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내가 읽은 좋은 시

예수가 계신 곳은

월정月靜 강대실 2006. 9. 27. 10:42
예수가 계신 곳은
 
 

         
                                문   병   란

호화찬란한 교회당
거기에 예수는 없다
은빛 빛나는 벽장식의 거대한 십자가
거기에 예수는 없다
수천만원이 모이는 바구니 속의 헌금
거기에 예수는 없다
장엄하게 들리는 수백명 합창단의 찬송
거기에 예수는 없다.

예수는 예수를 모르나 예수를 닮은 사람들의
어질고 가난한 손 가운데 있고
굶주린 사람들이 물어뜯는 한덩이 빵
義人의 목마름을 적시는 한 잔의 우유
빈 창자를 채우는 한 그릇 밥 속에 있다.

그대 서가를 장식하는 금박의 책
그대의 허영을 만족시키는 속세의 명성
소리 높여 부르는 저 호리톤의 기도
흥겨운 박자에 맞추어 부르는 열광의 찬송
예수의 이름으로 예수의 이름을 파는
뭇 바리새인들의 혀끝에서
예수는 두 번 다시 처형을 받는다.

벗겨지지 않는 가시면류관
멎지 않는 구멍 뚫린 옆구리의 피
두꺼운 벽 속에 갇힌 예수의 신음소리
수만번 다시 죽는 기나긴 형벌 속에서
예수의 이름으로 예수를 죽이는
또 하나의 창끝에서 피를 흘린다.

양심을 살인하는 오만한 자식
거기에 예수는 없다
독점과 이기와 재물이 쌓인 곳
거기에 예수는 없다
파멸과 분쟁과 증오와 싸움
거기에 예수는 없다.

손발이 마비되고 눈이 먼 불구자
문득 거지가 되어 내미는 손 속에 있고
어느 골방에 쓰러져 있는 사나이의 절망
병균이 파먹어 버린 병든 폐 속에 있고
먹다가 남은 한 덩어리 식은 밥
가난한 사람들의 굶주림 속에 있고
오늘은 고통을 안고 죽어 가는
베이루트 여인의 썩은 창자 속
붕붕거리는 파리떼의 날개 속에 있고

예수여, 당신은 義에 주리고 자유를 갈망하는
오늘의 뜨거운 목마름
한국 청년의 손을 묶은 쇠고랑 속에 있다
민주와 통일을 부르는 절규
두 번 다시 죽어야 하는 당신의 십자가에 있다.
오! 아직도 옆구리에
피 멎지 않는 예수여
이 땅의 기나긴 고난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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