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징과 알레고리
1. 의미의 다양성과 단순성
*순전히 물리적 차원에서 본다면 태극기는 태극무늬와 팔괘가 그려져 있는 천이나 종이에 불과하다. 그러나 태극를 그렇게 보는 한국인은 한 사람도 없다. 우리에게 있었서는 국가와 민족을 의미하는 공인된 표상물이 태극기이다. 이와 같이 어떤 사물이 그 자체 이외의 다른것을 대신할 때 그 사물은 넓은 의미의 상징이 된다 ( 돈,빨간불, 파란불, 가치 소리, 까마귀 소리 등)
*상징은 시를 이루는 중요한 구성요소이다. 즉 시의 유일한 표현매체인 언어가 상징이라는 것이다. 이를테면 <달>이라는 말은 그 자체가 하늘에 떠있는 달은 아니다. 달의 상징일 뿐이다. 시는 그러한 언어만을 사용해서 무엇인가를 표현한다. 따라서 시와 상징은 뗄래야 뗄 수 없는 밀접한 관계를 갖는다.
*문학에 있어서의 상징은 대신하는 것과 대신대는 것의 연결을 추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게 한다. 이를테면 우리는 <소나무>를 <절개>의 상징으로 보고 있는데, 그것은 소나무가 지니는 사철 푸르다는 속성이 절개의 변치않는 마음과 같다는 식으로 설명할 수 있는 추리적 사고를 배후에 거느리고 있다는 말이다. 이러한 상징은 원관념을 감추고 보조관념만을 내세운 은유라 할 수 있다. 절개라는 원관념은 덮어둔채 소나무라는 보조관념만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 절개를 상징하는 소나무인 것이다. <소녀는 꽃이다> 라는 표현은 <소녀>라는 원관념이 꽃이라는 보조관념과 결합된 은유다. 그러나 거기서 <소녀>를 빼고 <꽃>만을 내세워 그것이 소녀를 뜻하도록 표현하면 그때의 꽃은 상징이 된다. 상징은 이처럼 눈에 보이는 현실의 사물(보조관념)을 통해 보이지 않는 초현실의 세계(원관념)를 표현하는 것이다.
*시에서 상징이 표현하는 내용은 한가지로만 국한되지 않는다. 시에서의 상징은 본질적으로 일대다(多)이다. 소나무와 절개, 비둘기와 평화 같은 상징이 대상을 일대일로 지시하는 것처럼 보이는 까닭은 그것들의 상징관계가 습관화되어 고착되었기 때문이다. 습관화된 상징은 죽은 비유와 마찬가지로 신선감과 독창성이 없다. 시인이 힘써 만들어야 할 것은 독창성이 있는 개인적 상징이다.
2. 상징의 암시적 표현효과
* 상징은 크게 두가지 종류로 구분된다. 하나는 대중적 상징이고 다른 하나는 개인적 상징이다. 대중적 상징은 그 상징의 의미가 사회적으로 공인되어 있는 것을 말한다. 이러한 대중적 상징은 다시 습관적 상징과 제도적 상징으로 나뉘는데, 제도적 상징은 그 제도에 속해있는 사람에게만 의미가 있다. 습관적 상징이든 제도적 상징이든 대중적 상징은 그 의미가 모두 사회적으로 공인된 것이기 때문에 독창성이 없다. 이해 대해 개인적 상징은 개인이 독창적으로 만든 상징이다. 따라서 독창성을 존중하는 시와 문학에 있어서는 개인적 상징이 상징의 주종을 이루게 된다.
지금은 어드메 쯤 아침을 몰고 오는 분이 계시옵니다. 그분을 위하여 묵은 의자를 비워 드리지요.
지금 어드메 쯤 아침을 몰고 오는 어린 분이 계시옵니다. 그분을 위하여 묵은 의자를 비워 드리겠어요.
먼 옛날 어느 분이 내게 몰려 주듯이
지금 어드메 쯤 아침을 몰고 오는 어린 분이 계시옵니다. 그분을 위하여 묵은 의자를 비워 드리겠습니다.
*조병화 <의자>
* 이 시에 등장하는 의자는 개인적 상징이다. 시의 화자가 < 아침을 몰고 오는 어린분>을 위해 비워 주겠다고 말하는 그 의자는 실은 화자 자신이 < 먼 옛날 어느 분 >에게서 물려받은 것이다. 이러한 사실을 바탕으로 할 때 의자의 그 상징적 의미는 시간이 흐름에 따라 기성세대가 새로운 세대에게 필연적으로 물려주게 마련인 시대의 주역의 자리라는 해석이 나올 수 있다. 이 시의 화자는 그러한 의자를 그냥 물려 주는 것이 아니라 <비워 드리겠습니다>고 경어를 말하고 있다,. 의자에 대해 미련이나 집착을 갖지 않고 오히려 공손하게 물려 주겠다는 이 어조는 시간의 흐름에 대한 순응의 자세를 암시하는 것이다.
*그러나 의자의 상징적 의미가 꼭 한 뜻으로만 해석되어야 한다는 법도 없다. 여러가지 다른 해석이 가능한 상징이다. 이를테면 그것은 만물이 끊임없이 유전(流轉) 변화하는 우주의 원리를 상징하는 것일 수도 있고, 또 단순히 은퇴를 앞둔 노인의 담담한 심경을 상징하는 것일 수도 있다. 이 다양한 가능성 속에서 어떤 해석을 얻어내게 되느냐는 시를 분석하고 이해하는 독자의 능력에 맡겨진 몫이다.
이마 푸른 선비의 마음은 한로( 寒露)에 젖어 잘 굽은 나무 사이로 내다보이는 옥빛 하늘. 그러나 아른대는 보살님 머리에 가리워 서역(西域)은 잘 안보인다. 그래도 상관은 없는 일, 오늘은 돌 속에 보살님을 캐는 날이니.
* 신동집 <가을의 얼굴>에서
*앞에 인용한 시에는 개인적 상징이 아니라 대중적 상징이 사용되고 있다. 시곡에 나오는 <서역>은 극락세계를 뜻하는 불교의 제도적 상징이다. 여기서 우리가 시가 개인적 상징을 존중은 하되 대중적 상징을 사용할 때도 있다는 사실을 알게된다. 그러나 인용시에 나오는 대중적 상징은 그 의미가 일반적으로 알려진 그대로라 할 수가 없다. 극락세계를 뜻하는 <서역>은 실은 그가 밝게 보여주어야 할 <보살님 머리에 가리어> 잘 안 보일 뿐 아니라 < 그래도 상관없는>세계로 되어있다. 이러한 의미의 변화는 시인이 원래의 상징에 자신의 개성적 해석을 새로 보탠결과이다. 대중적 상징은 그리하여 시인의 개인적 상징으로 탈바꿈하게 된다. 이처럼 새롭게 탈바꿈이 된 대중적 상징은 이미 시인의 독창성을 반영하는 개인적 상징이다.
3. 알레고리의 교훈성과 비판성
*상징과 알레고리의 가장 두드러진 차이는 <상징>이 일대다(多)의 세계를 지시하는데 반해 <알레고리>의 경우는 그것이 대체로 일대일의 세계를 지시한다는 점이다.
*따라서 알레고리는 그 지시대상의 의미가 상징의 경우처럼 신비의 베일에 가려져 있지 않고 분명하게 확정되어 있는 것이다. 확정된 그 의미는 물론 알레고리를 만든 사람이 말하고자 하는 관념이며, 이러한 관념의 내용은 원칙적으로 개인이 자유롭게 결정할 수 있다,
* 그러나 순전히 개인적 관념은 가치의 보편성을 보장할 수 없기 때문에 그것을 알레고리의 내용으로 확정하기가 어렵다. 따라서 알레고리는 스스로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보편적 가치가 있는 의미의 지시를 선호하게 된다. 알레고리가 도덕적 관념을 주로 지시하게 되는 까닭이 여기에 이다, 왜냐하면 도덕적 관념은 가치의 보편성이 가장 큰 의미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의 창작방법을 논의하는 우리에게 보다 중요한 것은 알레고리를 사용한 표현의 실제를 살피는 일일 것이다.
껍데기는 가라 껍데기는 가라 동학년(東學年) 곰나루의 그 아우성만 남고 껍데기는 가라
그리하여 다시 4월도 알맹이만 남고 껍데기는 가라
*신동엽 <겁데기는 가라>에서
** 이 시의 중심 이미지인 < 껍데기>는 일상적 의미로 해석되어야 할 사물이 아니다. 무엇을 뜻하는 알레고리인가. 시의 화자는 <껍데기>와 반대되는 <알맹이>의 내용을 예시함으로써 그 물음에 간접적으로 대답하고 있다. 즉, 동학혁명의 정신 표상하는 <동학년 꿈나무의 그 아우성> 이 아닌 것, 그리고 4.19 의거를 뜻하는 < 4월도 알맹이>가 아닌 것은 <껍데기>인 것이다. 그러니까 동학혁명과 4.19 의거를 관류하는 정신에 위배되는 인간이나 상황의 알레고리가 바로 <껍데기>라 할 수 있다. 그러한 껍데기를 시위 화자는 명령적인 어조로 <가라>고 말하고 있다. 그것은 동학혁명과 4.19의거의 정신을 민족정기에 <알맹이>로 본다는 화자의 도덕적 판단에 근거를 두고 있는 발언이다.
** 도덕적 관념은 모든 사람이 마땅히 그에 따라야 한다는 당위성에 대전제로하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교훈성을 갖게 된다. 그러나 시인과 설교자의 차이에 대한 인식이 강화되어 있는 현대시에 있어서는 알레고리를 통해 도덕적 관념을 표현하는 경향은 상대적으로 감소되고 있다.
비닐 우산 받고는 다녀도 바람이 불면 이내 뒤집힌다. 대통령도 베트남의 대통령.
비닐 우산 싸기도 하지만 잊기도 잘하고 버리기도 잘한다. 대통령도 콩고의 대통령
* 신동문 <비닐우산>에서
** 위에서 예시한 시에는 알레고리가 교훈이 아니라 비판의식의 풍자적인 방법으로 이용되고 있다. 이 시에는 각 연이 <비닐우산>과 <후진국 대통령>이라는 이질적 사물의 결합에 의한 은유를 이룬다. 그러나 그 은유의 보조관념인 <비닐우산>은 알레고리에 의미도 지니고 있다. 걸핏하면 군사 쿠테타가 일어나 자주 바뀌는 후진국의 대통령은 일회용으로 쓰고 버리는 값싼 비닐우산과 같다는 것이 그 알레고리의 감추어진 속 뜻이다,
** 여기서 우리는 알레고리가 은유의 형태를 빌어서도 나타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된다. 비닐우산이란 알레고리를 통해 후진국의 정치상황에 대한 시인의 그 비판적 관념을 보다 실감있게 이해할 수 있다. 현대시에 있어서는 알레고리가 대체로 어떻게 쓰이고 있는가를 엿보게 하는 예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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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서은문학회 글쓴이 : 김숙희 원글보기 메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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