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갑다, 친구들아!
(용산초교 35회 동창회에 부쳐)
月靜 강 대 실
우리 선대님 부용산 봉머리 바라보며
자자손손 지켜온 찰진 용산들에
하늘의 점지로 터 잡고 땀으로 문 열어
84년 면면부절 이어 온 용산초등학교
키워 낸 기둥 얼마이런가!
아버지 어머니, 형 언니의 발자취 좇아
새신 신고 교문을 들어선지 어언 반백년
병아리들 초롱초롱한 꿈은 무지개보다 더
영롱히 피어올랐지
더 넓은 바다에서 꼬옥 만나자며
검은 머리들 울먹이며, 용강 강줄기 타고
모래알로 흩어진지 어언 46개 성상
강은 깊고 넓어 물살 더 세고
높은 산 깊은 골짜기에 바람 잔 날 없었으나
한 번 잘살아 보겠다는 뗏장 같은 의지로
윗사람에게는 한없는 존경과 복종
아랫사람에게는 살붙이보다 더 진한 정리로
눈코 뜰 새 없이 허대는 우릴 꺾질 못했지
그러나, 해와 달은 도둑같이 청춘을 훔쳐가
어느 틈에 날렵한 이빨과 손톱은 무뎌지고
바위 덩어리라도 매칠 것 같았던 용기는 기죽어
봉머리에 허이연 서리 앉고 말았네
친구들, 얼마 만들인가
용안은 참 좋네 들
향리, 광주, 서울에서……다들 오셨구먼!
고맙네, 고생들 많으셨제 정남진까지 오시느라
마음은 벌써 용강의 버들치 한 꿰미 잡아 올리는데
머나 먼 고향 길은 한없이 막히고……
조카들도 많이들 자랐제
삶이 무언지
우정은 망각 속 밀쳐놓고 풍운 따라 헤매다
강산이 네 번씩이나 변해버린 세월
마음은 손바닥 뒤집긴데 많고 많은 날을
춘향이 손꼽아 기다리며 머나먼 하늘 바라
이름만 되뇌다 그만 목이 갈한 우리
친구들아,
하룻길을 가다보면 소도 보고 말도 보고
개 짓는 소리 꽃피는 소리도 듣잖아
혹여 지난 일이 마음밭 한구석에
가시나무로 살아 있다면 이젠, 조용히 잊자
통째로 뽑아 저-- 바다에 띄워 보내고
화평의 손 먼저 내밀어 옛날로 돌아가자꾸나
친구들아,
우리 인자는 얼굴도 좀 자주 보고 살자
거칠어진 손일망정 꼬옥 잡고
긴긴 추억의 강둑 거스르며 구절초 향에도 흠뻑 젖고
생의 진솔한 노래 합창하자꾸나
잊었어, 땡감 떨어지듯 벌써 소풍 끝내고 간 친구들
한 번 가면 남은 우리 가슴에 아픔만 남기고
영영 돌아올 줄 모르더구먼
친구들아,
나이는 단지 숫자일 뿐이라고 자신만 말고
인자는 참말로 건강관리 하자꾸나
하루 세끼 밥상은 건너뛰는 한이 있어도
구구 팔팔 이삼사 할 그 날까지
운동 꼬박꼬박 챙겨 먹자고
친구들아,
자! 들자 잔을 높이 높이 들자
빈 잔일랑 넘치도록 채우게나
우리의 건강과 행운을 위해 모두 잔을 맞대자
얼싸안고 덩실덩실 춤추고
입 모아 내일을 노래하자꾸나!
친구들아,
우린 동문에 불끈 솟아오르는 저 찬란한 태양
고웁게 빗질하여 하루하루 살아오지 않았느냐
질주하는 기차처럼 뒤 한 번 돌아볼 줄 모르고
앞만 보고 달리다가 어느새
동그마니 산마루턱에 올라앉은 해름녘
세월이 속절없구려 속절없구려, 그러나
친구들아,
우리 인자부터는 길섶 풀잎 씹어 맛보는 것보다
더 쓰디쓴 내일이 올지라도 하늘 뜻 헤아려 살자
물 흐르듯 씻기운 섬돌이듯 그렇게, 꼬옥 살자
친구들아,
세수 이순(耳順) 고개 넘으면 귀가 순해져서
목에 대못도 소같이 꿀꺽 웃어넘긴다잖아
들어도 못 들은 척 봤어도 못 본 척, 눈 귀 막고 살자
일일이 따지지 말고 이유 붙이지 말고, 입 막고 살자
호박 넝쿨 담을 넘듯 꼭 그렇게 살아가자
사사로운 것에 마음 상하지 말고 OK OK 하며
지갑도 마음도 있는 대로 몽땅 열자
친구들아,
고마워! 정말 고마워!
다음번엔 구천에 꽃잠 든 벗들 다 깨워내
추억 한 사발씩 건네며 한 마당 열어보자꾸나
부디 건강하게, 그리고 황금기를 우아하게 들 사시게나
인생은 진짜로 지금부털세.
2010. 10. 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