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내가 읽은 좋은 시

허형만 작품론

월정月靜 강대실 2008. 4. 12. 09:25
허형만 작품론

세계를 치유하는 ‘사랑’의 언어

강  경  호
1

시인 허형만은 1945년 전남 순천에서 태어나 1973년 『월간문학』에 「예맞이」가 당선되어 시단에 나왔다. 등단한 지 30여 년 동안 첫시집 『청명』을 비롯하여 『풀잎이 하나님에게』 『모기장을 걷는다』 『입맞추기』 『이 어둠 속에 쭈그려 앉아』 『공초(供招)』 『진달래 산천』 『풀무치는 없다』 『비 잠시 그친 뒤』 『영혼의 눈』에 이르기까지 10권의 시집을 펴 내었으니 3년에 1권씩 시집을 출간한 부지런한 시인이다. 또한 그는 일찍이 문단에서 주목받는 시인으로 성장하여 시인이란 이름이 부끄럽지 않는 명실공히 빛나는 시인이다.
그의 시의 싹수는 일찍이 순천고등학교 재학시절부터 키우기 시작하였는데, 그때의 스승이 문병란 시인이었다. 문예부장을 맡으면서 <씨크라멘>이라는 문학동인회를 결성하여 프린트판 동인지 발간과 시화전 등으로 대학입시보다는 오히려 시의 길을 찾는 데 정신이 팔려 있었다. 그 후 중앙대학교 국어국문과에 진학하여 그 학교에 출강하는 조병화 시인의 강의와 문병란 시인의 스승인 숭실대의 다형 김현승 선생의 강의를 들으면서부터 본격적이고 전문적인 시의 밭을 일구어 마침내 ‘시인’이란 덫에 스스로 걸리게 된다.
그동안 열 권의 시집을 통해 그가 보여준 시세계는 크게 두 갈래로 볼 수 있는데, ‘현실인식과 초월적 세계에의 지향’으로 압축시킬 수 있다. 그중 현실인식에 천착한 작품에서는 어쩌면 그의 스승인 문병란 시인을 비롯한 광주·전남지역 시인들의 시세계가 주로 그러했던 것처럼 늘 소외되고 주변으로 밀렸던 호남지역의 정서와 시대상황이 그를 밀실에서 귀를 틀어막고 시를 쓰게 하기보다는 질곡의 현실을 인식하는 이른바 거대담론을 노래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특히 『비 잠시 그친 뒤』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말수를 줄이고 자신의 내면을 깊이 응시하는 초월적 세계에의 지향과 성찰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러나 허형만 시인이 시를 일궈오면서 늘 시의 배면에 관심을 둔 것은 ‘사랑’임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것은 그의 인간됨에서 연유한 것으로 그가 기억하는 사람들의 애경사라면 밤낮과 물불을 가리지 않고 기쁨과 슬픔을 함께 해온 그의 따스한 사랑이 그 추진 동력으로 작용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관점에 따라서는 그의 30년 시적 결실을 ‘현실인식과 초월적 세계에의 지향’이라는 주제로 시세계를 묶는 일은 비평적 오류가 내포될 수도 있겠지만, 그 기저에 그의 세계에 대한 한없는 관심으로 ‘사랑’이 내재해 있음은 부인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렇다면 그가 시인으로서 간판을 내건 첫시집 『청명』은 30여년 동안 시의 밭을 일구는 데 여러 가지 자장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시인으로서 첫 발을 내딛을 때의 관심을 지속적으로 성장 발전시키는 것이 대부분 시인들의 시작과정이기 때문이다. 우선 그간에 펴낸 시집 제목으로도 어렵지 않게 유추 가능하다.
세속적인 현실에 대한 날카로운 시선을 보여준 현실인식의 세계와 초월적인 세계에 천착한 허형만 시인의 시세계의 단초가 되는 첫시집 『청명』을 살펴봄으로써 불화로 가득찬 세계에 대한 그의 따스한 사랑의 의미를 되새겨 보도록 하자.

2.

첫시집 『청명』에는 사물에 대한 묘사적 이미지를 감성적인 사색으로 그린 시가 주류를 이룬다. 또한 관념과 구체적인 일상을 모더니즘과 리얼리즘 수법으로 그린 작품들도 나타난다. 이처럼 그의 첫시집은 허형만 시의 원형질 같은 것으로 장차 현실인식에 대한 거대담론과 초월적 세계를 구현하는 시의 밑거름이 된다. 그것은 첫시집 이후 『풀무치는 무기가 없다』까지의 허형만 시의 주류가 현실인식에 관심을 갖는 시세계이고, 최근에 펴낸 두 권의 시집인 『비 잠시 그친 뒤』 『영혼의 눈』의 주류가 초월적 세계를 지향하는 성찰의 시세계를 보여준 결과에서 알 수 있다.

사랑할 일밖에 남지 않았을 때
나와 함께
조용히 창 앞에 서자.
이파리 화사한 웃음소리처럼
푸르른 하늘이 나린다.
넘쳐 흐르는 음정으로
한 계절이 나린다.
슬픈 또 하루가 흐르면
눈 감고 기도하는
갸륵한 마음씨를 간직했기에
이렇게 눈물을 잊을 수 있잖느냐.
가을을 닮아온 내가
내가 닮아온 계절 앞에서
소리없는 노래,
忍苦의 詩,
詩 같은 한 빛깔 믿음을
정성껏 繡놀 때
나와 함께
숨찬 생명의 음악을
환희에 넘치는
그 순간에 들을 것이다.
젊음이 성숙했을 때,
사랑할 일밖에 남지 않았을 때
나와 함께
창 앞에 서노라면
나리는 푸른 하늘,
나리는 가을의 인사는 반갑고
쇠진한 고독을 달래기에 기쁘단다.
―「가을 戀歌」 전문

위의 작품은 허형만 시인의 초기 작품의 경향을 알 수 있는 단서가 된다. ‘가을’이라는 관념을 ‘성숙’과 ‘결실’이라는 의미로 형상화시킨 이 작품은 젊은날 시인의 감성과 세계에 대한 지향을 엿볼 수 있다. 특히 “가을을 닮아온 내가/ 내가 닮아온 계절 앞에서/ 소리없는 노래,/ 忍苦의 詩,/ 詩 같은 한 빛깔 믿음을/ 정성껏 繡놀 때/ 나와 함께/ 숨찬 생명의 음악을/ 환희에 넘치는/ 그 순간에 들을 것이다.”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가을’은 시인과 동일성을 이루는 시적 화자가 닮아온 존재로 나타난다. 그리고 봄, 여름을 힘들게 인내하며 이룬 결과가 “忍苦의 詩”인데, 그 “詩같은 한 빛깔 믿음”을 가졌을 때 “숨찬 생명의 음악을 들을 것”이라는 신념을 읽을 수 있다. 즉 이 작품에서 시인은 아무리 힘들고 고통스러워도 변하지 않는 하나의 믿음을 지키고 간직할 때 가을처럼 풍성한 결실을 얻을 것이라는 확신을 말하고 있다. 여기에서 하나의 믿음에는 ‘사랑’이 전제됨은 말할 나위가 없다.
위의 작품 「가을 戀歌」는 그의 첫시집 제1부 첫 작품으로 첫시집을 펴낼 때 허형만 시인이 왜 ‘서시’격인 첫 작품으로 「가을 戀歌」를 맨 서두에 배치했는가를 생각해 볼 때 이후 그가 끊임없이 관심을 가지고 지향해 온 ‘사랑’의 의미를 생각하는 데 많은 것을 시사하는 작품이랄 수 있다. 「가을 戀歌」가 ‘사랑’이라는 시적 화두의 서곡이며 총론격이라면 무수히 많은 ‘사랑의 시’는 구체적인 본론이며 각론이라 할 수 있다.

하루의
祝福이 쏟아지는
窓 너머
樹木의 가지마다
이름모를 새,
새, 나(飛)는데
樹木
가지마다
촉촉이 젖은
알몸으로
몸 내음 피우는데

당신은 지금
가녀린
열개의 손가락으로
머언 먼
이오니아 바다,
무지갯 빛 찬연한
바람을 일며
타이프라이터를 치고 있다.
―「사랑을 위한 詩」 전반부

위의 작품은 허형만 시인의 시의 갈래인 신앙적 색채를 띤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사랑’을 주제로 한 그의 시는 여러 가지 모습을 지닌다. 바라보는 시선에 따라 다양하게 읽히는 것이 그의 ‘사랑’의 시인 것이다. 예컨대 신앙적으로 읽을 수 있고, 이성간의 사랑으로 볼 수도 있다. 위의 작품에서 “당신”을 절대자인 ‘하느님’ 또는 어떤 신적 존재로 보아도 무방하다. 특히 기독교에서 가장 크게 내세우는 ‘사랑’을 주제로 한 이 작품에서는 빛과 어둠을 짓고, 우주와 만물을 짓고, 나무와 새를 지은 절대자를 사랑의 표상으로 보고 있다. 또한 절대자가 우주만물을 지은 것은 생명이 있는 것들에 대한 아가페적인 사랑 때문임을 유추하게 한다. 그리고 절대자의 끊임없는 사랑은 하늘이 푸르거나 붉게 물들 때는 물론 “어느 외딴 섬/ 未知의 작은 물새” 한 마리까지 풀어놓으며 지금도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고 노래하고 있다.
다음의 작품도 보다 구체적인 대상을 한정시키지 않고 여러 시각으로 읽을 수 있는 작품이다.

네가 떠나간 그 순간부터
나에겐 방문 여는 버릇이 있다.
금방이라도 들어올 것만 같은
햇살보다 더 밝은 너의 웃음을 맞이하고저.

네가 떠나간 그 순간부터
나에겐 마당을 서성이는 버릇이 있다.
금방이라도 대문을 두드릴 것만 같은
기도보다 더 절실한 너의 정성을 맞이하고저.
네가 떠나간 그 순간부터
나에겐 거리를 쏘다니는 버릇이 있다.
금방이라도 날 부르며 달려올 것만 간은
소나기보다 더 싱싱한 너의 사랑을 맞이하고저.

네가 떠나간 그 순간부터
나에겐 사춘기보다 더 짙은 우울이 있다.
달무리 지는 밤이면 끓어오르는 가슴을 안고
늑대처럼 서럽게 울부짖고자운 아픔이 있다.
―「네가 떠나간 그 순간부터」 전문

성경의 ‘돌아온 탕자’를 연상시키는 위의 작품은 내용에서 꼭 그렇게 읽는 것만을 허락하지 않는다. 「네가 떠나간 그 순간부터」에서 지칭되는 “네가”는 시적 화자가 지극히 사랑하는 대상이다. 그런데 그 대상은 지금 “나”를 떠난 존재로 나에게 너는 부재중이다. 금방이라도 대문 두드리며 돌아올 것 같은 너는 ‘사랑’일 수 있고, 또는 내가 사랑을 주고 싶은 상대일 수 있다. 먼저 “네가” 즉 ‘사랑’이 떠나버렸기 때문에 나는 “사춘기보다 더 짙은 우울이 있”고 “달무리 지는 밤이면 끓어오르는 가슴을 안고/ 늑대처럼 서럽게 울부짖고자운 아픔이 있”는 것이다. 그러나 다른 시각에서 읽으면 “네가 떠나간 그 순간부터/ 나에겐 방문 여는 버릇이 있고” “마당을 서성이는 버릇이 있”고 “거리를 쏘다니는 버릇이 있”고 “사춘기보다 더 짙은 우울이 있”는 것은 “네가” 사랑으로부터 떠나버려 사랑을 모르고 살아갈까봐 노심초사하는 마음에서이다. 그래서 “네가” “금방이라도 대문을 두드”리며 돌아오면 “너의 사랑을 맞이하고”싶은 것이다.
이처럼 허형만 시인의 시는 여러 가지 얼굴을 가진다.

3.

앞에서 살펴본 것은 ‘사랑’을 직접적으로 노래한 시편들이다. 그러나 사랑을 말하지 않고도 현실과 보다 밀착된 삶을 살면서 역사와 현실을 인식할 때는 사랑이 작품 속에 투사된다. 이런 현실인식을 위한 시인의 눈길은 역사와 현실에서 소외되고 짓밟힌 시인 자신의 고향과 소외계급에게 집중된다. 뿐만 아니라 분단된 조국의 상처를 안타깝게 바라본다. 특히 현실인식에 대한 그의 시선은 뼈를 깎는 고통으로 오랫동안 역사와 민중들의 삶에 머물게 된다.

전라도 아침 안개는
앙징스럽게 꿈틀거리고 있다.

크나큰 한 마리 짐승
황톳빛 비늘 번득이는 짐승이 되어
탈 쓰고 환장하다가
韓半島의 목아질 물어 뜯다가
끝내는 아드득 이빨을 간다.

빛과 어둠, 그리고
유황보다 뜨겁게 입술이 타는
서럽도록 고요한 아침을
굴욕으로 끙끙 앓는
전라도 안개.
크나큰 한 마리 새
황톳빛 나래 파닥이는 새되어
구성진 육자배길 읊어대다가
韓半島의 발목을 물어 뜯다가
끝내는 칼날보다 예리한 부리를 깎는다.

차라리, 불꽃으로라도 타버리고자운
목마른 流配地에서
서툰 목청으로 사투리를 배우고
때로는, 진도 아리랑
비린 바닷내음에 피를 토하는
전라도 안개.

전라도 아침 안개는
앙징스럽게 꿈틀거리고 있다.
―「전라도 안개」 전문

주지하다시피 ‘전라도’는 근현대사는 물론 역사의 중심무대에 자리하지 못하고 주변에 머물러 있었다. 때로 피를 흘리고 때로 수탈과 소외의 대상이었다. 먼저 그런 전라도의 역사성을 떠올린다. “빛과 어둠, 그리고/ 유황보다 뜨겁게 입술이 타는/ 서럽도록 고요한 아침을/ 굴욕으로 끙끙 앓는/ 전라도 안개”라고 전라도가 “굴욕으로 끙끙 앓는” 역사적 공간이었으며 존재였음을 인식한다. 이 굴욕의 역사는 과거진행 뿐만 아니라 현재진행형임도 고발한다.
그런데 그는 전라도를 ‘안개’라는 유기체로 형상화시켰는가? 안개는 앞을 바라볼 수 없는 존재이기는 하지만, 그러나 해가 뜨면 금방 사라지는 그런 존재이기 때문인데, 그렇다고 전라도가 사라질 수 있음을 염두에 둔 것이 아니라 궁극적으로 전라도가 오랫동안 안개에 휩싸여 있었지만 그 안개가 걷히면 역사 앞에 당당하게 그 실체를 드러낼 수 있음을 말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가 바라는 “전라도의 아침 안개는/ 앙징스럽게 꿈틀거리고 있”는 것이다. 위의 작품에서는 ‘황톳빛’ ‘육자배기’ ‘유배지’ ‘사투리’ ‘진도 아리랑’ 등의 향토적 정서를 갖는 언어를 통해 전라도의 이미지를 빚어내고 있지만 아직까지는 보다 구체성을 확보하지 못하고 관념에 머물러 있다.
이렇듯 1970년대 구체화되지 못하고 관념에 머문 그의 시는 1980년대 우리나라 리얼리즘 시의 득세와 맞물려 보다 구체성을 확보하기에 이른다.

① 맨 처음 햇살은
태초의 하이얀 입김
음악보다 질 고운 바람으로
가늘게 떨고 있었네.
햇살은, 밝은 지혜의
햇살은
그 싱싱한 바람을 숨쉬며
무성한 이파리마다
사랑의 숲을 이루었네.
이별이 잦은 곳에 사는 우리
미움이 잦은 곳에 사는 우리
아픔이 잦은 곳에 사는 우리
그러한 거 모두 저만치 밀어두고
이제금 햇살은,
밝은 지혜의 햇살은
근심스러운 조국을
가슴에 꼬옥 품어 어루만지며
당신과 나,
우리 모두의 사랑하는 자
뼛속 깊이 뜨겁게 타오르고 있네.
―「밝은 지혜의 햇살은」 전문

② 兵村에 날이 밝으면
옥수수가 한시름 더 익는다.

바람은 북녘바람
이마가 시리고

오리木 울타리마다
화약내음 물씬한데

R-406 비행장 위로
솔개 한 마리 회전하는

兵村에 날이 밝으면
동동주가 한시름 더 익는다.
―「兵村」 전문

위의 두 작품은 1970년대 혼란스러운 현실과 분단의 상처를 그린 작품들이다. 물론 그런 상황은 지금도 현재진행형으로 여전히 개선되지 못하고 있다.
①에서는 우리의 현실을 “이별이 잦은 곳” “미움이 잦은 곳” “아픔이 잦은 곳”으로 인식한다. 그렇지만 숲을 바라보면 바람이 가늘게 불고 햇살이 싱싱한 숲위로 내려쬐어 “사랑의 숲을 이루”었다고 말한다. 그렇듯이 “당신과 나”는 이별, 미움, 아픔이 잦은 “근심스러운 조국을/ 가슴에 꼬옥 품어 어루만지며” “우리 모두를 사랑하는 자”가 “뼛속 깊이 뜨겁게 타오르고 있”음을 노래한다. 이 작품에서 ‘햇살’의 의미는 두 가지로 이해될 수 있다. 먼저 숲 속에 내리쬐는 햇살로 그야말로 ‘자연의 햇살’이며, 한편 “우리 모두를 사랑하는 자”가 내리쬐는 햇살은 자연의 햇살이 아닌 ‘지혜의 햇살’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시인은 이 작품에서 숲 속에 내리쬐는 햇살이 숲을 무성하게 하듯이 “우리를 사랑하는 자”가 내리쬐는 햇살, 또는 우리 스스로 지혜를 내어 근심스러운 조국의 현실을 극복하기 위한 어떤 것인 햇살을 통해 이별과 미움과 아픔을 멀리 할 수 있음을 말하고 있다 하겠다.
②에서는 분단의 상처를 병영의 한 모습을 통해 그려내고 있다. “바람은 북녘바람/ 이마가 시리고”에서 보듯 이념이 다른 남과 북이 대치하고 있음을 암시하고, “오리木 울타리마다/ 화약내음 물씬한데”에서는 언제든지 남과 북이 상처를 줄 수 있음을 짐작하게 한다. 어쨌든 병영은 “한시름 더 익는” 우리의 현실을 실감나게 묘사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특히 “R-406비행장 위로/ 솔개 한 마리 회전하는”에서의 “비행기”와 “솔개”는 동의어로 ‘공격’과 ‘감시’를 상징적으로 나타낸 시어로 이 또한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모순된 역사의 현장을 적절하게 형상화시키고 있다.

금호동 山 10번지, 빈민촌 물지게는
제 손으로 뽑아 준 의원님댁 문고리보다
일금 2원整의 흐늑임에 한결 더 무겁다.

처마 끝에 오직 하나 굴비 한 줄이듯
한 줄로 칭칭 엮인 모진 목숨들,
차라리 하늘 우러러 눈물 막는 지아비가
제 업보, 제 어깨에 짊어진 물지게.
그 어느 벼랑 끝을, 피안의 벼랑 끝을
못다 한 죽음이라도 짊어지고 걸어간들
물지게야, 물지게야, 이만큼은 더 할까,
이마엔 보송보송 굴욕의 비늘이 가시로 돋고,

낮은 포복으로 대롱대롱 매달린 물통 속에서
서러운 한국의 햇살,
이마가 깨지고 피를 쏟으며
아프게 열 두 번씩 자맥질 하나니

금호동 山 10번지, 오르는 길은
일수 딸라돈 이자보다 턱숨이 차고
오늘에사 서녘노을 인왕산도 고개 돌려 돌앉는다.
―「금호동 물지게」 전문

위의 작품을 통해 허형만 시인은 구체적인 현실의 한 풍경을 적나라하게 그리고 있다. 그가 관심을 갖는 현실은 갖지 못한 자의 고통스러운 물지게를 진 어깨이다. 오늘날도 크게 달라진 것이 없는 것은 권력이나 물질을 갖지 못한 자는 늘 변두리 삶을 살며 버거운 삶을 살고 있는 점이다. 하물며 군부독재 시절인 1970년대 금호동 山10번지에 사는 물지게꾼의 삶은 어깨가 휘어지는 무거운 것이었을 것이다.
위의 작품 속에서 나타나는 시적 대상인 물지게꾼은 그 시대를 살아가는 갖지 못한 자들의 상징이다. “금호동 山10번지” 또는 빈민촌을 오르는 물지게꾼의 노임은 2원인데 “이마엔 보송보송 굴욕의 비늘이 가시로 돋”는 언덕길을 가족을 위해 “일수 딸라돈 이자보다 턱숨이 차”도 업보처럼 물지게를 지고 오르는 가장의 모습에서 시인은 연민과 굴욕을 느끼고 있다. 그러나 “제 손으로 뽑아준 의원님”은 호의호식하며 잘 살고 있는 모순된 현실에서 시인은 “서러운 한국”의 일면을 보며 가슴아파하고 있다. 가슴 미어지는 고통으로 빈민의 가장을 바라보며 그에게 다가가는 것이 시인의 따스한 사랑임은 당연지사이다. 그것은 시인이 어떤 대상을 바라볼 때 사랑이 전제되지 않고서는 작품에 시인의 마음이 전이되지 않기 때문인데 위의 작품에서는 연민과 사랑이 뜨겁게 흐르는 허형만 시인의 마음이 녹록하게 넘치고 있다.

대략적으로 살펴본 허형만 시인의 첫시집 『청명』에서 이후 그가 토해내는 뜨거운 언어들의 숨결을 감지할 수 있었다. 일상과 자연과 삶의 모습을 그려낸 어떠한 그의 시편에서도 상처와 불화의 치료제로 ‘사랑’을 처방전에 담고 있었음을 읽을 수 있었다. 마치 첫시집 이후 때로 피고름 짜는 소리, 아이들 똥구멍 핥는 소리를 예고하고 있다.
눈이 멀었어도 영혼의 눈으로 느티나무 속잎 틔우는 소리를 듣기도 하며, 밝음을 이기는 영혼의 눈을 갖기까지 그의 시는 첫시집에서부터 만병통치약인 ‘사랑’을 약제로 쓰기 시작한 것이다.

(시인, 『시와 사람』 발행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