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름다운 폐인 - 김영승
나는 폐인입니다
세상이 아직 좋아서
나 같은 놈을 살게 내버려둡니다
착하디 착한 나는
오히려 너무나 뛰어나기에 못미치는 나를
그 놀랍도록 아름다운 나를
그리하여 온통 이 세상의 것이 아닌 나를
살아가게 합니다
나는 늘 아름답습니다
자신있게 나는 늘 아름답습니다
그러기에 슬픈 사람일 뿐이지만
그렇지만 난 갖다 버려도
주워 갈 사람 없는 폐인입니다
나는 폐인입니다
세상이 아직 좋아서
나 같은 놈을 살게 내버려둡니다
착하디 착한 나는
오히려 너무나 뛰어나기에 못미치는 나를
그 놀랍도록 아름다운 나를
그리하여 온통 이 세상의 것이 아닌 나를
살아가게 합니다
나는 늘 아름답습니다
자신있게 나는 늘 아름답습니다
그러기에 슬픈 사람일 뿐이지만
그렇지만 난 갖다 버려도
주워 갈 사람 없는 폐인입니다
* 어떻게 살까 - 김영승
어떻게 할까
설겆이하면서 생각해 보니
찬물에 손이 시려운 것처럼
참아낼 수 있는 것이라면......
어떻게 살까.
눈물이 흐르는데
눈물이 왜 눈물이냐고 또 묻고 있는데
아무리 추워도
얼어붙는 눈물은 보지 못했는데
눈물은 우리 몸에서 나오는게 아닌데
눈물이 흐른 내 눈가가
또 시렵다.
* 처음이자 마지막 - 김영승
누가 내 옆구리를 곡괭이로 콱 찍었다고 해보자. 갈빗대 서너 개가 부러져서 근육을 뚫고 삐져나오고, 한때는 죽은 짐승의 시체와 죽은 식물의 잎새로 채워졌던 나의 내장이 주르르 흘러나왔다고 해보자.
그리하여 시뻘겋게 부릅뜬 내 두 눈은 튀어나올 듯이 이글 거리고, 태어나서 한 번도 내보지 못한 아니 내볼 수 없었던 처음이자 마지막 괴로운 비명을 지르고, 고통에 이글거리던 두 눈이 서서히 풀어져 갈 때, 너를 쳐다보거나 죽은 이웃을 바라보는, 아아, 부드럽거나 서러운 그 나름대로의 명백한 눈빛이 아닌 또한 처음이자 마지막인 나의 눈빛이 지어질 테고, 너를 내 가슴에 안아 입을 맞추거나 허무와 절망에 찌들려서 내뱉던 신음소리가 아닌 그 또한 처음이자 마지막인 신음소리를 낼 것이고, 그리고 나는 처음이자 마지막인 죽음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누가 내 옆구리를 곡괭이로 콱 찍기 전까지는 나는 결코 옆구리를 곡괭이로 찍혔을 때의 모습을 만들어 낼 수 없다.
그런 것이다.
너에 대한 나의 사랑은.
누가 내 옆구리를 곡괭이로 콱 찍었다고 해보자. 갈빗대 서너 개가 부러져서 근육을 뚫고 삐져나오고, 한때는 죽은 짐승의 시체와 죽은 식물의 잎새로 채워졌던 나의 내장이 주르르 흘러나왔다고 해보자.
그리하여 시뻘겋게 부릅뜬 내 두 눈은 튀어나올 듯이 이글 거리고, 태어나서 한 번도 내보지 못한 아니 내볼 수 없었던 처음이자 마지막 괴로운 비명을 지르고, 고통에 이글거리던 두 눈이 서서히 풀어져 갈 때, 너를 쳐다보거나 죽은 이웃을 바라보는, 아아, 부드럽거나 서러운 그 나름대로의 명백한 눈빛이 아닌 또한 처음이자 마지막인 나의 눈빛이 지어질 테고, 너를 내 가슴에 안아 입을 맞추거나 허무와 절망에 찌들려서 내뱉던 신음소리가 아닌 그 또한 처음이자 마지막인 신음소리를 낼 것이고, 그리고 나는 처음이자 마지막인 죽음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누가 내 옆구리를 곡괭이로 콱 찍기 전까지는 나는 결코 옆구리를 곡괭이로 찍혔을 때의 모습을 만들어 낼 수 없다.
그런 것이다.
너에 대한 나의 사랑은.
* 그 여자 발 - 김영승
말간 소주
놋쇠 대야에 부어놓고
그 여자 발 하얀 그 발
조심스레 씻겨주며
내 한 잔씩 퍼마시면
아름답기에 잊은 번뇌
내 혀에 와 닿겠네
말간 소주
놋쇠 대야에 부어놓고
그 여자 발 하얀 그 발
조심스레 씻겨주며
내 한 잔씩 퍼마시면
아름답기에 잊은 번뇌
내 혀에 와 닿겠네
* 情든 女子 - 김영승
곰보 女子와 살아도
오랜 歲月 함께 지내다 보면
곰보 그 구멍구멍마다 情이 담뿍 담겨
모든 게 다 아름답고 사랑스럽게만
보인다던데
머리털을 태워
따뜻하게 해주고 싶을 만큼
내 마음을 안타까왔는데
떠나간 사람.
나는 왜 술만 마셨을까
아아, 나는 왜 그토록 술만 마셨을까
울어야 하는데
이리처럼 새끼 잃은 野獸처럼
밤새도록 울어야 하는데
盞을 쥐고 또 히죽히죽
나는 웃고 있다.
* 반성 21 - 김영승
친구들이 나한테 모두한 마디씩 했다. 너는 이제 폐인이라고
규영이가 말했다. 너는 바보가 되었다고
준행이가 말했다. 네 얘기를 누가 믿을 수
있느냐고 현이가 말했다. 넌 다시
할 수 있냐고 승기가 말했다
모두들 한 일년 술을 끊으면 혹시
사람이 될 수 있을 거라고 말했다.
술 먹자.
눈 온다, 삼용이가 말했다.
* 반성 16 - 김영승
술에 취하여
나는 수첩에다가 뭐라고 써 놓았다.
술이 깨니까
나는 그 글씨를 알아볼 수가 없었다.
세 병쯤 소주를 마시니까
다시는 술 마시지 말자
고 써 있는 글씨가 보였다.
* 반성 608 - 김영승
어릴적의 어느 여름날
우연히 잡은 풍뎅이의 껍질엔
못으로 긁힌 듯한
깊은 상처의 아문 자국이 있었다
징그러워서
나는 그 풍뎅이를 놓아 주었다.
나는 이제
만신창이가 된 인간
그리하여 主는
나를 놓아 주신다.
곰보 女子와 살아도
오랜 歲月 함께 지내다 보면
곰보 그 구멍구멍마다 情이 담뿍 담겨
모든 게 다 아름답고 사랑스럽게만
보인다던데
머리털을 태워
따뜻하게 해주고 싶을 만큼
내 마음을 안타까왔는데
떠나간 사람.
나는 왜 술만 마셨을까
아아, 나는 왜 그토록 술만 마셨을까
울어야 하는데
이리처럼 새끼 잃은 野獸처럼
밤새도록 울어야 하는데
盞을 쥐고 또 히죽히죽
나는 웃고 있다.
* 반성 21 - 김영승
친구들이 나한테 모두한 마디씩 했다. 너는 이제 폐인이라고
규영이가 말했다. 너는 바보가 되었다고
준행이가 말했다. 네 얘기를 누가 믿을 수
있느냐고 현이가 말했다. 넌 다시
할 수 있냐고 승기가 말했다
모두들 한 일년 술을 끊으면 혹시
사람이 될 수 있을 거라고 말했다.
술 먹자.
눈 온다, 삼용이가 말했다.
* 반성 16 - 김영승
술에 취하여
나는 수첩에다가 뭐라고 써 놓았다.
술이 깨니까
나는 그 글씨를 알아볼 수가 없었다.
세 병쯤 소주를 마시니까
다시는 술 마시지 말자
고 써 있는 글씨가 보였다.
* 반성 608 - 김영승
어릴적의 어느 여름날
우연히 잡은 풍뎅이의 껍질엔
못으로 긁힌 듯한
깊은 상처의 아문 자국이 있었다
징그러워서
나는 그 풍뎅이를 놓아 주었다.
나는 이제
만신창이가 된 인간
그리하여 主는
나를 놓아 주신다.
* 그냥 술집 - 김영승
나는 내 곁에 남아 있는
巨大하지만 외롭고
그림처럼 풀잎처럼 다만 있기 때문에
있을 뿐인
多數일 수 없는 나의 心友와
술집을 내고 싶다
나의 詩처럼
題하여 그냥 술집
人生을 그냥 살아가는 사람들이 모여서
그냥 술을 마시다가
日沒처럼 그냥 또 돌아가 주었으면 좋겠다.
아쉬움이나 서러움이나
한때의 醉興이나
모두모두 그냥 가져가 주었으면 좋겠다.
나는 내 곁에 남아 있는
巨大하지만 외롭고
그림처럼 풀잎처럼 다만 있기 때문에
있을 뿐인
多數일 수 없는 나의 心友와
술집을 내고 싶다
나의 詩처럼
題하여 그냥 술집
人生을 그냥 살아가는 사람들이 모여서
그냥 술을 마시다가
日沒처럼 그냥 또 돌아가 주었으면 좋겠다.
아쉬움이나 서러움이나
한때의 醉興이나
모두모두 그냥 가져가 주었으면 좋겠다.
* 봄, 희망 - 김영승
일곱달째 신문대가 밀려
신문도 끊겼다
저녁이면 친구인 양 받아보던 신문도
이젠 오질 않는다
며칠 있으면 수도두 전기도 끊길 것이다.
며칠 있으면
이 생명도 이 몸에서 흘리던 핏줄기도
끊길 것이다
은행의 독촉장과 법원의 최고장
최후통첩장
수많은 통고장들이 수북히 쌓여 있다.
아내가 보낸 절교장도
그 위에 놓여 있다.
진달래가 피었노라고
아내에게 쓰던 편지 위에
핏방울이 떨어진다.
가장 빛나는 것을
나는 한 장 집어 들었다.
* 가을 새벽 - 김영승
- 떠나간 아내의 생일
새벽 바람이 벌써
차다
라면을 사야할 돈으로
소주를 마셨던 지난 날
포근한 아내의 품이
그립다
올해도 내 가슴엔 먼저
눈이 쌓였다.
교회당 톱밥 난로 같은
일하러 나가는 사람들
덜컹거리는 소리....
물에서 건진 듯
전기줄이 께끗하다.
슬프도록 아늑한 게 뭘까
생각 안 날 땐
만나보고 싶은 사람이 있다
춥다.
* 몸 하나의 사랑 - 김영승
몸 하나의 생김
몸 하나의 흔들림, 몸 하나의 쓰러짐
하늘로부터 굵게 꺽어진
꺽어져서 땅 위에 박힌
펄떡 펄떡 뛰는 이 부드러운
빛나는
몸 하나의 나뉘어짐, 몸 하나의 흐트러짐
그 치솟는 힘에 짓눌리어
찢어져 가는
몸 하나의 노래
아무 까닭없이 꿈틀거리는
비비 꼬이다가 다 풀어질 때까지
그냥 그러기만 하는
몸 하나의 시뻘건 자국
땡볕 속에 모래 위에
바스듬히 누워 있는
몸 하나의 그림자
몸 하나의 없어짐
* 그대 없어진 지 - 김영승
그대 없어진 지 한 해하고도
이레가 또 지났어도
그대 반짝거리며
보드랍거나 까칠까칠한
날카로운 눈빛
내 얼굴에 고개 너머 검바위에
묻히고 바르고 하였다가
시냇가 봄날 졸음 오는
볕드는 버들강아지 곁에
살얼음 둥둥 뜬 물살 바라보며
그 송사리
물 거슬러 올라가는 걸 바라보았던
그리 멀지 않은 엣날 얘기에서 슬그머니
웃음과 한숨과 낮은 목소리 챙겨
훌쩍 떠나버렸지
그대는 이제 없어졌지만
옛날 그때 그때에도
자주 자주 없어지곤 했었지
긴 애기 거두고
그 눈빛 풀잎처럼
어느 들판에 돋아나리오
그대 없어진 지 한 해가 지나고
이레가 지났어도
그것으로도 벌써
나는 너무 오래 살았나 싶네
두루두루 온 누리
온 누리 제 모습으로
있는 것
다 알겠네
* 김영승
1959년 출생.
성균관대 철학과 졸업.
1986년 세계의 문학으로 등단.
시집 <반성> <차에 실려가는 차> <권태> <몸 하나의 사랑>
<오늘 하루의 죽음> <취객의 꿈> <심판처럼 두려운 사랑> <아름다운 폐인> 등
1959년 출생.
성균관대 철학과 졸업.
1986년 세계의 문학으로 등단.
시집 <반성> <차에 실려가는 차> <권태> <몸 하나의 사랑>
<오늘 하루의 죽음> <취객의 꿈> <심판처럼 두려운 사랑> <아름다운 폐인> 등
Yuhki Kuramoto/Warm affection
이흥덕 그림
이흥덕 그림
출처 : 함께 하는 세상
글쓴이 : 행복한 바보 원글보기
메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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