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자 찾는 노인장/월정 강대실
아동들 자지러지는 웃음소리
간간이 창을 넘어 질러오는
정오의 텅 빈 운동장 한 켠
긴긴 세월의 상흔 온전히 부둥켜안고
교계 지켜 서 있는 버드나무
휘늘어진 가지 아래
불언의 위로 주고받으며
긴 벤치에 석불처럼 앉아 있는
소복단장에 중절모 쓴 하이얀 노인장
무슨 회상에 저리도 깊이 젖었을까
‘왜 아이들이 하나도 안 놀아!’
눈자위보다 더 깊은 기다림
아직도 잊히지 않는 초립동 시절
아련한 그림자 찾아 나왔을까
뛰노는 학동들에게서.
골목길 노인장/ 월정 강대실
도시 변방 어둑한 주택가
길모퉁이 웅크린 기와집 샛문 설주에
형틀 같은 작은 의자 하나 달렸다
오늘도 문안 든 불빛 몇 가닥 함께 앉아
한 노인장 빈손 수행하시는 중이다,
더는 못 보게 징벌 받았을까?
그 언젠가는 번쩍 뜰 수 있을까?
처음부터 궁금하고 가여움 가득했던
진흙탕 세상 담벼락 같이 살려다
두 눈 벌거니 뜨고도 허방다리를 짚어
그만, 큰물에 방천 터지듯 무너지고 말았다
틀어박혀 이렁저렁 오만 생각을 다 하다
닳고 터진 맨발 허겁지겁 노인장 찾는다
사람들 맹자 만나 되게 재수 없다고
침 뱉지 않아 감사할 뿐이라며
마음만 잘 먹으면 북두성이 굽어보시니
어여 가 밝은 두 눈 크게 뜨고
이 좋은 세상 온전히 품어라 이르신다.
(3-90.제3시집 숲 속을 거닐다)
풀 뽑는 노인장/ 월정 강대실
병원 앞 쌈지 공원 가로수 성근 그늘 아래
수없는 질시와 발길질 아랑곳없이
계절을 딛고 무심히 짓어 오른 잡풀
풀 뽑는다 환자복 입은 노인장
혹자는 거기가 해까닥 했거나 논팽일거라고
흘깃흘깃 쏘아대는 눈총 상관없다는 듯 괘념
한 번 마음에 걸린다 싶으면
사돈네 쉰 떡 보듯 그냥 못 두는 성미이실까
한 손에 링거대 움켜잡고 맨손으로 풀 뽑는다
포장마차 호떡 굽는 오지랖 넓은 아낙네
파리 날리는 눈빛 뽀르르 쫓아가서는
풀은 뽑아 뭐할라요, 내뱉고 휙 돌아선 뒤꼍
마음밭 자꾸만 돋는 노욕을 뽑아낸다며
한사코 겸연스레 숨 고르는 칠십객 노인장
솔선이 막막한 인해의 촛불로 탄다.
노인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