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계 "창작의 진정성 죽은 날" 쇼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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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절·도용 만연 풍조 이 지경까지…" 당혹
"베끼기 쉬쉬하는 풍토 개선 계기로" 자성도
“문학의 진정성이 죽은 날이다. 앞으로 뼈를 깎는 창작의 모든 고통이 의심의 대상이 될지도 모른다.”
마광수(56) 연세대 국문학과 교수가 23년 전 제자의 시 <말(言)에 대하여>를 도작(盜作)한 사실이 밝혀진 4일 문학계는 큰 충격에 빠졌다. 학술 논문에 대한 표절 논란으로 학계가 시끄러운 적은 있지만 문학작품까지 그 시비의 대상이 됐다는 게 믿어지지 않는다는 표정이다. 유명 시인이자 소설가가 표절을 넘어 제자의 작품을 통째로 도둑질했다는 소식에 고개를 들지 못하겠다는 반응도 있다.
시인 차창룡씨는 “대학 총장이 제자 논문을 표절했다며 시끄러웠던 게 엊그제인데”라며 “아무리 표절, 도용이 전 사회적으로 퍼져 있다고 하지만 어떻게 문학작품을 그대로 베낄 수가 있느냐”고 말했다.
시 평론가 이숭원 서울여대 국문학과 교수는 “창작은 없는 것을 새롭게 만드는 발명 같은 것”이라며 “독창적인 아이디어 없이 남의 작품에 자기 이름 붙여서 내놓은 것은 분명히 도둑질”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문학 작품의 베껴 쓰기를 패러디, 모방, 표절, 도작(양절ㆍ攘竊ㆍ몰래 훔침)으로 구분한 뒤 “패러디는 이미 알려진 작품의 일부를 자신의 주제에 맞게 재창조하는 것이며 모방은 우수한 작품을 본 떠 써보는 것으로 큰 문제가 없다”고 설명했다. 이어 “표절은 작품의 일부를 따와서 교묘하게 자신의 작품에 끼어 넣는 것으로 논란의 대상이 될 수도 있다”며 “그러나 마 교수의 시는 가장 질이 나쁜 도작”이라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과거에도 제자의 시를 몰래 갔다 쓴 뒤 뒤늦게 문제제기를 하면 ‘문인지에 등단 시켜주겠다’면서 입막음을 하곤 했다”며 “지금까지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현실에 절망을 느낀다”고 말했다.
출판계 역시 당황한 모습이 역력했다. <야하디 얄라숑>을 펴낸 해냄출판사 이진숙 팀장은 “무단 도용 사실을 전혀 몰랐다”며 “작품 하나하나의 표절, 도용 여부를 따져보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데다 명망 있는 분의 작품이기에 이런 일이 생길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마 교수 사건을 계기로 도작은 물론 표절이 발 붙이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방 국립대의 한 국문학과 교수는 “그 동안 문학계는 이런 일이 일어나면 쉬쉬했다”며 “이제는 잘못이 드러나면 확실하게 지적하고 비판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인터넷이 일상적으로 사용되면서 다른 사람의 아이디어나 작품을 베껴 쓰려는 유혹에 쉽게 빠질 수 있다”며 “문단이 나서 표절ㆍ도작 풍토를 없애려는 노력이 절실하다”고 덧붙였다.
박상준 기자 buttonp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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