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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산문
시의 구절
황도제
‘너희가 생명을 걸지 않으면 결코 생명을 얻을 수 없다.’ 이 말은 실러의 「발렌슈타인의 기사의 노래」 시(詩)의 마지막 행이다. 비장미가 넘치는 시의 구절이다. 1927년 불확정성이론을 발표하여 1932년 31살 나이에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하이젠베르크는 양자역학을 전개, 원자핵이 중성자와 양자로부터 이루어지는 이론을 발표하여 독일이 원자탄을 만들 수 있음을 만천하에 증명하였다. 그런 하이젠베르크는 다른 물리학자들처럼 서방으로 망명하지 않았다. 그는 나치의 독일에 한 일원이 된 것을 이렇게 얘기하고 있다. “가을에 남쪽을 향하여 떠나는 철새들의 움직임과 비슷한 점이 있다. 그 철새들 가운데 어느 한 마리도 누가 남쪽으로 행렬을 결정하였는지 또 왜 이와 같은 움직임이 얼어났는지를 알지 못한다. 그러나 낱낱의 새들은 일반적인 자극에 따라서 즉 그 자리에 다른 새들과 같이 있으려는 욕망에 사로잡혀서 비록 그 움직임이 멸망을 가져온다 할지라도 같이 날 수 있다는 그 자체만으로 충분히 행복한 것이다” 라고. 그렇다. 하이젠베르크는 어떤 특별한 목적이 있어서라기보다 다만 독일이 자신의 조국이었기에 그냥 떠나지 않고 살았던 것이다. 그런데 그는 광분한 나치들의 공갈과 협박에 굴복하지 않았다. 원자탄을 만들지 않았다는 뜻이다. 목숨을 건 행위였다. 오히려 원자탄은 서방세계에서 만들어졌다. 독일에서 만들어졌다면 세계 2차 대전의 역사는 달라졌을 것이다. 아니 세계역사가 완전히 바뀌었을 것이다. 2차 대전에서 죽은 자가 약 2천만 명인데 아마 하이젠베르크가 원자탄을 만들었다면 독일의 승리는 말할 것도 없고 사망자도 2억 어쩌면 20억 명이 됐을 지도 모른다.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하이젠베르크는 <실러>의 <발렌슈타인의 기사의 노래> 끝 구절 ‘너희가 생명을 걸지 않으면 결코 생명을 얻을 수 없다.’에 심취해 있었다. 아마 그 시의 구절이 자신의 신념을 행동으로 옮기는 촉진제가 된 것이 아닐까? 한 인간이 시의 한 구절에 도취하여 자신의 인생을 신념화함으로써 나타난 결과는 참으로 위대하다. 한 독자에게 감명을 주게 한 시인과 시, 그 시를 마음의 양식으로 삼은 독자 모두 다 시라는 위대한 언어가 어떻게 인간에게 숭고하게 작용할 수 있는지를 우리는 재삼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시에 심취한 한 인간의 위대성은 시를 통하여 만천하에 드러났다. 그것은 시의 의미와 깜냥이 서로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전제로 한 것인데 하이젠베르크는 시를 몹시 사랑했음을 알 수 있다. 그 결과는 세상을 구원하는 결과를 낳게 된 것이다. 수치로 계산되지 못 한다는 시, 아니 수치로 환산할 수 없는 시, 시에 대한 경외감과 시에 대해 경배를 새삼 느끼면서- - --
우이시 2006. 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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