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오늘의 시

진대나무※를 만나다

월정月靜 강대실 2022. 1. 27. 23:27




      진대나무※를 만나다 /월정 강대실 지리산 화엄사 등반길, 일찍이 발 잘 못 들이어 맘껏 천기 누리지 못하고 긴 허리 꼿꼿이 못 펴고 살아 대웅전 대들보로 쓰임 받지 못한 해와 달 별이 먼 일가 같이 했어도 그윽한 꽃향내 작은 벌레들도 분분히 찾고 나무갓 큰 품 쫓긴 산짐승 걷어안았을 나이 이길 덕이 없어 수려함 쇠잔하고 독야청청 허연 알몸이 절개 지키더니 골바람에 힘이 부쳐 벌러덩 나자빠진 나락에 빠져도 아주 못쓰게 되진 않다고 찾아든 청설모 산지니 앉아 쉴 등 대주고 산객들 땀 밴 옷 받아 뽀송히 말리는 일 자신만이 감당해야 할 일 있다는 세월의 발톱에 긁힌 흐물흐물한 살은 배고픈 중생 흰개미 땅강아지 지네들…… 옆구리 곪아 터진 음부는 진물 빠는 버섯들 모름지기 공양할 제물이다는 그러고도, 궁극에 남은 지스러기는 기꺼이 흙으로 썩고 섞이어 목숨 탄 것들 생명소로 보시의 공덕 닦아야 한다는 오늘 우연히 연이 닿아 상면하였지만 지금껏, 어디서도 한 번을 본 적이 없는 사람이 못할 일을 다 하는 진대나무 보살. ※진대나무: 산 속에 죽어서 넘어지거나 쓰러져 있는 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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