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호동 물지게/허형만
금호동 山 10번지, 빈민촌 물지게는
제 손으로 뽑아 준 의원님댁 문고리보다
일금 2원整의 흐늑임에 한결 더 무겁다.
처마 끝에 오직 하나 굴비 한 줄이듯
한 줄로 칭칭 엮인 모진 목숨들,
차라리 하늘 우러러 눈물 막는 지아비가
제 업보, 제 어깨에 짊어진 물지게.
그 어느 벼랑 끝을, 피안의 벼랑 끝을
못다 한 죽음이라도 짊어지고 걸어간들
물지게야, 물지게야, 이만큼은 더 할까,
이마엔 보송보송 굴욕의 비늘이 가시로 돋고,
낮은 포복으로 대롱대롱 매달린 물통 속에서
서러운 한국의 햇살,
이마가 깨지고 피를 쏟으며
아프게 열 두 번씩 자맥질 하나니
금호동 山 10번지, 오르는 길은
일수 딸라돈 이자보다 턱숨이 차고
오늘에사 서녘노을 인왕산도 고개 돌려 돌앉는다.
―「금호동 물지게」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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