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내가 읽은 좋은 시/2)시인의 대표시

26. 김남주/7. 이 가을에 나는

월정月靜 강대실 2025. 4. 5. 15:22

* 이 가을에 나는
 
이 가을에 나는 푸른 옷의 수인이다
오라에 묶여 사슬에 손발이 묶여
또 다른 곳으로 끌려가는

어디로 끌려가는 것일까 이번에는
전주옥일까 광주옥일까 아니면 다른 어떤 곳일까

나를 태운 압송차가
낯익은 도시 거리의 인파를 빠져 나와 
들판 가운데를 달린다
아 내리고 싶다 여기서 차에서 
따가운 햇살 등에 받으며 저만큼에서
고추를 따고 있는 어머니의 밭에서  
숫돌에 낫을 갈아 나락을 베고 있는 아버지의 논에서
빙 둘러서서 염소에게 뿔싸움을 시키는 아이들의 제방에서 
내려서 그들과 함께 일하고 놀고 싶다
내려서 손발에서 허리에서 이 오라 풀고 이 사슬 풀고 
내달리고 싶다 아이와 같이 하늘 향해 두 팔 벌리고 
내달리고 싶다 발목이 시도록 논둑길을 
내달리고 싶다 가슴에 바람 받으며 숨이 차도록 
가다가 목이 마르면
손으로 표주박을 만들어 샘물로 갈증을 적시고
가다가 가다가 배라도 고프면
땅으로 웃자란 하얀 무를 뽑아 먹고
날 저물어 지치면
귀소의 새와 함께 집으로 돌아가고..... 

그러나 나를 태운 차는 멈춰 주지 않고
들판을 가로질러 역사의 강을 건넌다
갑오농민들이 관군과 크게 싸웠다는 황룡강을
여기서 이기고 양반과 부호들을 이기고
장성갈재를 넘어 전주성을 넘보았다는
옛 쌈터의 고개를 나도 넘는다
이 가을에 나는 푸른 옷의 수인이 되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