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천(飛天)/ 박제천
나는 종이었다 하늘이 내게 물을 때 바람이 내게 물을 때 나는 하늘이 되어 바람이 되어 대답하였다 사람들이 그의 괴로움을 물을 때 그의 괴로움이 되었고 그의 슬픔을 물을 때 그의 슬픔이 되었으며 그의 기쁨을 물을 때 그의 기쁨이 되었다
처음에 나는 바다였다 바다를 떠다니는 물결이었다 물결 속에 떠도는 물방울이었다 아지랑이가 되어 바다꽃이 되어 하늘로 올라가고 싶은 바람이었다
처음에 나는 하늘이었다 하늘을 흘러다니는 구름이었다 구름 속에 떠도는 물방울이었다 비가 되어 눈이 되어 땅으로 내려가고 싶은 몸부림이었다
처음에 그 처음에 나는 어둠이었다 바다도 되고 하늘도 되는 어둠이었다 나는 사람들의 마음속에 깃들어 있는 그리움이며 미움이고 말씀이며 소리였다
참으로 오랜 동안 나는 떠돌아다녔다 내 몸 속의 피와 눈물을 말렸고 뼈는 뼈대로 살은 살대로 추려 산과 강의 구석구석에 묻어두었고 불의 넋 물의 흐름으로만 남아 땅속에 묻힌 하늘의 소리 하늘로 올라간 땅속의 소리를 들으려 하였다
떠돌음이여 그러나 나를 하늘도 바다도 어둠도 그 무엇도 될 수 없게 하는 바람이여 하늘과 땅 사이에 나를 묶어두는 이 기묘한 넋의 힘이여 하늘과 땅 사이를 날게 하는 이 소리의 울림이여.
-시집, ‘하늘꽃’, 미래사,1991
[출처] (시낭송81) 비천(飛天), 박제천 [낭송권숙희]|작성자 품격스피치 권숙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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