문인사관학교' 구실을 맡았다.

  1983년 추계예대 문창과가 개설된 것을 비롯해 1990년을 전후해 서울은 물론 전국적으로 문창과 설립 바람이 불다시피 한 결과 서라벌예대와 서울예전의 독주에는 어느 정도 제동이 걸렸다. 그러나 범위를 다른 대학들까지로 넓힐 경우 문창과 출신 문인들의 비중은 지금도 막강한 편이다. 올해만 해도 신춘문예를 시행하는 7개 중앙 일간지의 시·소설 당선자 가운데 적어도 8명이 문창과(대학원 포함) 출신이거나 재학생이었다. 이런 비율은 신춘문예뿐만 아니라 주요 문학잡지를 통한 등단의 경우에도 비슷하게 나타나고 있다. 문창과 출신들이 이처럼 등단에 있어서 압도적인 두각을 나타내는 이유는 무엇일까. 다른 대학을 마친 뒤에 서울예대 문창과를 다시 다닌 소설가 윤성희 씨의 말이다.

  "문학은 하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방황하던 차에 문창과에 진학하면 무언가 길이 생기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찬가지로 문학을 하려는 학생들과 어울리며 자극을 받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물론 김혜순 오규원 최인훈 선생님 같은 문인 교수님들에게 배우고 싶은 생각도 컸다. 그러나 역시 문창과의 가장 큰 장점은 문학적 분위기 속에서 동료 학생들과 '같은 꿈'을 나눌 수 있다는 것이다."

  서울예대를 비롯한 주요 대학 문창과에는 윤성희씨처럼 다른 대학을 다니거나 직장을 다니다가 뒤늦게 입학하는 '늙은' 대학생들이 많다. 그만큼 문학을 향한 의욕과 열의가 높은 편이다. 서울예대 문창과의 박기동 교수(소설가)는 한 잡지에 기고한 글에서 "문창과를 찾는 이런 부류의 학습자들의 욕구는 다른 교실의 그것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절실한 긴장상태를 유지하고 있다"고 보고했다.

  문창과 출신들의 높은 등단 비율을 학생들의 분위기나 교실 내 긴장도 때문만으로 해석할 수는 없다. 가장 큰 이유는 국문학과를 비롯한 기존 문학 관련 학과들과 문창과의 커리큘럼 사이의 근본적인 차이에서 찾아야 한다. 우석대 문창과 교수인 시인 안도현 씨의 말을 들어 보자.

  "국문과 학생들은 현대문학은 물론 문학사와 이론, 고전문학에 어학까지를 두루 공부해야 한다. 문창과에서는 말하자면 고전문학과 어학을 빼고 그 자리에 창작이 들어선 셈이다."

  실제로 대부분의 문창과 커리큘럼에는 시·소설·드라마 창작 과정이 필수로 들어 있고, 핵심 장르라 할 시와 소설은 창작실기가 기초에서 심화 과정까지 몇 차례에 걸쳐 반복적으로 편성되어 있는 경우도 많다.

  그런데 90년대 이후의 '문창과 바람'을 이처럼 높은 등단 비율에서만 찾아야 할까. 전국 대학 문예창작학과 및 문예창작 전공 교수 모임인 한국문예창작학회(회장 김수복 단국대 교수) 홈페이지(www.koli.info)에 따르면 현재 문창과가 개설되어 있는 학교는 4년제 35개교(사이버대학교 포함), 2년제 16개교 등 전국적으로 51개교에 이른다. 대학원 과정도 일반대학원 14개, 특수대학원 8개 학교에 개설되어 있다. 이밖에 영상문예(학)과, 미디어창작전공, 문화콘텐츠(창작)전공, 아동문학과 등 유사 학과도 10개 가까이에 이른다. 가히 문창과 전성시대라 할 만하다. 그 까닭을 문예창작학회 총무이사를 맡고 있는 박덕규 단국대 교수에게서 들어 보았다.

 "국문학과를 비롯한 기존 학과의 학습 과정이 현장에서 적응력이 약하다는 점이 문창과 바람의 가장 큰 요인일 것이다. 국문학과에서도 창작을 가르친다고는 하지만 아무래도 창작에만 전념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그에 비해 문창과의 커리큘럼은 전문 창작자 양성은 물론 방송 구성작가나 기업체 사보기자, 출판사 편집자, 홍보 담당자, 독서 지도 및 논술·글쓰기 지도교사 등 취업에 대비한 과목들도 아울러 꾸며진다."

  <등단 문인의 절반 문창과 출신>

  문창과가 전문 문인을 키워 내는 것만으로 '호황'을 누리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소설가인 임철우 한신대 문창과 교수의 얘기도 같다.

  "문창과가 문인을 양성하는 곳이라는 건 벌써 옛말이다. 물론 커리큘럼에 시·소설 창작 같은 게 들어 있긴 하지만, 전체 학생의 적어도 칠할은 관련 직장에 들어가겠다는 생각으로 문창과에 진학한다. 따라서 대부분 대학 문창과가 실용성이 강한 커리큘럼의 비중을 높이는 게 추세다."

  말하자면 대학 문창과의 성격이 실용적인 쪽으로 바뀌는 게 어쩔 수 없는 추세라는 것이다. 상당수 대학 문창과에 대중문학 특강, 영상문학의 이해, 방송작가 실기, 매스컴론, 광고카피론, 편집과 출판, 독서지도론 등이 개설되어 있는 것이 그것을 입증한다.

  물론 여전히 문창과 본래의 취지를 살려서 전문 문인 양성에 주력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박영호 협성대 문창과 교수는 문예창작학회가 주최한 한 세미나에서 발표를 통해 "대부분의 대학에서 광고카피론이니 편집출판론 같은 실용적 과목이 개설되어 문창과의 설립 목적을 훼손하고 있다"며 "문창과의 정체성을 살릴 수 있도록 교과과정을 재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렇지만 박 교수의 주장처럼 전문 문인 육성에 치중할 경우에도 문제는 남는다. 이승하 중앙대 문창과 교수(시인)의 말이다.

  "어떤 학교 문창과 커리큘럼에 등단 작품을 집중 분석하는 것이 있어서 놀란 적이 있다. 이 나라 대학 전체가 취업 준비기관으로 바뀌는 상황에서 문창과마저 등단 실적주의에 매달리는 상황은 개탄스럽다. 문창과의 개설 취지가 등단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전체 학생 가운데 등단하는 비율이 높아봐야 얼마나 되겠는가. 나머지 다수는 고급 독자 또는 문학 전도사를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자면 고전 읽기와 인문정신 함양이 절실한데, 지금 문창과에서는 등단에 필요한 잔재주만 배우는 게 아닌가 싶어 우려된다."

  <고전읽기·인문정신 함양 절실>

  문창과의 흥성, 그리고 문창과 출신 문인의 양산이 반드시 문학에 보탬이 되는 것은 아니라는 통찰은 다른 경로로도 만날 수 있다. 일본의 권위있는 문학평론가 가라타니 고진은 지난해 겨울호 <문학동네>에 실린 <근대문학의 종말>이라는 글에서 일본에서 대학에 '창작과'가 늘고 있는 것을 문학의 종말에 대한 역설적 증거로 들었다. 미국 프린스턴대에서 창작을 가르치고 있는 한국계 소설가 이창래씨도 지난 4월 신작 <가족>(원제는 Aloft)의 한국어판 출간에 즈음해 방한해서 “창작을 배우려는 학생들은 늘고 있지만, 문학에 대한 이해와 애정을 지닌 학생들을 찾기란 갈수록 어려워진다”고 미국쪽 사정을 소개한 바 있다.

  두 사람의 지적을 남의 나라 얘기로만 치부할 수 없는 게 지금 우리네 문창과의 숨은 현실인지도 모른다. 지난 6월에 나온 김원우(계명대 문창과 교수)씨의 소설집 <젊은 천사>에 실린 중편 <벙어리의 말>은 지방대학 문창과 교수인 ‘김 교수’를 화자 겸 주인공으로 등장시켜 이야기를 끌어 간다. 김원우씨 특유의 독설이 학생들에서부터 동료 교수들, 문단의 젊은 작가들, 신춘문예 심사위원 등을 가리지 않고 퍼부어지는데, 평론가  김경수 (서강대 국문과 교수)씨는 이 작품에 대한 서평에서 이렇게 쓰고 있다.

  "<벙어리의 말>에서  김원 우는 물론 표면적으로는 문예창작학과의 기능이나 위상 혹은 당위성 등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 작품이 일정 부분 제도권 내에서 문예창작을 교수하는 일이 과연 온당한가, 하는 의문을 암암리에 겨냥하고 있는 것만은 사실이다."

  <현실 좇을까 정체성 살릴까>

  김원우 씨가 지방 대학 문창과에 재직하고 있다는 사실에 눈을 돌려 보자. 서울 및 수도권 대학 문창과들이 어떤 식으로든 '잘나가고' 있는 뒤안에서 지방대학 문창과는 또 다른 속앓이를 하고 있다. 광주대 문창과의 이은봉 교수(시인)는 "지방대학이 전체적으로 겪고 있는 학생 유치의 어려움은 문창과 역시 마찬가지"라며 "실제로는 등단은 물론 졸업 뒤 사회 진출이 활발한데도 '문창과는 가난하다'는 선입견이 학생과 학부모를 주저하게 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신춘문예에서의 놀라운 성과와 등단 실적주의라는 그늘, 전문 창작자 양성이라는 설립 목적과 실용적 교육 치중이라는 현실 사이의 괴리, 서울 및 수도권 대학의 호황과 지방대학의 고전이라는 양극성. 2005년 말 현재 우리네 대학 문창과가 놓인 현실은 다층적·복합적이다.


  최재봉 문학전문기자 bong@hani.co.kr

 

 

 

 

  ⊙ 발표일자 : 2006년01월   ⊙ 작품장르 : 문학 칼럼
  ⊙ 글 번 호 : 201705   ⊙ 조 회 수 : 18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