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 송년특집-2007 신춘문예-동화 당선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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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현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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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길이 열렸다. 뭍에서 시작된 시멘트 길은 2킬로미터가 조금 넘는다. 관광객뿐만 아니라 제부도 주민들도 하루에 두 번 열리는 물때를 기다려 뭍을 드나든다. 안전장치가 올라가자 아이들은 일제히 자전거에 올랐다. 시멘트 길이 빠르게 물을 빨아들였다. 창희는 눈을 찌푸려 물길 끝을 바라보았다. 오늘도 어김없이 정님이 앉아 있었다. ‘저 바보, 그렇게 당하고 또 나와 있네.’ 창희는 아이들을 슬쩍 둘러보았다. 모두 들떠 있었다. 정님을 놀리는 데 한창 재미를 붙였는데 쉽게 그만둘 리 없었다. 하는 수 없이 창희는 아이들과 보조를 맞추어 자전거 페달을 밟았다. 초여름 햇살이 정수리에 따갑게 내리쬐었다. 곧 장마가 시작될 거라는 예보가 거짓말처럼 느껴졌다. 정님이 눈에 들어오자 아이들은 속도를 높였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엉덩이를 번쩍 들었다. 정님도 자전거를 본 모양이다. “어, 어버버버!” 눈이 부신지 한 손으로 빛을 가린 채 아이들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정님은 어릴 때부터 말을 하지 못했다. 물론 듣지도 못했다. 아이들 사이에선 당연히 ‘바보’로 통했다. 이름 대신 그냥 ‘바보’라고 불렀다. 창희는 정님의 동그란 얼굴이 밉지 않았다. 폭 팬 보조개가 반달눈을 따라 웃을 때면 저도 모르게 웃음이 나곤 했다. 꼭 저만 보는 것 같아 가슴이 뛸 때도 있었다. 그러다가도 가끔은 아무 때나 웃고 있는 반달눈 때문에 속이 상하기도 했다. 며칠 전부터는 용대를 보고도 실실 웃는 것 같아 공연히 화가 났다. “어, 어버버버!” 정님이 앉은 자리에서 껑충거리며 소리를 질러댔다. “오늘은 창희 네 차례지?” 용대가 입술을 실룩거리며 물었다. “어? 응!” 대답이 떨어지기 무섭게 아이들이 정님을 향해 질주해 갔다. 창희가 맨 앞에서 달렸다. 정님이 앉아 있는 마을 입구는 약간 오르막이다. 힘들이지 않고 오르려면 중간쯤부터 속도를 내야 한다. 창희는 있는 힘껏 페달을 밟았다. 정님은 입을 벌린 채 자전거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정님의 얼굴 바로 앞에서 창희가 소리치며 손짓했다. “야, 숙여! 머리 숙이라니까!” 창희는 페달 밟던 다리를 옆으로 쭉 뻗었다. 동시에 정님은 눈을 질끈 감고 무릎 사이로 머리를 묻었다. 창희의 다리가 아슬아슬하게 정님의 머리 위로 지나갔다. 주인 없이 돌아가던 페달이 정님의 얼굴 바로 옆에서 팽그르르 원을 그렸다. 이어서 차례차례 다른 아이들의 다리가 정님의 머리를 휙휙 넘었다. 정님은 죽은 듯이 웅크리고 있었다. “헤헤, 저 바보 겁먹은 거 좀 봐!” 용대가 손가락질을 하며 웃었다. “뭐, 금방 또 히히거릴 건데.” 아이들이 자전거에서 내려 한바탕 깔깔댔다. 창희는 웃는 대신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쿨렁대던 가슴이 조금은 가라앉는 것 같았다. 한참을 떠들고 난 뒤 아이들은 말머리로 자전거를 돌렸다. 자전거를 탔다 하면 아이들은 으레 말머리로 해서 매바위까지 한바퀴 돌았다. 지난봄 창희를 끝으로 마을에서 5학년 이상은 모두 자전거를 갖게 되었다. 몇몇이 안장 위로 엉덩이를 치켜들고 까불대며 창희 뒤를 따랐다. 마을길은 아직 흙길이라 뽀얀 먼지가 일었다. “끼익!” 얼마 못 가 맨 앞에 가던 창희가 급하게 브레이크를 잡았다. 앞에서 검은 색 자가용이 기세등등하게 머리를 들이밀었다. “야, 남창희! 인마, 그냥 밟아!” 뒤따라오던 용대가 짜증 섞인 투로 소리를 질렀다. 그러나 턱도 없는 소리라는 건 용대도 잘 알고 있었다. 자가용과 맞닥뜨리면 사람 하나도 비켜서기 힘들 정도로 길이 좁았다. 차가 다 지나갈 때까지 아이들은 자전거 앞으로 몸을 빼 핸들을 꽉 잡고 서 있었다. “에이, 퉤퉤!” 자가용이 멀어지자 아이들은 일제히 침을 뱉었다. “가다가 갯벌에 확 빠져버려라!” 용대가 자가용 꽁무니에 대고 욕설을 내뱉었다. 창희는 안장에 엉덩이를 올리려다 말고 힐끗 뒤를 돌아보았다. 어느새 정님의 반달눈이 창희의 자전거를 쫓아와 있었다. 정님과 눈이 마주치자 창희는 고개를 돌렸다. “얘들아, 말머리는 너희들끼리 가. 난 그냥 집에 갈래.” “왜?” 용대가 자전거에 올라탄 채 뒤를 돌아보았다. “응, 가게도 가야 하고….” 창희는 말을 잇지 못하고 얼버무렸다. 아이들이 이상하게 생각할까 봐 자전거만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에이, 김새.” 용대가 눈을 흘기며 출발하자 아이들이 뒤따랐다. 정님이 눈을 희번덕거리며 눈치를 살폈다. 창희는 자전거 방향을 돌렸다. 그러자 정님의 얼굴이 갑자기 환해졌다. 창희는 부러 페달을 천천히 밟았다. 바퀴 돌아가는 소리에 섞여 정님의 신발 끄는 소리가 들려왔다. 넓게 펼쳐진 갯벌에서는 치패(어린 조개) 뿌리는 작업이 한창이다. 창희는 목을 빼 두리번거리다 이내 고개를 가로저었다. 뭍에다 횟집을 낸 뒤로 어머니는 갯벌에서 일을 하지 않았다. 아버지 역시 더 이상 배를 타지 않았다. 횟집을 밤새 운영하기 때문에 배는커녕 잠자는 시간도 모자랐다. 물때를 놓쳐 가게에서 자는 일도 잦았다. 정님이네를 문간방에 들인 이유도 그 때문이었다. 정님의 할머니가 창희 밥도 챙겨 주고 집도 봐 주었다. 기분이 좋은지 정님이 연방 “버버버” 소리를 지르며 따라왔다. 두 팔을 벌려 날갯짓까지 했다. 정님은 창희보다 한 살이 많지만 꼭 동생처럼 굴었다. 갓난아기 때 아버지가 바다에서 죽고, 얼마 되지 않아 어머니마저 바지락을 잡다가 목숨을 잃었다고 했다. 창희는 잠시 자전거를 세웠다. 정님이 팔을 허우적대며 뛰어왔다. 비릿한 갯내가 자전거 뒤에 따라붙었다. 마당으로 들어서다 말고 창희는 문간방 앞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쿨룩쿨룩! 쿨룩쿨룩!” 정님의 할머니가 숨넘어갈 듯 기침을 했다. 창희는 방 앞에 서서 정님을 기다렸다. 잠시 뒤 정님이 헉헉거리며 들어섰다. “어, 어버버버!” 창희를 보자 정님은 입가에 흐른 침을 닦았다. 그러고는 자전거를 덥석 잡아 흔들었다. 또 자전거를 가르쳐달라고 떼를 쓸 태세였다. “이 바보야, 할머니한테나 가 봐!” 창희는 자전거에서 정님의 손을 떼 내어 방을 가리켰다. 정님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창희와 문간방을 번갈아 보았다. “빨리 들어가 보라니까.” 창희가 정님을 방으로 떠다밀었다. 그 순간, 자전거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넘어졌다. 정님이 겁먹은 표정을 하고 서 있다 방으로 들어갔다. “에이, 씨!” 창희는 문간방을 쏘아보며 자전거를 일으켜 세웠다. 페달과 핸들 때문에 마당이 움푹 팼다. 창희는 흙을 털어 낸 다음 소매를 잡아당겨 자전거를 닦았다. 후텁지근했다. 땀방울이 등줄기를 타고 흘러내렸다. 중학생이 되면 사 준다는 걸 억지로 졸라서 산 자전거였다. 창희는 제 방 앞으로 자전거를 끌었다. 자전거가 촬촬거리며 따라왔다. 창희는 자전거를 방 앞에다 바짝 들여세운 다음, 안장을 탁탁 쳤다. 그리고 열쇠로 꽉 잠갔다. “창희야, 우리 정님이 자전거 절대로 못 타게 해야 혀. 니가 자전거 타고 엄마 보러 간다고, 지도 자전거만 타면 지 엄마 만나러 가는 줄 알어….” 정님의 할머니는 창희만 보면 신신당부했다. 정님이 매일 마을 입구에 앉아 아이들의 자전거를 기다리는 것도 그 때문이었다. 물길이 닫히면 정님은 하염없이 바다를 바라보았다. 하루에도 몇 번씩 길가에 앉아 있다가 어른들 팔에 이끌려 오곤 했다. “가르쳐 줘도 못 탈 텐데 뭐….” 창희는 입술을 삐죽거렸다. 아무도 없는 줄 뻔히 알면서 창희는 이방 저방 문을 열어젖혔다. 그러나 이내 힘이 빠졌다. 문소리에 놀랐는지 정님의 할머니가 허둥대며 밖으로 나왔다. “아이고, 창희 왔네. 쿨룩, 쿨룩. 내 얼른 밥 차려 줄팅게 쫌만 기다리게.” 할머니는 무슨 큰 죄를 지은 양 허리도 펴지 않은 채 부엌으로 갔다. “됐어요! 저 밥 안 먹어요!” 창희는 부엌에 대고 소리쳤다. 창희의 소리를 못 들었는지 부엌에서 계속 달가닥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창희는 방바닥에 벌렁 누웠다. 서늘한 기운이 퍼지자 스르르 눈이 감겼다. “둑, 두둑, 두둑!” 창희는 빗방울 듣는 소리에 눈을 떴다. 광에 들여놓지 않은 자전거가 번뜩 떠올랐다. 창희는 후닥닥 방문을 열었다. 그런데 방문 앞에 세워둔 자전거가 보이지 않았다. 창희는 재빨리 마당으로 내려섰다. 그때 광 앞에서 정님이 소리쳤다. “어, 어버버버!” 온몸이 흠뻑 젖은 채 정님이 자랑스럽게 손을 흔들었다. 잠긴 자전거를 들고 얼마나 용을 썼을지 눈에 선했다. 그러나 그 마음은 금세 가셨다. 자전거가 없어진 줄 알고 놀란 걸 생각하니 짜증이 확 밀려왔다. “에이, 누가 너더러 자전거 치우라 그랬어?” 창희는 주먹을 쥐어 정님의 얼굴 앞에 들이밀었다. 정님이 목을 움츠리며 뒤로 물러섰다. 정님의 두 눈에 금방 눈물이 맺혔다. 창희는 못 본 척 자전거 열쇠를 꺼냈다. 빗줄기가 제법 굵어지기 시작했다. 창희는 우산 두 개를 들고 대문을 나섰다. 물길이 닫힐 때까지 시간은 넉넉했다. 가게에 우산을 갖다 주고, 어머니가 끓인 매운탕까지 먹고 와도 될 시간이었다. 창희는 얼른 대문을 나섰다. 속도를 내자 빗줄기가 사정없이 얼굴을 때렸다. 시원했다. 짠내에 섞인 비 냄새가 좋았다. 게들이 갯벌 위에서 부산하게 움직였다. 까만 점이 뭉쳤다, 흩어졌다, 떨어지는 비만큼이나 빨랐다. 갈매기들이 비를 피해 한자리로 모여들었다. 뽀그락 뽀그락 갯벌에 물 채워지는 소리가 조그맣게 들려왔다. 가게는 한산했다. 장마 소식 때문인지, 비가 오기 전에 손님들이 한 차례 다녀갔는지 아버지와 어머니 둘뿐이었다. 차가운 기운이 맴돌았다. 아버지는 창밖을 내다보며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어머니는 퉁퉁 부은 눈으로 창희를 보고도 아무 말이 없었다. “또 싸운 거야? 또?” 창희는 우산을 던져놓고 돌아서 나왔다. 건너편 가게의 휘황찬란한 모습에 자꾸만 눈이 갔다. 뭍이건 섬이건 간에 대형 횟집의 주인은 거의가 외지인이었다. 창희가 학교에 들어가기 전만 해도 제부도 사람들 대부분은 김 양식을 하거나 바지락을 캐서 팔았고, 더러는 배를 타기도 했다. 하지만 중국에서 수입하는 물고기가 늘어나면서 마을 사람들은 점점 빚쟁이가 되어 갔다. 빚쟁이가 된 사람들은 하나 둘 섬을 떠나기 시작했다. 그나마 남아 있는 사람도 대부분 식당에 나가서 일을 했다. 하루 종일 허리 한번 펴지 못하고 캔 바지락 값보다 식당에서 버는 돈이 많기 때문이다. 창희는 빗길을 달려 매바위로 향했다. 빗물이 눈에 들어가 자꾸 눈물로 변했다. 집을 나올 때와 달리 가슴이 답답했다. 북적대던 사람들이 비를 피해 떠나고 매바위가 홀로 비를 맞고 있었다. 관광지로 알려지면서 매바위에는 더 이상 매가 알을 낳지 않는다. 그냥 두고 보면 좋으련만 사람들은 바위를 가만두지 않았다. 굴을 캐겠다고 돌로 마구 찍어대 어린 굴들이 허연 배를 드러내고 있었다. 매바위 밑에서 어머니가 개흙 묻은 손으로 먹여 주던 굴이 먹고 싶었다. 창희는 조그만 돌 하나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 점점 가까워지는 바다를 향해 던졌다. 돌은 얼마 날아가지 못하고 물속으로 픽 빠져버렸다. 물수제비를 바란 건 아니었지만 괜히 부아가 났다. ‘에이, 정말!’ 창희는 매바위를 등진 채 자갈밭으로 자전거를 몰았다. 울퉁불퉁한 자갈 위에서 자전거 바퀴가 자꾸 헛돌았다. 터덜거리며 집으로 들어서자 정님의 할머니가 반색을 하며 맞았다. 방문을 열어 둔 채 기다리고 있었던 모양이다. “밥도 안 먹고, 어딜 갔다 오는겨? 비에 함빡 젖어서 우짠뎌? 어여 들어가.” 할머니 등 뒤에서 정님이 고개를 삐죽 내밀었다. 창희가 나가자마자 할머니한테 심통을 부렸을 게 뻔했다. “야, 너!” 창희의 입 모양을 보고는 정님이 웅얼웅얼 소리를 냈다. 변명이라도 하는 양 얼굴 가득 억울한 표정을 지었다. ‘쳇, 도무지 알아들을 수가 있어야지.’ 창희는 말을 더 하려다 말고 그냥 광으로 갔다. 하루에도 몇 번씩 바뀌는 마음을 저도 어쩌지 못했다. 광 안으로 들어서는데 갑자기 온몸이 으슬으슬 떨려왔다. 창희는 자전거를 벽에 기대놓은 채 서둘러 방으로 뛰어 들어갔다. 그리고 얼른 옷을 갈아입고 이불을 뒤집어썼다. 잠시 뒤 할머니가 밥상을 들고 들어왔다. “감기 걸리겄네. 이거, 뜨거운 국물 훌훌 마셔.” 창희는 할머니가 시키는 대로 뜨거운 국물부터 떠서 먹었다. 국물이 목을 타고 내려갔다. 몸에 온기가 퍼지자 가슴 중간을 꽉 막고 있던 것이 쑥 내려가는 것 같았다. 장마가 시작되면 어머니 아버지 두 분 다 신경이 곤두선다는 걸 모르는 바 아닌데, 손님이 없는 날이면 종종 말다툼한다는 걸 모르는 바 아닌데, 괜히 투정을 부린 것 같아 겸연쩍었다. 또 비에 젖을까 봐 애써 자전거를 광에다 옮겨놓았는데 공연히 정님에게 화를 낸 것 같아 미안했다. 아이들과 함께 매일 정님을 골려주는 것도 몹시 걸렸다. 사실 정님에게 자전거만 가르쳐 주면 해결될 일이었다. “할머니, 제가 정님이 자전거 한번 가르쳐 볼까요?” 창희가 국물을 후루룩거리며 물었다. “아니여, 아니여. 가르쳐 줘도 제깐 것이 탈 줄이나 알믄….” 할머니가 창희 등을 토닥이며 웃었다. “그래도, 자전거….” 순간, 창희는 숟가락을 떨어뜨렸다. 할머니가 놀라서 따라 일어섰다. “열쇠를, 자전거를 안 잠갔어요!”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할머니가 방문을 열어젖혔다. “정님아, 정님아!” 창희가 정님을 부르며 광으로 뛰어나갔다. 없었다. 자전거도, 정님이도 없었다. 창희는 시계를 들여다보았다. 이미 물이 들어오기 시작한 시간이었다. 밖은 벌써 어둑어둑했다. 할머니가 맨발로 뛰쳐나갔다. “정님아, 정님아!” 두 사람은 정님을 부르며 빗길을 뛰었다. 관광객이 빠져나간 섬은 조용했다. 빗소리를 뚫고 할머니의 목소리만 울려 퍼졌다. “괘, 괜찮을 거예요. 정님이 자전거 탈 줄 모르잖아요.” 창희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건넸다. “안 되는디, 안 되는디….” 할머니의 작은 소리가 빗소리에 잦아들었다. 이장 아저씨를 비롯해 마을 어른들이 모여들었다. “자네는 산책로로, 자네는 말머리로 가 보게. 난 매바위 쪽으로 가 볼 테니까.” 아저씨들이 정님을 찾기 위해 뿔뿔이 흩어졌다. 호각 소리가 따라 흩어졌다. 할머니가 창희의 팔을 잡아당겼다. “물, 물길, 물길에 가 보자.” 창희는 애써 감추고 있던 마음을 들킨 것 같았다. 집을 나오면서 맨 먼저 든 생각이었지만 차마 입 밖으로 낼 수가 없었다. 할머니가 창희를 앞질렀다. 물길이 가까워질수록 창희는 발을 떼기가 어려웠다. “기어이, 기어이….” 입구에 도착하자마자 할머니가 털썩 주저앉았다. 뭍 쪽에서 사이렌 소리가 요란하게 울리고 있었다. 세차게 뺨을 맞은 듯 안전요원의 말이 귓가에서 웅웅댔다. 할머니의 팔을 잡고 있던 창희의 손이 맥없이 풀렸다. 휑한 바람이 가슴을 뚫고 지나갔다. “아이고, 아이고…. 우리 정님이, 정님아.” 할머니는 안전장치를 잡은 채 울부짖었다. 물길은 이미 반 이상 잠겨 통제되고 있었다. 바닷물은 빠른 속도로 밀려왔다. 빗줄기가 더욱 거세졌다. 빗소리에 눌려 갯벌에 물 채워지는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물은 금세 통제선까지 차올랐다. 창희는 가슴이 울렁거려 더 이상 바다를 바라볼 수 없었다. 정님이 앉아 있던 흔적마저 가져가려는 듯 파도가 무섭게 밀려오고 있었다. 다음날 아버지와 함께 마을 어른들이 모두 나서 갯벌을 뒤졌지만 자전거는 찾지 못했다. 정님이 역시 찾지 못했다. “제 몸도 못 가누는 것이 자전거는 왜 끌고 나갔을꼬….” “그참, 해마다 꼭 한 명은 잡아먹네.” 창희는 두 손으로 귀를 꽉 막았다. 정님이 떠난 뒤에도 장마는 계속되었다. 창희는 길고 긴 여름을 다시 맞았다. 이제 곧 중학생이 되지만, 창희는 새 자전거를 그대로 세워 두었다. 정님의 할머니가 전 재산을 털어서 사준 자전거였다. 뭍에 있는 중학교에 다니려면 자전거를 타야 하지만 아직 비닐도 뜯지 않은 채 광에 세워 두었다. “우리 정님이. 아마, 네 자전거 타고 훨훨 날아다닐겨. 지, 엄마 만나서 온 바다를 헤집고 다닐겨. 암, 그럴 거구먼.” 할머니가 창희의 등을 쓸어주었다. 마을 사람들은 이제 누구도 정님의 이름을 떠올리려 하지 않았다. 매년 같은 사고가 반복되는 탓이기도 했지만, 쓱 밀려왔다 빠지는 바닷물처럼 그렇게 잊어지기만 기다렸다. 하루에 두 번 물길이 열릴 때마다 창희는 마을 입구로 나가 바다를 바라보았다. 바다는 아무런 대꾸 없이 흘러갈 뿐이었다. 창희의 마음속에는 주인 없이 자전거 바퀴만 헛헛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끝> |
<2006 송년특집-2007 신춘문예-동화 당선 소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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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 /현 /옥 |
장재선기자 jeijei@munhwa.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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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로 간 자전거’를 마음에 품은 뒤로 꽤 여러 번 제부도를 찾았습니다. 하루에 두 번 열리는 물길이 신기하기도 하고, 직접 굴을 캘 수 있어 재미있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관광지가 다 그렇듯 제부도 역시 하루가 다르게 변해갔습니다. 뭍(제부도 입구)과 다름없이 섬에도 대형 횟집이 들어서고 숙박업소가 넘쳐나기 시작했습니다. 덕분에 관광객들은 편안하게 즐길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갈수록 제부도가 낯설었습니다. 왠지 모르게 서운하기도 했습니다. 동화를 만난 지 올해로 꼭 7년이 되었습니다. 꽤 오랫동안 혼자 가슴앓이를 했습니다. 혹시 내 마음을 잘못 전한 건 아닐까 전전긍긍한 적도 있고, 왜 이리 내 마음을 몰라줄까 원망한 적도 있습니다. 그런데 막상 당선 소식을 듣고 보니 준비 없이 귀한 손님을 맞은 것처럼 당혹스럽습니다. 턱없이 부족한 노재(駑才)에게 동화를 쓰면서 살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신 심사위원 선생님께 감사드립니다. 더디고 느리더라도 부끄럽지 않은 글을 쓰는 것으로 보답하겠습니다. 항상 곁에서 든든한 지원군이 되어준 남편에게 고마움을 전합니다. 제 모든 글의 밑천이 되어 준 부모님과 가족, 그리고 함께 공부하는 언니, 동생들에게도 아낌없는 사랑을 전합니다. 서른이 넘으면서 제 꿈은 ‘이야기 잘 하는 할머니’가 되는 것입니다. 언제라도 재미난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는 멋진 할머니가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약력 ▲1970년 경북 문경 출생 ▲계명대 국문과 졸업 ▲중앙대 예술대학원(아동문학) 재학 |
출처 : 권오삼 동시마을
글쓴이 : 물안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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