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천만 갈대/ 손광은
가을을 엿듣고 있으면
가래는 흔들리지 않는구나
푸른빛도 보이지 않고
하얀 입술을 문지르고 있구나.
달이 떨군 한숨인 듯 하얗게
휘청휘청 나부끼고
아무르강 흑두루미
순천만에 날라와 끼룩끼룩 울고,
물면에 몸에 던져 부비듯,
스스스 서걱이는 마른 갈대잎 휘날리지만,
갈대는 흔들리지 않는구나.
바람에 몸을 맞긴 채 가슴끼리 맞부비고 흔들리지 않는구나.
갯바람도 쓸어모아 자지러지게 부딪히는 소리뿐
건양조 중모리 중중모리 장단에 춤을 출뿐....
갈대는 휘모리로 휘모리로 귀가 열리네.
가을에 갈대는 귀가 열리네.
갈대는 가을에 휘모리로 귀가 열리네.
내가 엿듣고 마는 나를 갈대는 나를 만나네.
숨어있는 나를 향해 석양 빛을 길게 뻗고
강이 뒤채는 물면 그늘에 빛을 던지네.
흰달이 흰물결 뒤로 떨어질 때까지
다소곳이 서서 뉘여진 갈대 잎사이로
속소리 바람도 스치다가
사쁜사쁜 그림자로 물러앉네.
고요보다 더 아득한 정적의 속삭임을 눕히고
끝끝내 들키고마는 흰머리 쓰다듬는 소리
빠져나가네.
바람만 빠져나가네.
내마음 울음이 포개진 듯 산란하게
술렁이는 마음 감았다가
얼르는 내음까지 빠져나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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