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내가 읽은 좋은 시

[스크랩] 허형만/ 5월이 와도 피어나지 못하는 한라산 철쭉

월정月靜 강대실 2008. 4. 11. 22:56
5월이 와도 피어나지 못하는 한라산 철쭉
허형만


이 나라에 태어나
난생 처음 한라산 상상봉을 오르면서
오월 산천 흐드러진 철쭉
여기서만은 꽃망울도 터지지 않았다.

으레 봄날이 오면 피려니 했던
철쭉 한 송이도 피어내지 못하는
한라산 상상봉을 오르면서
우리는 얼마나
크낙한 희망으로 서있는지
우리는 얼마나
심원한 핏줄기로 뿌리박고 있는지
안개 속 가녀린 햇살에도
괴로워했다.

그렇구나, 한라산 상상봉까지
떠밀리고 떠밀리어
오월이 와도 피어나지 못하는
이 나라의 서러운 철쭉을 두고
누가 아름답다 하느냐
봄이라 하느냐.
―「철쭉」

1980년대 중반, 학생들과 함께 제주도 한라산을 올랐다. 목포에서 배를 타고 수학여행을 간 것이다. 때는 오월이라 남녘에서는 천지가 철쭉꽃으로 환한데 유독 한라산에만 꽃은 고사하고 꽃망울마저도 터뜨릴 생각을 하지 않고 있음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진달래과(科)의 낙엽관목인 철쭉에 대한 우리의 상식은 오월이면 으레 피어야 하는 것으로 알았는데, 그래서 한라산에서도 그 붉고 흰 꽃의 장관을 은근히 기대했었는데, 그만 상식적인 기대가 무너진 나는 이 모든 사실을 당시의 시대상황과 연결시키게 되었다.
광주민주화운동을 직접 겪은 나는 이 시를 제4시집 『입맞추기』(1987, 전예원)에 실었다. 당시 그 시집의 ‘자서(自序)’에 나는 이렇게 썼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를 어떤 이는 절망의 시대라 하고 어떤 이는 눈물의 시대라 하며 또 어떤 이는 아픔의 시대라고 한다. 절망이 그렇고 눈물이 그렇고 아픔이 그렇다치고 그러한 시대라 일컬어지는 이 시대 속에 나도 함께 살면서 나는 과연 무어라 이름 할 수 있을까. 고뇌의 시대라 할까, 암흑의 시대라 할까. 계절로 치면 겨울이라 할까, 하루를 쪼개면 한밤이라 할까. 아니다. 이 시대에 있어서 나의 시혼은 잠들지 않고 깨어 있는 한낮이요, 설령 암흑과 겨울이라 친다해도 그 암흑과 겨울을 밀어내는 불기둥이다.

오월이 와도 피어나지 못하는 한라산의 철쭉을 나는 광주민주화운동 중에 처참하게 죽어간 영혼으로 보았다. 아울러 이 땅에서 유배된 민주주의로 보았다. 그 시대는 사실 그랬다. 두 번째 시집 『풀잎이 하나님에게』(1984, 영언문화사), 세 번째 시집 『모기장을 걷는다』(1985, 오상출판사), 그리고 다섯 번째 시집 『供草』(1988, 문학세계사), 여섯 번째 시집 『이 어둠 속에 쭈그려 앉아』(1988, 종로서적) 등 ‘풀잎’과 ‘모기’ ‘어둠’ 등 80년대 나의 시집 제목이 말하고 있는 상징성이 그것을 증명한다. 이 시 「철쭉」이 실린 시집의 제목 역시 이미 죽은 것이나 죽어가고 있는 것이나 죽지도 살지도 못하는 이 땅의 모든 생명에 대한 ‘입맞추기’였다. 그러면 『공초(供草)』는 무엇을 상징하는가. ‘독자를 위하여’라는 서문에서 나는 또 이렇게 썼다.
우리네 지나온 역사가 그렇듯 특히 80년대를 살아오면서 우리는 퍽 많은 아픔과 눈물을 함께 해 오고 있다. ‘供草’란 주지하다시피 오직 나라 위한 일편단심, 보국안민과 제폭구민(輔國安民, 除暴救民)을 외치며 갑오동학혁명을 주도한 전봉준 장군이 피체된 이후 개국 5백4년(1895) 2월 초9일 동도 죄인(東徒罪人) 명목으로 첫 문초를 당한 이래 3월 29일 동지들과 함께 교수형을 당하기 전까지 다섯 차례에 걸쳐 행해진 문초에 대한 당당한 대답을 말한다. 그래서 통상 이를 ‘전봉준 공초’라 일컫거니와, 오늘을 살아가는 이 시대에서도 참된 삶을 위하고, 우리네 아픔을 위하고, 눈물겨운 희망을 위하여 이 시대가 나에게 내리꽂는 뜨거운 문초에 대한 나의 대답이 곧 이 시집이다.
왜 시를 쓰는가. 적어도 나의 경우 ‘진솔한 삶의 역사’를 확인하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1984년부터 1988년까지 나는 무려 5권의 시집을 쏟아냈다. 80년대는 나에게 있어서 그만큼 처절했다. 이 시 「철쭉」 또한 그러한 시대상 속에서 맛본 처절함의 한 단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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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한국시문학아카데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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