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리를 거느리시는 분 / 허형만
백운면 애련리에
세수 삼백 오십 세가 되셨다는
느티나무 한 그루 가부좌 틀고 계셨다
수많은 사리들을 거느리시며
내가 보기엔 나이보다 훨씬 더 들어보이시지만
원래 사람이 매긴 나이란 게
허망하고 믿을 것이 못되는지라
그냥 그러려니 하고 그 넓으신 그늘에 쉬다가
어찌나 한기가 드는지 벌떡 일어나
두 손 모으고 우듬지가 보일 때까지 우러렀다
한사코 햇살 탓만은 아닐 터
휘추리와 애채 사이를 포롱포롱 건너다니는
멧새의 깜직한 발가락이 은비늘처럼 번득였다
그때였다 수많은 사리들은 서로 몸을 비벼댔고
고요한 파동은 서서히 하늘을 밀어 올리고 있었다
백운면 애련리에
세수 삼백 오십 세와는 무관한
수많은 사리를 거느리신 분 한 분 계셨다
세상의 발자국도 가는체로 걸러내시며
계신 듯 아니 계신 듯
'12. 내가 읽은 좋은 시 > 2)시인의 대표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21. 허형만 시/ 12. 이름을 지운다 (0) | 2025.02.09 |
---|---|
21. 허형만 시/ 11. 녹을 닦으며 (0) | 2025.02.09 |
21. 허형만 시/ 9. 금호동 물지게 (0) | 2025.02.09 |
21. 허형만 시/ 8. 병촌兵村 (0) | 2025.02.09 |
21. 허형만 시/ 7. 밝은 지혜의 햇살은 (0) | 2025.02.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