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내가 읽은 좋은 시/2)시인의 대표시

8. 문병란 시/9. 꽃씨

월정月靜 강대실 2024. 11. 27. 08:15

 

꽃씨

문병란

가을날

빈손에 받아 든 작은 꽃씨 한 알!

그 숱한 잎이며 꽃이며

찬란한 빛깔이 사라진 다음

오직 한 알의 작은 꽃씨 속에 모여든 가을.

빛나는 여름의 오후,

핏빛 꽃들의 몸부림이며

뜨거운 노을의 입김이 여물어

하나의 무게로 만져지는 것일까.

비애의 껍질을 모아 불태워버리면

갑자기 뜰이 넓어 가는 가을날

내 마음 어느 깊이에서도

고이 여물어 가는 빛나는 외로움!

오늘은 한 알의 꽃씨를 골라

기인 기다림의 창변에

화려한 어젯 날의 대화를 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