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내가 읽은 좋은 시/2)시인의 대표시

9. 조지훈 시 /3. 산상(山上)의 노래

월정月靜 강대실 2024. 11. 28. 07:41

산상(山上)의 노래

조지훈

높으디 높은 산마루
낡은 고목에 못박힌 듯 기대여
내 홀로 긴 밤을
무엇을 간구하며 울어왔는가.

아아 이 아침
시들은 핏줄의 구비구비로

싸늘한 가슴의 한복판까지
은은히 울려오는 종소리

이제 눈감아도 오히려
꽃다운 하늘이거니
내 영혼의 촛불로
어둠 속에 나래 떨던 샛별아 숨으라

환히 트이는 이마 우
떠오르는 햇살은
시월 상달의 꿈과 같고나

메마른 입술에 피가 돌아
오래 잊었던 피리의
가락을 더듬노니

새들 즐거이 구름 끝에 노래 부르고
사슴과 토끼는
한 포기 향기로운 싸릿순을 사양하라.

여기 높으디 높은 산마루
맑은 바람 속에 옷자락을 날리며
내 홀로 서서
무엇을 기다리며 노래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