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발표시(시화.문예지)

무등문학회 문예지/기름 엎지르고 깨 줍기 외 12편

월정月靜 강대실 2018. 12. 23. 09:54

*게재 문예지

       무등문학  

         2018년 12월 5일 발행

         2018년 제26호

         시 18쪽~31쪽





기름 엎지르고 깨 줍기

 

손끝이 게을러지더니

맘먹은 일마다 허방을 치고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다

내 낌새를 눈치 챈 이웃들

살다보면 빨리 잊어야 할 일도 있다고

후딱 마음 정리하라 이른다

그래야, 앞이 보인다고

기름 엎지르고 깨 줍는 격으로

산밭에 참깨 몇 두럭 심는다

두벌 씨 산비둘기 배만 불려 주고

태반이 빈자리다

애잔한 것들, 잘 돌볼 생각에

해 동무 기다려 허둥지둥 찾으니

지나가는 골바람,

에끼, 가리새머리 없는 !’

이명처럼 울리더니

밀짚모자 낚아채 고랑에 꿍겨박고는

솔밭 쪽으로 줄달음친다.

 

 

약비 맞은 아침

 

새벽 어두커니 고요를 밟고

냉기 들이마시며 문밖으로 나선다

방천길 논벌길 지나 댐 뚝방 올라선다

느닷없이 산성 너머 쏴아 몰려오는 비 떼,

목을 기다랗게 빼고 기다리던

도토리 만 한 호박 빛바랜 밤꽃 앉은뱅이 땅찔레

좋아라 머리 치세운다

낯빛 차-암 싱그럽다,

금방이라도 박속 웃음 확 쏟아낼 것 같이

나도 저들과 함께 흠뻑 비 맞은 터

사유의 뿌리 더 깊고 넓게 뻗고

황금빛 들판의 꿈 꾸어도 좋겠지

함초롬히 옷 젖었어도 마치

새색시 맞을 신랑처럼 마음 설레는 아침

집에 들어서자 쪽문이, !

범종을 타종하듯 머리통을 찐다

먼저, 고개를 수그릴 줄 알라는 듯.

 

 

 

밥 대접

 

땅맛 알고부터는

미물에게도 밥 대접 하네.

 

산밭 지심 매다가

밭머리 솔 가지에 걸어 둔 새참 고리

그늘 방석 위에 펼치네

 

우르르 달려드는 개미와 쇠파리

날아든 애기 풀벌레 한 마리

 

불현듯, 떠오르는 어머니 모습

고수레! 고수레! 사방에 음식 떼어 던지시던,

숭고한 마음 헤아리다

 

함께 둘러앉아 맛있게 나누네

 

세상은 飛潛走伏과도 더불어 산다는 것을

이 나이에사 아네.

 

 

 

산행 날

 

숨 고르고 싶은데 날아든 안내장,

외할머니 집 가듯 친정집 가듯

방맹이질 치는 가슴 산행 날 손꼽는다

 

무게가 될 것은 눈곱까지 내려놓고

차에 오르면, 세월에 헐거워졌지만

하늘이라도 오를 수 있다는 듯

한 차 가득한 주체 못할 욕망들

 

도란도란 휴식 같은 풍광 내다보며

흥타령에 궁댕이 몇 번 틀어 앉으면 산문

불끈 솟아오르는 한창때의 기운

송골송골 땀방울이 밟아 오른 산정

 

멀리 바라보이는 아름다움에 취해

꿀맛 같은 도시락 잔치 벌이고 나면

불꽃 진 생의 아쉬움 눈 녹듯 사라지고

어느새, 서산을 물들이는 금빛 낙조

 

바람의 나래 잡고 가뿐히 내려와

너도 한 잔 나도 한 잔 권하는 하산주

가슴속 시궁창에 떠오르는 보름달

생기 돋은 산객들 귀로가 가볍다.

 

 

 

영락공원에서

 

의 길 찾는 걸음, 아직

너무도 서툴다며 머리 긁적이더니

부처도 거짓말 해야 할

화급한 전언이라도 있었던가?

 

검은 훈장 사각 사진틀 속

푼더분한 모습 그대로인데

억장이 무너진 듯

고개 숙인 파리한 국화꽃

 

우정도 추억도 일순, 훨훨 타올라

가뭇없이 연기로 스러지고

허허로운 가슴

뜨거워지는 두 눈시울.

 

 

도둑괭이

 

수묵 같은 어스름

유년의 기억 속 도둑괭이 한 마리,

빠끔히 샛문 밀치고 기어드는

 

방구들 들썩이는 오롱조롱한 새끼들

호롱불 옆 헌옷 깁던 어머니

도둑괭이 왔다며 꼬이면

질겁하여 이불 속 파고들었던

대꾼한 눈 수심의 어둠

속으로 오그라드는 울음소리

등에 딱 달라붙은 뱃가죽 허기진 모습에

시퍼런 냄새의 촉수 앞세운

 

오늘도 여기저기 뒤지고 헤쳐 늘어

치도곤 먹이려는 심보가

채 비워내지 못한 마음속 미움의 싹으로

새록새록 돋아 오르는데

 

미움을 품는 건, 마음밭에

가시나무 키우는 일이라 생각하니

불현듯, 작두날을 본 듯 서늘해진 가슴

색안경 접는다.

 

 

 

]기다림을 위하여

 

생의 길 외롭고 고달파, 밤새껏

꺽꺽 소리 내어 울어본 적 있나요

 

우리네 사는 일은 늘 애처롭고

한 곡조 아니리보다 더 서글픈 것

 

그대와 나 가슴 저미는 헤어짐도

내 북 치듯 한 채근만은 아니었지요

 

이 넓은 세상에 화려하고 참된 것

입에 달고 몸에 좋은 약 흔치 않듯

 

삶은 굴곡지고 지난한 기다림 뒤에

그 자양으로 파릇이 환희의 싹 돋고

 

태산을 넘고 물이라도 건너, 다시

시작 않고는 이룰 수 없단 믿음였지요

 

가을이면 놀빛에 익어가는 감처럼

이내 가슴 세월 강에 벌겋게 젖지만

 

제아무리 기다림의 계절이 깊어도

결코, 이 회오리 이겨 내야합니다.

 

 

 

원율 당산할아범

 

원율 서쪽 어귀 당산할아범

우람하고 의젓한 풍채에다 언제부터인가

할망이듯 흔연히 돌 하나 안고 사신다

칠야 캄캄한 밤 보쌈에 걸려 왔는지

팔 척 장신 멀쑥한 허우대에

다가가도 땅금 긋지 안했을 듯한

긴긴날 소 닭처럼 물끄럼말끄럼 바라보다

동한 마음, 표 안 나게 품을 넓혀 가

아픔을 삼키며 제 살로 끌어안고는

그예, 연리지락을 누리게 됐으리라

동네 사람들 들면날면 그냥 안 보고는

온 동네가 한마음으로 살아야

당산할아범 진노 안 한단 생각이 들었는지

물 한 바가지도 나누자 하고

정월 대보름날 다짐으로 올리는 동신제,

마을 수호신으로 섬긴다.

 

 

   

설산雪山

 

나무들 옷 벗어

애기나무 덮어 주고는

눈짐 지고 기도의 강 건너간다.

 

누군가를 눈물로 건져 보고

누군가 숨어 짓는 눈물 강에

빠져본 적 있었는가?

 

노송 한 그루, 내민 손 붙잡고

세상 닭 소 보듯 살아온

스스럼없이 털어놓자

 

바윗등에서 엿듣다

같이 가면 더 쉽게 갈 수도 있노라고

귀띔해 주고 가는 바람 한 자락.

 

옥은 등짝에 회한 들쳐 메고

엉깃엉깃 나들목께 이르자

희미하게 떠오르는 길 하나.

 

 

 

화려한 변신을 위하여

 

짝대기로 두들겨 맞고 싶다

어깨에 얹힌 멍에 내려놓을 수 없음에도

안락의 유혹에 발 디밀어 보는

내 다리몽생이 작신 부러지게

 

쇠몽댕이로 내리쳤음 싶다

자고 샛다하면 새것이 봇물 터진 듯한데

녹슨 데이터 수정에 흐리터분한

내 물호박 머리통 박살이 나게

 

온몸 지근지근 밟히고 싶다

한 마름의 턱마루 허위허위 넘어서고도

외통곬 헌 누더기 못 벗어던지는

내 영혼의 육신이 으스러지게.

 

 

 

두멧골의 밤

 

찔레 덤불 저편에 해 떨어지자

 

오동나무 잎 사이로 달이 솟는다

 

사자봉 바위 뒤로 구름 외돌자

 

산등성이 높은 봉두 별이 외롭다

 

길 건너 애솔밭에 밤은 깊은데

 

앞 개울 무어라고 종알대는데

 

오늘은 고추밭 머리 소쩍새 노래로

 

까투리 푸드등 날면 또 어디로 가려나.

빗속을 거닐며

 

비가 온다

벌겋게 봇드는 대지의 가슴 위에

반가운 손님이듯 비가 내린다

 

후드득후드득 두드리다가, 어느새

간질이듯 여우비 비치더니

외발로 버텨 온 내 한뉘처럼

지적지적 궂은비 내린다

 

우산도 없이 빗속을 나선다

절절히 마음 나누다 세파에 떠밀려

세월강 굽이굽이 침전 된 사연들

함초롬 젖은 그리움 되어

연신 머리 들고 가슴 후벼댄다

 

후닥닥 장대비 쏟아진다

길바닥에 흥건히 빗물 고이고

푸른 시절의 꿈처럼 일고지는 물거품

낮은 데로 낮은 데로 오종종히 모인다

 

허둥지둥 고개 마루로 쫓기는

내 허기진 발길처럼

물머리 따라 빗물 흘러든다

그 속에 휩싸인 무심한 내 강 흐른다.

 

 

 

눈 내리는 밤이다

 

나이가 드니 더 친구가 보고 싶다

일찍이, 타작마당 콩 튀어 나가듯

먼 바다로 헤엄쳐 가더니 일자무소식인,

주막에서라도 만나 보릿국에 대폿잔 기울이며

죽마 타던 이야기 나누고 싶은

 

이따금씩 들르는 하리 맹순이 누님

형들이랑 둘러앉아 벌인 손목 맞기 민화투

어쩌다, 뒷손이 좋아 장원하면

움켜쥐운 팔 후려치는 내 매운 손 매

그 오동포동한 감촉 느끼고 싶은

 

큰아버지 댁에 마실 가셨다가

밤이 이슥해서야 발짐작 어둠 헤쳐 와

에헴!, 인적기로 사립 여신 아버지

가마솥 쇠죽 푸는 고무래 소리

이라! 자라! 깃 주는 소리 듣고 싶은

 

딸 셋에 청상이 된 외할머니

큰딸 가마 뒤쫓아 와 핏덩이 열 받아 내고

사 형제 따라다니며 뒷바라지하신,

공판 방청한 날이면 들려주신 세상 이야기

듣다가 깜빡 꿀잠에 빠지고 싶은

 

 

 

텃밭

 

한 귀에 터주 정화조가 퍼질러 앉아

악취 솔솔 날리던 반지빠른 자투리땅

 

여기저기 널린 우려먹고 버린 뼈다귀

개 고양이 몰래 싼 똥에 파리 떼 들끓던

 

눈초리 날카로운 사금파리 유리조각

버얼건 녹 슨 놋숟가락 몽당이 묻혔던

 

뒤축이 삐딱하게 닳은 백구두 한 짝

마구 버린 연탄재에 치여 숨 헐떡이던

 

삽날도 등골 오싹했던 이 더러운 데다 심어

한 고샅 사람들과 맛나게 나누는 푸성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