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내가 읽은 좋은 시/2)시인의 대표시

9. 조지훈 시 /8. 풀잎 단장(斷章)

월정月靜 강대실 2024. 11. 28. 08:54

풀잎 단장(斷章)

 

조지훈(1920~1968, 경북 영양)

 

무너진 성(城)터 아랜 오랜 세월을 풍설(風雪)에 깎여 온 바위가 있다

 

아득히 손짓하며 구름이 떠가는 언덕에 말없이 올라서서

 

한 줄기 바람에 조찰히 씻기우는 풀잎을 바라보며

 

나의 몸가짐도 또한 실오리 같은 바람결에 흔들리노나

 

아 우리들 태초(太初)의 생명(生命)의 아름다운 분신(分身)으로 여기 태어나

 

고달픈 얼굴을 마주 대고 나직히 웃으며 얘기하노니

 

때의 흐름이 조용히 물결치는 곳에 그윽히 피어오르는 한 떨기 영혼이여

 

▷「조지훈 시선」(조지훈 지음, 오형엽 해설, 지식을만드는지식, 2011년)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