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내가 읽은 좋은 시

어리석음

월정月靜 강대실 2006. 9. 27. 10:36
 
 



           어리석음

                  문   병   란

현명보다 먼저 와서
너는 인간과 함께
오랜 역사를 만들었다.

많은 사람들
너 때문에 사랑하고
너 때문에 이별하고
너 때문에 죽었다.

20대에
처음 만났던 너,
조롱섞인 웃음소리 속에서
나는 너와 더불어 사랑을 배웠다.

어리석음.
너는 또 하나의 스승
이 시대의 암유 속에서
너는 현명을 깔아뭉갠다.

60년 동안
너는 나의 오랜 친구,
나의 묵은 원고뭉치 속에서
내 젊은 날의 죄상에 대해
은밀한 조서를 꾸미고 있고
너는 이 아침에도
맨먼저 깨어나 내 곁에 앉는다.

어리석음아
천하를 삼키고도 남을 위력으로
내 한평생을 지배하는
슬픈 인생의 동반자야
이 아침 너는
늙은 태양을 데불고 와서
내 창문을 탕탕탕 총쏘는 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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