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내가 읽은 좋은 시

봄에 대한 짧은 시 /박노해

월정月靜 강대실 2024. 5. 17. 18:25

 

1.봄이 오면 저만치서/박노해

 

봄이 오면 저만치서

산이 나를

바라보네

 

분주하고 쫓기는 나에게

산 좀 바라보라고

산처럼 나를 좀 바라보라고

 

봄이 오면 저만치서

꽃이 나를

바라보네

 

꾸미느라 애쓰는 나에게

들꽃 좀 바라보라고

꽃처럼 나를 좀 바라보라고

 

 

2. 처음 본 것처럼/박노해

 

꽃 피는 길에서도

가슴에 꽃이 피지 않는 봄은

봄이 아니다

 

눈 내리는 겨울 숲에서도

뜨거운 가슴이라면

봄은 이미 와 있으리

 

그대여 우리 인연이라면

만 리 밖에 있어도

만나게 되고

 

우리 인연이 아니라면

지척에 있어도 만나지

못하리니

 

잘 가라

그저 스쳐 지나가는 바람처럼

우리 다음 생에서는 발길을 멈추고

처음 본 것처럼 반가우리니

 

 

3. 풀꽃이 길을 낸다 /박노해

 

눈 녹은 야산 길에서

작은 풀꽃을

따라가다 보니

 

길도 없는 처음 길에

발자국을 새기며

길을 냈구나

 

봄이 길을 낸다

풀꽃이 길을 

낸다

 

자기 안에 풀꽃 하나

소리없이 꽃 피우는 사람아

누군가 따라 걷고픈 꽃길 하나

치열하게 내어가는 사람아

 

봄이

길을 낸다

삶이 길을 낸다

 

풀꽃 같은

사람들이

새 길을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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