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내가 읽은 좋은 시/2)시인의 대표시

21. 허형만 시/ 19. 살다보면

월정月靜 강대실 2025. 2. 9. 17:15

살다보면 /허형만            

무문토기처럼 투박한 안개가 서서히, 느리게, 겹겹으로 에워싼다 통근버스는 헤드라이트를 켜고 나아가려 애쓰지만 역부족이다 차창 가까이 바싹 조여오는 안개의 날렵한 혓바닥 앞에 차 안에 갇힌 우리는 속수무책이다 살다보면 때로 이렇게 숨결마저 발목잡히는 일이 많다

우리도 차라리 안개가 되든가 안개 속에 녹든가 허공중에 물방울로 증발되든가 우주의 반짝이는 눈물로 굳어지든가 그리하여 마침내 알타이 우코크 고원 베르떽 계곡의 지워지지 않는 안개처럼 우리 모두를 구름 위에 서있게 하든가 살다보면 때로 이렇게 시간마저 발목잡히는 일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