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문학 산책

시 읽는 사회

월정月靜 강대실 2006. 9. 27. 18:28
詩 읽는 사회 | 시론, 시창작 강의 2006/06/29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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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 읽는 사회
                 - 송복(연세대 명예교수)

오늘날 우리 사회는 왜 이렇게 메마를까. 왜 사람들은 유머가 없고 얼굴엔 웃음이 없을까. 왜 모두 성낸 표정을 하고 불친절할까. 이유는 간단하다. 시를 읽지 않기 때문이다.

시를 읽을 만큼 여유(餘裕)가 없는 사람, 시를 읽을 만큼 미학(美學)이 없는 사람, 시를 읽을 만큼 감성(感性)이 없는 사람, 시를 읽을 만큼 순진(純眞)이 없는 사람, 시를 읽을 만큼 텅 빔(空白)이 없는 사람, 시를 읽을 만큼 성실(誠實)이 없는 사람.

모두들 재주껏 살려고만 한다. 모두 요령껏 해보려고만 한다. 자식들에게도 눈치껏 살라고만 가르친다. 그러니 메마를 수밖에 없다. 시를 읽는 사회는 성실한 사회다. 성실은 '재주껏'의 반대다. 성실은 '요령껏'의 반대다. 성실은 '눈치껏'의 반대다. '성실한' 사람은 절대로 재주껏 하려 하지 않는다. 요령껏 하려 하지 않고, 눈치껏 하려 하지 않는다. 재주껏 하려는 사람은 모두 '재주 부리는' 사람들이고, 요령껏 하려는 사람은 모두 '요령 피우는' 사람들이다. 눈치껏 하는 사람은 모두 '약삭스런' 사람들이다. 눈치 빨라 약삭스런 사람이 기껏 먹을 수 있는 것은 절에서 젓국 정도다.

학교에서 시를 가르치지 않는 것은 학생을 모두 '재주부리는' 곰 새끼로 만들려고 함에서다. 학교에서 시를 낭송하게 하지 않는 것은 학생을 모두 '요령피우는' 뻐꾸기 새끼로 만들려고 함에서다. 학교에서 시를 외우게 하지 않는 것은 학생을 모두 '약삭빠른' 고양이
새끼로 만들려고 함에서다.

오늘날 우리나라 학교는 어디고 성실이 사라졌다. 어떻게 하면 '재주껏' 성적을 올리도록 해볼까, 어떻게 하면 '요령껏' 내신을 부풀리도록 해볼까. 어떻게 하면 '눈치껏' 점수를 더 따게 해볼까. 그 불성실(不誠實)이 몸에 베일대로 베여 있다. 배움은 성실이다. 그 성실이 우리나라 학교에선 '잊혀진 말'이 아니라 '잃어버려진' 말이다. 공부와
는 너무 동떨어진, 공부와는 전혀 관계없는 말이 된 지 오래기 때문이다.

면접에서 시를 한 편 외워보라면 외우는 학생이 없다. 심지어는 국문과 지망생도 시와는 거리가 멀다. 시는 시인들만의 것으로 생각한다. 왜 시를 외우지 않느냐고 물으면 그런 우문(愚問)도 있느냐는 투다. 내심(內心)이 그러면 외용(外容)은 오죽하랴. 80년대보다 90년대가 더하고, 90년대보다 2000년대, 이 21세기가 더하다. 해마다 시의 샘(詩泉)은 메마르고 시의 맘(詩心)은 굳어져서, 중.고등학교에서부터 가슴이 모두 화석화(化石化 ) 해가고 있다.

화석화하는 것만큼 감동이 없다. 하이타치(high-touch)-고감도 정감(高感度 情感)의 세계, 그 세계는 오늘날 우리 학생들에게는 없다. 부모가 심어주지 않고 학교가 가르쳐주지 않는데, 그 세계를 어디서 찾을 수 있으랴, 부모의 메마름이 자식에게로 이어지고, 학교의 메마름이 학생에게로 전해져 간다. 그 학생이 회사로 가서 회사가 메마르고, 그 회사가 다른 회사와 관계를 넓혀서 사회 전체가 메마르다.

메마르면 먼지가 난다. 메마를수록 그 사회는 온통 먼지투성이가 된다. 대지에 비가 내리지 않는다. 땅을 적시는 물기가 없다. 물기가 없으니 수증기도 없다. 수증기가 없는데 구름이 일랴. 구름이 일지 않으니 비 구경을 더욱 할 수 없다. 대지는 날로 사막화(沙漠化)한
다. 가슴은 화석화하고 땅은 사막화한다.

더 기가 막히는 것은 그렇게 화석화해도 화석화하는 줄 모르고 있고, 그렇게 사막화해도 사막화하는 줄 모르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더욱 화석화하고 더욱 사막화해가고 있다. 원래 중증(重症)은 중증인 줄 모른다. 그 무지가 중증을 더욱 가속화하고, 그 가속화가 더욱 통증(痛症)을 증대시킨다. 생물학적으로 한 개인은 그렇게 해서 종말을 고한다. 그러나 사회학적으로는 어떤 사회든 종말이 없고 카오스(chaos)만 있다. 거기엔 푸른 하늘도 없고, 맑은 공기도 없다. 코를 가득 메우는 먼지 때문에 대지엔 꽃도 피지 않는다. 흔히 교과서에 보이는 '야만사회'-그 사회가 바로 이런 사회다.

2001년 8월 영국 옆의 작은 섬나라 아일랜드에 갔다. 이유는 '왜 이 나라는 우리보다 잘 사는가'-그것을 알아오라고 해서였다. 땅은 척박해서 감자밖에 먹을 것이 없고 그 감자도 흉년이 들면 생산이 안 되고, 그 감자 기근이 오면 모두 이민을 가야만 굶주림을 면할 수 있는 나라, 그런 나라가 어째서 우리보다 1인당 소득이 2배반이나 되는가. 무엇이 그 나라를 유럽의 모범국으로 만들고 있는가. 그것을 알아오라는 모연구소의 '명령'을 이행하려 이 나라의 수도 더블린에 내렸다.

공항에서 숙소까지 가는 도중에 '아 그래서 그렇구나'를 깨달았다. 해답은 명백했다. 그리고 간단했다. 바로 시였다. 숙소로 가는 버스에서 앞자리에 앉은 40대의 한 신사가 창밖의 무엇을 보았는지 갑자기 시를 소리 높여 외웠다. 그 순간 버스 안의 애 어른 가릴 것
없이 모두 하나가 되어 그 시를 소리 높여 외웠다. 너무 놀라서 도대체 그 외우는 것이 무엇이냐고 물으니 옆에 앉은 사람이 예이츠의 시라고 답했다.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William Butler Yeats, 19세기 말엽에서 20세기 초엽까지 활동하던 노벨문학상을 받은 아일랜드의 시인-이 아일랜드에서는 노벨문학상을 받은 시인이나 소설가는 예이츠 말고도 여러 사람이 있다.

우리에게도 널리 알려진 버나드 쇼도 있고, 힘리도 있고 '고도를 기다리며'라는 유명한 희극을 쓴 사무엘 베케트도 있다. 노벨문학상을 받지 못했지만 수상작가 이상이라는 제임스 조이스도 있다. 인구 3백 70만 명에 노벨문학상을 받은 사람이 네 사람이나 되고, 더 놀라운 것은 이어 받을 수 있는 시인이며 작가가 줄을 서 있다는 것, 설혹 받지 못해도 수상작가 이상의 시인.소설가가 즐비해 있다는 것이다.

앙일랜드는 IT강국-5년 전(99년) 기준으로 소프트웨어 산업의 총매출액만도 72억 달러가 된다. 이 나라는 우리처럼 제조업으로 일어난 나라가 아니라 순전히 IT 하나로 일어선 나라다. IT산업의 핵은 소프웨어다. 소프트웨어는 하이타지가 가능한 나라에서만 발전할 수 있다. 하이타치, 그 고감도 정감의 세계는 바로 시의 세계다. 시를 즐겨 짓고 즐겨 읽고 즐겨 외우는 나라에서만 고감도 정감이 일고 커지고 넓혀진다.

머리로만 발전하던 시대, 이성(理性)으로만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시대는 지났다. 이제는 머리와 동시에 가슴이 작동하지 않으면 안 된다. 정감은 가슴의 작동이다. 감동은 가슴의 울림이다. 가슴이 뛰지 않으면 두뇌작용이 아무리 현란해도 그저 하드웨어를 만드는데 그친다. 오늘날 하이테크(high-tech)는 하드웨어에 소프트웨어가 같이 붙어 있다. 그 소프트웨어의 세계는 가슴이 화석화하면 따라서 화석화한다. 그래서 하이타치가 하이테크를 만든다고 말한다. 유럽 모범국으로서의 아일랜드는 동시에 시의 모범국이다. 시가 있어서 소프트웨어가 발전하고, 시를 즐겨 읽고 외우는 사람들이 많아서 IT강국이 된 것이다.

옛글에 '불학시(不學詩)면 무이언(無以言)'이라 했다.-시를 배우지 않으면 표현을 할 수 없다. 유럽 IT강국들은 말할 것도 없고, 미국의 유명 사립학교들은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시를 외우게 한다. 하이타치의 세계가 모두 이 시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시의 운율(rhythm)에는 영(靈)이 있고, 이 영이 가슴을 치기 때문이다.

시는 '성실' 그 자체다. 시를 짓는 것 자체가 성실이고, 그 시를 읽고 외우는 것 또한 성실이다. 성실은 한자 뜻으로 진기심(盡其心)-그 마음 다해서 하는 것이다. 온 마음을 모으고, 온 정성을 기울이고 쏟는 것이다. 재주나 요령, 눈치로는 절대로 안 되는 것이다. 두보(杜甫)는 어불경인(語不驚人)이면 수사불휴(雖死不休)라 했다. 내가 지은 시어(詩語)가 사람들의 가슴을 치지 않으면 죽어서도 쉬지 않고 계속 시를 쓰겠다는 의미다.

'죽어서도 그냥 있지 않겠다'-그 위대한 '성실'이 위대한 두보를 만든 것이다. 시를 읽자. 시 읽는 사회를 만들자. 시를 읽어 이 메마른 대지에 비를 내리게 하자. 시를 읽어 이 먼지투성이의 카오스 사회를 '사람 사는 사회'로 만들자.
(『시와 시학』 2004년 겨울호에서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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