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문학 산책

[스크랩] [한국일보]2007 신춘문예 동화 당선작/유행두

월정月靜 강대실 2007. 1. 2. 17:59
[2007 신춘문예] 동화당선작 '무스탕 마네킹' 유행두
"곤단했던 삶… 문학 만나면서 안식 찾아"

유행두

경상도 아가씨는 떠나고 싶었다. 집안 형편이 어려워 대학은 갈 생각도 못했고, 홀아버지 모시는 일은 버겁기만 했다. 이 힘겨운 삶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결혼뿐. 그는 스물 네 살에 결혼해 가정주부가 됐다.

결혼 후에야 내 일을 찾고 싶어진 그는 미용사 자격증을 비롯해 각종 자격증을 따며 생의 돌파구를 찾았지만, 생은 타개되지 않았다. 그러다 시를 만났고, 그제야 그는 방황을 그쳤다.

유행두(40)씨는 시인 지망생이었다. 동화는 좋아하는 대학 은사를 따라 동화 모임에 드나들며 예닐곱 편 습작해본 게 전부. "당선 소식을 들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른 게 오랫동안 동화를 써온 동료들이었요. 저는 쓴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너무 미안스러워서…." 이번 신춘문예에 시와 동화를 투고하면서 당선되는 쪽으로 가야겠다고 결심했던 그는 지방신문에 투고한 시까지 당선되면서 기로에 섰다. 하지만 결정은 뜻밖에도 쉬웠다. "안 그래도 시집이 쏟아지는데 저까지 보탤 것 있나요. 시는 평생에 한 권의 시집만 낸다는 생각으로 아껴쓰고, 앞으로는 좋은 동화 쓰는 데 주력할 겁니다."

그에게 가장 무서운 비평가는 중학교에 다니는 작은 딸. 무뚝뚝한 엄마의 동화를 읽곤 초등학생 때부터 다부지게 문제점을 지적하곤 했단다. "다른 엄마들은 침대 머리맡에서 동화도 읽어주곤 한다는데, 저는 되려 불 안 끄고 어떻게 잠을 재우나 의아했어요. 나는 아이들을 안 좋아해서 동화를 쓸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동화를 쓰다 보니 그게 아이라는 걸 알겠더군요. 아이의 눈으로 세상을 보고 스토리를 만들어내는 게 얼마나 재밌는지 몰라요. 개연성의 제약을 받지 않고 무한히 뻗어나가는 상상력은 동화만의 매력이니까요."

그는 올해 이례적으로 새해 계획을 짜지 않았다. "당선이 안 됐으면 새해 계획표가 빡빡했을 텐데 지금은 너무 좋아서 아무 계획이 없어요. 신춘문예 원고까지 힘들게 견뎌주고 고장난 컴퓨터를 새 걸로 바꾸는 게 계획이랄까요."

[당선소감] 詩·동화 사이서 고민… 더 정진할 터

가장 알맞은 때에, 제게 가장 좋은 것으로 채워주시는 하나님, 감사합니다. 어느 길을 가야 할지 몰라 교차로에 서서 올 한해를 몽땅 보냈습니다. 길목마다 조개 혓바닥처럼 날름 내밀고 있는 유혹들은 내가 발을 들여놓기가 무섭게 입을 꽉 다물어버렸습니다. 여기다 싶으면 다른 길이 보이고 저기다 싶으면 또 다른 길이 보였습니다. 제법 오래 문학의 집 안, 시의 방에서 문풍지에 침을 발라 밖을 내다보았습니다. 건넌방에 있는 동화방으로 걸음을 옮겨 다닌 지 3년이 지났습니다.

상을 받기가 참으로 부끄럽습니다. 내 아이들을 키우면서 동화 한 편 제대로 읽어주지 못했던 못난 엄마였습니다. 먹고 사는 일이 분주해서 열심히 쓰지도 못한 해였습니다. 열심히 써서 응모하신 분들에게 정말 죄송합니다. 정답처럼 나와 있는 말이겠지만 열심히 쓰겠다는 말로 죄송한 마음 대신합니다.

초록동굴 회원 여러분, 고생하셨습니다. 부지런히 걸어가겠습니다. 동화방 문을 활짝 열어주신 창신대학 이림 교수님, 교수님 좋아한 보람이 있어서 제일 기쁩니다. 교만해질까봐 염려해주신 이상옥 교수님, 겸손의 자세를 잊지 않겠습니다. 제게 가장 아름다운 길을 열어주신 심사위원분들께 고마운 마음 드립니다. 더 이상 교차로에서 헤매지 않도록 당선의 기회를 주신 한국일보사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유행두(柳行斗)

1966년 경남 하동 출생 2006년 창신대학 문예창작과 졸업 제16회 신라문학대상 시 부문 수상 제3회 CJ문학상 수필부문 은상

동화 부문을 심사하고 있는 김병규(왼쪽), 김이구씨. 고영권기자 youngkoh@hk.co.kr

[심사평] 옷가게 마네킹에 숨결 불어넣어 '참신'

두 명의 심사위원이 200편에 이르는 응모작 가운데서 먼저 일곱 편을 골랐다. <레티아의 생일 선물>(조소정)은 생활 소재 동화들이 주류를 이룬 가운데서 무대를 이국의 특수한 상황으로 설정한 것이 눈에 띄었다. 그렇지만 굳이 무대를 아프리카로 옮긴 의미가 무엇인지 다가오지 않고, 쿰바가 레티아의 생일 이야기를 엿듣게 되는 결말이 작위적이었다.

<나만 아는 이야기>(김성진)는 문장이 유려하고 할머니와의 대화가 생동감이 있는데, 작품의 본줄기라 할 '어깨할멈'을 쫓아내는 뒷이야기가 단순 소박한 데 머문 것이 약점이었다. <선물>(정혜숙)은 가출하고 물건을 훔치는 미순이와 그런 미순이를 감싸 안는 덕성 스님의 포용을 잘 잡아내 그렸지만, 일부 문장이 덜 정리돼 있고 결말 또한 뻔한 해피엔딩으로 흘러 범상한 미담이 되고 말았다.

남은 네 작품 역시 참신성과 완성도에서 뚜렷하게 앞선 작품이 없어, 당선작을 정하기가 쉽지 않았다.

<엄마표 상장>(신은섭)은 안정된 문장과 심리묘사가 믿음직했지만, 흔하게 다루어진 소재인데다 맺히고 풀리면서 느껴지는 재미가 미흡했다. <호떡두 개>(김소연)는 자신과 다른 누나의 세계를 들여다보는 과정이 자연스럽고 상투적이지 않으며, 문장도 간결하고 유려했다. 그렇지만 누나가 보여주는 개성이 뚜렷한 캐릭터가 되기에는 부족했다.

<도돌이 편지>(김혜경)는 아무도 오지 않는 창고 앞에서 자기가 쓴 '절교' 쪽지를 펴보는 결말의 재치가 돋보이지만, 초점 인물이 바뀌고 서술이 불안정해 밀도감이 떨어졌다. <무스탕 마네킹>(유행두)은 옷가게에서 값비싼 무스탕을 걸치고 있는 마네킹을 화자로 한 작품이다. '왕자' 대접을 받는 아이와 가난한 아이를 대비하여, 불행한 처지의 아이에게 따뜻한 마음을 보내고 있다.

마네킹의 의인화가 흥미롭고 시선에 예민함이 있으나, 가난한 아이의 설정은 너무 익숙하게 보아온 것이었다. 이처럼 네 편이 각기 장단점을 갖고 있었으나, 생활 소재를 안전하게만 풀어가려는 신인들의 전반적인 경향을 상기할 때, 마네킹에 숨결을 불어넣은 <무스탕 마네킹>의 시도를 적극적으로 평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여겨졌다.

심사위원=김병규(동화작가ㆍ소년한국일보 부국장) 김이구(아동문학평론가ㆍ창비이사)


▲ 무스탕 마네킹 / 유행두

오늘도 나는 동그라미가 많은 옷을 입고 있다. 민지 누나가 요란스럽게 전화하는걸 보니 또 녀석이 올 모양이다. 내 팔을 우악스럽게 잡아당겨서 옷을 벗기는 녀석, 나는 녀석 때문에 마네킹 병원을 두 번이나 다녀왔다. 그래도 녀석의 엄마는 아무렇지 않은 표정이었다. 녀석이 올 때마다 기분 나쁘다.

잘난 척은 얼마나 하는지 모른다. 눈도 쭉 찢어지고 뚱뚱해서 볼에 욕심보까지 그득히 쌓인 녀석이다. 녀석의 엄마는 입에 찰떡을 붙인 것처럼 ‘우리 왕자님, 우리 왕자님’ 하고 부른다. 녀석은 진짜 왕자라도 된 것처럼 민지 누나한테도 ‘아줌마, 옷 관리를 잘 해야죠! 뭐가 묻었잖아요’ 라든지 어쩌다 제 맘에 들지 않는 옷을 누나가 입어보라고 하면 ‘아줌마는 왜 그렇게 촌스러워요?’라는 말을 서슴지 않고 한다.

조그만 녀석이 어른한테 하는 말버릇이란……, 쯧쯧. 말이야 바른말이지 내가 이 유리벽 안에서 밖을 내다보면 녀석보다 훨씬 더 잘생긴 아이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아이고, 우리 왕자님만 딱 어울리는 옷이네.”

내 옷을 벗긴 녀석의 엄마가 이렇게 말했을 때 하마터면 나는 큭큭, 웃음이 터지려는 걸 참느라 혼난 적이 많다.

피아노학원, 태권도학원, 무용학원…….

아이들이 가방을 메고 지나가고 노란 차들이 많이 지나가는걸 보니 녀석도 학원을 마칠 시간이 되어 가나보다. 유리문 밖에 새까맣고 커다란 차가 한 대 끼익, 멈춘다. 녀석의 엄마 차다. 꾸벅꾸벅 졸던 민지누나는 벌떡 일어나 차 문 앞에까지 가서 허리가 기역자로 부러질 것처럼, 인사를 한다.

하기야 누나도 안됐다. 녀석 엄마 같이 남을 은근히 무시하고 눈을 아래를 향한 채 꼬치꼬치 까다롭게 구는 아줌마들에게 언제나 싹싹하게 웃으면서 말해야 한다. 그래야 이 집에서 오래 일할 수 있다는 걸, 누나보다 3년이나 먼저 이 집에 온 나는 잘 안다. 그동안 더러워서 못해먹겠다고 그만둔 누나들이 몇 명이나 된다.

차에서 내린 녀석이 문을 확 밀치고 들어온다.

“미스 주, 새로 온 무스탕이 이거야?”

녀석의 엄마가 내 팔을 사정없이 돌린다. 팔이 또 떨어지는 줄 알았다.

“에이……, 가죽이 별론데?”

“아이고, 사모니임, 이 무스탕 구하기 얼마나 어려운지 아세요? 정말로 여우털이라니까요! 부영이한테 입혀볼까요, 사모니임?”

누나도 주인아줌마에게 거짓말하는 걸 많이 배운 것 같다. 녀석의 엄마는 옷을 반쯤만 벗기고서 뒤집었다가 긁어봤다가 당겨본다.

“내일 가지러 올 테니까 손질 잘 해 놓고…”

“사모니임 그러세요, 부영이 건데 누구한테 팔겠어요? 제가 잘 손질 해 놓을 테니 걱정 마세요, 사모니임.”

녀석의 엄마가 지갑에서 수표를 끄집어내더니 민지 누나한테 준다. 그동안 녀석은 가게 안 여기저기를 들쑤셔놓는다. 지난번에 왔을 때 녀석은 아이스크림 묻은 손을 코트 속에 집어넣기도 하고 바지에 슬쩍 닦기도 했다. 그런데 녀석의 엄마는 녀석이 묻힌 자국을 핑계로 코트만 달랑 벗겨놓고 가버렸던 적도 있다. 오늘은 녀석이 몇 번이나 나를 쿡쿡 찔렀다. 내가 입고 있는 이 옷을 요 녀석이 입고 다닐 거라 생각하면 무지 기분 나쁘다. 녀석과 녀석의 엄마가 가고, 민지 누나는 냉장고에서 물 한 컵을 따라 꿀꺽꿀꺽 단숨에 마시고 얼음까지 와자작 깨어먹는다.

사람들은 내가 입은 옷이 가볍고 따뜻하다고 하지만 나는 무스탕을 입고 있을 때 제일 무겁다. 상표에 동그라미가 많이 붙어서 그런 것 같다. 오늘은 눈이 내리려는지 건너편 빌딩 위에 하늘이 뿌옇다. 아침에는 옷을 몇 번이나 갈아입었다. 민지누나가 내 팔을 들어 올렸다가 오므렸다가 접었다가 온갖 포즈를 잡는 바람에 몸이 멍든 것처럼 아프다.

아함! 졸려. 졸면 안 되는데…. 주인아주머니가 문단속을 하고 나서 자야 할 텐데.

어? 머리를 한 묶음 묶은 여자애가 내 앞에 서 있다. 나를 본다.

아예 쪼그리고 앉아 턱까지 괴고서 쳐다본다. 그러고 보니 얘는 며칠 전 무스탕을 입고 있을 때도, 어제 옷을 막 갈아입었을 때도 나를 유심히 바라보고 간 것 같다.

“형, 저 누나 우는 것 같아.”

내 옆에 있는 다리 없는 스웨터 마네킹이 말한다. 또르륵 눈물이 발등에 떨어진다. 신발끈도 풀어져 너덜거리고 있다. 여자애가 깔끔하지 못하고서는…. 그렇게 나를 한참을 보다가 옆 골목으로 힘없이 걸어간다.

주위의 가게들이 불빛을 뱉어낸다. 어지러워! 어떤 불빛은 도깨비불처럼 휙휙 돌아다닌다.

깜빡 졸았는지 가게 안은 시계만 부지런히 어둠 속을 걸어 다니고 있다. 눈앞에 희미한 게 있다. 어? 아까 그 애…, 웅크려 누워있다. 거리에서 가끔 술 취한 아저씨들이 토악질을 해 놓고 잠든 건 보았지만…. 그렇게 자다가 큰일 난 아저씨도 있었다는데…. 옆 스웨터 마네킹도 잠이든 모양이다.

여기 오기 전에는 혼자서 잘 걸었는데 걸어본 지가 오래되어서 그런지 다리에서 삐그덕거리는 소리가 난다. 혼자 팔을 올려 문을 열기가 쉽지 않다. 스웨터 마네킹을 깨워 볼까 생각했지만 나보다 키가 작아서 소용없을 것 같다. 문고리는 돌아가는 듯하면서 멈추고 열릴 듯 하다가 제자리로 돌아간다. 그 여자애는 여전히 누워있다. 있는 힘을 다해 고리를 비틀었다.

철컥.

아야!

집게손가락이 움푹 접어졌다.

여자애가 누운 곳까지 가는 동안 머릿속이 왜 콩당콩당 뛰는지 모르겠다. 여자애는 부르르 떨고 있는 것 같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발등으로 여자애의 팔을 건드려 본다. 가만히 눈을 뜬다. 얼굴에 눈물자국이 얼룩얼룩 묻어있다.

"여기서 자면 어떡해?"

"……."

허리를 접어 보았다. 내 허리에서도 삐그덕거리는 소리가 난다. 어깨를 건드렸더니 움찔한다.

"일어나란 말야! 눈이 올 것 같단 말야."

"……."

"이런 데서 자면 큰일 나! 이 바보야!"

손을 조금 움직인다. 여자애의 손을 잡았다. 내 손보다 더 차갑다. 민지누나가 내 팔이나 손을 잡았을 때는 참 따뜻했었는데….

와당탕 쿵!

여자애를 일으키다가 내가 그만 넘어져 버렸다. 그러고 보니 내 속은 텅 비어있어서 많은 힘을 쓰지 못한다는 걸 깜빡 잊었다. 넘어져 버렸으니 큰일이다. 가만! 다치지 않았을까? 여자애 뒤에 벌러덩 누운 셈이다. 내 허리도 더 많이 굽어있을 것이다.

"그러니까 일어나라고 했잖아!"

무릎관절이 없어서 나 혼자 일어날 수 있을는지 모르겠다. 손을 바닥에 짚어본다. 힘의 반사를 이용해서 일어나야 한다.

얍!

핏!

안 되는군! 무슨 방법이 없을까?

나도 그냥 누워 버렸다.

"야! 너 왜 여기 누워있어? 그리고 아까 왜 내 앞에 앉아 있었니? 네 이름이 뭐야?"

"내…이…름……은 지수야……"

지수는 많이 떨려서 제대로 말을 잇지 못하는 것 같다.

"지수야! 나 좀 일으켜 줘봐."

얼굴에 차가운 것이 살짝 부딪힌다. 눈, 눈이다. 눈이 온다. 지금까지 구경은 많이 했지만 눈을 맞아보긴 처음이다. 내 몸은 차갑기 때문인지 눈이 잘 녹지 않는다. 기분이 참 좋다. 그런데 참!

가게를 나올 때 무스탕을 그대로 입고 나왔지? 무스탕에는 물이 묻으면 안 된다는데…, 녀석의 엄마가 내일 가지러 온다고 계산까지 하고 간 옷인데….

"지수야! 나 좀 일으켜 줘봐, 눈이 오잖아?"

한참이 지나서야 지수는 겨우 일어난 것 같다. 나를 일으켜 준다. 지수는 아직도 온 몸이 떨리고 있다. 눈이 제법 많이 쌓였다. 무스탕에도 눈이 희끗희끗 쌓인다. 지수 머리 위에도 눈이 쌓여 할머니 머리 같다. 입술은 새파랗게 얼어서 덜덜덜덜 달달달달 자꾸만 떨고 있다. 골목도 하얗게 변해가고 있다. 여전히 지수는 떨고 있다. 안되겠다. 가게 안으로 데리고 가야겠다.

민지누나는 정리정돈을 잘 하지 못하는 편이다. 그래서인지 민지누나가 퇴근하기 전에 꼭꼭 주인아주머니가 와서 가게를 말끔히 정리해 놓고 간다. 오늘은 내가 피곤해서 잠이 든 사이에 주인아주머니가 문단속을 하고 간 모양이다. 차곡차곡 잘 정리된 옷을 하나 끄집어내어 지수에게 덮어 준다. 지수의 얼굴은 창백하고 파리하다. 따뜻한 물 한 잔 주고 싶지만….

지수가 주머니를 뒤적거린다. 꼬깃꼬깃한 천 원짜리 몇 장을 내민다.

"고마워, 이거 너 줄게, 대신 이 옷 내가 가지면 안 돼?"

"이 무스탕 말이야?"

"응, 나 이 옷 꼭 있어야 돼."

"이게 얼마나 비싼 건데! 안 돼!"

"우리 오빠가 많이 추울 텐데…"

"저녁에 팔렸단 말야!"

"전기장판에는 아빠가 술에 취해서 주무시고 계실 텐데…"

"에이, 방 따뜻하게 온도 올려놓으면 되지!"

"……."

갑자기 지수가 훌쩍거린다.

"엄마가 계실 때는 따뜻했는데…. 혹시나 엄마 돌아오시면 이 옷 돌려줄게. 우리 오빠는 추워도 어디 갈 수가 없어. 움직이지도 못한단 말야!"

금방이라도 눈물 콧물이 흘러내릴 것만 같다.

"우리 오빠는 말도 못해. 태어날 때부터 많이 아팠었대."

술에 취해서 오빠와 지수를 때리고 자주 쫓아내는 지수 아버지. 오늘은 일을 할 곳을 찾지 못해서 아침부터 술에 많이 취해있었다고 한다.

"사실 아빠도 많이 속 상하실 거야."

이 무스탕을 덮어주면 오빠는 춥지 않을 것이라고, 그래서 몇 번이나 내 앞을 기웃거렸다고.

밖에는 계속 눈이 오고 있다. 날이 새면 녀석의 엄마가 무스탕을 가지러 올 텐데….

스웨터 마네킹 쪽에서 딸꾹질 소리가 난다. 잠이 깨서 다 들어버린 모양이다. 우리 마네킹들은 눈물은 나오지 않는데 가슴이 찡하면 가슴에서 곧장 딸꾹 딸꾹 소리가 난다. 나는 지금까지 추운 것이 어떤지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었다. 겨울에도 이 유리문 안에서 무스탕을 입고 따뜻하게만 지냈기 때문에. 그리고 이 무스탕은 내 것도 아니다. 지수한테 무스탕을 주고 나면 나는 쫓겨날지 모른다.

"형, 줘버려! 어차피 부영 엄마는 저 무스탕 안 가져 갈 거야. 형이 눈을 많이 맞아버렸잖아!"

스웨터 마네킹이 울먹이며 말한다.

"미안해, 나중에 꼭 갚을게."

"그래! 꼭 갚아야 돼!"

어떻게 말을 해야 어색하지 않게 잘 하는 건지 민지누나한테 좀 배워놓을 걸 그랬나 보다.

"울지 않고 잘 견뎌야 하는 거야. 알았냐? 10년은 거뜬히 입을 수 있을걸!"

스웨터 마네킹이 내 팔을 들어 올려 무스탕을 벗기고 지수에게 준다.

지수가 유리문 앞에서 손을 흔든다.

'고ㆍ마ㆍ워! 꼭 갚을게'

손나발을 만든 입에서 입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른다.

골목에는 어젯밤 쌓인 눈이 꽁꽁 얼어있다. 햇살이 콧등에 살포시 앉는다. 민지누나가 노래를 흥얼거리며 문을 밀고 들어선다.

"어?, 어어, 으악!"

온통 들쑤셔져 있는 가게를 보고 있는 민지누나의 눈동자가 밖에 쌓인 흰 눈처럼 하얗다. 허둥지둥 전화기를 집어 든다.

"여보세요? 여보세요! 사모님! 어제 가게 문 안 잠그고 가셨어요?"

나는 모른 척 유리문 밖을 보고 있다.

<끝>


출처 : 권오삼 동시마을
글쓴이 : 물안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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