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내가 읽은 좋은 시/2)시인의 대표시

24. 황동규 시/16.버클리풍의 사랑 노래

월정月靜 강대실 2025. 4. 5. 14:53

* 버클리풍의 사랑 노래

 

내 그대에게 해주려는 것은
꽃꽂이도

벽에 그림 달기도 아니고
사랑 얘기 같은 건 더더욱 아니고
그대 모르는 새에 해치우는
그냥 설거지일 뿐.
얼굴 붉은 사과 두 알

식탁에 얌전히 앉혀두고
간장병과 기름병을 치우고
수돗물을 시원스레 틀어놓고
마음보다 더 시원하게,
접시와 컵, 수저와 잔들을

프라이팬을
물비누로 하나씩 정갈히 씻는 것,
겨울 비 잠시 그친 틈을 타 
바다 쪽을 향해 우윳빛 창 조금 열어놓고,
우리 모르는 새 
언덕 새파래지고
우리 모르는 새 
저 샛노란 유채꽃  
땅의 가슴 간지르기 시작했음을 
알아내는 것,

이국(異國) 햇빛 속에서 겁없이 *

* 황동규시집[버클리풍의 사랑 노래]-문학과지성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