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잎 단장(斷章)
조지훈(1920~1968, 경북 영양)
무너진 성(城)터 아랜 오랜 세월을 풍설(風雪)에 깎여 온 바위가 있다
아득히 손짓하며 구름이 떠가는 언덕에 말없이 올라서서
한 줄기 바람에 조찰히 씻기우는 풀잎을 바라보며
나의 몸가짐도 또한 실오리 같은 바람결에 흔들리노나
아 우리들 태초(太初)의 생명(生命)의 아름다운 분신(分身)으로 여기 태어나
고달픈 얼굴을 마주 대고 나직히 웃으며 얘기하노니
때의 흐름이 조용히 물결치는 곳에 그윽히 피어오르는 한 떨기 영혼이여
▷「조지훈 시선」(조지훈 지음, 오형엽 해설, 지식을만드는지식, 2011년) 중에서.
'12. 내가 읽은 좋은 시 > 2)시인의 대표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10. 천상병 시 /1. 천상병 시 모음 20편 (1) | 2024.11.28 |
---|---|
9. 조지훈 시 /9. 역사 앞에서 (1) | 2024.11.28 |
9. 조지훈 시 /7. 고사(古寺) 1 (0) | 2024.11.28 |
9. 조지훈 시 /6. 파초우(芭蕉雨) (0) | 2024.11.28 |
9. 조지훈 시 /5. 봉황수(鳳凰愁) (1) | 2024.11.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