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문학 산책

[스크랩] <책갈피> 문학성(文學性) / 육정수/신경림

월정月靜 강대실 2006. 11. 1. 15:40

[횡설수설/육정수]

 

문학성(文學性)

[동아일보 2006-10-28]    

‘넓은 벌 동쪽 끝으로/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회돌아나가고/얼룩배기 황소가/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그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리야….’ 시인 정지용(鄭芝溶)의 대표적 시(詩) ‘향수’다. 가수 이동원이 노래로 불러 애창된다. 어린 시절의 고향 풍경이 절절하게 그리워지게 하는 작품이다. 정지용은 신시사(新詩史)에 새 시대를 열려 한 선구자다. 한국 현대시는 그에게서 비롯됐다고 평가된다.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은/그리운 사람을 그리워하자/저기 저기 저, 가을꽃 자리/초록이 지쳐 단풍드는데/눈이 나리면 어이 하리야/봄이 또 오면 어이 하리야….’ 미당 서정주(未堂 徐廷柱)의 ‘푸르른 날’ 역시 애틋한 선율이 느껴지는 시다. 신들리지 않고는 못쓸 것 같은 선험적(先驗的) 시인이라는 평가를 받는 그다. 그러면서도 표현 하나하나가 감칠맛 나는 ‘시어(詩語)의 요리사’였다.

 

▷정지용과 서정주를 빼고는 우리 문학사(文學史)를 쓸 수가 없다. 이들에게 정치적, 이념적 굴레를 씌워 작품성과 연결시키는 사람들이 있다. 정지용은 ‘월북 시인’이라고 작품 그 자체를 평가받지 못한 시절이 있었다. 이젠 거꾸로 ‘항일 시인’으로 추앙받기도 한다. 서정주는 ‘친일파’로 매도당하고 있다. 민족문학작가회의 회장을 지낸 신경림(71) 시인이 일침을 가하고 나섰다. “월북한 시인은 민족적 항일 시인, 남한에 남은 시인은 친일파라는 잘못된 인식이 우리 사회에 있어요.”

 

▷소설가 홍상화 씨는 작년 7월 남북작가대회에 참가했다가 백두산 천지에서 충격을 받았다. 거기서는 ‘양키 점령군의 총구 앞에서/자본가 개들의 이빨 앞에서…’(김남주 작 ‘조국은 하나다’)가 낭송됐다. 홍 씨는 ‘한국문학’ 2005년 가을호에 실린 ‘디스토피아’란 글에 “남한사회 좌경사상의 실체를 봤다”고 썼다. 그는 “증오심이 정의보다 더 열정적이고 더 투쟁적이라는 사실은 아주 슬픈 깨달음이었다”고 했다. 김남주의 그 ‘시’야말로 문학성이 있는지 없는지 문외한도 알 만하다.

 

육정수 논설위원 sooya@donga.com

 

 

신경림 시인 “친일과 월북이 문학성 평가 잣대 돼서야…”
[동아일보 2006-10-27]    

“우리 사회에는 월북한 시인은 민족적 항일 시인, 남한에 남은 시인은 친일파라는 아주 잘못된 인식이 있어요.”

수화기를 타고 들려오는 신경림(71·사진) 시인의 목소리에는 아쉬움이 묻어났다. 그는 이번 주 발간된 ‘나의 고전읽기’(북섬)에서 시인 정지용을 평가하면서 친일 시인에 대한 우리 사회의 무차별적인 단죄 풍토에 거부감을 드러냈다.

그는 “친일을 한 것이 잘했다는 것은 아니다”고 전제한 뒤 “그때 활동한 예술인 중 친일에 연루되지 않은 경우가 거의 없다는 점을 고려할 때 언제까지나 미당의 시를 친일의 굴레에 가둘 수는 없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민족문학작가회의 회장, 민예총 사무총장과 공동 상임위원장을 지내는 등 문학계에서 대표적 참여시인으로 평가받는 그의 발언에는 망설임이 없었다.

“친일을 했다고 미당 서정주의 작품을 폄훼한다면 과거 정지용을 월북 시인이라고 매도했던 것과 다를 게 뭐냐”며 작품과 과거 행적을 분리해서 평가해야 한다는 점을 거듭 강조했다.

일부 시민단체에서 친일 시인으로 분류하는 청마 유치환에 대해서도 그는 “청마의 시를 두고 친일 운운하는 것은 잘못된 해석”이라고 선을 그은 뒤 “요즘은 친일이다 뭐다 해서 선배 문인들의 흠집을 찾는 데만 혈안이 된 것 같다”고 문단풍토를 꼬집었다.

그는 이어 일부에서 주장하는 북한의 ‘친일청산론’에 대해서도 의문을 제기했다. 북한에서 활동한 이찬과 박승 시인의 경우 친일 행적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한 추궁을 받지 않았으며 훗날 박승은 ‘인민 영웅’의 칭호까지 받았다는 것.

“미당의 시를 제대로 평가해 주자”고 주장하는 신 씨지만 미당 작품으로부터 영향을 받았느냐는 질문에는 “전혀 없다. 그의 작품도 잘 읽지 않는다”고 말했다.

시인 정지용의 작품을 우리 시의 고전으로 꼽는다는 그는 “정지용은 월북했지만 김일성·김정일 부자에 대한 찬양시를 단 한 편도 쓰지 않았고 그래서 북한의 문학계에서 어떤 평가도 받지 못하는 잊혀진 존재가 되어 버렸다”고 아쉬워했다.

 

유성운 기자 polaris@donga.com

출처 : 시인의 뜰 <洗蘭軒>
글쓴이 : 洪海里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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