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들아, 반갑다!
(광상 19회 동창회에 부쳐)
月靜 강 대 실
우리 부모님, 가보처럼 이어 받은 가난의 멍에
허리띠 졸라매 눈물로 넘는 보릿고개
벗어나려면 빨리 거만의 돈 버는 길뿐이라고
은행원, 회사원, 선생님으로
공무원, 사업가, 농군으로……
경쟁의 선봉에서 성공 신화를 낳고, 한 땐
세인의 선망과 동경의 대상이 됐지
천님이 내려 준 평생 밥줄, 경제발전의 주역으로 믿고
윗사람에게는 한없는 존경과 복종
아랫사람에게는 살붙이보다 더 진한 정과 의리로
눈코 뜰 새 없이 허대다가, 어언간
세월을 흘려버린 중년
지금껏 살아온 세상과 내가 아닌
안타까운 경쟁자 겁 없는 후배들과
어렵사리 생명줄로 앉은 의자 밀고 당기며
모둠발로 키 재기 해야 했었지
고비용 저효율 타개를 앞세운 앙칼진 칼바람, 더는
버틸 수 없는 원수 놈의 나이 사슬에 덜컥 걸려들어
명퇴의 미명에 몇 푼 더 찌끌어 준 위로금
하루아침에 중고품으로 폐기처분 된 설움
아내 앞에서는 손톱 발톱 다 빠진 호랑이
자식들 앞에서는 고개 숙인 아버지로
애완견 아랫자리로 물러앉아 아린 심상 달래야 했지
친구들, 얼마 만들 인가!
사지쓰봉, 깨꼬발, 뽀삐바지
백구두, 삐딱모자, 불독……다들 오셨구먼
고맙네, 고생들 많으셨제!
마음은 벌써 경양호에 가 있는데 길은 한없이 멀고
다들 형수님도 조카들도 건강하시제
무심한 세월 강은 겹겹이 연륜으로 채이고
해와 달은 도둑같이 반생을 훔쳐가 봉머리에
서리 허이옇게 앉았어도 용안 참 좋네 들
우리 얼마나 오늘을 춘향이 손꼽아 기다렸던가
보시게 들, 저 어머니 자애로운 무등산
화알짝 품을 열었네 오늘은
보이시제 들, 저 나무들 푸르청청하더니 오늘은
곱디고운 색동옷에 너울춤 추는 거
삶이 무엇인지
우정은 망각 속 밀쳐놓고 바람 따라 헤매다
강산이 네 번씩이나 변한 세월
마음은 손바닥 뒤집긴데 머나먼 하늘 바라보며
이름만 되뇌다 그만 목이 갈한 우리
친구들아, 우리 인자는 얼굴 좀 자주 보고 살자꾸나
거칠어진 손일망정 꼬옥 잡고
긴긴 추억의 강둑 거스르며 구절초 향에 젖어도 보고
생의 진솔한 노래 합창하자꾸나
잊었어 땡감 떨어지듯 벌써 소풍 끝내고 간 친구들
용문이, 병찬이, 병주, 송범이 …… 친구
한 번 가면 남아 있는 가슴에 아픔만 남기고
영영 돌아올 줄 모르더구먼
친구들아, 나이는 단지 숫자일 뿐이라지만
인자는 참말로 건강관리 하자꾸나
하루 세끼 밥상은 건너뛰는 한이 있어도
구구 팔팔 이삼사 할 그 날까지
운동만은 꼬박꼬박 챙겨 먹자고
친구들아, 자! 들자 잔을 높이 높이 들자
빈 잔일랑 넘치도록 채우게나
우리의 건강과 행운을 위해 모두 잔을 맞대자
얼싸안고 덩실덩실 춤추고
입석대, 천왕봉 내려와 읊조릴 때까지
입 모아 오늘을 노래하자꾸나
친구들아,
우리는 동문에 불끈 솟아오르는 저 찬란한 태양
고웁게 빗질하여 하루하루 살아오지 않았느냐
질주하는 기차처럼 뒤 한 번 돌아볼 줄 모르고
앞만 보고 달리다가 어느새, 동그마니
저물녘의 산마루턱에 올라선 이 신세
세월이 속절없구려 속절없구려, 그러나
친구들아,
우리 이제는 길섶 풀잎 씹어 맛보는 것보다
더 쓰디쓴 내일이 올지라도 하늘 뜻 헤아려 살자
물 흐르듯 씻기운 섬돌이듯 그렇게, 꼬옥 살자
친구들아,
세수 이순(耳順) 고개 넘으면 귀가 순해져서
목에 대못도 소같이 꿀꺽 웃어넘긴다잖아
들어도 못 들은 척 봤어도 못 본 척, 눈 귀 막고 살자
일일이 따지지 말고 이유 붙이지 말고, 입 막고 살자
호박 넝쿨 담을 넘듯 꼭 그렇게 살아가자
사사로운 것에 마음 상하지 말고 OK OK 하며
지갑도 마음도 있는 대로 몽땅 열자
친구들아,
고마워! 정말 고마워!
다음번엔 구천에 꽃잠 든 벗들 다 깨워
추억 한 사발씩 건네며 한 마당 열어보자꾸나
부디 건강하시게, 그리고 우아하게 들 사시게나
생의 황금기는 지금부털세.
2010. 10.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