곡창穀倉의 신화神話/ 신석정
바다도곤 넓은 김만경金萬頃 들을
눈이 모자라 못 보겠다 노래하신
당신과 우리들의 이 기름진 땅을
아득한 옛날에
양반과 벼슬아치와
조병갑이와 아전 떼들의 북새 속에서
그 뒤엔
을사조약乙巳條約에 따라붙은 동척회사東拓會社와
가와노상과 노구찌상과 중추원참의中樞院參議와
왜놈의 통변들의 등쌀에 묻혀
격양가도 잊어버린 벙어리가 되어
할아버지와
아버지와
아들과
손주들이 대대로 이어 살아왔더란다.
서러운 옛 이야기 지줄대며
동진강東津江 굽이굽이 흐르는 들을
그 무서운 악몽이 떠난 지 스무 해가
되었다 하여
우리 할아버지들의 피맺힌
옛 이야기를 잊지 말아라.
태평양太平洋을 건너왔을
지리산智異山을 넘어왔을
모악산母岳山을 지나왔을
다냥한 햇볕이 흘러간다 하여
우리 할아버지들의 땀이 배어든
이 몽근 흙을 잊지 말아라.
그 언젠가는 이 기름진 땅에
우리 눈물겨운 소작인小作人의 후예로 하여
드높은 격양가로 메마른 산하를 울리고
미국보리와 풀뿌리로 연명하던
그 서럽고 안쓰러운 이야기는
동진강 푸른 물줄기에 실려
아득한 아득한 신화로 남겨두자.
시요정_니케
“시는 순수하고 진정한 관점에서 볼 때, 말도 아니고 기술도 아니다. 그것이 말이 아닌 이유는 시가 완성되려면 박자와 노래와 몸의 움직임과 표정술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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