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여름날1/ 월정 강대실
벗님네들 얼굴 한 번 볼 양으로
너릿재 새털같이 사뿐 넘었지요
술 익는 냄새 졸졸 쫓아가다, 농주
큰통 하나 실었지요 도갓집에서
주춧돌 놓일 날만 손을 꼽던 집터
계절이 엉클어져 한마당 잔치인데
느릅나무 그늘 멍석 깔고 둘러앉아
막 한 잔 타는 목 축이려는 참에
솔밭 건너 앞산이 훌쩍 아는 시늉해
어서 오라 손나발 해 옆자리 앉히고
건하게 들었지요 너나들이하면서
산들바람도 대취하여 따다바리고
어느덧, 설움에 겨운 해 서녘에 벌겋고
텃새들 시나브로 제 둥지로 모여들어
흥얼흥얼 어둑발 붙들고 넘었지요
어느 여름날 그 하루 햇살 좋은 날.
초-864
어느 여름날2 / 월정 강대실
갈맷빛 동산에
계절이 무르익고
청산에 열린 계곡
맑은 물 지줄대니
한 마리
꽃나비 되어
시심에 젖는다.
갈매 치마 저고리
덧입은 시 동산
산새들 노래에
만화가 찾아드니
바람도
시새워하다
시 향에 취한다.
어느 여름날3 / 월정 강대실
올여름엔 산방에서 탁족회 갖자고
여기저기 벗네 전화 받고는
장에 간 어머니 눈이 까맣게 기다리던
유년 적 기다림을 다 해 본다
읍내 마트에 들러 주섬주섬
주전부리감 갖추갖추 좀 사서
캄캄한 산모롱이 돌아 산방에 닿는다
늦었다며 등 뒤로 얼굴 내미는 산더러는
밤새 더 푸르러라 이르고
각시둠벙 불러 새 물로 남실 채우라 하고
잠에 떨어진다
첫새벽 자박자박 찾는 호반 산보길
얼굴 보자는 손짓에 잠깐 만나고 와서
여기저기 땅에 물밑에 나뒹구는
피서의 허접쓰레기에 팔렸는데
어둠을 발라먹었나
머리통이 고만고만한 꼬맹이들 한패거리
어느 틈에 둠벙을 독차지했다
참새가 방앗간을 그저 지나랴!
아침부터 안개가 중대가리를 깰 기세인데
벗님네 그림자 하나 얼씬하지 않는다.
초2-866
어느 여름날4 / 월정 강대실
장맛비 조는 틈새로
소올솔 풍겨 오는 향기 따라
뜬구름 서녘으로 흘러간다
거기 천리향 피었다 우정꽃
회포 안주하여 한 잔 한다
생기 돋친 소나무와 같이 나눈다
그리움이 아리아리 취한다
여우비에 묻어 온 갯냄새가 거나하다
술이 어물어물 주정한다
강물 덧없이 부서진다고
왜
이
렇
게
하늘이다 비척거리느냐고
빈 술병이 울먹이며 드러눕는다.
어느 여름날5 / 월정 강대실
오랜 동창 하나 만났네
허스레한 산막 찾아왔네
또렷이 한번을 인연하지 못한데다
새벽 버스처럼 들이닥쳐
기억의 단편은 강바닥 밑
무늬돌 같이 희미하지만
순한 별 두엇 찾아온 하늘 보며
주고받는 정화는 넘쳐
푸르른 너나들이 피어나고
풀벌레 합주에 자지러져
밤은 꼭꼭 어둠을 쌓는데
잔은 나가서 들지만 몸은
꼭 들어가 눕히고 살아왔다고
뒷산 소쩍새 노래에 홀로 젖으라며
훌쩍 길을 나서는 친구
휘청이는 등 뒤를
시루봉 능선 위 열 엿샛달이
둥두렷이 따라나선다.
어느 여름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