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줏간 주인이 고기 한 칼 썩썩 썰어 척, 저울에 올리자 바늘이 바르르 떤다 그의 손대중이 저울눈 하나를 겨냥해 잠시 그 경계를 넘나들다가 딱 그 눈금에서 멎는다 얼마나 칼질을 해댔으면…… 칼 쥔 손에 저울눈 하나가 직감처럼 꽂힐 때까지 마음의 저울추가 수도 없이 진자운동을 거듭했으리라 모자라서 보태고, 넘쳐서 덜어내는 모자람과 넘침이 오락가락 셀 수도 없었으리라 내 몸에 던져지는 생의 부하를 짚어내면서 내 안에서도 저 저울처럼 바늘 하나가 수도 없이 흔들렸다 모자람과 넘침 사이에서 흔들림이 계속되고 있다 살코기 한 덩이에 요동치는 저울처럼 내 몸도 등짐이라도 끙, 지고 일어설 때면 바르르 떨던 것이다 나는 내 몸이 감당할 수 있는 무게를 가늠하며 저 푸줏간의 저울처럼 참 많이도 흔들리며 살아온다 저울은 이제 평정을 되찾았다 생의 무게를 내려놓고서야 꺾인 허리 반듯이 펴지던 어머니처럼.
정재영
▲1952년 순천 출생 ▲한양대 행정대학원 졸 ▲국세청 전산정보관리관실 근무
[시 심사평] 일상에 독특한 시선탄탄한 구성력 돋보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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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등록 : 2007-01-01 오후 7:21:03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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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열네 명의 작품이 본심에 올라왔다. 평균 다섯 편 안팎을 응모했으니 예순 편쯤 되는 작품을 읽은 셈이다. 이 가운데 정재영(‘몸의 저울눈’ 외), 이병철(‘수평선’ 외), 변호이(‘길’ 외) 세 명을 최종심에 올리는 데는 어렵지 않게 의견을 모을 수 있었다. 다른 사람들의 시도 본심에 올랐던 만큼 일정한 수준을 갖추었고 소양도 충분했지만, 크게 다음과 같은 단점들이 눈에 띄었다. 첫째, 시를 어떻게 써야 하는지는 알고 있으나 무엇을 써야 할지를 모르고 있다. (쓸 거리가 보이지 않는 시, 즉 왜 썼는지를 모르겠는 시) 둘째, 위와는 반대로 소재나 주제는 괜찮은데 시적 효과를 제대로 살리지 못하고 있다. 셋째, 기성시인의 작품이라면 문예지 등에 발표해도 무난하겠지만, 신예의 등단 작품으로는 아쉽다. (패기나 참신함이 없다. 혹은 밋밋한 소품이다.) 변호이의 시 ‘길’은 여러 미덕을 갖췄다. 독창적이고 내성적이고 시를 밀고 나가는 사고의 힘도 예사롭지 않았다. 하지만 “아버지는 덴마크 장기(臟器) 어디쯤/숨어계셨습니다 감쪽같이/스물 세 해를 속았습니다” 같은 구절이 보풀처럼 걸렸다. 정재영과 이병철을 놓고 으뜸과 버금을 가르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두 사람 다 제가끔 탄탄한 세계를 보여줬다. 이병철의 ‘수평선’은 감각적 표현이 돋보이는 섬세하고 깔끔한 시다. 요즘 우리 시단에 이런 시의 수혈이 필요하다는 데 심사자들의 의견이 일치했다. 이 작품을 떨구는 데는 적잖은 용기와 결단이 필요했다. 근간 다른 매체를 통해서라도 그의 시들을 만나게 되리라 믿어마지 않는다. 정재영이 데뷔하는 무대에 에스코터가 된 것을 우리는 기쁘게 생각한다. 당선작 ‘몸의 저울눈’은 작은 일상적 사건에서 삶의 무게와 균형과 흔들림을 짚어내는 솜씨가 인상적이었다. 응모한 시 전부 힘 있는 게 아주 긍정적이다. 거듭 축하하며 문운과 건필을 빈다.
▲충북대 국어교육과 졸 ▲1984년 동인지 ‘분단시대’로 등단 ▲1987년 제7회 민족예술상 수상 ▲‘사람의 마을에 꽃이 진다’, ‘접시꽃 당신’, ‘해인으로 가는 길’ 등 시집 다수.
▲서울예전 문예창작과 졸 ▲1984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당선 ▲1999년 동서문학상, 2004년 제23회 김수영문학상 수상 ▲‘슬픔이 나를 깨운다’, ‘나의 침울한, 소중한 이여’, ‘자명한 산책’ 등 시집 다수 |
[시 당선소감] 갈증과 결핍감이 내 습작의 동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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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등록 : 2007-01-01 오후 7:21:03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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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는 나에게 갈증 같은 것이었다. 마셔도 마셔도 가시지 않는 목마름 같은 것이었다. 이 갈증과 결핍감이 내 습작의 동력이었다. 건천의 돌밭 같은 언어의 지층에 깊숙이 가라앉은 시의 물줄기를 찾아 바닥을 헤매온 지 어언 20년. 어쩌면 내 삶 자체가 늘 조갈에 시달리며 콸콸치솟는 수맥을 찾아가는 도정일 테지만, 오늘은 건천의 돌바닥에 단비가 뿌려지듯 해갈의 소식. 기쁘다. 나는 금세 축축이 젖었다. 맨손으로 건천의 돌밭을 파헤치듯 시는 머리가 아니라 손끝에서 우러나야 한다는 스승의 가르침이 언뜻 머리를 스친다. 언어 이전에 현실에 밀착하고, 삶에 밀착할 때 시는 한 줄기 청량한 수맥으로 그 정체를 드러낸다는 것이다. 스승은 또 내 목마름을, 나를 넘어 타자를 향해 투사하는 연민을 시의 방법론으로 가르치셨다. 그것은 세상 모든 물상들로부터 영성을 이끌어내는 물활론에 닿아있었다. 내 시는 불볕에 달궈진 건천의 돌밭에서 단비를 갈망하는 눈빛을 읽어내는 것이었다. 대상을 향한 자아의 투사로 요약되는 이 시 창작의 기조를 계속 유지하면서 나는 이제부터 새로운 습작기로 들어선다는 마음가짐으로 시를 살고 삶을 살 것이다. 뽑아주신 심사위원님들께 엎드려 감사의 말씀 올린다. 오늘의 내가 있기까지, 빗나간 내 시의 안목을 바뤄 주시느라 노심초사 애쓰시고 심려가 많으신 박제천 선생님께 큰절 올린다. 시에 대한 열정을 키워오면서 서로 격려와 조언을 마지않았던 문학아카데미 시창작반 문우들과 당선의 기쁨을 함께 하고 싶다. 곁에서 묵묵히 지켜봐 준 아내와 두 아이들과도 이 기쁨을 나누고 싶다.
정재영
▲1952년 순천 출생 ▲한양대 행정대학원 졸 ▲국세청 전산정보관리관실 근무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