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내가 읽은 좋은 시

저무는 황혼-서정주

월정月靜 강대실 2006. 10. 31. 13:24
 

새우마냥 허리 오그리고
 누엿누엿 저무는 황혼을
 언덕 너머 딸네 집에 가듯이
 나도 이제는 잠이나 들까.

 굽이굽이 등 굽은
 근심의 언덕 너머
 골골이 뻗치는 시름의 잔주름뿐,
 저승에 갈 노자도 내겐 없으니
 
 소태같이 쓴 가문 날들을
 여뀌풀 밑 대어 오던
 내 사랑의 보 또랑물
 이제는 제대로 흘러라 내버려두고

 으시시히 깔리는 머언 산 그리매
 홑이불처럼 말아서 덮고
 엇비슷이 비끼어 누워
 나도 이제는 잠이나 들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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