永郞 金允植論
- '燭氣'와 '이슬'의 美學 -
1. 緖論
'北에는 素月 南에는 永郞'이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김영랑을 김소월과 같은 맥락의 시인으로 파악한 말이며, 김영랑이 서정시인인 동시에 국민적 정서를 대변한 민요적 시인임을 강조한 말일 것이다.
김영랑은 그만큼 한국 시문학사상 현저하게 솟아 있는 큰 봉우리라고 할 수 있겠다.
그는 1930년 [시문학] 창간호에 13편의 시를 선보임으로써 시단에 나온 이래, 1950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약 20년 동안 80여 편의 품을 발표하였다. 한국시사에서는 특히 1930년대를 중시하는데, 이는 엄밀히 말해서 <시문학파>의 업적에 준거한 것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볼 때 김영랑의 두드러진 활동을 주시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지금까지 발표된 김영랑론의 성격을 분류하면 대략 다음과 같은 몇 가지로 대별할 수 있을 것이다.
첫째는 김영랑을 순수 서정시인으로 평가하고, 특히 한국의 전통적 정서를 민족언어의 운율에 얹어 표현하였음을 강조하는 경우가 것이다. 이러한 평가는 김영량의 시에 내려지는 가장 일반적이며 보편적인 평가라고 할 수 있겠다.
둘째는 김영랑이 순수서정시에 경도되어 있음을 강조함으로써 부상되는 부정적인 측면이다. 이는 김영랑이 사회 의식이나 현실 의식과는 무관하게, 평이하고 안일하며 개인적인 정서만을 읊은 시인이라 것이다.
세째는 김영랑의 언어 인식을 중심으로 심미적 내지 유미주의적인 경향에 집중적인 관심을 두고 리듬과 어휘를 분석한 평가가 으며, 이밖에도 김영랑시에 끼친 외국 시인의 영향을 비교문학적 측면에서 고찰한 논문도 다.
필자는 김영랑을 서정시인으로 보면서, 동시에 민족의 암흑기를 살아온 그가 그 어둠을 어떻게 여과하고 극복하였으며 어떻게 승화시켜 서정시로 표현하였는가에 중점을 두어 고찰하고자 한다.
한 시인을 평가함에 있어서 흔히 시인으로서의 뛰어난 명징함과 독특한 감각에 역점을 두지 않고, 그 시인이 얼마나 투철한 사회적 의식을 가졌는가, 그 시인이 어떻게 저항하고 고발하였으며 얼마나 투쟁하였는가에 비중을 두는 경향이 있다.
현실을 몰각하고서는 시도 시인도 존재할 수가 없다.
예술(시)에는 어떤 형태로든지 그 역사와 현실이 반영되어 있을 수밖에 없다. 투철한 현실적 이념을 가지고 온몸으로 도전하고 혹은 고발하는 시가 있는가 하면, 우울하고 한스러운 목소리를 신음처럼 토로하는 시도 있을 수 있다. 혹은 오히려 역으로 찾아낸 탈출구에서 갱생을 모색하면서 힘을 모으는 노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들의 공통점은 다 같이 현실을 반영하였다는 점일 것이다.
시인은 현실개조가와도 다르고 사회운동가와도 구별되어야 한다. 우리는 시인이 언어예술가로서 가객에 가장 가깝다는 것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다만 여기 부연할 말이 있다면 시인은 가객이되 예언적 가객이며 대변자로서의 가객이라는 점일 것이다.
시에서는 이념이 이념 그대로 나타날 때, 시의 예술성을 훼손하고 윤기를 잃어버리게 할 염려가 있는 것이다. 시인은 현실과 역사를 시인이 아닌 사람들보다 아프게 인식하여야 한다. 그러나 은유와 상징과 여과의 과정을 거쳐서 직접 고발이 아닌 형상화된 표현일 때, 시로서도 성공할 것이며 시와 독자와의 예술적인 공감대가 형성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역사적 위기에서 민족의 고난을 깊이 고뇌하고 통찰한 시인들이라 해도 작품세계가 모두 같은 것은 아니다. 尹東柱의 시에는 윤동주만이 느끼고 있는 자책감이 있고, 沈薰의 시에는 또 심훈만이 가지고 있는 격앙된 목소리가 반영되어 있는 것처럼, 李陸史의 시에는 이육사만이 지니고 있던 높은 기개가 있는 것이다.
金永郞의 시에는 김영량의 개성과 삶의 형태에 의해서 김영랑만이 나타낼 수 있는 세계가 있으며, 그러한 차이성은 신동욱이 지적한 대로 '김영랑의 시적방법과 삶의 관계가 결합된' 세계인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세계의 선택은 우연이 아니라 시인의 '인성, 기질, 교양, 신념, 세계관 등의 종합적인 관여에 의한 필연적인' 결과 로 나타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지 않고 역사 인식이 부족하다거나 도피와 은둔의 문학이라고 타기하기만 한다면 시를 예술의 영역으로부터 사회과학의 영역으로 내모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여기 덧붙여 말하고 싶은 것은, 현실에 대결하는 시 혹은 민족의 위기상황에서 저항의식을 표출한 시의 성격, 그 방법과 성격과 한계를 재고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점이다.
그것은 반드시 단순하고 평면적이며 일차적인 의미의 외침으로 나타나야 하는 것인가? 단순하고 평면적이고 설명적인 외침으로 나타났을 때, 의미는 비록 강할지라도 시적 형상미가 여지없이 파괴되는 것은 아닐까?하는 문제에 대해서 우리는 다시 생각하지 않으면 안된다. 왜냐하면 그것이 다름 아닌 '시'이기 때문이다. 표면적으로는 순수시의 모습을 취했을지라도, 그 가운데는 혹은 상징으로 혹은 은유로 표현되는 의미망이 얼마든지 있을 수 있으며, 그것이 오히려 '시로서의 가치'를 선양할 수 있지 않을까 재고해 볼 필요가 있다.
시가 가지고 있는 함축성과 애매모호성, 그리고 비유적인 표현은 얼마든지 동일한 시의 다양한 해석을 가능하게 한다. 따라서 필자가 김영랑연구를 순수시인이며 서정시인으로서의 김영랑이라는 판단으로부터 연역하려는 것은 결코 김영량의 시적 가치를 축소하려는 의도가 아님은 물론이고 소흘히 여긴 결과도 아니다. 김영랑은 김영랑의 방법으로 노래하고 김영랑의 방법으로 도전했으며 김영랑의 방법으로 저항하였음을 강조하고 싶다.
본고에서 필자는, 김영랑이 그의 시에서 '찬란함'과 '슬픔'을 어떻게 공존시켰으며 소위 그의 '촉기'가 필자가 생각하고 있는 광명의식과 어떤 연관을 가지고 있는가를 살펴보고자 한다. 또한 형식미에 치중했던 김영랑의 축소지향적 경향을 고찰하겠으며, 이를 위하여 김영랑이 빈번하게 운용하였던 시어, '이슬'의 이미지를 분석하려고 한다.
마지막으로 김영랑이 공백기를 거친 이후 후기에 이르러 점차 형식미보다 내용적 의미에 치중하였던 것을 중시하면서 '세기적 절망'에서 그가 모색하였던 것은 무엇이었는가를 살펴보고자 한다.
후기에 이르러서 김영랑은 소위 역사적 인식의 촉수를 밝혀 초기의 방법과는 다르게 표현하고 있다. 그러나 후기의 시는 그가 역사와 민족의 아픔에 무심하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해 주었다는 의미 외에 특별한 시적 가치를 발견하기는 어렵다. 다시 말해서 김영랑이 후기에 발표한 시는 그 문학성에 있어서 초기의 시에 비하여 매우 허약하다는 것이다.
우리는 후기에 달라진 김영랑의 시가 곧 후기에 달라진 김영랑의 민족정신을 대변하는 것으로 이해해서는 안될 것이며, 오히려 후기에 해이해진 시적 방법을 발견하는 편이 훨씬 더 정확하리라고 생각한다. 여기 인용한 시들은 문학세계사 간행된 김학동 편저 [모란이 피기까지는]에 수록된 작품 제목을 따랐으며, 맞 법 등은 이해를 쉽게 하기 위해서 현대맞춤법으로 고쳤음을 밝힌다.
2. 本論
1) 金永郞의 '燭氣'와 光明意識
김영랑의 시적 행보는 [시문학] , [문학] 등의 문학지에 <동백잎에 빛나는 마음>, <언덕에 바로 누워>, <4행소곡> 7수, <제야>, <원망>, <누이의 마음아 나를 보아라>, <쓸쓸한 뫼 앞에> 등 13편의 서정시를 발표함으로 시작되었다.
[시문학]은 1930년 3월에 창간된 잡지로 편집인 겸 발행인이었던 박용철은 그 후기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여 그들이 지향하고 있는 시적 방향을 제시하였다.
'우리는 시를 살로 색이고 피로 쓰듯 쓰고야 만다. 우리의 시는 우리 살과 피의 맺힘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시는 지나는 걸음에 슬쩍 읽어 치워지기를 바라지 못하고 우리의 시는 열 번 스무 번 되씹어 읽고 외여지기를 바랄 뿐. 가슴에 느낌이 있을 때 절로 읊어 나오고 읊으면 느낌이 일어나야만 한다. 한 말로 우리의 시는 외여지기를 구한다. (중략) 한 민족이 언어가 발달의 어느 정도에 이르면 구어로서의 존재에 만족하지 아니하고 문학의 형태를 요구한다. 그리고 그 문학의 성립은 그 민족의 언어를 완성한다'
'외여지기를 바란다'는 것은 음악적인 율격을 염두에 두고 있음을 시사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또 문학의 성립과 민족 언어의 완성 관계를 밝혔는데 이는 1930년부터 눈뜨기 시작한 시어에 대한 자각을 암시한 것이라고 보아도 될 것이다. [시문학]은 그만큼 한국의 시문학사에서 언어미의 완성이라고 할 수 있는 시적 발견 내지 발전에 앞장 섰던 것인데, 김영랑은 [시문학]이 지향하는 목표의 선두에 섰었다고 할 수 있다.
김영랑이 그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 <내 마음 고요히 고흔 봄길 위에>, <가늘한 내음>, <꿈밭에 봄마음>, <하늘끝 닿은데>, <사행소곡 5수>등 9편의 시를 시문학 2호에, <내 마음을 아실 이>, <4행소곡 5수>, <시냇물 소리>등 7편의 시를 [시문학] 3호에 발표하는 등 그의 초기시의 작품을 모두 <시문학>에만 게재한 것을 보아도 그것을 알 수 있다.
영랑의 초기시에서 발견할 수 있는 특징으로서 흔히 자아의 내면에 바탕을 둔 섬세한 감각과 민요적 율조가 지적되고 있으며, 이 시기의 시를 '燭氣'라는 단어로 규정하기도 한다.
'燭氣'란 말에 대해서는 시인 자신이 다음과 같이 그 어의를 해석하고 있는데, 이것은 원래 서정주가 김영랑을 회상하는 글에서 밝힌 내용이다. 이 말은 근래에 들어 김영랑시 연구에 빈번하게 인용되고 있다.
남창으론 임방울의 소리를 좋다 하고 여창으로 이화중선과 그 아우 이중선의 소리를 좋다고 소개하면서 특히 이중선의 소리엔 '燭氣'가 있어 더 좋다고 했다.
'燭氣'라 하는 것은 무엇인가 물으니, 그것은 같은 슬픔을 노래부르면서도 그 슬픔을 딱한데 떨어뜨리지 않는 싱그러운 음색의 기름지고 생생한 기운을 말하는 것이라 했다.
'슬픔을 노래부르면서도 그 슬픔을 딱한데 떨어뜨리지 않는' 생생한 기운을 '촉기'라고 정의한 김영랑은 자신의 시에서 충분 그 촉기를 살렸다고 볼 수 있다. 이것은 육자배기를 비롯한 우리 민요의 전통적 정조를 시에서 구현했다는 말이 된다. 그리고 '같은 슬픔을 노래부르면서도 그 슬픔을 딱한데 떨어뜨리지 않고 싱그러운 음색의 기름지고 생생한 기운'으로 바꾸어 '찬란한 슬픔'이 되게 하였다는 말도 된다.
'찬란한 슬픔'은 김영랑 자신이 정의한 '촉기'의 가장 대표적인 형상화라고 할 수 있다. 표면적으로 볼 때, '찬란한'과 '슬픔', 이 두 말의 조합에는 아이러니가 있다. 그러나 '슬픔'과 '찬란함' 사이의 거리가 멂으로 인해서 발생되는 긴장감, 참신함과 당돌함은 결과적으로 시의 탄력을 강화시켰다고 볼 수 있다.
'찬란한 슬픔'이 함축하고 있는 또 하나의 의미는, 단지 슬픔 때문에 나락에 떨어질 수 없고 슬픔 때문에 위축되어 곤궁한 모습을 보일 수 없다는 김영랑의 의지라고 할 수 있다. 김영랑의 이러한 의지에 대해서,
'이는 슬픔을 슬픔으로 받아들이지 않으려는 의지를 나타낸다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해서 그 슬픔은 새로운 기다림과 보람을 잉태할 수 있는 근원으로서의 슬픔이므로 찬란하게 빛날 수도 있는 것이다'
라고 지적한 유윤식의 말은 매우 설득력이 있다고 할 수 있겠다.
필자는 그런 의미에서 김영랑의 '촉기'는 곧 어떠한 슬픔 속에서도 소멸하지 않는 '찬란함'이며 그것은 김영랑의 '광명의식'에서 연유된 것이 아닌가 하는 견해를 피력하고 싶다.
영랑의 즐겨 쓰는 시어에는 '내 마음'과 함께 '슬픔', '눈물'이라는 명사를 지적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슬픔'과 '눈물'은 단순한 비애에 머물지 않으며 배후에 보다 큰 광채를 숨겨 가지고 있다. 그는 눈물을 씻어내고 일어설 수 있는 여력을 스스로 마련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특징은 김영랑 시의 긍정적이고도 거대한 힘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의 대표작으로 알려진 <모란이 피기까지는>을 읽으면서 그의 광명의식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표출되어 있는지 살펴보도록 하자.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나의 봄을 기다리고 있을테요
모란이 뚝뚝 떨어져 버린 날
나는 비로소 봄을 잃은 설움에 잠길테요
오월 어느 날 그 하루 무덥던 날
떨어져 누운 꽃잎마저 시들어 버리고는
천지에 모란은 자취도 없어지고
뻗쳐 오르던 내 보람 서운케 무너졌느니
모란이 지고 말면 그뿐 내 한해는 다 가고 말아
삼백 예순날 하냥 섭섭해 우옵네다.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기다리고 있을테요. 찬란한 슬픔의 봄을
- <모란이 피기까지는> 전문 -
이 시에서 표현하고자 한 정서는 좌절이나 포기가 아니다. 화자가 '봄을 잃은 설움에' 잠겨서 '삼백 예순날 하냥 섭섭해' 운다고 고백했다 해서 이 시의 주정서를 슬픔이라고 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는 모란이 진 후, 허무하게 무산된 한 해를 섭섭히 여기면서 운다고 하였지만, 그는 다시 '나는 아직 기다리고 있을레요'라고 새로운 기다림으로 자신을 추스리고 있음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그의 기다림은 모란이 다시 피어날 '나의 봄'까지로 연결되는 희망이 있는 기다림이다. '삼백 예순날 하냥 섭섭해' 우는 것으로 끝내지 않고 '찬란한 슬픔의 봄'을 기다리는 또 하나의 보람을 마련하고 있는 것은 김영랑이 보여 주는 지칠 줄 모르는 의지인 동시에 가치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김영랑의 슬픔과 애닯음 혹은 서러움도 다른 사람의 경우처럼 상실과 애상의 정서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그 저변에는 광명의 통로를 마련하고 있어서 완전히 '딱한 데 떨어뜨리지 않'고 '싱그러운 음색의 기름지고 생생한 기운'을 가지게 된다.
그는 자연적 계절로서의 봄과 모란이 피는 나의 봄을 구별하고 있다. 온갖 기화요초가 만발하여도 모란이 피기까지는 아직 봄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시인의 모습은 개별적인 특수성을 넘어서 아름다운 지조의 지향성으로 다가선다.
-전략-
수풀과 벌레는 자고 깨인 어린애
밤새어 빨고도 이슬은 남았다.
남았거든 나를 주라.
나는 이 청명에도 주리나니
방에 문을 달고 별을 향해 숨쉬지 않았느뇨
햇발이 처음 쏟아와
청명은 갑자기 으리으리한 관을 쓴다
그때에 토록하고 동백 한알은 빠지나니
오! 그 빛남 그 고요함
간밤에 하늘을 쫓긴 별쌀의 흐름이 저러했다.
-후략-
- <청명> 중에서 -
수풀과 벌레는, 어린애가 어미 젖을 먹듯 밤새 이슬을 빨아 배가 부르지만 시의 화자는 그렇지 못하다. 그렇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그는 전혀 궁색해 보이지 않으며 '으리으리'한 광채의 관을 쓰고 있는듯 부유하고 여유롭기까지 하다. 시인은 그 이유를 '방에 문을 달고 별을 향해 숨쉬'고 있는 축복을 누리기 때문이라고 밝히고 있다. 사방에는 바람을 막아주는 벽이 있고 문을 달고 사는 것도 축복이지만, 별을 향해 숨쉴 수 있는 축복이야말로 배부른 축복보다 낫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남았거든 나를 주라. / 나는 이 청명에도 주리나니'는 주리고 있는 사람의 궁색한 청원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햇발', '으리으리한', '빛남', '별쌀'등의 어휘가 환기하는 전체적인 시의 분위기는 밝고 명랑한 광명에 차 있으며, '토록'하고 동백 알 빠지는 양성모음의 소리 또한 경쾌하고 영롱하게 들린다. 우리는 보통 동백 알이 빠진다 하지 않고 떨어진다고 한다. 그러나 이 시인이 '동백 한알은 떨어지나니'라 하지 않고 굳이 '빠지나니'라고 한 것은 '떨어지다'란 말이 환기하는 추락의 의미를 의도적으로 피한 것이 아닐까 한다. 그는 '빠지나니'에서 마치 암탉이 알을 낳듯이 동백나무가 동백알을 낳는 형상을 무의식 속에서 연상하였으리라 추측할 수 있다.
김영랑은 동백 잎사귀와 햇발의 윤기, 마치 '으리으리한 관을 쓴' 듯 빛남과 고요함으로 알이 빠지듯 영롱한 소리를 내며 빠지는 동백알의 형용에 참지 못하고 '오!'라는 한 음절로 축약된 감탄사를 발한다. 그리고 거기서 문득 '간밤에 하늘을 쫓긴 별쌀의 흐름이 저러했다'고, 밤 하늘을 긋고 지나가던 긴 유성의 흐름과 그 빛을 생각해 낸다.
다시 다음의 시를 보자.
돌담에 속삭이는 햇발같이
풀아래 웃음짓는 샘물같이
내 마음 고요히 고운 봄길 위에
오늘하루 하늘을 우러르고 싶다.
새악시 볼에 떠오른 부끄럼같이
시의 가슴을 살포시 젖는 물결같이
보드레한 에매랄드 얇게 흐르는
실비단 하늘을 바라보고 싶다.
- <내 마음 고요히 고흔 봄길 우에> -
김영랑의 대표작 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는 이 시는 한 마디로 전 편이 광채로 가득 차 있다. 세상사에 대한 번뇌나 고통이 없음은 말할 것도 없고 김영랑시에서 더러 발견할 수 있는 옅은 우수의 그늘도 없다.
<모란이 피기까지는>에서 시인은 '삼백 예순날 하냥 섭섭해 우옵네다'라고 미흡하여 서운해하는 심정을 노정하였으며, 비록 '찬란'하다고는 해도 '슬픔'이 있는 봄임을 고백하였다. 또 <청명>에서도 (이슬이) '남았거든 나를 주라'고 솔직하게 요구하면서 '나는 이 청명에도 주리나니'라고 선명하게 그 처해 있는 상황(주림)을 표출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내 마음 고요히 고흔 봄길우에>는 그렇지 않다. 어둡거나 무겁거나 답답한 것이라곤 아무것도 없다.
1연에서는 하늘을 우러르고 싶은 내 마음을, 돌담에 속삭이는 햇발의 눈부심과 풀아래 웃음짓는 샘물의 영롱함으로 비유하고 있다. 2연에서는 하늘과 내 마음을 대비하여, 하늘은 보드레한 에매랄드 얇게 흐르는 실비단 하늘, 내 마음은 새악시의 부끄러움과 시의 가슴을 적시는 물결 같음을 비유로 제시하고 있다.
<내 마음 고요히 고흔 봄길우에>는 그 제목이 환기하고 있는 것처럼 조용함과 따뜻함과 편안함이 십분 발휘된 시라고 할 수 있다. 거대한 소망은 아니지만 이 시인이 응시하고 있는 것은 '내 마음'이 지향하고 있는 선한 목적지이며 그곳은 멀고도 아름다운 어느 곳인 것이다.
시는 고통을 담아내는 그릇만은 아니다. 고통의 크기와 시의 중량도 별개의 것이며 표면에 드러나는 의미와 시의 가치 또한 일치하지 않는다. 독자는 이 시를 읽는 동안 티없이 맑은 정서를 회복할 수 있을 것이며, 이러한 정서의 순화야말로 가장 중시해야 할 시의 가치인 동시에 목표가 아닐까 한다.
<내 마음 고요히 고흔 봄길우에>는 4행연이 두번 반복되는 시이다. 이 시에서 특히 두드러지는 것은 서로 대칭되는 말들이 여러 쌍 있다는 것이며, 그들을 정리하면 아래와 같다.
돌담에 : 풀아래
속삭이는 :웃음짓는
햇발같이 :샘물같이
부끄럼같이 : 물결같이
오늘하루 하늘을 : 실비단 하늘을
새악시 볼에 떠오른 : 시의 가슴을 살포시 젖는
우러르고 싶다 : 바라보고 싶다.
이 시는 자연의 순수함과, 순수한 자연을 닮으려는 인간의 소망이 가장 원만한 상태에서 조우하고 있어 독자에게 안정감을 준다. 이러한 시는 암담하고 절망적인 세상을 잠시 뒤로 밀어 두고서, 인간 본연의 모습으로 선경에 이르고자 하는 이상적 심정을 표현한 것일 것이다.
내 마음 어딘듯 한편에 끝없는 강물이 흐르네
돋혀오르는 아침날 빛이 빤질한 은결을 돋으네
가슴엔듯 눈엔듯 또 핏줄엔듯
마음이 도른도른 숨어 있는 곳
내마음의 어딘듯 한편에 끝없는 강물이 흐르네
- < 동백잎에 빛나는 마음> -
시인은 부단히 사유하고 부단히 지향하는 마음의 상태를 '끝없는 강물'로 표상하고 있다. 그는 강물의 소재를 명확하게 인지하고 있지 않다. 막연히 '어딘듯 한편'이라고 하여서 어느 구체적이고 한정적인 장소를 지칭하지 않았다. 어디라고 딱 짚어서 지적하기 어려운 애매한 소재, 이것은 역설적으로 전체와 전신적인 것을 암시한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이 시는 외견상으로 이렇다할 장애물이 느껴지지 않는다. 장애물이 느껴지지 않으므로 저항도 갈등도 표면화 되지 않았으며 거부감도 비탄도 드러나지 않는다. 그러나 시인이 자신의 내면 어딘가에 흐르고 있는 강물을 인식하였다는 것은 존재와 생명을 확인하였음을 비유한 것일 아닐까? 그렇다면 그는 왜 새삼스럽게 당연한 그것을 확인하게 되었을까? 이에 대하여 신동욱은
'이 노래에는 한국인의 생명이 전체적으로 위협받고 있다는 시대에 대한 자기 확신으로서 영원적 생명을 시화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일제치하라는 정치적 제도적인 측면에서는 주체자가 가리워졌지만 이 시인의 내심의 세계에서는 강물과 같이 줄기차게 살아 있고 "빤질한 은결을 도도네"와 같이 생동력 있게 살고 있음을 확신하고 있다' 라 말하여 의도적인 표현임을 강조하였다.
김영랑이 이 시를 통하여 나타내고자 하는 특수한 정서는, 끝없이 지속되는 흐름에서 오는 상실감도 아니고 변화 속에서 느낄 수 있는 무상이나 허무감도 아니다.
우리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진행하면서 변화하는 강물의 흐름처럼 살아가고 있는 시인의 모습을 만나게 된다. '돋혀오르는 아침날빗이 빤질한 은결을 돋으네'라고 하여 김영랑은 애정에 넘치는 사물 인식의 시선을 드러냈으며, '가슴엔듯 눈엔듯 핏줄엔듯' 절실하게 감지되는 생명의 희열을 나타내었다. 김영랑의 음성은 전혀 높지 않다. 그는 다만 따뜻하게 바라보고 부드럽게 말할 뿐이다.
이 시는 한 마디로 아름답다. 이 시를 아름답게 하는 조건 역시 광명이다. 광명은 시각적인 빛으로만 오는 것이 아니고 사물을 받아들이는 긍정적인 마음의 상태가 좌우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받아들임'의 상태는 사물에 대한 애정에 의해서 결정된다.
비개인 5월 아침
혼란스런 괴꼬리 소리
찬엄한 햇살 퍼져 오릅내다
이슬비 새벽을 적시울 즈음
두견의 가슴 찢는 소리 피어린 흐느낌
한 그릇 옛날 향훈이 어찌 이 맘 흥근 안젖었으리오마는
이 아침 새 빛에 하늘대는 어린 속잎들 저리 부드러웁고
그 보금자리에 찌찌찌 소리내는 잘새의 발목은 포실거리어
접힌 마음 구긴 생각이 다 어루만졌나 보오
꾀꼬리는 다시 창공을 흔드오
자랑찬 새 하늘을 사치스레 만드오
사향 냄새도 잊어버렸대서야 불혹이 자랑이 아니되오
아침 꾀꼬리에 안 불리는 혼이야
새벽 두견이 못잡는 마음이야
한낮이 정밀하단들 또 무얼 하오
저 꾀고리 무던히 소년인가 보오
새벽 두견이야 오랜 중년이고
내사 불혹을 자랑턴 사람
- <5월 아침> 전문 -
김영랑은 꾀꼬리가 찬엄한 햇살 퍼져 오르듯이 화창하게 노래하는 소리를 들었고 창공을 흔들면서 자랑찬 새 하늘을 사치스레 만드는 것을 보았다. 김영랑의 '5월 아침'은 꾀꼬리뿐만 아니라 두견이 잘새들이 부드럽게 하늘대는 어린 속잎들과 어울려 불혹의 자신을 돌아보게 한다고 말하고 있다.
5월과 꾀꼬리와 두견과 잘새, 아침과 하늘대는 어린 속잎과 사향냄새와 불혹의 나이, 시인은 자신의 생명이 얼마나 화려한 절정에 있는가를 스스로 확인하고 있다.
특히 김영랑은 2연에서 '아침 꾀꼬리에 안 불리는 혼이야 새벽 두견이 못잡는 마음이야 한낮이 정밀하단들 또 무얼 하오. 사향냄새도 잊어버렸데서야 불혹이 자랑이 아니되오'라고 하여 불혹에도 오히려 윤기를 더해가는 시인의 감성을 확인하고 있다.
그것은 '하늘에 뜬 무지게를 볼적마다 내 가슴은 뛰노나 그렇지 않으면 차라리 죽어지고저'라고 한 워즈워드의 시구를 연상하게 한다.
김영랑의 시에서 슬픔이나 눈물의 용어가 많이 발견되고 있으면서도 그 비애의 한 모
퉁이에 반드시 부활의 횃불처럼 마련하는 광명의 공간, 즉 '燭氣'는 김영랑의 초기시의 특징으로서만 머물지 않고 그의 시에 전반에 흐르고 있는 공통적인 특징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다시 다음과 같은 시를 보자.
내 옛날 온 꿈이 다 실리어 간
하늘가 닿는데 기쁨이 사신가
고요히 사라지는 구름을 바래자
헛되나 마음 가는 곳 그곳뿐이라
눈물을 삼키며 기쁨을 찾노란다
허공은 저리도 한없이 푸르름을
엎디어 눈물로 따위에 새기자
하늘가 닿는데 기쁨이 사신다.
- <하늘가 닿은 데> 전문 -
시인이 가슴에 새기는 말은 눈물이나 슬픔이 아니라, 저 멀리 하늘 가에 실려 있는 기쁨인 것이다. 땅 위에 엎디어 눈물로 새기는 말도 '기쁨'이고, 허공을 우러러 구름을 바라보는 것도 멀리 있는 기쁨을 보려함이다.
전대의 시인들처럼 영탄이나 감상에 기울어지지 않고 극복하는 것은 시의 형식적 완성의 단계에서 여과한 그의 의식적인 노력이 개입되었기 때문이며 이는 시인의 사상과 철학의 반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2) 축소지향과 '이슬'의 미학
김영랑의 시를 읽으면서 발견하게 되는 또 하나의 현상은 축소지향적 의식을 많이 담고 있다는 사실이다. 다시말해서 시인의 시선이 한 사물을 통과하여 세계로 확대되는 것이 아니라, 세계의 사물을 거쳐서 시인의 내부로 집합하고 응결한다는 것이다.
그의 시어들은 밝고 영롱하며 경쾌한 광명을 지향하고 있으면서도 반면 작고 애틋하고 애닯고 조심스럽다. 그는 '이슬', '꿈', '눈물' 등의 어휘를 많이 채용하고 있는데, 이러한 시어 선택은 곧 김영랑의 시의식과 시세계를 특징 지어 주는 구체적인 단서가 아닌가 한다.
이슬은 일반적으로 증류되고 응축되었다는 데서 결정체로서의 의미가 있다. 그리고 일광에 의해서 쉽게 사라지는 성격에서 덧없음의 의미를 유발하기도 한다. 김영랑이 구사하는 이슬의 개념도 여기에서 많이 빗나가지는 않는다. 김영랑이 읊은 이슬은 순결한 것의 표징이며 고귀한 것의 대명사인 동시에 값진 결정체로서의 '보람'이라고 요약할 수 있다.
김영랑은 거대하고 우렁찬 것보다는 작고 애잔한 것을, 담대하고 씩씩한 것보다는 애닯고 고요한 것을 선호한다. 타인과 세계의 의지에 시선을 두기에 앞서 '나'와 '내 마음'에 집착하고 있는 것도 그의 축소지향적인 성향에 관련된 것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다음에서 김영랑이 이슬과 눈물을 어떤 이미지로 채용하고 있는가? 그것은 그의 축소지향적 의식과 어떻게 맞물려 있는가 살펴보도록 하자.
그 밖에 더 아실이 안계실거나
그이의 젖인 옷깃 눈물이라고
빛나는 별 아래 애닯은 입김이
이슬로 맺히고 맺히었음을
- <그밖에 더 아실 이> 전문 -
이슬을, 사랑하는 사람의 젖어 있는 옷깃의 '눈물'이라 하기도 하고, 별빛 아래 어리는 '애닯은 입김'이라고도 하였다. 여기서 시인이 표현하고자 한 것은 감정상의 애잔함이나 슬픔이 아니라, 그만큼한 이슬의 결백과 순수함일 것이다. 즉 눈물의 무구성과 애닯은 입김의 결백성으로 이슬의 순수함과 깨끗함을 은유하는 도구를 삼으려 했던 것이다.
'눈물'은 슬픔의 반사작용으로 배설되는 체액이다. 그러나 이러한 생리학적 해석에 우선하는 것은 '눈물'이 포화상태에 이른 감정 내지 정서의 소산이라는 점이다. 위의 시에서는 '애닯은 입김'의 주체가 시인 자신인지 '그이'인지는 표면화되지 않았다. 다만 확실한 것은 그 애닯은 입김은 '빛나는 별 아래'서 영롱하게 반사하는 입김이며, 간절한 애정을 쏟아 붓고 싶은 입김이라고 판단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판단할 때 '이슬'은 일체화된 진선미의 결정체가 된다는 점이다. '애닯은'은 애가 달칠 정도로 마음이 아프거나 조인다는 뜻이 아니라, 그렇게 애틋하고 사랑스럽고 조심스러운 마음을 표현한 것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젖은 옷깃의 눈물 - 애닯은 입김 - 이슬로 가는 길목에서 시인은 스스로 정리한 발견의 기쁨을 누를 길 없어 '그 밖에 더 아실 이 안계실거나'라고 묻는다. 즉 이슬을 적절하게 표현할 또 다른 말을 알고 있는 사람은 나 말고 또 있는가? 있다면 누굴까를 묻고 싶은 것이다. 이슬을 바라보는 김영랑이 얼마나 커다란 경이로움에 차 있는가를 알 수 있다.
풀위에 맺어지는 이슬을 본다
눈썹에 아롱지는 눈물을 본다
풀 위엔 정기가 꿈같이 오르고
가슴은 간곡히 입을 벌린다
- <풀위에 맺어지는 이슬> 전 -
기본 음수율 7.5조를 의식하고 쓴 짧은 시이다. 시가 짧은 것은 언어를 아끼고 형식미에 치중하였다는 의미를 갖는다.
이 시의 두 가지 오브제는 '자연'과 '인간'이며 좀더 축소해서 말한다면 '풀'과 '나'이다. 앞에서도 언급한 바와 같이 김영랑은 시의 소재에 자신의 마음을 대입시키는 작품을 많이 썼으며, 여기서도 풀 위에 맺히는 이슬과 나의 눈물, 풀 위에 오르는 정기와 내 가슴의 간곡함을 대비시키고 있다.
시인은 이슬과 눈물이 둘 다 흠없는 진실이라는 면에서 유사성을 갖는 것으로 보았다. 그는 풀 위에 맺힌 이슬은 꿈같이 오른 정기라 하고, 내 눈썹에 아롱진 눈물은 '간곡히 입을 벌린' 내 가슴 깊이 품고 있는 '말'이라고 하였다.
김영랑에게 있어서도 '눈물'은 슬픔의 반사작용이라는 일차적인 인식의 범주를 벗어나지 않는다. 그러나 그보다 중요한 것은 비애가 가장 고귀하고 아름답고 순수한 감정이라고 주장하고 싶어하는 그의 확신이다.
시인은 '이슬'과 '눈물'과 '꿈'을 축소와 응축의 객관적 상관물로 내놓았다. 맺어지는 이슬과 아롱지는 눈물의 응축성에 대해서는 위에서도 언급했기 때문에 반복을 피하려 한다. 그러나 '꿈' 역시 생시의 경험과 습관이 잠재의식으로 응결하였다가 나타난다는 점에서 눈물이나 이슬과 동일한 결정체라고 할 수 있다. 마지막 행에서 '가슴은 간곡히 입을 벌린다'고 했는데 간곡히 벌리는 입은 오래동안 참고 참았던 진실을 비로소 토로함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그 입에서 나오는 말은 헤프고 경솔한 헛말이 아니고 간추려지고 여과된 말이며 비중이 큰 말일 것이다. 동시에 그것은 승화된 '이슬'이나 '눈물', '꿈'으로도 대치 가능한 말일 것이다.
내 마음 아실이
내혼자 마음 날같이 아실이
그래도 어디나 계실 것이면
내 마음에 때때로 어리우는 티끌과
속임없는 눈물의 간곡한 방울방울
푸른밤 고이맺는 이슬같은 보람을
보밴듯 감추었다 내어드리지
아! 그립다, 내혼자 마음 날같이 아실이
꿈에나 아득히 보이는가
향맑은 옥돌에 불이 달아
사랑은 타기도 하오련만
불빛에 연긴듯 희미론 마음은
사랑도 모르리 내혼자 마음은
- <내 마음 아실 이> 전문 -
이 시에서도 김영랑은 이슬과 눈물을 동일시하고 있다. 다시말해서 '속임없는 눈물의 간곡한 방울방울'은 '푸른밤 고이맺는 이슬같은 보람'인 것이다.
시인은 사랑하는 사람에게 눈물을 내보이는 일은 곧 '보람'을 내어드리는 행위임을 시사하고 있다. 그는 이슬이 맺히는 과정과 눈물이 맺히는 과정을 동일시하고 있으며 눈물이나 이슬을 똑같은 결실, 감추어 두었던 값진 '보배'로 보고 있음을 나타내고 있다.
'내혼자 마음 날같이 아실 이 / 꿈에나 아득히 보이는가'라고 할만큼, 그 사람의 존재는 불확실하고 희미하다. 그러나 내가 그를 만나 드릴 수 있는 소중한 것이 있다면 '이슬같은 보람' 즉 눈물 외에 아무 것도 없다고 말한다.
여기서 우리는 눈물의 중량에 대해서 재고하지 않을 수 가 없다. 위의 시에서는 눈물 역시 단순한 슬픔의 증후로 나타나지 않고, 오랜 기다림 끝에 만났음에 기인한 감격과 기쁨의 표징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눈물 = 보배'라는 등식을 성립시킬 수 있을 것이며, 그렇게 할 때 '눈물'은 가장 순수한 감정이 응결된 보석으로서의 눈물로 보아야 할 것이다.
김영랑의 시에 슬픔이나 눈물 애닯음이 많이 있다 하여 슬픔의 시인, 혹은 어두움의 시인으로 정의하는 것은 부적절한 판단이 아닐까 한다. 김영랑이 시어로 원용하고 있는 '눈물'은 주체 못할 슬픔의 표상이 아님을 다시 한 번 확인해야 할 것 같다.
님두시고 가는 길의 애끈한 마음이여
한숨 쉬면 꺼질듯한 조매로운 꿈길이여
이 밤은 캄캄한 어느 뉘 시골인가
이슬같이 고인 눈물을 손끝으로 깨치나니
- <님두시고 가는 길의> 전문 -
여기서도 눈물은 이슬같이 고였다. 님을 두고 홀로 가는 사람의 애틋한 마음이 절절하게 나타난 위의 시에서 눈물은 당연히 슬픔의 표지여야 한다. 그러나 화자는 그 이슬을 '손끝으로 깨치'면서 감으로써 그의 발걸음을 비탄에 한없이 머물러 있게 하지 않는다.
시인은 자신의 비애를 스스로 조절하고 있으며 그것으로 '조매로운 꿈길'을 꺼지지 않게 하려고 애쓴다. 여기서 국어사전에도 없는 '조매로운'이란 말 뜻은 무엇인가?
필자는 '조매롭다'라는 조성하는 어감에 의해 '조마조마하다' '조븟하다' '앙징맞고 작다' '조그마하다' '멀어서 가물가물하다' 등의 어의를 적용하고 싶다. 그러므로 '한숨 쉬면 꺼질듯한 조매로운 꿈길'이란 작고 희미하고 아득하고 좁은 어떤 것, 안타깝도록 조심스러운 어떤 것이 아닌가 한다.
시인이 가는 캄캄한 밤의 시골길은 임을 두고 가는 시인의 마음을 대변한 것이다.
김영랑의 시어들은 구심점인 김영랑의 마음을 향하여 축소되고 응축되었다고 할 수 있다.
좁은 길가에 무덤이 하나
이슬에 저지우며 밤을 새인다
나는 사라져 저 별이 되오리
뫼아래 누어서 희미한 별을
- <좁은 길가에 무덤> 전문 -
'좁은', '이슬', '별', '희미한 별' 등의 어휘가 전 4행의 시에 각각 나뉘어 있다. 첫행의 '좁은 길가'는 '넓은 길가'보다 호젓하고 한산한 느낌이 든다. '넓은'이라고 했을 때는 시야가 확대되면서 의미가 분산될 수 있지만 '좁은'이라고 하면 의미가 집약되고 농도도 짙어진다고 보아야 한다.
둘째행 '이슬에 저지우며 밤을 새인다'는 '이슬'인 자연과 옷을 적신 '나'와의 교감을 엿볼 수 있으며, 3.4행은 2연에 이어서 자연에 동화하고 싶은 작자의 詩情이 나타나 있다. 시인은 스케일이 작은 언어를 선택하였지만, 완성한 한 편의 시에서 얻어지는 것은 우주적 질서와 순응이라고 하는 큰 명제인 것이다.
김영랑은 축소지향적인 어휘를 운용하였을 뿐만 아니라, 언어를 절제하여 짧은 4행시를 많이 썼음을 알 수 있다.
김영랑의 시 80편 중에 4행시가 25편이며 4행연 반복형태인 8행시가 16편, 5행시 2편, 6행시와 7행시가 각 1편씩이다. 특히 초기시 가운데 절반 이상이 4행시인 것을 보면 그가 율격적 구조에 얼마나 깊은 관심을 보이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짧은 시의 형태와 언어의 절제는 우연한 결과가 아닐 것이니, 최대의 절제로 최고의 미를 창출하려는 시인의 강한 의도가 뒷받침되어 있었다고 보아야 할 것 같다.
예술의 아름다움은 바로 형식의 아름다움이다. 형식이 장르를 결정하고 미감을 결정한다. 시의 형식미에 고심했다는 것은 시의 예술미를 천착하였다는 말이 될 것이다.
그가 민요적 율조에 절제된 시어를 써서 자연을 노래한 점은 한국시사에서 김소월과 함께 전통시가의 맥을 잇는 시인으로 규정짓게 한다.
김영랑의 시어들이 비애를 나타냈을지라도 그 비애의 느낌이 다른 시인들처럼 영탄이나 감상에 머물러 있지 않음은 민요적 율조로 극복되어 있다는 이유도 클 것이다.
그러한 작업에는 길고 아픈 단계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김영랑은 과감한 생략과 축소로써 그의 시를 슬프되 궁하거나 비참하지 않는 경지로 상승시켰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언어와 리듬 등, 형식이 주는 영롱한 미감은 의미의 중량를 가중시켰으며, 슬픔을 아름답게 형상화시키는 데에 크게 기여하였다고 할 수 있다.
다시 다음과 같은 시들을 보자.
숲 향기 숨길을 가로 막았소
발끝에 구슬이 개여지고
달 따라 들길을 걸어다니다가
하릇밤 여름을 버렸소
- <숲 향기 숨길> 전문 -
허리띠 매는 시악시의 마음실같이
꽃가지에 은은한 그늘이 지면
흰날의 내 가슴 아지랭이 낀다
흰날의 내 가슴 아지랭이 낀다
- <허리띠 매는 시악시> 전문-
두 편 모두 4행시이며, 동시에 두 편의 시가 모두 내용에 치중하지 않았다는 점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시가 산문과 다른 점은 압축과 비약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리고 압축하고 비약하는 과정에서 발생하게 되는 비유나 상징을 들 수도 있다. 그러나 시와 산문을 구별하게 하는 중요한 특성은 산문이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을 가지는 반면 시는 전달할 내용이 전혀 없이도 얼마든지 성립할 수 있다는 점이다.
시의 형식미에 관심을 두지 않고서는 4행의 짧은 시가 탄생하기 어렵다.
위에서 <숲 향기 숨길>이 이슬에 함뿍 젖어 여름 밤의 들길을 산책하는 마음의 정경이라고 한다면, <허리띠 매는 시악시>는 시정이 그윽하게 차오르는 시인의 가슴 속을 투사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두 편 모두 독자에게 전달되는 것은 추상적인 정서 혹은 기분에 지나지 않는다.
<숲향기 숨길>은 몽롱한 가운데 자연에 도취하고 있는 시인의 탐미주의적 경향을 전개해 보이고 있다. 숲의 향기로 숨이 막힐 듯하고 발끝에는 풀잎의 영롱한 이슬이 스치는 여름 밤, 달빛을 좇아서 들길을 따라서 무한정 걷고 있는 시인의 모습은 현실과는 전혀 무관한 선경 속의 인물같은 인상을 준다.
시인의 시선이 머물고 있는 관심사는 숲길, 발끝의 이슬, 달, 들길 등 한정된 공간이며 거기서 얻게 되는 시인의 자각은 '하룻밤'의 '여름'을 송두리째 상실했다는 점이다. 이 시는 고도로 압축된 낭만을 느끼게 하며 그것은 동시에 증류된 물이 압축되어 이슬로 맺히는 과정과도 흡사하지 않을까 한다.
<허리띠 매는 시악시>는 '허리띠 매는 시악시의 마음'에서 은은한 그늘이 지는 '꽃가지'로, 은은한 그늘이 지는 '꽃가지'에서 아지랭이 끼는 '내 가슴'으로 시인의 렌즈가 이동한다. 렌즈의 이동과 이동 사이에는 아무런 설명이 개입하지 않는다.
단 4행밖에 되지 않는 짧은 시인데 마지막 2행에서 '흰날의 내 가슴 아지랭이 낀다'를 반복하여 강조하고 있는 것은 왜인까? 그리고 김영랑이 상정하는 아지랭이 끼는 '흰날'이란 무엇인가? 그가 지향하는 순수하고 맑은 삶인가, 그가 영위하고 있는 외롭고 허허로운 삶인가, 아니면 아직은 가능성이 있고 여백이 있는 삶인가.
흰색이 표방하는 이미지를 동원하여 독자는 여러 의미를 상상할 수 있다. 독자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것은 생략할지언정 다 보여 주지 않기 때문이며 이런 부분이 있음으로 시는 비로소 산문과 달라지는 것이다.
3) '새로 뽑은 독'과 귀향의식
1930년부터 시작하여 1950년 작고한 김영랑의 시작 생활 20년에 달한다. 그러나 그는 1935년 [시문학] 2호에 <못오실 님이 그리웁기로>를 발표한 이후 1939년 [조광] 1호에 <거문고>를 발표하기까지 약 4년의 공백기를 가진다. 김영랑의 시는 그 공백기를 분수령으로 하여 초기시와 후기시로 구분되고 있으며, 이러한 구분을 통하여 우리는 괄목할 만한 그의 시적 세계의 선회를 볼 수 있다.
한 마디로 그의 시는 아름다운 시에서 의미 있는 시로의 전환을 모색하였다고 할 수 있다. 그의 초기시가 섬세한 감각을 민요적 율조에 담아 자신의 내면을 응시하여 압축된 언어로 노래한 시였음에 반하여, 후기시는 형식미보다 의미와 내용에 주력한 시였다고 할 수 있다. 그는 시선을 외부와 사회를 향해 열고 자아를 확대하여 인생과 세계에 대한 부정과 회의를 읊기도 하였다.
후기에 그는 억압받는 우리 민족을 기린에 비유한 <거문고> (조광 1939.1.), <독을 차고> (문장.1939.7), <달맞이> (여성 1939.4), <묘비명> (조광.1939.12), <한줌흙> (조광,1940.3)등을 발표하는 등, 차츰 운명론으로 기울어지면서 일제말기의 어려운 현실을 강렬한 죽음의식으로 표출하기에 이른다.
또 해방 이후에는 <바다로 가자>, <겨레의 새해>, <감격 8.15> 등의 시로 조국의 산천이 살아 움직이는 모습과 함께 새로운 조국 건설에 참여하려는 의지를 보여 주었고, <연>(백민 49.1.), <오월의 아침> (문예. 49.9)등의 화사한 감정의 작품도 발표하였다. 그러나 초기시의 영롱한 '촉기'와 '광명'의식은 작품의 표면에서 후퇴하게 된다.
죽음에 임하는 김영랑의 의식은 보다 본질적인 회귀인 동시에 귀향의식으로 풀이할 수 있는 것이며, 단순한 '사멸'이 아니다. 우리는 김영랑의 죽음의식을 통해서 그의 구상하는 최종적인 공간, 유토피아의 모습을 엿볼 수 있을 것이다.
좀평나무 높은 가지 끝에 얼킨 다아 헤진 흰 실낫을 남은 몰라도
보름전에 산을 넘어 멀리 가버린 내 연의 한알 남긴 서름의 첫씨
태여난 뒤 처음 높이 띄운 보람 맛본 보람
안끈어졌드면 그럴 수 없지.
찬바람 쐬며 코ㅅ물 흘리며 그 겨울내 그 실낫 치여다 보러 다녔으리
내 인생이란 그때버텀 벌써 시든상 싶어
철든 어른을 뽑내다가도 그 실낫같은 병의 실마리
마음 어느 한구석에 도사리고 있어 얼신거리면
아이고 모르지
불타 자는 바람 타다꺼진 불ㅅ동
아! 인생도 겨래도 다아 멀어지는구나.
- <연2의> 전문-
좀평나무 높은 가지 끝에 얼켜 있는 끊어진 실낫은 소년 김영랑의 꿈의 흔적이다.
연이 연실을 끊고 멀리 날아가 버림으로써 연과 나와의 관계는 끊어져 버린 것으로 나타나 있다. 그는 끊어진 실낫을 치어다보면서 '높이 띄운 보람'을 추억하고 끊어졌음을 서러워하면서 남아 있는 '실낫같은' 미련을 앓고 있는 것이다.
김영랑은 유년시절의 시점으로 돌아가서 연이 끊어져 하늘 멀리 날아가 버린 날, 그의 삶의 보람조차도 송두리째 빼앗기고 '내 인생이란 그때버텀 시든상 싶어'라고 삶 자체를 회의하고 있으며, '인생도 겨레도 다 멀어지는구나'라고 허탈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자신의 손끝에서 떠난 연을 원망하면서 '인생도 겨레도 다아 멀어지는구나'라고 느끼게 된 것은 김영랑에게 있어서 이만저만한 자아확대가 아니다.
'내 인생이란 그때버텀 벌써 시든상 싶어'는 초기의 '찬란한 슬픔'이나 '흰날의 내 가슴 아지랭이 낀다'의 주관적인 낭만에서 놀라운 거리를 두고 떠나와 있다.
<연2>에는 인생에 대한 회의와 허탈이 깊게 깔려 있다. 이러한 회의와 허탈의 저변에는 인생과 사회를 바라보는 이 시인의 부정적인 판단이 뒷받침하고 있을 것이다. '인생'이란 결국 시인 자신이 혼자 짊어지고 나가는 삶이지만 '겨레'는 시인이 소속된 공동체로서, 그 일원인 시인으로 하여금 공동의 책무를 느끼게 하는 거대한 짐이었을는지도 모른다. 개인의 삶도 회의적이고 소속된 공동체 또한 허탈감을 느끼게 할 때, 시인은 절망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내 가슴에 독을 찬지 오래로다.
아직 아무도 해한 일 없는 새로 뽑은 독
벗은 그 무서운 독 고만 흩어버리라 한다.
나는 그 독이 벗도 선뜻 해할지 모른다 위협하고
독안차고 살어도 머지 않어 너나 마주 가버리면
누억천만 세대가 그 뒤로 잠잣고 흘러가고
나중에 땅덩이 모지라져 모래알이 될 것임을
[허무한듸!] 독을 차서 무엇하느냐고?
아! 내 세상에 태어났음을 원망않고 보낸
어느 하루가 있었던가, [허무한듸!] 허나
앞뒤로 덤비는 이리 승냥이 바야흐로 내 마음을 노리매
내 산채 짐승의 밥이 되어 찢기우고 할퀴우라 네 맡긴 신세임을
나는 독을 품고 선선히 가리라
마금날 내 깨끗한 마음 건지기 위하여.
- < 독을 차고>의 전문 -
<독을 차고>는, 김영랑이 순수 서정시만을 써서 시세계의 한계를 드러낸 시인이 아니고, 역사의식과 민족의식이 투철한 시인이었음을 증거할 때 반드시 인용되는 시이기도 하다. '찬란한 슬픔의 봄'을 기다리는 김영랑, 섬세한 감각으로 내 마음의 보람과 유일성을 지키던 김영랑이 '새로 뽑은 독'을 찼다고 했을 때, 우리는 그가 찬 독의 정체와 독을 찬 이후의 그의 행로에 대해서 유의 주시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의 독은 '아직 아무도 해한 일 없는' 독이다. 그는 독은 차서 무엇하느냐고? 혼자 반문하다가, 이리 승냥이에게 산 채로 밥이 되어 찢기우고 할퀴울지라도 '내 깨끗한 마음'을 건지기 위한 것이라고 스스로 대답하기도 한다. 그리고 '세상에 태어났음을 원망 않고 보낸 어느 하루가 있었던가'고 삶 자체를 부정한다.
육체는 짐승에게 찢기울지라도 '마금날 내 깨끗한 마음을 건지기 위해' 독을 찼던 시인 김영랑은 '독을 품고 선선히' 죽음 앞으로 가리라고 선언한다. 김영랑은 외부적 상황에 대한 불신과 회의, 그리고 자신의 내부로부터 발산되는 저항의 요소를 일괄하여 '毒'이라고 명명하였으며, 그 독은 남을 해할는지도 모르는 '무서운 독'임을 인정하였다. '독을 차서 무엇하느냐고' 망설이기도 하다가 결국은 '독을 품고 선선히 가리라'고 결심한 김영랑의 모습을 통하여 우리는 4.5년의 공백기를 거쳐 시작활동을 새롭게 전개한 그의 갈등과 결심을 엿볼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즉 '가슴에 독을 찬지 오래'지만 그는 여간해서 '독'을 뽑으려 하지 않았었다. 그러나 이제는 독을 뽑을 수밖에 딴 도리가 없는 상황임을 선포한다. 현실적 문제를 유보하고 '光明'과 '燭氣'를 지향하였지만, 이제는 결국 '毒' 대신에 '光明'과 '燭氣'를 유보할 수밖에 없는 상왕에 이르른 것이다.
독을 차고는 있었지만 될 수 있으면 뽑으려고 하지 않았던 김영랑은 독을 절감하고 있었지만 그것을 독으로 표현하지 않으려고 했다고 할 수 있다. 그것은 언어 예술로서의 시의 영역과 시인의 진정한 사명을 체득하고 있는 김영랑의 선택이었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그는 독을 뽑으면서도 '깨끗한 마음을 건져 올리기 위하여'라는 목적의식을 분명히 하려고 했으며, 이 목적의식은 '[허무한듸!] 독은 차서 무엇하느냐'는 내심의 강한 회의를 동반하게 하였던 것이다.
검은 벽에 기대선 채로
해가 스무번 바뀌였는데
내 기린은 영영 울지를 못한다
그 가슴을 통 흔들고 간 노인의 손
지금 어느 끝없는 향연에 높이 앉었으려니
땅 위의 외론 기린이야 하마 잊어졌을나
바깥은 거친 들 이리떼만 몰려다니고
사람인양 꾸민 잔나비떼들 쏘다다니여
내 기린은 맘둘 속 몸둘 속 없어지다
문 아주 굳이 닫고 벽에 기대선 채
해가 또 한 번 바뀌거늘
이 밤도 내 기린은 맘놓고 울질 못한다
- <거문고> 전문 -
<거문고>는 외부세계와 상황에 의해 제약 당하고 있는 시인의 삶을 울지 못하는 거문고로 표현하고 있다.
'검은 벽에 기대선 채로' '영영울지를 못'하는 '내 기린'과, '거친 들 이리떼'와 '사람인 양 꾸민 잔나비떼들'... 시인은 상실과 절망과 단절의 삶을 강요 당하는 삶, 비인간적 세계로부터 위협 받고 있는 비극적인 삶을 동물의 세계로 은유하고 있다.
이에 대해서는 김학동의 다음과 같은 언급을 참고할 수 있을 것이다.
<기린>이나 <이리떼>와 <잣나비떼>들이 시사하는 의미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특히 3.4연의 내용으로 보아 초기시들과는 판이하게 당시의 시대상황을 직설적으로 표출시키고 있다. <이리떼>와 <잣나비떼>, 즉 일본 관헌과 그들을 추종하는 아첨배들이 득실거리는 식민지 치하의 <기린>, 즉 애국지사와 선량한 국민들이 옴짝도 못하고 은거하던 시대상황을 이렇게 고발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 가슴을 통 흔들고 간 노인의 손'이라고 하여, 굳이 거문고의 몸체를 흔들면서 다루던 거문고의 주인을 '노인'으로 설정하고 있는 것은 주목할 만한 착상이라고 생각한다. 이는 즉 거문고의 유구한 역사성과 전통성을 강조하고자 하는 의도적 표현이라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거문고의 주인이 '지금 어느 끝없는 향연에 높이 앉었'을 것으로 추정하면서 '땅 위의 외론 기린이야 하마 잊어졌을나'라고 하여 지금은 비록 '문 아조 굳이 닫고 벽에 기대선채' '맘놓고 울지못'하지만 아직은 꺼지지 않은 희망이 있다는 것을 시사하고 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본시 평탄했을 마음 아니로다
굳이 톱질하여 산산 찢어 놓았다.
풍경이 눈을 홀리지 못하고
사랑이 생각을 흐리지 못한다
지쳐 원망도 않고 산다
대체 내 노래는 어디로 갔느냐
가장 거룩한 것 이 눈물만
아쉰 마음 끝내 못 빼앗고
주린 마음 그득 못 배불리고
어차피 몸도 괴로워졌다
바삐 관에 못을 다져라
아모려나 한줌 흙이 되는구나
- <한줌 흙> -
'본시 평탄했을 마음 아니로다'라는 이 시의 첫행이 시사하는 것은 무엇인가? 외부적 상황에는 외면하고 돌아앉아 문을 닫고 있는 듯 현실과는 동떨어지게 윤기나는 노래를 불렀던 자신의 숨겨진 진심을 고백하고 싶었던 것인가? 겉으로는 원경을 바라보듯 딴전을 부렸지만 자신도 다 알고 아파하고 번뇌하였었노라고 불현듯 속마음을 내보이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내 마음도 '본시 평탄했을 마음 아니로다'라고 거두절미하고 첫행에서부터 툭 털어놓고 핵심으로 직핍한 것이다. 누구는 그것을 모르고 있는 줄 아는가? '굳이 톱질하여 산산 찢어 놓'아 괴롭게 할 필요가 있겠는가?고, 그는 원망을 섞어서 말하고 있다. 그리고 이미 어떠한 '풍경'도 시인의 눈을 허황된 방향으로 유혹하지 못하며('풍경이 눈을 홀리지 못하고'), 일시의 어떤 감미로움도 나의 이성적인 판단력을 흐리게 하지 못한다('사랑이 생각을 흐리지 못한다')고 현황을 더 자세한 내용을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대체 내 노래는 어디로 갔느냐'고 하는 그의 물음은 '내 기린은 영영 울지 못한다'고 하는 <거문고>에서의 외침과 그대로 일치하며, 노래를 부르지 못하는 시인 자신이나, '검은 벽게 기대선 채로' 소리내지 못하는 거문고는 이미 죽어 있음과 동일한 것으로 간주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김영랑은 현실 속에서 이미 죽음을 경험하고 있다. 그는 지쳐서 이제 아무 원망도 하지 않으며 아쉬운 마음을 만족하게 하려 하거나 주린 마음을 배불리려는 생각도 가지고 있지 않다. 그는 모두가 허무하고 괴로울 뿐이어서, '아모려나 한줌 흙이' 될 세상, 차라리 '바삐 관에 못을' 박아 다지기를 바라는 것이다.
자신에게 남아 있는 것 중 '가장 거룩한 것'은 '눈물' 뿐이라고 말하는 이 시인에게 있어서 눈물의 의미는 건강한 감성일 것이다. 그는 느낄 수 있는 자유와 느낄 수 있는 권리를 자신이 소유하고 있는 것 중 가장 거룩하고 소중한 것으로 여기고 있다.
그러나 죽음에 대한 그의 남다른 의식은 후기에 이르러 확립된 것이라고는 할 수 없다. 우리는 전기의 시에 해당되는 다음과 같은 시에서도 이미 초탈한 김영랑의 죽음의식을 엿볼 수 있다. 즉 생자와 사자가 넋으로 만나 사후의 세계로까지 이어지는 영혼의 교류는 김영랑의 자아 확대와 귀향의식의 범위를 은짐작할 수 있게 한다.
마당 앞
맑은 새암을 들여다본다
저 깊은 땅 밑에
사로잡힌 넋 있어
언제나 먼 하늘만
내려다보고 계심 같아
별이 총총한
맑은 새암을 들여다본다
저 깊은 땅 속에
편히 누운 넋 있어
이 밤 그눈 반짝이고
그의 겉몸 부르심 같아
마당 앞
맑은 새암은 내 영혼의 얼굴
- <마당 앞 맑은 새암을> 전문 -
시인은 이미 세상을 떠나 '깊은 땅 밑에 사로잡힌 넋'이 하늘로 올라가서 마당 앞 맑은 샘물을 내려다 보고 있다고 생각한다.
'맑은 새암 -> 어떤 넋 -> 빛나는 별 -> 나의 넋'으로 가는 과정에서 우리는 가시적인 현실 세계를 넘어서 불가시적인 세계로까지 확대된 그의 의식의 일 면모를 엿볼 수 있다. 그리고 이는 우주의 사물을 접하는 김영랑의 애정이라고 해석해도 틀림이 없을 것이다.
또 육체는 죽어서 '저 깊은 땅속에' 누워 있지만 영혼은 살아서 하늘의 별과 만나 총총히 반짝이고, 그 별은 빛으로 내려와서 새암을 들여다보고 있는 시인의 영혼과 다시 합일되는 것을 경험하고 있는 그의 모습을 통해서 우리는 김영랑 시인의 광활한 정신적 공간을 짐잓할 수 있게 된다. 김영랑이 몸을 다만 '겉몸'이라고 표현하고 있음은, 그가 확신하는 영혼의 영생과 영혼으로 귀향하는 이상적 세계의 개념을 유추할 수 있게 한다.
자네 소리하게 내 북을 잡지
진양조 중머리 중중머리
엇머리 잦아지다 휘몰아 보아
이렇게 숨결이 꼭 맞아서만 이룬 일이란
인생에 혼치 않아 어려운 일 시원한 일
소리를 떠나서야 오직 가죽일 뿐
엇 때리면 만갑이라도 숨을 고쳐 쉴 밖에
장단을 친다는 말이 모자라오
연창을 살리는 반주쯤은 지나고
북은 오히려 콘덕터요
떠받는 명고인데 잔가락을 온통 잊으오
떡 궁- 동중정이오 소랑 속에 고요 있어
인생이 가을같이 익어가오
자네 소리하게 내 북을 치지 - <북> -
이것은 단순한 낙천이 아니다. 그의 표현을 빌어서 말한다면, 인생을 '가을같이' 익어가는 것으로 판단하지 않고는 불가능한 결론이다. 김영랑은 '이렇게 숨결이 꼭 맞아서만 이룬 일이란 인생에 혼치 않아'라고 하였다. 이는 그가 의지로 삶을 발전시키려할 때 따르는 고통을 체념하고 있으며, 순명하는 삶으로 조화를 추구하려 하고 있음을 보이고 있다.
김영랑의 시는 초기에 광명과 푸르름을 지향하던 촉기 있는 음향이, 결국 우울한 외부상황과 시인의 내부에서 일어나는 죽음의식이 결부되면서 자연히 영롱성이 약화 내지 무화되어 나타나지 않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가 꾸준히 지향하고 있는 이상적인 세계만은 계속 모란이 피고 지는 찬란한 슬픔과 기다림의 보람에 통해 있어서, '인생이 가을같이 익'은 다음 낙과에 이르는 또 하나의 경이로운 경로를 체험하게 될 것이다.
3. 結論
첫째 김영랑 시의 특성으로는 광명의식을 꼽을 수 있다. 그것은 초기에 '찬란한 슬픔' 혹은 '기다리던 보람'으로 표현되는 김영랑의 시적 특성인 동시에 기질이라고 할 수 있는 '촉기'와 일치한다. 그의 광명의식 내지 촉기는 '옛날의 온 꿈이 다실리어 간' 절망의 상태에서 '눈물 삼키며 기쁨을 찾노란다'라고 하는 극기의 모습으로도 나타나며 , '하늘가 닿는데 기쁨이 사신다'라고 하는 긍정적인 기대의 모습으로 표현되기도 한다.
둘째, 김영랑은 언어의 응축을 실현하여 美感을 최대로 살린 시인이지만 시인의 마음을 응축해 낸 최대의 가치와 보람을 '이슬'로 結晶해 내기도 하였다. 그의 작품에는 '이슬'이라는 어휘가 유독 많이 표출되어 있으며, 그 이슬은 '눈물' 혹은 '보물'과 동일한 의미를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것은 그가 슬픔을 자신을 傷害하는 비애로서만 받아들이지 않고 순수한 미감으로 승화시켰다는 하나의 증거라고 할 수 있으며, 첫째 항의 광명의식과도 무관하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세째 김영랑은 1940년을 전후한 후기의 작품 <독을 차고>, <거문고>, <연> 등에서 현실의 절망성을 표현하기에 이른다. 이들 후기시는 초기시와 격해 있는 시간적 구획으로서의 후기시가 아니라, 달라진 김영랑시의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는 데에 의미를 두어야 할 것이다.
다시말해서 이 시기의 작품들은, 김영랑을 문학사회학적인 관점에서 고찰하게 하고, 그에게서 투철한 셰계인식의 한계점을 지적하면서 부정적으로 평가한 일부 견해에 분한 해답을 제공하고 있다.
본고에서 필자는 서정시인으로서의 김영랑의 면모를 드러내는 데에 주력하였다. 김영랑의 가치는 순수한 서정시인으로서의 김영랑의 이름 위에 내려지는 평가이며, 이는 비단 김영랑에게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시와 시인 일반에 통해 있어야 할 기준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한 시인을 고찰함에 있어서 흔히 시인으로서의 명징함과 시인으로서의 감각에 역점을 두지 않고, 투철한 사회적 의식으로 저항하고 고발하고 투쟁하였느냐에 비중을 두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시인은 현실개조가도 아니고 사회운동가도 아니다. 우리는 시인이 언어예술가로서 가객에 가장 가깝다는 것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다만 가객이되 예언적 가객이며 대변자로서의 가객이라는 점만은 부연해 두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필자는 서정시인인 김영랑이 후기에 이르러 민족에게 당면한 암흑을 어떻게 호흡하고 여과하였으며 극복하였는가에 대해서도 대략 살펴보았다. 그는 현실과 상황을 몰각한 시인이 아니라, 어떠한 상황이나 현실도 시적인 장치로 여과해 내려고 한 시인이었다. 그의 후기시가 현실인식의 촉수를 보여 주었다기보다는 오히려 승화와 극복의 힘이 상황의 힘에 밀렸다고 말해야 할 것이다.
현실을 몰각하고서는 시도 시인도 존재할 수가 없다. 예술(시)에는 어떤 형태로든지 그 역사와 현실이 반영되어 있기 마련이다. 투철한 현실적 이념을 가지고 온몸으로 도전하고 혹은 고발하는 시가 있는가 하면, 우울하고 한스러운 목소리를 신음처럼 토로하는 시도 있을 수 있으며, 오히려 역으로 찾아낸 탈출구에서 시인의 개성에 조화되는 갱생과 탈출을 모색하며 힘을 모으는 노래도 있을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들의 공통점은 다 같이 현실을 반영하였다는 점인 것이다. 시를 평가함에 있어서 의미(역사의식, 상황의식 등)의 지나친 강조는 시의 가치를 오도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김영랑의 시적 가치는 광명과 촉기에 차 있는 순수 서정의 시, 압축하고 정제된 언어로 노래한, 전기시에서 찾을 수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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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燭氣'와 '이슬'의 美學 -
1. 緖論
'北에는 素月 南에는 永郞'이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김영랑을 김소월과 같은 맥락의 시인으로 파악한 말이며, 김영랑이 서정시인인 동시에 국민적 정서를 대변한 민요적 시인임을 강조한 말일 것이다.
김영랑은 그만큼 한국 시문학사상 현저하게 솟아 있는 큰 봉우리라고 할 수 있겠다.
그는 1930년 [시문학] 창간호에 13편의 시를 선보임으로써 시단에 나온 이래, 1950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약 20년 동안 80여 편의 품을 발표하였다. 한국시사에서는 특히 1930년대를 중시하는데, 이는 엄밀히 말해서 <시문학파>의 업적에 준거한 것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볼 때 김영랑의 두드러진 활동을 주시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지금까지 발표된 김영랑론의 성격을 분류하면 대략 다음과 같은 몇 가지로 대별할 수 있을 것이다.
첫째는 김영랑을 순수 서정시인으로 평가하고, 특히 한국의 전통적 정서를 민족언어의 운율에 얹어 표현하였음을 강조하는 경우가 것이다. 이러한 평가는 김영량의 시에 내려지는 가장 일반적이며 보편적인 평가라고 할 수 있겠다.
둘째는 김영랑이 순수서정시에 경도되어 있음을 강조함으로써 부상되는 부정적인 측면이다. 이는 김영랑이 사회 의식이나 현실 의식과는 무관하게, 평이하고 안일하며 개인적인 정서만을 읊은 시인이라 것이다.
세째는 김영랑의 언어 인식을 중심으로 심미적 내지 유미주의적인 경향에 집중적인 관심을 두고 리듬과 어휘를 분석한 평가가 으며, 이밖에도 김영랑시에 끼친 외국 시인의 영향을 비교문학적 측면에서 고찰한 논문도 다.
필자는 김영랑을 서정시인으로 보면서, 동시에 민족의 암흑기를 살아온 그가 그 어둠을 어떻게 여과하고 극복하였으며 어떻게 승화시켜 서정시로 표현하였는가에 중점을 두어 고찰하고자 한다.
한 시인을 평가함에 있어서 흔히 시인으로서의 뛰어난 명징함과 독특한 감각에 역점을 두지 않고, 그 시인이 얼마나 투철한 사회적 의식을 가졌는가, 그 시인이 어떻게 저항하고 고발하였으며 얼마나 투쟁하였는가에 비중을 두는 경향이 있다.
현실을 몰각하고서는 시도 시인도 존재할 수가 없다.
예술(시)에는 어떤 형태로든지 그 역사와 현실이 반영되어 있을 수밖에 없다. 투철한 현실적 이념을 가지고 온몸으로 도전하고 혹은 고발하는 시가 있는가 하면, 우울하고 한스러운 목소리를 신음처럼 토로하는 시도 있을 수 있다. 혹은 오히려 역으로 찾아낸 탈출구에서 갱생을 모색하면서 힘을 모으는 노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들의 공통점은 다 같이 현실을 반영하였다는 점일 것이다.
시인은 현실개조가와도 다르고 사회운동가와도 구별되어야 한다. 우리는 시인이 언어예술가로서 가객에 가장 가깝다는 것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다만 여기 부연할 말이 있다면 시인은 가객이되 예언적 가객이며 대변자로서의 가객이라는 점일 것이다.
시에서는 이념이 이념 그대로 나타날 때, 시의 예술성을 훼손하고 윤기를 잃어버리게 할 염려가 있는 것이다. 시인은 현실과 역사를 시인이 아닌 사람들보다 아프게 인식하여야 한다. 그러나 은유와 상징과 여과의 과정을 거쳐서 직접 고발이 아닌 형상화된 표현일 때, 시로서도 성공할 것이며 시와 독자와의 예술적인 공감대가 형성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역사적 위기에서 민족의 고난을 깊이 고뇌하고 통찰한 시인들이라 해도 작품세계가 모두 같은 것은 아니다. 尹東柱의 시에는 윤동주만이 느끼고 있는 자책감이 있고, 沈薰의 시에는 또 심훈만이 가지고 있는 격앙된 목소리가 반영되어 있는 것처럼, 李陸史의 시에는 이육사만이 지니고 있던 높은 기개가 있는 것이다.
金永郞의 시에는 김영량의 개성과 삶의 형태에 의해서 김영랑만이 나타낼 수 있는 세계가 있으며, 그러한 차이성은 신동욱이 지적한 대로 '김영랑의 시적방법과 삶의 관계가 결합된' 세계인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세계의 선택은 우연이 아니라 시인의 '인성, 기질, 교양, 신념, 세계관 등의 종합적인 관여에 의한 필연적인' 결과 로 나타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지 않고 역사 인식이 부족하다거나 도피와 은둔의 문학이라고 타기하기만 한다면 시를 예술의 영역으로부터 사회과학의 영역으로 내모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여기 덧붙여 말하고 싶은 것은, 현실에 대결하는 시 혹은 민족의 위기상황에서 저항의식을 표출한 시의 성격, 그 방법과 성격과 한계를 재고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점이다.
그것은 반드시 단순하고 평면적이며 일차적인 의미의 외침으로 나타나야 하는 것인가? 단순하고 평면적이고 설명적인 외침으로 나타났을 때, 의미는 비록 강할지라도 시적 형상미가 여지없이 파괴되는 것은 아닐까?하는 문제에 대해서 우리는 다시 생각하지 않으면 안된다. 왜냐하면 그것이 다름 아닌 '시'이기 때문이다. 표면적으로는 순수시의 모습을 취했을지라도, 그 가운데는 혹은 상징으로 혹은 은유로 표현되는 의미망이 얼마든지 있을 수 있으며, 그것이 오히려 '시로서의 가치'를 선양할 수 있지 않을까 재고해 볼 필요가 있다.
시가 가지고 있는 함축성과 애매모호성, 그리고 비유적인 표현은 얼마든지 동일한 시의 다양한 해석을 가능하게 한다. 따라서 필자가 김영랑연구를 순수시인이며 서정시인으로서의 김영랑이라는 판단으로부터 연역하려는 것은 결코 김영량의 시적 가치를 축소하려는 의도가 아님은 물론이고 소흘히 여긴 결과도 아니다. 김영랑은 김영랑의 방법으로 노래하고 김영랑의 방법으로 도전했으며 김영랑의 방법으로 저항하였음을 강조하고 싶다.
본고에서 필자는, 김영랑이 그의 시에서 '찬란함'과 '슬픔'을 어떻게 공존시켰으며 소위 그의 '촉기'가 필자가 생각하고 있는 광명의식과 어떤 연관을 가지고 있는가를 살펴보고자 한다. 또한 형식미에 치중했던 김영랑의 축소지향적 경향을 고찰하겠으며, 이를 위하여 김영랑이 빈번하게 운용하였던 시어, '이슬'의 이미지를 분석하려고 한다.
마지막으로 김영랑이 공백기를 거친 이후 후기에 이르러 점차 형식미보다 내용적 의미에 치중하였던 것을 중시하면서 '세기적 절망'에서 그가 모색하였던 것은 무엇이었는가를 살펴보고자 한다.
후기에 이르러서 김영랑은 소위 역사적 인식의 촉수를 밝혀 초기의 방법과는 다르게 표현하고 있다. 그러나 후기의 시는 그가 역사와 민족의 아픔에 무심하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해 주었다는 의미 외에 특별한 시적 가치를 발견하기는 어렵다. 다시 말해서 김영랑이 후기에 발표한 시는 그 문학성에 있어서 초기의 시에 비하여 매우 허약하다는 것이다.
우리는 후기에 달라진 김영랑의 시가 곧 후기에 달라진 김영랑의 민족정신을 대변하는 것으로 이해해서는 안될 것이며, 오히려 후기에 해이해진 시적 방법을 발견하는 편이 훨씬 더 정확하리라고 생각한다. 여기 인용한 시들은 문학세계사 간행된 김학동 편저 [모란이 피기까지는]에 수록된 작품 제목을 따랐으며, 맞 법 등은 이해를 쉽게 하기 위해서 현대맞춤법으로 고쳤음을 밝힌다.
2. 本論
1) 金永郞의 '燭氣'와 光明意識
김영랑의 시적 행보는 [시문학] , [문학] 등의 문학지에 <동백잎에 빛나는 마음>, <언덕에 바로 누워>, <4행소곡> 7수, <제야>, <원망>, <누이의 마음아 나를 보아라>, <쓸쓸한 뫼 앞에> 등 13편의 서정시를 발표함으로 시작되었다.
[시문학]은 1930년 3월에 창간된 잡지로 편집인 겸 발행인이었던 박용철은 그 후기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여 그들이 지향하고 있는 시적 방향을 제시하였다.
'우리는 시를 살로 색이고 피로 쓰듯 쓰고야 만다. 우리의 시는 우리 살과 피의 맺힘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시는 지나는 걸음에 슬쩍 읽어 치워지기를 바라지 못하고 우리의 시는 열 번 스무 번 되씹어 읽고 외여지기를 바랄 뿐. 가슴에 느낌이 있을 때 절로 읊어 나오고 읊으면 느낌이 일어나야만 한다. 한 말로 우리의 시는 외여지기를 구한다. (중략) 한 민족이 언어가 발달의 어느 정도에 이르면 구어로서의 존재에 만족하지 아니하고 문학의 형태를 요구한다. 그리고 그 문학의 성립은 그 민족의 언어를 완성한다'
'외여지기를 바란다'는 것은 음악적인 율격을 염두에 두고 있음을 시사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또 문학의 성립과 민족 언어의 완성 관계를 밝혔는데 이는 1930년부터 눈뜨기 시작한 시어에 대한 자각을 암시한 것이라고 보아도 될 것이다. [시문학]은 그만큼 한국의 시문학사에서 언어미의 완성이라고 할 수 있는 시적 발견 내지 발전에 앞장 섰던 것인데, 김영랑은 [시문학]이 지향하는 목표의 선두에 섰었다고 할 수 있다.
김영랑이 그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 <내 마음 고요히 고흔 봄길 위에>, <가늘한 내음>, <꿈밭에 봄마음>, <하늘끝 닿은데>, <사행소곡 5수>등 9편의 시를 시문학 2호에, <내 마음을 아실 이>, <4행소곡 5수>, <시냇물 소리>등 7편의 시를 [시문학] 3호에 발표하는 등 그의 초기시의 작품을 모두 <시문학>에만 게재한 것을 보아도 그것을 알 수 있다.
영랑의 초기시에서 발견할 수 있는 특징으로서 흔히 자아의 내면에 바탕을 둔 섬세한 감각과 민요적 율조가 지적되고 있으며, 이 시기의 시를 '燭氣'라는 단어로 규정하기도 한다.
'燭氣'란 말에 대해서는 시인 자신이 다음과 같이 그 어의를 해석하고 있는데, 이것은 원래 서정주가 김영랑을 회상하는 글에서 밝힌 내용이다. 이 말은 근래에 들어 김영랑시 연구에 빈번하게 인용되고 있다.
남창으론 임방울의 소리를 좋다 하고 여창으로 이화중선과 그 아우 이중선의 소리를 좋다고 소개하면서 특히 이중선의 소리엔 '燭氣'가 있어 더 좋다고 했다.
'燭氣'라 하는 것은 무엇인가 물으니, 그것은 같은 슬픔을 노래부르면서도 그 슬픔을 딱한데 떨어뜨리지 않는 싱그러운 음색의 기름지고 생생한 기운을 말하는 것이라 했다.
'슬픔을 노래부르면서도 그 슬픔을 딱한데 떨어뜨리지 않는' 생생한 기운을 '촉기'라고 정의한 김영랑은 자신의 시에서 충분 그 촉기를 살렸다고 볼 수 있다. 이것은 육자배기를 비롯한 우리 민요의 전통적 정조를 시에서 구현했다는 말이 된다. 그리고 '같은 슬픔을 노래부르면서도 그 슬픔을 딱한데 떨어뜨리지 않고 싱그러운 음색의 기름지고 생생한 기운'으로 바꾸어 '찬란한 슬픔'이 되게 하였다는 말도 된다.
'찬란한 슬픔'은 김영랑 자신이 정의한 '촉기'의 가장 대표적인 형상화라고 할 수 있다. 표면적으로 볼 때, '찬란한'과 '슬픔', 이 두 말의 조합에는 아이러니가 있다. 그러나 '슬픔'과 '찬란함' 사이의 거리가 멂으로 인해서 발생되는 긴장감, 참신함과 당돌함은 결과적으로 시의 탄력을 강화시켰다고 볼 수 있다.
'찬란한 슬픔'이 함축하고 있는 또 하나의 의미는, 단지 슬픔 때문에 나락에 떨어질 수 없고 슬픔 때문에 위축되어 곤궁한 모습을 보일 수 없다는 김영랑의 의지라고 할 수 있다. 김영랑의 이러한 의지에 대해서,
'이는 슬픔을 슬픔으로 받아들이지 않으려는 의지를 나타낸다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해서 그 슬픔은 새로운 기다림과 보람을 잉태할 수 있는 근원으로서의 슬픔이므로 찬란하게 빛날 수도 있는 것이다'
라고 지적한 유윤식의 말은 매우 설득력이 있다고 할 수 있겠다.
필자는 그런 의미에서 김영랑의 '촉기'는 곧 어떠한 슬픔 속에서도 소멸하지 않는 '찬란함'이며 그것은 김영랑의 '광명의식'에서 연유된 것이 아닌가 하는 견해를 피력하고 싶다.
영랑의 즐겨 쓰는 시어에는 '내 마음'과 함께 '슬픔', '눈물'이라는 명사를 지적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슬픔'과 '눈물'은 단순한 비애에 머물지 않으며 배후에 보다 큰 광채를 숨겨 가지고 있다. 그는 눈물을 씻어내고 일어설 수 있는 여력을 스스로 마련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특징은 김영랑 시의 긍정적이고도 거대한 힘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의 대표작으로 알려진 <모란이 피기까지는>을 읽으면서 그의 광명의식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표출되어 있는지 살펴보도록 하자.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나의 봄을 기다리고 있을테요
모란이 뚝뚝 떨어져 버린 날
나는 비로소 봄을 잃은 설움에 잠길테요
오월 어느 날 그 하루 무덥던 날
떨어져 누운 꽃잎마저 시들어 버리고는
천지에 모란은 자취도 없어지고
뻗쳐 오르던 내 보람 서운케 무너졌느니
모란이 지고 말면 그뿐 내 한해는 다 가고 말아
삼백 예순날 하냥 섭섭해 우옵네다.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기다리고 있을테요. 찬란한 슬픔의 봄을
- <모란이 피기까지는> 전문 -
이 시에서 표현하고자 한 정서는 좌절이나 포기가 아니다. 화자가 '봄을 잃은 설움에' 잠겨서 '삼백 예순날 하냥 섭섭해' 운다고 고백했다 해서 이 시의 주정서를 슬픔이라고 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는 모란이 진 후, 허무하게 무산된 한 해를 섭섭히 여기면서 운다고 하였지만, 그는 다시 '나는 아직 기다리고 있을레요'라고 새로운 기다림으로 자신을 추스리고 있음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그의 기다림은 모란이 다시 피어날 '나의 봄'까지로 연결되는 희망이 있는 기다림이다. '삼백 예순날 하냥 섭섭해' 우는 것으로 끝내지 않고 '찬란한 슬픔의 봄'을 기다리는 또 하나의 보람을 마련하고 있는 것은 김영랑이 보여 주는 지칠 줄 모르는 의지인 동시에 가치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김영랑의 슬픔과 애닯음 혹은 서러움도 다른 사람의 경우처럼 상실과 애상의 정서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그 저변에는 광명의 통로를 마련하고 있어서 완전히 '딱한 데 떨어뜨리지 않'고 '싱그러운 음색의 기름지고 생생한 기운'을 가지게 된다.
그는 자연적 계절로서의 봄과 모란이 피는 나의 봄을 구별하고 있다. 온갖 기화요초가 만발하여도 모란이 피기까지는 아직 봄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시인의 모습은 개별적인 특수성을 넘어서 아름다운 지조의 지향성으로 다가선다.
-전략-
수풀과 벌레는 자고 깨인 어린애
밤새어 빨고도 이슬은 남았다.
남았거든 나를 주라.
나는 이 청명에도 주리나니
방에 문을 달고 별을 향해 숨쉬지 않았느뇨
햇발이 처음 쏟아와
청명은 갑자기 으리으리한 관을 쓴다
그때에 토록하고 동백 한알은 빠지나니
오! 그 빛남 그 고요함
간밤에 하늘을 쫓긴 별쌀의 흐름이 저러했다.
-후략-
- <청명> 중에서 -
수풀과 벌레는, 어린애가 어미 젖을 먹듯 밤새 이슬을 빨아 배가 부르지만 시의 화자는 그렇지 못하다. 그렇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그는 전혀 궁색해 보이지 않으며 '으리으리'한 광채의 관을 쓰고 있는듯 부유하고 여유롭기까지 하다. 시인은 그 이유를 '방에 문을 달고 별을 향해 숨쉬'고 있는 축복을 누리기 때문이라고 밝히고 있다. 사방에는 바람을 막아주는 벽이 있고 문을 달고 사는 것도 축복이지만, 별을 향해 숨쉴 수 있는 축복이야말로 배부른 축복보다 낫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남았거든 나를 주라. / 나는 이 청명에도 주리나니'는 주리고 있는 사람의 궁색한 청원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햇발', '으리으리한', '빛남', '별쌀'등의 어휘가 환기하는 전체적인 시의 분위기는 밝고 명랑한 광명에 차 있으며, '토록'하고 동백 알 빠지는 양성모음의 소리 또한 경쾌하고 영롱하게 들린다. 우리는 보통 동백 알이 빠진다 하지 않고 떨어진다고 한다. 그러나 이 시인이 '동백 한알은 떨어지나니'라 하지 않고 굳이 '빠지나니'라고 한 것은 '떨어지다'란 말이 환기하는 추락의 의미를 의도적으로 피한 것이 아닐까 한다. 그는 '빠지나니'에서 마치 암탉이 알을 낳듯이 동백나무가 동백알을 낳는 형상을 무의식 속에서 연상하였으리라 추측할 수 있다.
김영랑은 동백 잎사귀와 햇발의 윤기, 마치 '으리으리한 관을 쓴' 듯 빛남과 고요함으로 알이 빠지듯 영롱한 소리를 내며 빠지는 동백알의 형용에 참지 못하고 '오!'라는 한 음절로 축약된 감탄사를 발한다. 그리고 거기서 문득 '간밤에 하늘을 쫓긴 별쌀의 흐름이 저러했다'고, 밤 하늘을 긋고 지나가던 긴 유성의 흐름과 그 빛을 생각해 낸다.
다시 다음의 시를 보자.
돌담에 속삭이는 햇발같이
풀아래 웃음짓는 샘물같이
내 마음 고요히 고운 봄길 위에
오늘하루 하늘을 우러르고 싶다.
새악시 볼에 떠오른 부끄럼같이
시의 가슴을 살포시 젖는 물결같이
보드레한 에매랄드 얇게 흐르는
실비단 하늘을 바라보고 싶다.
- <내 마음 고요히 고흔 봄길 우에> -
김영랑의 대표작 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는 이 시는 한 마디로 전 편이 광채로 가득 차 있다. 세상사에 대한 번뇌나 고통이 없음은 말할 것도 없고 김영랑시에서 더러 발견할 수 있는 옅은 우수의 그늘도 없다.
<모란이 피기까지는>에서 시인은 '삼백 예순날 하냥 섭섭해 우옵네다'라고 미흡하여 서운해하는 심정을 노정하였으며, 비록 '찬란'하다고는 해도 '슬픔'이 있는 봄임을 고백하였다. 또 <청명>에서도 (이슬이) '남았거든 나를 주라'고 솔직하게 요구하면서 '나는 이 청명에도 주리나니'라고 선명하게 그 처해 있는 상황(주림)을 표출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내 마음 고요히 고흔 봄길우에>는 그렇지 않다. 어둡거나 무겁거나 답답한 것이라곤 아무것도 없다.
1연에서는 하늘을 우러르고 싶은 내 마음을, 돌담에 속삭이는 햇발의 눈부심과 풀아래 웃음짓는 샘물의 영롱함으로 비유하고 있다. 2연에서는 하늘과 내 마음을 대비하여, 하늘은 보드레한 에매랄드 얇게 흐르는 실비단 하늘, 내 마음은 새악시의 부끄러움과 시의 가슴을 적시는 물결 같음을 비유로 제시하고 있다.
<내 마음 고요히 고흔 봄길우에>는 그 제목이 환기하고 있는 것처럼 조용함과 따뜻함과 편안함이 십분 발휘된 시라고 할 수 있다. 거대한 소망은 아니지만 이 시인이 응시하고 있는 것은 '내 마음'이 지향하고 있는 선한 목적지이며 그곳은 멀고도 아름다운 어느 곳인 것이다.
시는 고통을 담아내는 그릇만은 아니다. 고통의 크기와 시의 중량도 별개의 것이며 표면에 드러나는 의미와 시의 가치 또한 일치하지 않는다. 독자는 이 시를 읽는 동안 티없이 맑은 정서를 회복할 수 있을 것이며, 이러한 정서의 순화야말로 가장 중시해야 할 시의 가치인 동시에 목표가 아닐까 한다.
<내 마음 고요히 고흔 봄길우에>는 4행연이 두번 반복되는 시이다. 이 시에서 특히 두드러지는 것은 서로 대칭되는 말들이 여러 쌍 있다는 것이며, 그들을 정리하면 아래와 같다.
돌담에 : 풀아래
속삭이는 :웃음짓는
햇발같이 :샘물같이
부끄럼같이 : 물결같이
오늘하루 하늘을 : 실비단 하늘을
새악시 볼에 떠오른 : 시의 가슴을 살포시 젖는
우러르고 싶다 : 바라보고 싶다.
이 시는 자연의 순수함과, 순수한 자연을 닮으려는 인간의 소망이 가장 원만한 상태에서 조우하고 있어 독자에게 안정감을 준다. 이러한 시는 암담하고 절망적인 세상을 잠시 뒤로 밀어 두고서, 인간 본연의 모습으로 선경에 이르고자 하는 이상적 심정을 표현한 것일 것이다.
내 마음 어딘듯 한편에 끝없는 강물이 흐르네
돋혀오르는 아침날 빛이 빤질한 은결을 돋으네
가슴엔듯 눈엔듯 또 핏줄엔듯
마음이 도른도른 숨어 있는 곳
내마음의 어딘듯 한편에 끝없는 강물이 흐르네
- < 동백잎에 빛나는 마음> -
시인은 부단히 사유하고 부단히 지향하는 마음의 상태를 '끝없는 강물'로 표상하고 있다. 그는 강물의 소재를 명확하게 인지하고 있지 않다. 막연히 '어딘듯 한편'이라고 하여서 어느 구체적이고 한정적인 장소를 지칭하지 않았다. 어디라고 딱 짚어서 지적하기 어려운 애매한 소재, 이것은 역설적으로 전체와 전신적인 것을 암시한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이 시는 외견상으로 이렇다할 장애물이 느껴지지 않는다. 장애물이 느껴지지 않으므로 저항도 갈등도 표면화 되지 않았으며 거부감도 비탄도 드러나지 않는다. 그러나 시인이 자신의 내면 어딘가에 흐르고 있는 강물을 인식하였다는 것은 존재와 생명을 확인하였음을 비유한 것일 아닐까? 그렇다면 그는 왜 새삼스럽게 당연한 그것을 확인하게 되었을까? 이에 대하여 신동욱은
'이 노래에는 한국인의 생명이 전체적으로 위협받고 있다는 시대에 대한 자기 확신으로서 영원적 생명을 시화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일제치하라는 정치적 제도적인 측면에서는 주체자가 가리워졌지만 이 시인의 내심의 세계에서는 강물과 같이 줄기차게 살아 있고 "빤질한 은결을 도도네"와 같이 생동력 있게 살고 있음을 확신하고 있다' 라 말하여 의도적인 표현임을 강조하였다.
김영랑이 이 시를 통하여 나타내고자 하는 특수한 정서는, 끝없이 지속되는 흐름에서 오는 상실감도 아니고 변화 속에서 느낄 수 있는 무상이나 허무감도 아니다.
우리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진행하면서 변화하는 강물의 흐름처럼 살아가고 있는 시인의 모습을 만나게 된다. '돋혀오르는 아침날빗이 빤질한 은결을 돋으네'라고 하여 김영랑은 애정에 넘치는 사물 인식의 시선을 드러냈으며, '가슴엔듯 눈엔듯 핏줄엔듯' 절실하게 감지되는 생명의 희열을 나타내었다. 김영랑의 음성은 전혀 높지 않다. 그는 다만 따뜻하게 바라보고 부드럽게 말할 뿐이다.
이 시는 한 마디로 아름답다. 이 시를 아름답게 하는 조건 역시 광명이다. 광명은 시각적인 빛으로만 오는 것이 아니고 사물을 받아들이는 긍정적인 마음의 상태가 좌우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받아들임'의 상태는 사물에 대한 애정에 의해서 결정된다.
비개인 5월 아침
혼란스런 괴꼬리 소리
찬엄한 햇살 퍼져 오릅내다
이슬비 새벽을 적시울 즈음
두견의 가슴 찢는 소리 피어린 흐느낌
한 그릇 옛날 향훈이 어찌 이 맘 흥근 안젖었으리오마는
이 아침 새 빛에 하늘대는 어린 속잎들 저리 부드러웁고
그 보금자리에 찌찌찌 소리내는 잘새의 발목은 포실거리어
접힌 마음 구긴 생각이 다 어루만졌나 보오
꾀꼬리는 다시 창공을 흔드오
자랑찬 새 하늘을 사치스레 만드오
사향 냄새도 잊어버렸대서야 불혹이 자랑이 아니되오
아침 꾀꼬리에 안 불리는 혼이야
새벽 두견이 못잡는 마음이야
한낮이 정밀하단들 또 무얼 하오
저 꾀고리 무던히 소년인가 보오
새벽 두견이야 오랜 중년이고
내사 불혹을 자랑턴 사람
- <5월 아침> 전문 -
김영랑은 꾀꼬리가 찬엄한 햇살 퍼져 오르듯이 화창하게 노래하는 소리를 들었고 창공을 흔들면서 자랑찬 새 하늘을 사치스레 만드는 것을 보았다. 김영랑의 '5월 아침'은 꾀꼬리뿐만 아니라 두견이 잘새들이 부드럽게 하늘대는 어린 속잎들과 어울려 불혹의 자신을 돌아보게 한다고 말하고 있다.
5월과 꾀꼬리와 두견과 잘새, 아침과 하늘대는 어린 속잎과 사향냄새와 불혹의 나이, 시인은 자신의 생명이 얼마나 화려한 절정에 있는가를 스스로 확인하고 있다.
특히 김영랑은 2연에서 '아침 꾀꼬리에 안 불리는 혼이야 새벽 두견이 못잡는 마음이야 한낮이 정밀하단들 또 무얼 하오. 사향냄새도 잊어버렸데서야 불혹이 자랑이 아니되오'라고 하여 불혹에도 오히려 윤기를 더해가는 시인의 감성을 확인하고 있다.
그것은 '하늘에 뜬 무지게를 볼적마다 내 가슴은 뛰노나 그렇지 않으면 차라리 죽어지고저'라고 한 워즈워드의 시구를 연상하게 한다.
김영랑의 시에서 슬픔이나 눈물의 용어가 많이 발견되고 있으면서도 그 비애의 한 모
퉁이에 반드시 부활의 횃불처럼 마련하는 광명의 공간, 즉 '燭氣'는 김영랑의 초기시의 특징으로서만 머물지 않고 그의 시에 전반에 흐르고 있는 공통적인 특징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다시 다음과 같은 시를 보자.
내 옛날 온 꿈이 다 실리어 간
하늘가 닿는데 기쁨이 사신가
고요히 사라지는 구름을 바래자
헛되나 마음 가는 곳 그곳뿐이라
눈물을 삼키며 기쁨을 찾노란다
허공은 저리도 한없이 푸르름을
엎디어 눈물로 따위에 새기자
하늘가 닿는데 기쁨이 사신다.
- <하늘가 닿은 데> 전문 -
시인이 가슴에 새기는 말은 눈물이나 슬픔이 아니라, 저 멀리 하늘 가에 실려 있는 기쁨인 것이다. 땅 위에 엎디어 눈물로 새기는 말도 '기쁨'이고, 허공을 우러러 구름을 바라보는 것도 멀리 있는 기쁨을 보려함이다.
전대의 시인들처럼 영탄이나 감상에 기울어지지 않고 극복하는 것은 시의 형식적 완성의 단계에서 여과한 그의 의식적인 노력이 개입되었기 때문이며 이는 시인의 사상과 철학의 반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2) 축소지향과 '이슬'의 미학
김영랑의 시를 읽으면서 발견하게 되는 또 하나의 현상은 축소지향적 의식을 많이 담고 있다는 사실이다. 다시말해서 시인의 시선이 한 사물을 통과하여 세계로 확대되는 것이 아니라, 세계의 사물을 거쳐서 시인의 내부로 집합하고 응결한다는 것이다.
그의 시어들은 밝고 영롱하며 경쾌한 광명을 지향하고 있으면서도 반면 작고 애틋하고 애닯고 조심스럽다. 그는 '이슬', '꿈', '눈물' 등의 어휘를 많이 채용하고 있는데, 이러한 시어 선택은 곧 김영랑의 시의식과 시세계를 특징 지어 주는 구체적인 단서가 아닌가 한다.
이슬은 일반적으로 증류되고 응축되었다는 데서 결정체로서의 의미가 있다. 그리고 일광에 의해서 쉽게 사라지는 성격에서 덧없음의 의미를 유발하기도 한다. 김영랑이 구사하는 이슬의 개념도 여기에서 많이 빗나가지는 않는다. 김영랑이 읊은 이슬은 순결한 것의 표징이며 고귀한 것의 대명사인 동시에 값진 결정체로서의 '보람'이라고 요약할 수 있다.
김영랑은 거대하고 우렁찬 것보다는 작고 애잔한 것을, 담대하고 씩씩한 것보다는 애닯고 고요한 것을 선호한다. 타인과 세계의 의지에 시선을 두기에 앞서 '나'와 '내 마음'에 집착하고 있는 것도 그의 축소지향적인 성향에 관련된 것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다음에서 김영랑이 이슬과 눈물을 어떤 이미지로 채용하고 있는가? 그것은 그의 축소지향적 의식과 어떻게 맞물려 있는가 살펴보도록 하자.
그 밖에 더 아실이 안계실거나
그이의 젖인 옷깃 눈물이라고
빛나는 별 아래 애닯은 입김이
이슬로 맺히고 맺히었음을
- <그밖에 더 아실 이> 전문 -
이슬을, 사랑하는 사람의 젖어 있는 옷깃의 '눈물'이라 하기도 하고, 별빛 아래 어리는 '애닯은 입김'이라고도 하였다. 여기서 시인이 표현하고자 한 것은 감정상의 애잔함이나 슬픔이 아니라, 그만큼한 이슬의 결백과 순수함일 것이다. 즉 눈물의 무구성과 애닯은 입김의 결백성으로 이슬의 순수함과 깨끗함을 은유하는 도구를 삼으려 했던 것이다.
'눈물'은 슬픔의 반사작용으로 배설되는 체액이다. 그러나 이러한 생리학적 해석에 우선하는 것은 '눈물'이 포화상태에 이른 감정 내지 정서의 소산이라는 점이다. 위의 시에서는 '애닯은 입김'의 주체가 시인 자신인지 '그이'인지는 표면화되지 않았다. 다만 확실한 것은 그 애닯은 입김은 '빛나는 별 아래'서 영롱하게 반사하는 입김이며, 간절한 애정을 쏟아 붓고 싶은 입김이라고 판단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판단할 때 '이슬'은 일체화된 진선미의 결정체가 된다는 점이다. '애닯은'은 애가 달칠 정도로 마음이 아프거나 조인다는 뜻이 아니라, 그렇게 애틋하고 사랑스럽고 조심스러운 마음을 표현한 것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젖은 옷깃의 눈물 - 애닯은 입김 - 이슬로 가는 길목에서 시인은 스스로 정리한 발견의 기쁨을 누를 길 없어 '그 밖에 더 아실 이 안계실거나'라고 묻는다. 즉 이슬을 적절하게 표현할 또 다른 말을 알고 있는 사람은 나 말고 또 있는가? 있다면 누굴까를 묻고 싶은 것이다. 이슬을 바라보는 김영랑이 얼마나 커다란 경이로움에 차 있는가를 알 수 있다.
풀위에 맺어지는 이슬을 본다
눈썹에 아롱지는 눈물을 본다
풀 위엔 정기가 꿈같이 오르고
가슴은 간곡히 입을 벌린다
- <풀위에 맺어지는 이슬> 전 -
기본 음수율 7.5조를 의식하고 쓴 짧은 시이다. 시가 짧은 것은 언어를 아끼고 형식미에 치중하였다는 의미를 갖는다.
이 시의 두 가지 오브제는 '자연'과 '인간'이며 좀더 축소해서 말한다면 '풀'과 '나'이다. 앞에서도 언급한 바와 같이 김영랑은 시의 소재에 자신의 마음을 대입시키는 작품을 많이 썼으며, 여기서도 풀 위에 맺히는 이슬과 나의 눈물, 풀 위에 오르는 정기와 내 가슴의 간곡함을 대비시키고 있다.
시인은 이슬과 눈물이 둘 다 흠없는 진실이라는 면에서 유사성을 갖는 것으로 보았다. 그는 풀 위에 맺힌 이슬은 꿈같이 오른 정기라 하고, 내 눈썹에 아롱진 눈물은 '간곡히 입을 벌린' 내 가슴 깊이 품고 있는 '말'이라고 하였다.
김영랑에게 있어서도 '눈물'은 슬픔의 반사작용이라는 일차적인 인식의 범주를 벗어나지 않는다. 그러나 그보다 중요한 것은 비애가 가장 고귀하고 아름답고 순수한 감정이라고 주장하고 싶어하는 그의 확신이다.
시인은 '이슬'과 '눈물'과 '꿈'을 축소와 응축의 객관적 상관물로 내놓았다. 맺어지는 이슬과 아롱지는 눈물의 응축성에 대해서는 위에서도 언급했기 때문에 반복을 피하려 한다. 그러나 '꿈' 역시 생시의 경험과 습관이 잠재의식으로 응결하였다가 나타난다는 점에서 눈물이나 이슬과 동일한 결정체라고 할 수 있다. 마지막 행에서 '가슴은 간곡히 입을 벌린다'고 했는데 간곡히 벌리는 입은 오래동안 참고 참았던 진실을 비로소 토로함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그 입에서 나오는 말은 헤프고 경솔한 헛말이 아니고 간추려지고 여과된 말이며 비중이 큰 말일 것이다. 동시에 그것은 승화된 '이슬'이나 '눈물', '꿈'으로도 대치 가능한 말일 것이다.
내 마음 아실이
내혼자 마음 날같이 아실이
그래도 어디나 계실 것이면
내 마음에 때때로 어리우는 티끌과
속임없는 눈물의 간곡한 방울방울
푸른밤 고이맺는 이슬같은 보람을
보밴듯 감추었다 내어드리지
아! 그립다, 내혼자 마음 날같이 아실이
꿈에나 아득히 보이는가
향맑은 옥돌에 불이 달아
사랑은 타기도 하오련만
불빛에 연긴듯 희미론 마음은
사랑도 모르리 내혼자 마음은
- <내 마음 아실 이> 전문 -
이 시에서도 김영랑은 이슬과 눈물을 동일시하고 있다. 다시말해서 '속임없는 눈물의 간곡한 방울방울'은 '푸른밤 고이맺는 이슬같은 보람'인 것이다.
시인은 사랑하는 사람에게 눈물을 내보이는 일은 곧 '보람'을 내어드리는 행위임을 시사하고 있다. 그는 이슬이 맺히는 과정과 눈물이 맺히는 과정을 동일시하고 있으며 눈물이나 이슬을 똑같은 결실, 감추어 두었던 값진 '보배'로 보고 있음을 나타내고 있다.
'내혼자 마음 날같이 아실 이 / 꿈에나 아득히 보이는가'라고 할만큼, 그 사람의 존재는 불확실하고 희미하다. 그러나 내가 그를 만나 드릴 수 있는 소중한 것이 있다면 '이슬같은 보람' 즉 눈물 외에 아무 것도 없다고 말한다.
여기서 우리는 눈물의 중량에 대해서 재고하지 않을 수 가 없다. 위의 시에서는 눈물 역시 단순한 슬픔의 증후로 나타나지 않고, 오랜 기다림 끝에 만났음에 기인한 감격과 기쁨의 표징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눈물 = 보배'라는 등식을 성립시킬 수 있을 것이며, 그렇게 할 때 '눈물'은 가장 순수한 감정이 응결된 보석으로서의 눈물로 보아야 할 것이다.
김영랑의 시에 슬픔이나 눈물 애닯음이 많이 있다 하여 슬픔의 시인, 혹은 어두움의 시인으로 정의하는 것은 부적절한 판단이 아닐까 한다. 김영랑이 시어로 원용하고 있는 '눈물'은 주체 못할 슬픔의 표상이 아님을 다시 한 번 확인해야 할 것 같다.
님두시고 가는 길의 애끈한 마음이여
한숨 쉬면 꺼질듯한 조매로운 꿈길이여
이 밤은 캄캄한 어느 뉘 시골인가
이슬같이 고인 눈물을 손끝으로 깨치나니
- <님두시고 가는 길의> 전문 -
여기서도 눈물은 이슬같이 고였다. 님을 두고 홀로 가는 사람의 애틋한 마음이 절절하게 나타난 위의 시에서 눈물은 당연히 슬픔의 표지여야 한다. 그러나 화자는 그 이슬을 '손끝으로 깨치'면서 감으로써 그의 발걸음을 비탄에 한없이 머물러 있게 하지 않는다.
시인은 자신의 비애를 스스로 조절하고 있으며 그것으로 '조매로운 꿈길'을 꺼지지 않게 하려고 애쓴다. 여기서 국어사전에도 없는 '조매로운'이란 말 뜻은 무엇인가?
필자는 '조매롭다'라는 조성하는 어감에 의해 '조마조마하다' '조븟하다' '앙징맞고 작다' '조그마하다' '멀어서 가물가물하다' 등의 어의를 적용하고 싶다. 그러므로 '한숨 쉬면 꺼질듯한 조매로운 꿈길'이란 작고 희미하고 아득하고 좁은 어떤 것, 안타깝도록 조심스러운 어떤 것이 아닌가 한다.
시인이 가는 캄캄한 밤의 시골길은 임을 두고 가는 시인의 마음을 대변한 것이다.
김영랑의 시어들은 구심점인 김영랑의 마음을 향하여 축소되고 응축되었다고 할 수 있다.
좁은 길가에 무덤이 하나
이슬에 저지우며 밤을 새인다
나는 사라져 저 별이 되오리
뫼아래 누어서 희미한 별을
- <좁은 길가에 무덤> 전문 -
'좁은', '이슬', '별', '희미한 별' 등의 어휘가 전 4행의 시에 각각 나뉘어 있다. 첫행의 '좁은 길가'는 '넓은 길가'보다 호젓하고 한산한 느낌이 든다. '넓은'이라고 했을 때는 시야가 확대되면서 의미가 분산될 수 있지만 '좁은'이라고 하면 의미가 집약되고 농도도 짙어진다고 보아야 한다.
둘째행 '이슬에 저지우며 밤을 새인다'는 '이슬'인 자연과 옷을 적신 '나'와의 교감을 엿볼 수 있으며, 3.4행은 2연에 이어서 자연에 동화하고 싶은 작자의 詩情이 나타나 있다. 시인은 스케일이 작은 언어를 선택하였지만, 완성한 한 편의 시에서 얻어지는 것은 우주적 질서와 순응이라고 하는 큰 명제인 것이다.
김영랑은 축소지향적인 어휘를 운용하였을 뿐만 아니라, 언어를 절제하여 짧은 4행시를 많이 썼음을 알 수 있다.
김영랑의 시 80편 중에 4행시가 25편이며 4행연 반복형태인 8행시가 16편, 5행시 2편, 6행시와 7행시가 각 1편씩이다. 특히 초기시 가운데 절반 이상이 4행시인 것을 보면 그가 율격적 구조에 얼마나 깊은 관심을 보이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짧은 시의 형태와 언어의 절제는 우연한 결과가 아닐 것이니, 최대의 절제로 최고의 미를 창출하려는 시인의 강한 의도가 뒷받침되어 있었다고 보아야 할 것 같다.
예술의 아름다움은 바로 형식의 아름다움이다. 형식이 장르를 결정하고 미감을 결정한다. 시의 형식미에 고심했다는 것은 시의 예술미를 천착하였다는 말이 될 것이다.
그가 민요적 율조에 절제된 시어를 써서 자연을 노래한 점은 한국시사에서 김소월과 함께 전통시가의 맥을 잇는 시인으로 규정짓게 한다.
김영랑의 시어들이 비애를 나타냈을지라도 그 비애의 느낌이 다른 시인들처럼 영탄이나 감상에 머물러 있지 않음은 민요적 율조로 극복되어 있다는 이유도 클 것이다.
그러한 작업에는 길고 아픈 단계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김영랑은 과감한 생략과 축소로써 그의 시를 슬프되 궁하거나 비참하지 않는 경지로 상승시켰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언어와 리듬 등, 형식이 주는 영롱한 미감은 의미의 중량를 가중시켰으며, 슬픔을 아름답게 형상화시키는 데에 크게 기여하였다고 할 수 있다.
다시 다음과 같은 시들을 보자.
숲 향기 숨길을 가로 막았소
발끝에 구슬이 개여지고
달 따라 들길을 걸어다니다가
하릇밤 여름을 버렸소
- <숲 향기 숨길> 전문 -
허리띠 매는 시악시의 마음실같이
꽃가지에 은은한 그늘이 지면
흰날의 내 가슴 아지랭이 낀다
흰날의 내 가슴 아지랭이 낀다
- <허리띠 매는 시악시> 전문-
두 편 모두 4행시이며, 동시에 두 편의 시가 모두 내용에 치중하지 않았다는 점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시가 산문과 다른 점은 압축과 비약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리고 압축하고 비약하는 과정에서 발생하게 되는 비유나 상징을 들 수도 있다. 그러나 시와 산문을 구별하게 하는 중요한 특성은 산문이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을 가지는 반면 시는 전달할 내용이 전혀 없이도 얼마든지 성립할 수 있다는 점이다.
시의 형식미에 관심을 두지 않고서는 4행의 짧은 시가 탄생하기 어렵다.
위에서 <숲 향기 숨길>이 이슬에 함뿍 젖어 여름 밤의 들길을 산책하는 마음의 정경이라고 한다면, <허리띠 매는 시악시>는 시정이 그윽하게 차오르는 시인의 가슴 속을 투사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두 편 모두 독자에게 전달되는 것은 추상적인 정서 혹은 기분에 지나지 않는다.
<숲향기 숨길>은 몽롱한 가운데 자연에 도취하고 있는 시인의 탐미주의적 경향을 전개해 보이고 있다. 숲의 향기로 숨이 막힐 듯하고 발끝에는 풀잎의 영롱한 이슬이 스치는 여름 밤, 달빛을 좇아서 들길을 따라서 무한정 걷고 있는 시인의 모습은 현실과는 전혀 무관한 선경 속의 인물같은 인상을 준다.
시인의 시선이 머물고 있는 관심사는 숲길, 발끝의 이슬, 달, 들길 등 한정된 공간이며 거기서 얻게 되는 시인의 자각은 '하룻밤'의 '여름'을 송두리째 상실했다는 점이다. 이 시는 고도로 압축된 낭만을 느끼게 하며 그것은 동시에 증류된 물이 압축되어 이슬로 맺히는 과정과도 흡사하지 않을까 한다.
<허리띠 매는 시악시>는 '허리띠 매는 시악시의 마음'에서 은은한 그늘이 지는 '꽃가지'로, 은은한 그늘이 지는 '꽃가지'에서 아지랭이 끼는 '내 가슴'으로 시인의 렌즈가 이동한다. 렌즈의 이동과 이동 사이에는 아무런 설명이 개입하지 않는다.
단 4행밖에 되지 않는 짧은 시인데 마지막 2행에서 '흰날의 내 가슴 아지랭이 낀다'를 반복하여 강조하고 있는 것은 왜인까? 그리고 김영랑이 상정하는 아지랭이 끼는 '흰날'이란 무엇인가? 그가 지향하는 순수하고 맑은 삶인가, 그가 영위하고 있는 외롭고 허허로운 삶인가, 아니면 아직은 가능성이 있고 여백이 있는 삶인가.
흰색이 표방하는 이미지를 동원하여 독자는 여러 의미를 상상할 수 있다. 독자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것은 생략할지언정 다 보여 주지 않기 때문이며 이런 부분이 있음으로 시는 비로소 산문과 달라지는 것이다.
3) '새로 뽑은 독'과 귀향의식
1930년부터 시작하여 1950년 작고한 김영랑의 시작 생활 20년에 달한다. 그러나 그는 1935년 [시문학] 2호에 <못오실 님이 그리웁기로>를 발표한 이후 1939년 [조광] 1호에 <거문고>를 발표하기까지 약 4년의 공백기를 가진다. 김영랑의 시는 그 공백기를 분수령으로 하여 초기시와 후기시로 구분되고 있으며, 이러한 구분을 통하여 우리는 괄목할 만한 그의 시적 세계의 선회를 볼 수 있다.
한 마디로 그의 시는 아름다운 시에서 의미 있는 시로의 전환을 모색하였다고 할 수 있다. 그의 초기시가 섬세한 감각을 민요적 율조에 담아 자신의 내면을 응시하여 압축된 언어로 노래한 시였음에 반하여, 후기시는 형식미보다 의미와 내용에 주력한 시였다고 할 수 있다. 그는 시선을 외부와 사회를 향해 열고 자아를 확대하여 인생과 세계에 대한 부정과 회의를 읊기도 하였다.
후기에 그는 억압받는 우리 민족을 기린에 비유한 <거문고> (조광 1939.1.), <독을 차고> (문장.1939.7), <달맞이> (여성 1939.4), <묘비명> (조광.1939.12), <한줌흙> (조광,1940.3)등을 발표하는 등, 차츰 운명론으로 기울어지면서 일제말기의 어려운 현실을 강렬한 죽음의식으로 표출하기에 이른다.
또 해방 이후에는 <바다로 가자>, <겨레의 새해>, <감격 8.15> 등의 시로 조국의 산천이 살아 움직이는 모습과 함께 새로운 조국 건설에 참여하려는 의지를 보여 주었고, <연>(백민 49.1.), <오월의 아침> (문예. 49.9)등의 화사한 감정의 작품도 발표하였다. 그러나 초기시의 영롱한 '촉기'와 '광명'의식은 작품의 표면에서 후퇴하게 된다.
죽음에 임하는 김영랑의 의식은 보다 본질적인 회귀인 동시에 귀향의식으로 풀이할 수 있는 것이며, 단순한 '사멸'이 아니다. 우리는 김영랑의 죽음의식을 통해서 그의 구상하는 최종적인 공간, 유토피아의 모습을 엿볼 수 있을 것이다.
좀평나무 높은 가지 끝에 얼킨 다아 헤진 흰 실낫을 남은 몰라도
보름전에 산을 넘어 멀리 가버린 내 연의 한알 남긴 서름의 첫씨
태여난 뒤 처음 높이 띄운 보람 맛본 보람
안끈어졌드면 그럴 수 없지.
찬바람 쐬며 코ㅅ물 흘리며 그 겨울내 그 실낫 치여다 보러 다녔으리
내 인생이란 그때버텀 벌써 시든상 싶어
철든 어른을 뽑내다가도 그 실낫같은 병의 실마리
마음 어느 한구석에 도사리고 있어 얼신거리면
아이고 모르지
불타 자는 바람 타다꺼진 불ㅅ동
아! 인생도 겨래도 다아 멀어지는구나.
- <연2의> 전문-
좀평나무 높은 가지 끝에 얼켜 있는 끊어진 실낫은 소년 김영랑의 꿈의 흔적이다.
연이 연실을 끊고 멀리 날아가 버림으로써 연과 나와의 관계는 끊어져 버린 것으로 나타나 있다. 그는 끊어진 실낫을 치어다보면서 '높이 띄운 보람'을 추억하고 끊어졌음을 서러워하면서 남아 있는 '실낫같은' 미련을 앓고 있는 것이다.
김영랑은 유년시절의 시점으로 돌아가서 연이 끊어져 하늘 멀리 날아가 버린 날, 그의 삶의 보람조차도 송두리째 빼앗기고 '내 인생이란 그때버텀 시든상 싶어'라고 삶 자체를 회의하고 있으며, '인생도 겨레도 다 멀어지는구나'라고 허탈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자신의 손끝에서 떠난 연을 원망하면서 '인생도 겨레도 다아 멀어지는구나'라고 느끼게 된 것은 김영랑에게 있어서 이만저만한 자아확대가 아니다.
'내 인생이란 그때버텀 벌써 시든상 싶어'는 초기의 '찬란한 슬픔'이나 '흰날의 내 가슴 아지랭이 낀다'의 주관적인 낭만에서 놀라운 거리를 두고 떠나와 있다.
<연2>에는 인생에 대한 회의와 허탈이 깊게 깔려 있다. 이러한 회의와 허탈의 저변에는 인생과 사회를 바라보는 이 시인의 부정적인 판단이 뒷받침하고 있을 것이다. '인생'이란 결국 시인 자신이 혼자 짊어지고 나가는 삶이지만 '겨레'는 시인이 소속된 공동체로서, 그 일원인 시인으로 하여금 공동의 책무를 느끼게 하는 거대한 짐이었을는지도 모른다. 개인의 삶도 회의적이고 소속된 공동체 또한 허탈감을 느끼게 할 때, 시인은 절망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내 가슴에 독을 찬지 오래로다.
아직 아무도 해한 일 없는 새로 뽑은 독
벗은 그 무서운 독 고만 흩어버리라 한다.
나는 그 독이 벗도 선뜻 해할지 모른다 위협하고
독안차고 살어도 머지 않어 너나 마주 가버리면
누억천만 세대가 그 뒤로 잠잣고 흘러가고
나중에 땅덩이 모지라져 모래알이 될 것임을
[허무한듸!] 독을 차서 무엇하느냐고?
아! 내 세상에 태어났음을 원망않고 보낸
어느 하루가 있었던가, [허무한듸!] 허나
앞뒤로 덤비는 이리 승냥이 바야흐로 내 마음을 노리매
내 산채 짐승의 밥이 되어 찢기우고 할퀴우라 네 맡긴 신세임을
나는 독을 품고 선선히 가리라
마금날 내 깨끗한 마음 건지기 위하여.
- < 독을 차고>의 전문 -
<독을 차고>는, 김영랑이 순수 서정시만을 써서 시세계의 한계를 드러낸 시인이 아니고, 역사의식과 민족의식이 투철한 시인이었음을 증거할 때 반드시 인용되는 시이기도 하다. '찬란한 슬픔의 봄'을 기다리는 김영랑, 섬세한 감각으로 내 마음의 보람과 유일성을 지키던 김영랑이 '새로 뽑은 독'을 찼다고 했을 때, 우리는 그가 찬 독의 정체와 독을 찬 이후의 그의 행로에 대해서 유의 주시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의 독은 '아직 아무도 해한 일 없는' 독이다. 그는 독은 차서 무엇하느냐고? 혼자 반문하다가, 이리 승냥이에게 산 채로 밥이 되어 찢기우고 할퀴울지라도 '내 깨끗한 마음'을 건지기 위한 것이라고 스스로 대답하기도 한다. 그리고 '세상에 태어났음을 원망 않고 보낸 어느 하루가 있었던가'고 삶 자체를 부정한다.
육체는 짐승에게 찢기울지라도 '마금날 내 깨끗한 마음을 건지기 위해' 독을 찼던 시인 김영랑은 '독을 품고 선선히' 죽음 앞으로 가리라고 선언한다. 김영랑은 외부적 상황에 대한 불신과 회의, 그리고 자신의 내부로부터 발산되는 저항의 요소를 일괄하여 '毒'이라고 명명하였으며, 그 독은 남을 해할는지도 모르는 '무서운 독'임을 인정하였다. '독을 차서 무엇하느냐고' 망설이기도 하다가 결국은 '독을 품고 선선히 가리라'고 결심한 김영랑의 모습을 통하여 우리는 4.5년의 공백기를 거쳐 시작활동을 새롭게 전개한 그의 갈등과 결심을 엿볼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즉 '가슴에 독을 찬지 오래'지만 그는 여간해서 '독'을 뽑으려 하지 않았었다. 그러나 이제는 독을 뽑을 수밖에 딴 도리가 없는 상황임을 선포한다. 현실적 문제를 유보하고 '光明'과 '燭氣'를 지향하였지만, 이제는 결국 '毒' 대신에 '光明'과 '燭氣'를 유보할 수밖에 없는 상왕에 이르른 것이다.
독을 차고는 있었지만 될 수 있으면 뽑으려고 하지 않았던 김영랑은 독을 절감하고 있었지만 그것을 독으로 표현하지 않으려고 했다고 할 수 있다. 그것은 언어 예술로서의 시의 영역과 시인의 진정한 사명을 체득하고 있는 김영랑의 선택이었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그는 독을 뽑으면서도 '깨끗한 마음을 건져 올리기 위하여'라는 목적의식을 분명히 하려고 했으며, 이 목적의식은 '[허무한듸!] 독은 차서 무엇하느냐'는 내심의 강한 회의를 동반하게 하였던 것이다.
검은 벽에 기대선 채로
해가 스무번 바뀌였는데
내 기린은 영영 울지를 못한다
그 가슴을 통 흔들고 간 노인의 손
지금 어느 끝없는 향연에 높이 앉었으려니
땅 위의 외론 기린이야 하마 잊어졌을나
바깥은 거친 들 이리떼만 몰려다니고
사람인양 꾸민 잔나비떼들 쏘다다니여
내 기린은 맘둘 속 몸둘 속 없어지다
문 아주 굳이 닫고 벽에 기대선 채
해가 또 한 번 바뀌거늘
이 밤도 내 기린은 맘놓고 울질 못한다
- <거문고> 전문 -
<거문고>는 외부세계와 상황에 의해 제약 당하고 있는 시인의 삶을 울지 못하는 거문고로 표현하고 있다.
'검은 벽에 기대선 채로' '영영울지를 못'하는 '내 기린'과, '거친 들 이리떼'와 '사람인 양 꾸민 잔나비떼들'... 시인은 상실과 절망과 단절의 삶을 강요 당하는 삶, 비인간적 세계로부터 위협 받고 있는 비극적인 삶을 동물의 세계로 은유하고 있다.
이에 대해서는 김학동의 다음과 같은 언급을 참고할 수 있을 것이다.
<기린>이나 <이리떼>와 <잣나비떼>들이 시사하는 의미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특히 3.4연의 내용으로 보아 초기시들과는 판이하게 당시의 시대상황을 직설적으로 표출시키고 있다. <이리떼>와 <잣나비떼>, 즉 일본 관헌과 그들을 추종하는 아첨배들이 득실거리는 식민지 치하의 <기린>, 즉 애국지사와 선량한 국민들이 옴짝도 못하고 은거하던 시대상황을 이렇게 고발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 가슴을 통 흔들고 간 노인의 손'이라고 하여, 굳이 거문고의 몸체를 흔들면서 다루던 거문고의 주인을 '노인'으로 설정하고 있는 것은 주목할 만한 착상이라고 생각한다. 이는 즉 거문고의 유구한 역사성과 전통성을 강조하고자 하는 의도적 표현이라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거문고의 주인이 '지금 어느 끝없는 향연에 높이 앉었'을 것으로 추정하면서 '땅 위의 외론 기린이야 하마 잊어졌을나'라고 하여 지금은 비록 '문 아조 굳이 닫고 벽에 기대선채' '맘놓고 울지못'하지만 아직은 꺼지지 않은 희망이 있다는 것을 시사하고 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본시 평탄했을 마음 아니로다
굳이 톱질하여 산산 찢어 놓았다.
풍경이 눈을 홀리지 못하고
사랑이 생각을 흐리지 못한다
지쳐 원망도 않고 산다
대체 내 노래는 어디로 갔느냐
가장 거룩한 것 이 눈물만
아쉰 마음 끝내 못 빼앗고
주린 마음 그득 못 배불리고
어차피 몸도 괴로워졌다
바삐 관에 못을 다져라
아모려나 한줌 흙이 되는구나
- <한줌 흙> -
'본시 평탄했을 마음 아니로다'라는 이 시의 첫행이 시사하는 것은 무엇인가? 외부적 상황에는 외면하고 돌아앉아 문을 닫고 있는 듯 현실과는 동떨어지게 윤기나는 노래를 불렀던 자신의 숨겨진 진심을 고백하고 싶었던 것인가? 겉으로는 원경을 바라보듯 딴전을 부렸지만 자신도 다 알고 아파하고 번뇌하였었노라고 불현듯 속마음을 내보이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내 마음도 '본시 평탄했을 마음 아니로다'라고 거두절미하고 첫행에서부터 툭 털어놓고 핵심으로 직핍한 것이다. 누구는 그것을 모르고 있는 줄 아는가? '굳이 톱질하여 산산 찢어 놓'아 괴롭게 할 필요가 있겠는가?고, 그는 원망을 섞어서 말하고 있다. 그리고 이미 어떠한 '풍경'도 시인의 눈을 허황된 방향으로 유혹하지 못하며('풍경이 눈을 홀리지 못하고'), 일시의 어떤 감미로움도 나의 이성적인 판단력을 흐리게 하지 못한다('사랑이 생각을 흐리지 못한다')고 현황을 더 자세한 내용을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대체 내 노래는 어디로 갔느냐'고 하는 그의 물음은 '내 기린은 영영 울지 못한다'고 하는 <거문고>에서의 외침과 그대로 일치하며, 노래를 부르지 못하는 시인 자신이나, '검은 벽게 기대선 채로' 소리내지 못하는 거문고는 이미 죽어 있음과 동일한 것으로 간주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김영랑은 현실 속에서 이미 죽음을 경험하고 있다. 그는 지쳐서 이제 아무 원망도 하지 않으며 아쉬운 마음을 만족하게 하려 하거나 주린 마음을 배불리려는 생각도 가지고 있지 않다. 그는 모두가 허무하고 괴로울 뿐이어서, '아모려나 한줌 흙이' 될 세상, 차라리 '바삐 관에 못을' 박아 다지기를 바라는 것이다.
자신에게 남아 있는 것 중 '가장 거룩한 것'은 '눈물' 뿐이라고 말하는 이 시인에게 있어서 눈물의 의미는 건강한 감성일 것이다. 그는 느낄 수 있는 자유와 느낄 수 있는 권리를 자신이 소유하고 있는 것 중 가장 거룩하고 소중한 것으로 여기고 있다.
그러나 죽음에 대한 그의 남다른 의식은 후기에 이르러 확립된 것이라고는 할 수 없다. 우리는 전기의 시에 해당되는 다음과 같은 시에서도 이미 초탈한 김영랑의 죽음의식을 엿볼 수 있다. 즉 생자와 사자가 넋으로 만나 사후의 세계로까지 이어지는 영혼의 교류는 김영랑의 자아 확대와 귀향의식의 범위를 은짐작할 수 있게 한다.
마당 앞
맑은 새암을 들여다본다
저 깊은 땅 밑에
사로잡힌 넋 있어
언제나 먼 하늘만
내려다보고 계심 같아
별이 총총한
맑은 새암을 들여다본다
저 깊은 땅 속에
편히 누운 넋 있어
이 밤 그눈 반짝이고
그의 겉몸 부르심 같아
마당 앞
맑은 새암은 내 영혼의 얼굴
- <마당 앞 맑은 새암을> 전문 -
시인은 이미 세상을 떠나 '깊은 땅 밑에 사로잡힌 넋'이 하늘로 올라가서 마당 앞 맑은 샘물을 내려다 보고 있다고 생각한다.
'맑은 새암 -> 어떤 넋 -> 빛나는 별 -> 나의 넋'으로 가는 과정에서 우리는 가시적인 현실 세계를 넘어서 불가시적인 세계로까지 확대된 그의 의식의 일 면모를 엿볼 수 있다. 그리고 이는 우주의 사물을 접하는 김영랑의 애정이라고 해석해도 틀림이 없을 것이다.
또 육체는 죽어서 '저 깊은 땅속에' 누워 있지만 영혼은 살아서 하늘의 별과 만나 총총히 반짝이고, 그 별은 빛으로 내려와서 새암을 들여다보고 있는 시인의 영혼과 다시 합일되는 것을 경험하고 있는 그의 모습을 통해서 우리는 김영랑 시인의 광활한 정신적 공간을 짐잓할 수 있게 된다. 김영랑이 몸을 다만 '겉몸'이라고 표현하고 있음은, 그가 확신하는 영혼의 영생과 영혼으로 귀향하는 이상적 세계의 개념을 유추할 수 있게 한다.
자네 소리하게 내 북을 잡지
진양조 중머리 중중머리
엇머리 잦아지다 휘몰아 보아
이렇게 숨결이 꼭 맞아서만 이룬 일이란
인생에 혼치 않아 어려운 일 시원한 일
소리를 떠나서야 오직 가죽일 뿐
엇 때리면 만갑이라도 숨을 고쳐 쉴 밖에
장단을 친다는 말이 모자라오
연창을 살리는 반주쯤은 지나고
북은 오히려 콘덕터요
떠받는 명고인데 잔가락을 온통 잊으오
떡 궁- 동중정이오 소랑 속에 고요 있어
인생이 가을같이 익어가오
자네 소리하게 내 북을 치지 - <북> -
이것은 단순한 낙천이 아니다. 그의 표현을 빌어서 말한다면, 인생을 '가을같이' 익어가는 것으로 판단하지 않고는 불가능한 결론이다. 김영랑은 '이렇게 숨결이 꼭 맞아서만 이룬 일이란 인생에 혼치 않아'라고 하였다. 이는 그가 의지로 삶을 발전시키려할 때 따르는 고통을 체념하고 있으며, 순명하는 삶으로 조화를 추구하려 하고 있음을 보이고 있다.
김영랑의 시는 초기에 광명과 푸르름을 지향하던 촉기 있는 음향이, 결국 우울한 외부상황과 시인의 내부에서 일어나는 죽음의식이 결부되면서 자연히 영롱성이 약화 내지 무화되어 나타나지 않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가 꾸준히 지향하고 있는 이상적인 세계만은 계속 모란이 피고 지는 찬란한 슬픔과 기다림의 보람에 통해 있어서, '인생이 가을같이 익'은 다음 낙과에 이르는 또 하나의 경이로운 경로를 체험하게 될 것이다.
3. 結論
첫째 김영랑 시의 특성으로는 광명의식을 꼽을 수 있다. 그것은 초기에 '찬란한 슬픔' 혹은 '기다리던 보람'으로 표현되는 김영랑의 시적 특성인 동시에 기질이라고 할 수 있는 '촉기'와 일치한다. 그의 광명의식 내지 촉기는 '옛날의 온 꿈이 다실리어 간' 절망의 상태에서 '눈물 삼키며 기쁨을 찾노란다'라고 하는 극기의 모습으로도 나타나며 , '하늘가 닿는데 기쁨이 사신다'라고 하는 긍정적인 기대의 모습으로 표현되기도 한다.
둘째, 김영랑은 언어의 응축을 실현하여 美感을 최대로 살린 시인이지만 시인의 마음을 응축해 낸 최대의 가치와 보람을 '이슬'로 結晶해 내기도 하였다. 그의 작품에는 '이슬'이라는 어휘가 유독 많이 표출되어 있으며, 그 이슬은 '눈물' 혹은 '보물'과 동일한 의미를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것은 그가 슬픔을 자신을 傷害하는 비애로서만 받아들이지 않고 순수한 미감으로 승화시켰다는 하나의 증거라고 할 수 있으며, 첫째 항의 광명의식과도 무관하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세째 김영랑은 1940년을 전후한 후기의 작품 <독을 차고>, <거문고>, <연> 등에서 현실의 절망성을 표현하기에 이른다. 이들 후기시는 초기시와 격해 있는 시간적 구획으로서의 후기시가 아니라, 달라진 김영랑시의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는 데에 의미를 두어야 할 것이다.
다시말해서 이 시기의 작품들은, 김영랑을 문학사회학적인 관점에서 고찰하게 하고, 그에게서 투철한 셰계인식의 한계점을 지적하면서 부정적으로 평가한 일부 견해에 분한 해답을 제공하고 있다.
본고에서 필자는 서정시인으로서의 김영랑의 면모를 드러내는 데에 주력하였다. 김영랑의 가치는 순수한 서정시인으로서의 김영랑의 이름 위에 내려지는 평가이며, 이는 비단 김영랑에게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시와 시인 일반에 통해 있어야 할 기준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한 시인을 고찰함에 있어서 흔히 시인으로서의 명징함과 시인으로서의 감각에 역점을 두지 않고, 투철한 사회적 의식으로 저항하고 고발하고 투쟁하였느냐에 비중을 두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시인은 현실개조가도 아니고 사회운동가도 아니다. 우리는 시인이 언어예술가로서 가객에 가장 가깝다는 것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다만 가객이되 예언적 가객이며 대변자로서의 가객이라는 점만은 부연해 두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필자는 서정시인인 김영랑이 후기에 이르러 민족에게 당면한 암흑을 어떻게 호흡하고 여과하였으며 극복하였는가에 대해서도 대략 살펴보았다. 그는 현실과 상황을 몰각한 시인이 아니라, 어떠한 상황이나 현실도 시적인 장치로 여과해 내려고 한 시인이었다. 그의 후기시가 현실인식의 촉수를 보여 주었다기보다는 오히려 승화와 극복의 힘이 상황의 힘에 밀렸다고 말해야 할 것이다.
현실을 몰각하고서는 시도 시인도 존재할 수가 없다. 예술(시)에는 어떤 형태로든지 그 역사와 현실이 반영되어 있기 마련이다. 투철한 현실적 이념을 가지고 온몸으로 도전하고 혹은 고발하는 시가 있는가 하면, 우울하고 한스러운 목소리를 신음처럼 토로하는 시도 있을 수 있으며, 오히려 역으로 찾아낸 탈출구에서 시인의 개성에 조화되는 갱생과 탈출을 모색하며 힘을 모으는 노래도 있을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들의 공통점은 다 같이 현실을 반영하였다는 점인 것이다. 시를 평가함에 있어서 의미(역사의식, 상황의식 등)의 지나친 강조는 시의 가치를 오도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김영랑의 시적 가치는 광명과 촉기에 차 있는 순수 서정의 시, 압축하고 정제된 언어로 노래한, 전기시에서 찾을 수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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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정산의 문학사랑
글쓴이 : 정산 김용관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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