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리타작/ 손광은
어릴적 머슴인 내 아버지는
마당 복판에 무더위를 불러들인
보리단을 놓아둔다
까실까실한 사슬이 매달린 보리,
단정히 부수지 않고
손가락을 대본다.
실한 머슴은 곁에 있는
농주를 마시며
푸른 보리를 생각한다.
풀잎 같은 풀잎이었다가
풀잎 같은 보리였다가
풀잎 같은 보리국물을
겨울에는 마시며,
지금은 풀잎같이
의식을 일으켜
비밀의 구조를 갖고 누렇게 살아 있는,
보리를 술잔에 비쳐보곤 히죽이 웃으며,
「여 때리라
저 때리라」
거만스럽게 삐걱이며
도리깨질을 하면서
잠 깊은 누런 이마를
후려친다. 후려쳐....
서성이는 어머니는
빗자루를 치켜들고
왔다, 갔다,
튀어나는 보리알을 쓸면서
신비로운 내 시선 사이로 지나간다.
큰물소리가 지나간다.
곁에 가던 먼지가
불타듯 연기되어 깔리면서
대낮이 무너진다.
모든 것이 지나가며 무너진다.
풀잎이 출렁거리듯
새로운 혁명이 부르는 흔들림
새로운 파멸의 부정不正처럼
물살 지는 가슴을
실한 머슴은 들여다보면서
「여, 여, 저, 저」
들고 치고, 살짝 놓고 치고
소리를 만들면서
먼지가 소리를 만들면서
마을을 울리던
도리깨질을 하면서
「여 안때리고
어데 때리노
복판 때리라
가에 때리라」
도리깨질을 하면서
머슴은 머슴인 아버지를
머슴으로 길들였다.
'12. 내가 읽은 좋은 시 > 3)좋은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순천만 갈대/ 손광은 (0) | 2025.02.09 |
---|---|
18. 오탁번 시인/10. 사랑 사랑 내 사랑 (0) | 2025.01.29 |
가슴에 묻은 김칫국물//손택수 (4) | 2024.09.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