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문학 산책

[스크랩] 문인탐방-한국시인협회 35대 회장 오세영 시인

월정月靜 강대실 2006. 12. 7. 16:22

문인탐방


 

한국시인협회 35대 회장 오세영 시인




햇살이 따사롭고 잎들의 초록이 무성한 날 관악산 아래 서울대 캠퍼스에서는 젊은이들의 푸른 축제가 한창이었다. 젊다는 것은 무한한 가능성으로 청춘의 꽃 같은 시절일 것이다. 그러나 나이가 무슨 상관이 있으랴. 아직도 문학청년이신, ‘절망 속에서도 꽃을 피워내는 것이 문학’이라 하시는, 맑고 투명한 詩의 원천을 소유하고 있는 제35대 한국시인협회장이시며 서울대 국문과에 교수재직하고 계신 오세영 시인을 만났다.


“나의 진정한 스승은 고독이다. 고독을 운명적인 것으로 받아들이며 살아왔다. ‘재능은 고독 속에서 길러지고 성격은 세계의 대하(大河) 속에서 형성된다.’라고 괴테가 말한 것처럼 재능은 하늘에서 타고난 것이므로 고독 속에서 曆??수밖에 없는 것이다.”라며 생의 밑바닥에서 끊임없이 시의 영감을 솟구치게 하는 정신의 샘을 가지고 가시적으로 형상화하는 언어의 작업을 부지런히 하시는 분을 직접 뵙게 되는 것은 참으로 영광스럽고 행복한 일이었다.


서울대 캠퍼스 1동 314호 국문과 연구실 문을 조용히 열자 빽빽이 꽂힌 책꽂이의 책들과 깊은 사색을 나누고 겸허하게 묵상하는 교수님의 이마 위로 눈이 부신 빛이 있었다. 선약이 되었던 것도 아니고 국문과 학생들을 위한 현대문학 강의 시간표에 맞춰 강의를 듣고자 왔다 하니 흔쾌히 승낙하셨다.


강의 내용은 시의 양식별 분류인 서사시, 서정시, 극시에 관한 것이었다. 서사시는 하나의 이야기가 하나의 구슬이라면 여러 구슬을 꿰는 것이 서사시인 것이라며 김동환의 ‘국경의 밤’은 서사시가 아니라 하셨다. 한국의 역사와 그리스의 역사 등을 넘나들며 강의 중에 예를 드시는 열정적인 모습은 한국 문학정신의 활화산 같았다. 미래의 문학도들을 위해 쉼 없이 공부하시고 아낌없이 보여주시는 명강의였다.






오세영 시인께서는 1942년 전남 영광 출생, 전남 장성, 전북 전주에서 성장

1965-8년 박목월 선생의 추천으로 《현대문학》 지를 통해 등단

서울대학교 국문과 학부, 대학원 졸업, 문학박사

1974년 이후 충남대학교 국문학과, 단국대학교 국문학과 등 교수를 거쳐 1985년부터 현재까지 서울대학교 국문학과 교수로 재직

버클리대 초빙교수, 프라하대학 방문교수, 아이오아대학교 국제창작프로그램 참여, 한국시협상, 소월시문학상, 정지용문학상, 만해상 문학부문, 공초문학상, 녹원문학상, 편운문학상 등 수상

저서로는

시집: 《반란하는 빛》, 《가장 어두운 날 저녁에》, 《무명연시》, 《사랑의 저쪽 》,《벼랑의 꿈》, 《시간의 쪽배 》,《봄은 전쟁처럼》, 《문 열어라 하늘아》 등 15권과

학술서적: 《한국낭만주의시 연구》, 《20세기 한국시 연구 문학과 그 이해》,《 한국현대시 분석적 읽기》,《 우상의 눈물》 등 17권,

수필집: 《왈패 이야기》 등 3권

시론집: 《시의 길 시인의 길》 등 2권

번역된 시집: 영어, 독일어, 스페인어, 일본어 등 10여권의 저서 활동으로 열정적인 문학의 길을 걸으시고 계셨다.

  출생과 성장에 대해 여쭈니 대학을 졸업하고 전주 기전여고에서의 교편 기간 등을 포함하는 9년이라는 시간이 감수성이 예민한 시절인 사춘기에 해당하여, 소중한 추억의 한 곳 유년의 고향이 장성이라면, 청소년 시절의 고향은 전주라 이것은 고향에 대한 예라고 하셨다.  살면서 어려웠던 것은 아홉 살 되던 초등학교 3학년 때 발발한 6. 25을 시작으로  걷잡을 수 없는 시련이 33세로 충남대 교수가 되기까지 24~25년 동안 이었으며, 그 혹독한 시련속에서도 마음에 남는 즐거운 일이 있었다면 고교시절 문학 열풍에 전주시내 고등학교 문예반 학생들과 동인을 만들고, 도서실에서 근로 장학생으로 학비를 면제받으면서 보고 싶은 책을 마음대로 볼 수 있을 때라고 하셨다. 고교졸업이 닥치자 지적 허영심에도 가난하여 대학진학은 불확실하고, 더구나 외숙과 방을 함께 쓰며 병간호를 하면서, 석유호롱불을 켜고 가물 한 불빛 아래 책을 읽으면서도 환경을 이기고 서울대에 올 수 있었던 것은 자존심 때문이었다고 하셨다. 그러나 대학 생활은 단 하루도 끼니를 때우는 일과 잠자는 일로 걱정해 보지 않은 날이 없었고, 날마다 가정교사로 저녁 시간을 보내며 소망했던 것은 단 하루만이라도 편하게 밤거리를 데이트하면서 글을 쓰는 친구들과 환담을 하는 것이었다고 회고 하셨다.


시인된 동기를 여쭙자 “그저 좋을 뿐이다. 이유는 이것저것의 시비나 진위 판단이 있을 수 있는 것으로 이성적 사유로 해명될 수 있을 때 필요한 것이다. 좋은 것에는 이유가 있을 수 없다. 하나의 운명이고 상황이다.”라고 하시며 특히 이러한 상황에 대해서 가난했고, 이것은 문학을 위해서 다행한 일이며 가난한 것이 삶과 세계를 더 가까이, 더 절실하게, 더 외롭게 바라볼 수 있게 해 준 것이라 하셨다. 천성적으로 매우 내성적이고 문약해서 친구들과 어울려 돌아다니기보다 대숲에 바람 지나는 소리를 듣거나, 들 건너 황룡강을 끼고 돌아가는 기차의 하얀 연기를 바라보는 것을 좋아했鳴?하셨다. 중학교 때 합창부에서 활동하며 교향악단의 지휘자가 되기를 꿈꾸기도 했으며, 학교 방송반에 들어가 닥치는 대로 고전 음악을 듣는 것이 유일한 위안이셨다고 하셨다. 외롭게 태어나 외롭게 성장하고 또 외로움을 벗삼아 살아온 사람. 무녀독남 유복자로 태어나 사회성이 부족하고 친구들을 사귀지 못한 것, 외가의 더부살이로 항상 행동이 조신해야 했던 것 등이 강의나 강연은 비교적 잘한다는 평을 듣지만 사적인 대화나 유머 감각이 부족한 사람. 타인과의 대화에서 전전긍긍해 무뚝뚝하다거나 오만하다고 평 받는 이유라 하시며 사람을 만나면 부담스럽고 홀로 지내는 것이 편하고 홀로 생각하고 책을 읽고 쓰는 일이 친숙하다 하셨다. 또 태어나 성장하고 호흡한 외가가 그 지역에서는 선비의 가문이어서 항상 문장을 숭상하는 분위기였으며 지실 마을의 돌담, 식영정, 환벽당 등 정철의 유적지는 어릴 때의 동화적 세계였다고 하셨다. 고교인 신흥중?고등학교는 붉은 벽돌로 지은 고전 양식의 양옥집으로 가을 단풍이니 겨울 설경 속에서는 마치 크리스마스카드에 나오는 동화 속의 궁전 같았고, 봄에는 학교를 에워싼 언덕의 숲이 온통 하얀 아카시아꽃으로 옷을 갈아입어 푸른 그늘이 교실 창에 어리곤 해서 학교 스피커에서 울려나오는 클래식 음악을 들으면서 시집이나 소설책을 즐겨 읽고 공상하고 상상하고 꿈을 꾸고 그러다가 낙서 같은 것, 편지 같은 것, 일기 같은 것을 긁적거리게 된 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현상이었을 것이라고 낮게 조용한 목소리로 회고하셨다.

처음 시를 대하게 된 것은 중2 때로 김소월의 시가 마약처럼 황홀하게 감각으로 와 닿는 슬픔의 세계였고 괴테, 하이네, 워즈워스, 바이런, 휘트먼 같은 서구 낭만파 시인들의 시는 멋과 분위기로 읽었고 지금 생각하면 감상주의에 지나지 않았다고 하셨다. 고2가 되어 읽은 서정주, 유치환, 신석정, 김광균, 박목월의 시인들이 결정적 영향을 주었는데 특히 서정주의 『화사집』은 하나의 전율로 이후에 읽은 정지용과 더불어 이들을 시의 스승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말씀에 ‘위대한 스승이 위대한 시인을 낳는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문학적 동경을 심어준 문학작품으로는 앙드레 지드의 「좁은문」과 이태준의 「청춘무성(靑春茂盛)」인데 이 두 작품은 각각 삶의 존재론적 문제와 사회적인 문제를 다룬 것이지만 관념적 이상 세계를 꿈꾸었다는 점에서 공통성을 지닌다고 하셨다. 현실이 궁핍했으므로 미지의 세계를 꿈꾸었는데 거기에는 아름답고 슬픈 사람들이 많았으며 가령 현실을 희생하고 영원을 추구했던 알리사, 삶의 추악성 속에서 순결한 빛을 추구했던 알료샤, 육과 영혼의 갈등에 빠져 방황하는 싱클레어, 사랑의 순교자 제인에어, 관념이 아니라 행동의 아름다움을 가르쳐준 카추샤, 일상 삶의 덧없음을 일깨워 준 줄리앙 소렐 등이 나오는 작품에 심취한 것은 자폐적이어서 홀로 있었고 현실적인 삶을 부정하는 가운데 유미주의에 경도될 수 있었다고 하셨다.



차라리

멀리 있음이여.


벼랑에 피는 꽃보다는

강 건너 등불이,

강 건너 등불보다는 바다 건너 무지개가,

바다 건너 무지개보다는

저 하늘의 별이 더 아름답나니


나는 벼랑 끝에서 우는 한 마리 암사슴이 되기보다는

창가에 앉아 별을 우러르는 일개

시인이 되리라.


사랑하는 이여, 그러므로

다시 만날 수 없거늘 차라리

멀리 떠날갈지니

가까이 있으면서도 먼 것이

멀리 있으면서도 가까운 것보다 더

먼 까닭이니라.


그대

가까이 더불어 있는 먼

사람이여,


-「멀리서」


시가 무엇인지 여쭙자 “詩란 일상의 진실과 달리 총체적인 진실에 대하여 언급하는 담론이라는 사실이라며 이 세계에는 두 개의 진실이 있다. 하나는 과학적(학문적) 진실로 삼으나 세계를 부분적인 차원으로 접하기 때문에 논리적, 합리적, 부분적이며, 다른 하나는 시적 진실로 직관적, 총체적, 모순으로 되어있다. 시적 진실과 종교적 진실은 본질에서 같다고 생각하는데 이것은 시적 진실은 이해로서가 아니라 깨달음에 의해서만 도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삶을 총체적으로 인식하는 행위이며 깨달음에 의해서만 도달될 수 있는 어떤 진실, 즉 모순의 진실을 본질로 하는 정신작용이다. 야스퍼스는 ‘비극이란 진실에 이르게 하는 하나의 기호’라고 말했는데 진실은 삶의 결정적 난파-좌절 없이 깨우칠 수 없다는 것이다. 물론 여기서 진실이란 단순한 일상적, 과학적 진리가 아니라 ‘비극적인 지(知)를 통해서 초월해 도달한 어떤 총체적이고도 완전한 진리를 뜻한다. 그러나 이것보다 대학을 졸업한 후 불교 철학에 심취하며 ‘무아(無我)사상’이나 ‘무소설(無所設)’ ‘원융무애(圓融無碍)의 평등상(平等相)’ ‘불일불이(不一不二)’의 인식이 높은 경지를 보여주었다. 문학과 종교의 서로 다른 점이 있다면 종교의 핵심에는 신이 존재하지만 문학에는 신이 없다는 사실이다. 신이 있는 종교인 기독교보다는 신이 없는 종교, 즉 불교가 훨씬 문학에 더 가까울 것이라고 생각한다.”라고 하셨다.

 

깨진 그릇은

칼날이 된다.


절제와 균형의 중심에서

빗나간 힘

부서진 원은 모를 세우고

이성의 차가운

눈을 뜨게 한다.


맹목의 사랑을 노리는 사금파리여,

지금 나는 맨발이다.

베어지기를 기다리는

살이다.

상처 깊숙히서 성숙하는 혼(魂)


깨진 그릇은

칼날이 된다.

무엇이나 깨진 것은

칼이 된다.


-「그릇」


시의 본질적 특성은 ‘인간존재의 모방’인 까닭으로 역설적으로 그 모방의 대상을 자연이나 사물의 영역까지 개방시키는데 문학의 장르 가운데서 오직 시만이 사물과 자연을, 자동차와 꽃을 대상 그 자체로 노래하며 이것 속에는 인간의 이야기이나 존재의 의미가 표상되어 있다고 하셨다. 즉 시의 언어는 존재의 언어로 쓰이는 것으로 오늘날 대부분의 시인의 현대적 감수성의 추구라는 명분으로 작위적인 시의 해체를 시도하고 있는데 이럴 때일수록 시가 시일 수 있는 최소한의 원칙이 옹호되어야 할 것이며 굳이 산문으로 쓸 것을 시로 써야 할 필연성이 없어지기 때문이며 놀리는 논이 있는데 굳이 밭에다가 볍씨를 뿌려 고생할 필요가 없는 것이라 하셨다.


어떤 시를 쓰고 싶은가 여쭈니 진솔한 시, 보다 윤기 있는 시, 보다 가슴을 울리는 시, 보다 완성된 시, 보다 철학적인 시, 보다 정통주의를 지향하는 시, 보다 서정적인 시, 그리고 메시지가 전달되는 시며 한마디로 ‘전통의 토대 위에서 철학화된 서정시’며 이것은 모더니즘에 의해서 표현되되 전통양식으로 언어, 율격, 구조 및 자아와 세계의 관계에서 서정시 본연의 규범이 훼손되지 말아야 함을 뜻하는 것이라 하셨다. 의식적으로 관심을 두는 것은 불교 사상과 그 인생관인데 훌륭한 시는 철학과 서정이 융합된 것이므로 두 가지를 조화시키려고 고심한다 하셨다. 또 항상 한 시대의 독자나 유행적 독자보다 영원한 독자, 보편적 독자들을 염두에 두고 시를 써왔고 미래의 독자들의 평을 기다릴 뿐이라고 담담하게 말씀하셨다.


진흙 털고

먼지 털고

해진 신발을 깁는다.


풀꽃을 밟았을까,

이슬 냄새가 난다.

벌레를 밟았을까

쇠똥 냄새가 난다.

돌멩이에 채인 신발 한짝.


애증과 영욕의

하루는 저물었다.

지팡이여, 지팡이여

돌베게의 꿈은

차구나.


웃음을 털고

울음을 털고

피곤한 육신이 잠드는

길섶,

해진 신발 한짝

꿈꾸는 길섶.


-「신발 한짝」


오세영 시인의 당부 중 그 하나는 민족 문학의 성립에 필요한 몇 가지 조건을 제시하셨는데 첫째는 민족어인 모국어의 이상적인 구사를 위해 고대 소설이나, 판소리 , 시조 등이 갖는 한국어의 리듬, 문체 어휘 구사, 톤, 수사법 등을 살피고, 둘째는 한국적인 인간형의 탐구로 ‘화랑’이나 ‘춘향’이 같은 인물의 재현이 아니라 좀 더 창조적인 인간상을 모색할 수 있을 것. 셋째는 한국적 문학 양식의 계승 발전인데 시조나 판소리 같은 독특한 우리 문학만의 양식으로 현대시에 수용하자는 것. 넷째는 민족의 기층적 사고로 인생관이나 세계관 또는 전통적 사상에 대한 충분한 탐구와 자기 반성의 노력이 필요하며, 유교, 불교사상 혹은 무속 사상까지, 민중의 소박한 삶의 이상, 한국적 사상의 원형 인식이 민족문학의 창조적 계승에 필수적 요건. 다섯째 민족의 보편적, 문학적 감수성에 대한 일체감의 체험으로 ‘한(恨)’과 같은 것이 정서면에서 보편적 감수성이고, 해학, 골계 등이 행위 면에서 보편적 감수성이라 한다면 설화, 전설 등 전통 세계 는 문학적 소재에서 보여 주는 보편적 감수성이라 할 것이다. 라고 하셨다. 여섯째 민족정신의 탐구인데 사회적 정치적 실천 윤리로서가 아니라 한 민족이 근거하고 영원한 생명의 뿌리를 내릴 수 있는 힘, 소위 낭만주의자들이 신봉했던 민족혼(Volks Seele)민족에게 일체감을 형성시키는 동질성(national identity)-(정치이념과 결부되어 국가주의를 합리화시켜주는 명분을 제공해 줄 수 있다는 점에서 독성을 내포)의 명제가 있고 하셨다. 특히 편견을 가지고 볼 것이 아니라 기능상으로 순수 문학과 목적 문학으로 나누듯이 개성에 따라 일반 문학, 세계 문학, 민족 문학으로 나눌 수 있음을 알고 필요 이상의 과민 반응을 보이지 말자 하셨다.


또 현대의 젊은 시인들에게는 모더니즘의 극복이유를 서구의 물질 문명은 받아들이되 정신은 우리의 것에 토대해서 변용시켜야 하며, 광적인 형식미의 탐구, 주제 의식의 결핍, 인생과 예술의 분리, 언어 기교에의 몰두, 병적인 세계에의 편집 광적 탐닉 등 과도기적 현상에서 벗어난 동양적 예지를 가출 것을 말씀하시며 네 가지 진로 중 하나를 선택하기 마련이라 하셨다. 초지일관 모더니즘을 밀고 나가는 경우(趙響, 김경린), 사상성 또는 문학성의 탐구를 시도하다 벽에 부딪혀 시작을 포기하는 경우(金光均, 金丘庸), 현실을 소재적으로 반영하려는 경우의 사람들로 철학성이나 도덕성을 언어 미학과 조화시키는 데서 실패한 시인들의 경우(林和, 鄭芝溶, 金洙暎- 폭로나 정치적 신념을 지향하는 방향으로 가는 것), 마지막으로  철학성 내지 도덕성을 심오하게 확립 예술적으로 잘 조화 시켜 훌륭하게 문학 작품을 형상화해 내는 경우(徐廷柱)라 하셨다.




우리 시의 바람직한 전개에 대하여 ‘독자 위에 있는 시’의 경우 한용운. 이유형으로 서정주의「신라초」, 박목월의 초기 시. ‘독자 안에 있는 시’는 김소월, 이유형으로 조병화나 박인환의 세계.  ‘독자 밖에 있는 시’는 이상. 이 유형으로 김춘수나 김구용이 보여준 세계라 하시며 지난 반세기 동안의 오세영 시인님의 40여 년의 긴 세월에 걸친 작품의 화두는 문학이 역사와 철학을 포괄하면서도 어떻게 동시에 역사와 철학으로부터 구별되는가 하는 것이나 한국 문학사에서 오류의 시대가 가고 머지않아 문학이 문학 그 자체로 평가받는 날이 올 것을 기대한다고 하시며 문학이 인간 정신의 중심에 서서 역사와 철학의 양 날개를 거느리는 것이라 하셨다.


사는 길이 높고 가파르거든

바닷가

하얗게 부서지는 파도를 보아라


아래로 아래로 흐르는 물이 하나되어

가득히 차오르는 수평선

거기 있다


사는 길이 어둡고 막막하거든

바닷가

아득히 지는 일몰을 보아라


어둠 속에서 어둠 속으로 고이는 빛이

마침에 밝히는 여명

스스로 자신을 포기하는 자가 얻는 충족이

거기 있다


사는 길이 슬프고 외롭거든

바닷가

가물가물 멀리 떠있는

섬을 보아라


홀로 견디는 것은 순결한 것

멀리 있는 것은 아름다운 것

스스로 자신을 감내하는 자의 의지가

거기 있다


-「바닷가에서」


시 창작이란 아무 곳에서나 땅을 파서 물을 얻을 수 없는 것처럼 시의 원천 역시 아무나 지니고 있지 않다는 사실과 시의 원천을 지녔다 하더라도 계발하지 않으면 쓸모없는 샘물로 좋은 저서를 두루 읽고, 인생의 많은 체험을 쌓으시라는 말씀이 참으로 감동적이었다. ‘고전(classic)' 혹은 '세계문학(world literature)'이라 부르는 보편적 진실이 담긴 독서를 통해 어느 정도 내적 세계가 확충된 연후에 개별적이고 특수한 전문적인 내용의 저서를 읽기 바란다 하셨다. 기독교의 『성서』, 불교의 여러 경전, 이슬람의 『코란』그리고 종교의 경전이라 할 수 없으나 사서삼경, 우리의 『삼국유사』등을 말씀하셨다.

시 의식의 경우는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대상을 분석하여 전체를 구성하는 각 부분의 유기적 관계성을 토대로 하는 관찰력과 시적 진실을 구체화하고 체계화하는 상상력이며, 대상의 내면 혹은 실재를 들여다보는 행위인 통찰(insight)과 깨우침(realizing)으로 이러한 정신 경로를 활용하라 하셨다.


전신이 검은 까마귀,

까마귀는 까치와 다르다.

마른 가지 끝에 높이 앉아

먼 설원을 굽어보는 저

형형한 눈,

고독한 이마 그리고 날카로운 부리.

얼어붙은 지상에는

그 어디에도 낱알이 보이지 않지만

그대 차라리 눈발을 뒤지다 굶어죽을지언정

결코 까치처럼

인가(人家)의 안 마당을 넘보진 않는다.

검을 테면

철저하게 검어라. 단 한 개의 깃털도

남기지 말고...

겨울 되자 온 세상 수북히 눈은 내려

저마다 하얗게 하얗게 분장하지만

나는

빈가지 끝에 홀로 앉아

말없이

먼 지평선을 응시하는 한 마리

검은 까마귀가 되리라.


-「자화상」


  여태천(시인)은 『문 열어라 하늘아』<서정시학> 오세영 시인의 시집 시평에서 "반짝이며 빛을 긋는 암흑 속 반딧불이"를 발견하고, 미루나무 높은 가지 끝에 앉은 까치처럼 "새파랗게 얼어붙은 겨울 하늘"을 엿보는 시인의 빛나는 감수성은 살아 있다. 형형한 눈과 서정적 보법(步法)으로 우주와 존재가 맺는 비밀스러운 결합을 놓치지 않고 밝혀낸 시인은 이제 자신을 비우며 스스로 휘어지는 '참대'처럼 곧고 푸르다. 그 시인 앞에 하늘의 문이 열렸다. 라고 했다.



이미지의 창조가 수식적인 것만이 아닌 끊임없이 대상의 본질을 찾는 작업을 성실하게 하시는 시인, 예술에 철학의 접목을 과제처럼 안고 공부를 게을리하지 않는 시인, 아름다움과 감동의 시로 다가온 오세영 시인과의 만남은 강의를 듣는 듯 행복했다. 젊은 시인의 앞날을 위한 지침들이 문학을 위한 버팀목처럼 든든했으며 꺼지지 않는 詩의 활화산처럼 느껴져서 전율로 다가왔다. 오래전 읽었던 「그릇」이라는 시의 칼날처럼 오늘의 말씀이 나의 가슴에 씨앗으로 심어져 아름다운 시로 태어날 그날 다시 오세영 시인을 찾아뵈리라 다짐하며 문을 나섰다.

※캠퍼스는 꽃 잔치, 젊음의 잔치로 여전히 빛나고 있었습니다. 그 아름다운 청춘의 잔치처럼 오래도록 아름다운 감동의 시 쓰시길 부탁드립니다. 오세영시인님 건강하십시오.

(참고 내용-『시의 길, 시인의 길』오세영 글/ 시와시학사 )

취재: 본지 한영숙 편집위원 (시인)/촬영: 조은주(시인)

출처 : 꽃편지지
글쓴이 : 꽃편지지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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