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보 칼럼
매월당의 시론 임 보(시인) 생육신 중의 한 사람인 매월당(梅月堂) 김시습(金時習, 1435∼1493)은 한국 최초의 한문소설인 『금오신화』의 저자로 잘 알려진 인물이다. 세 살 때부터 시를 짓기 시작했고, 다섯 살에는 어전시(御前詩)로 세종을 놀라게 했다고 하니 그의 타고난 시재를 짐작할 만하다. 세상과는 궁합이 맞지 않아 한평생 명산대천을 떠돌면서 시로써 울적한 마음을 달래며 살았던 시인이다. 율곡은 그를 두고 의(義)를 내세우고 윤기(倫紀)를 붙든 ‘백세의 스승’이라고 칭송했으며, 이가원(李家源)은 기인(奇人) 불기인(不羈인) 그리고 민족사상가로 평가했다. 2천여 수의 작품을 남기고 있는데 가작(佳作) 아님이 없다. 조선조를 대표할 만한 뛰어난 시인 중의 한 분이다. 이 자리에서는 그의 시에 관한 시를 읽어보면서 매월당의 시관이 어떠했는가 잠시 엿보고자 한다. 손님 말이 시를 배울 수 있느냐기에 내 대답이, 시는 전할 수 없는 거라 했네. 다만 그 묘한 곳만 볼 뿐이지 소리 있는 연(聯)은 묻지 말게나 산 고요하면 구름은 들에서 걷히고 강물 맑으면 달이 하늘에 오르느니, 이런 때 만일 뜻을 얻는다면 나의 싯구 가운데서 신선을 찾으리라. ―「시를 배우겠다기에」(허경진 역) 客言詩可學 余對不能傳 但看其妙處 莫問有聲聯 山靜雲收野 江澄月上天 此時如得旨 探我句中仙 ―「學詩 二首․1」 시에 능한 매월당에게 사람들은 어떻게 하면 시를 잘 지을 수 있느냐는 질문을 자주 했을 법하다. 대답이 시의 법은 전할 수 없는 거라고 했다. 내 시를 알고자 하거든 시의 오묘한 곳을 눈여겨보도록 하라. 표현된 소리(언어) 그 자체에 집착할 일이 아니다. 시는 구름 걷힌 들판을 말하기 위해 고요한 산을 읊기도 하고, 하늘의 달을 얘기하기 위해 맑은 강물을 노래하기도 한다. 이처럼 시는 직접 말하기보다는 다른 것에 의탁해서 넌지시 암시한다. 그대가 만일 이러한 시의 취지를 알고 난 뒤에 내 시를 읽게 된다면 내 시 가운데 신선의 기상이 서려 있음을 알게 되리라. 대강 이런 내용이다. 시는 보통의 글(산문)과는 달라서 정해진 시의 형식을 지켜야만 한다. 뿐만 아니라, 그 표현이 간결하며 또한 말하지 않음으로 드러내는 암시, 적절한 비유, 옛 일을 넌지시 끌어다 쓰는 용사(用事) 등 다양하고 심오한 기법이 구사된다. 그러니 시를 쓰는 요령은 배워서 익혀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좋은 시를 많이 읽고 써 보는 가운데 터득하는 수밖에 없다는 것이리라. 손님 말이 시를 배울 수 있느냐기에 시의 법은 차가운 샘물과도 같다고 했네. 돌에 부딪치면 흐느끼는 소리도 많네만 연못에 가득 차면 고요하여 떠들지 않는다네. 굴원(屈原)과 장자(莊子)가 한탄도 많이 했지만 위(魏)나라․진(晋)나라는 차츰 시끄러워졌지. 보통 격조야 애써서 끊어야 하겠지만 들어가는 문은 깊숙해서 말하기 어렵다네. ―(허경진 역) 客言詩可學 詩法似寒泉 觸石多嗚咽 盈潭靜不喧 屈莊多慷慨 魏晋漸拏煩 勦斷尋常格 玄關未易言. ―「學詩 二首․2」 또한 시법은 차가운 샘물과 같다는 것이다. 옹달샘에서 비롯한 물줄기가 골짜기를 흘러내리다 돌에 닿으면 흐느끼듯 울부짖기도 하고, 웅덩이를 만나면 잔잔해져 소리를 감추기도 한다. 시정은 우리의 성정이 천하 만물에 닿아 일어나는데, 만나는 대상에 따라 한결같지 않다. 어떤 때는 격렬한 시정이 일어나는가 하면 또 어떤 때는 호수처럼 잔잔히 가라앉기도 한다. 또한 개인에 따라 다르고 시대에 따라 다르다. 굴원과 장자와 같은 비분강개에 기운 시정이 있는가 하면, 위나라 진나라처럼 번거롭고 난삽해진 경우도 없지 않다. 심상한 격조야 단호히 끊어야 할 일임을 알지만, 현묘한 시의 관문을 말로 설명하기는 쉽지 않다. 시정의 다양성에 관해 언급하고 있다. 한 개인의 감정도 시간과 처지에 따라 변화무쌍하게 달리 나타난다. 또한 개인의 특성에 따라 사람마다 천차만별의 감정의 차이를 보이게 된다. 뿐만 아니라, 지역은 지역대로 시대는 시대대로 기풍의 차이를 지니게 마련이다. 따라서 시의 묘법을 일괄해서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이리라. 매월당의 생각은 시는 오묘하고 다양한 글이기 때문에 그 묘법을 설명할 수 없다는 것으로 요약될 수 있다. 그런데 매월당의 시론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중요한 부분이 있다. 바로 첫 수의 끝 행 “나의 싯구 가운데서 신선을 찾으리라”는 대목이다. 이것은 매월당의 시정신이 ’신선사상‘임을 드러내고 있는 구절이다. 신선사상이란 무엇인가? 얼핏 보면 허황된 세상을 꿈꾸는 몽상처럼 생각되기 쉽지만 사실 그렇지 않다. 이는 인간의 지상적 한계성을 극복하고자 하는 이상주의적 사상이다. 세속을 넘어서고자 하는 탈속의 정신이며, 자연에 귀의하고자 하는 무위의 정신이며, 여유와 심미를 즐기는 풍류정신이며, 전란과 질병으로부터 해방되고자 하는 화평의 정신이기도 하다. 생래적으로 시인은 세상과 궁합이 잘 맞지 않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이상향을 꿈꾸며 살고 있다. 시는 곧 이들의 꿈의 기록물이다. 매월당은 시가 현실에 적응하지 못한 사람들의 꿈의 기록임을 신선을 빌어 넌지시 얘기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우이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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